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19:21:45

사회적 시장경제

1. 개요2. 성향
2.1. 질서자유주의2.2. 노사공동결정제2.3. 복지국가
3. 한국에서4. 같이 보기

1. 개요

/ Soziale Marktwirtschaft / Social market economy
자본주의를 '길들이고' 정치적 규범을 통해서 틀을 만든 다음, 사회적 시장경제로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게 바른 길이다.
라인하르트 마르크스Reinhard Marx 추기경, 《자본론》Das Kapital, 주원준 번역, 도서출판 눌민, 2020, p.52.
사회적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 또는 사회적 자본주의(social capitalism)는 독일자본주의 모델로 알려져 있는 시장경제 시스템의 한 분류이다. 다른 독일어권을 포함한 유럽 국가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추구된 바 있으나 어찌됐든 가장 유명한게 독일이다보니 라인 자본주의(Rhine capital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협동조합주의, 질서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의 한 형태로도 여겨진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지향한다.

2. 성향

'사회적(Sozial)'이라는 말 때문에 시장사회주의와 같은 사회주의와 관련된 개념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가톨릭 사회교리와 같은 사회정의에 기반한 온건한 자유주의적(liberal) 시장경제를 의미한다. 독일의 보수주의 정당인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이 지향하는 노선으로도 알려져 있다. #

핵심적 이론은 크게 보면 자유시장을 존중하되 독과점 방지 등 시장의 불공정 거래를 차단하고 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부분에선 정부의 개입을 적극 옹호하는 질서자유주의적 측면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더해 노동자의 기업 경영 참여를 보장하는 사회적 요소에 더해,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종교적 전통까지 포함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2.1. 질서자유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설명하려면 일단 경제 이론 중 하나인 질서자유주의[1]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중반 독일의 학자 발터 오이켄이 주창한 질서자유주의는 대공황 이전의 자유방임경제[2], 그리고 사회주의나치즘, 파시즘에서의 중앙관리경제 양쪽 모두를 거부하며,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케인즈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와도 차이를 보였다.[3] 질서자유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중상주의, 보호무역 따위로 정부가 낳는 독과점이나 이에 대한 대체제 격으로 나온 자유방임의 결과 시장이 낳는 독과점이나 둘 다 기본적으론 시장경제를 망치는 행위라고 봤으며, 결국 이런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봤다.

물론 사회적 시장경제는 질서자유주의를 큰 틀 중 하나로 둔 것이지, 둘이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다. 때문에 전후 서독에선 정부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에 대해 입장 차이가 존재했다. 발터 오이켄이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같은 이들은 사회적 형평을 위한 정부의 개입을 인정하긴 했으나 그래도 자유시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한편, 알렉산더 뤼스토, 빌헬름 뢰프케, 알프레드 뮐러-아르막 같은 이들은 자유시장을 중시하면서도 사회적 형평을 위한 정부의 개입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특히,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던 뮐러-아르막은 그의 저서 '경제조정과 시장경제(Wirtschaftslenkung und Marktwirtschaft)'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용어를 처음 고안해 냈으며, 자유시장('시장경제')과 사회적 형평('사회적')의 조화를 추구, 이를 위한 정부의 개입을 더 적극적으로 제의했다.

파일:알프레드 뮐러-아르막과 루트비히 에르하르트.jpg

사회적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이끌었던 두 주역 알프레드 뮐러-아르막과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사회적 시장경제는 다음과 같은 3대 사회원리를 존중함으로써 이루어진다.

1)자기책임성 원리 - 이는 인간 존엄, 인격 존중 원리로서의 존엄성과 그 권리의 신성함,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보편적 가치로써 사회 관계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평가 척도가 되어야 한다는 원리다. 이 원리는 다른 나머지 원리, 이를테면 연대성 원리나 보충성 원리보다 우선한다.

2)연대성 원리 - 앞에서 언급한 '자기책임성 원리'는 연대성 원리를 동반한다. 즉, 자기책임성 원리에는 고유의 인격을 지닌 타인에 대한 인격 존중과 더불어 공동체 형성을 책무로 하는 '연대성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3)보충성 원리 - 개인 성과와 연대 원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 지원, 조정, 개입하는 보조 원칙이다. 단, 개별 구성원과 가족의 자유, 그리고 자기 책임성을 훼손시키는 작용을 해서는 안된다. 보충성은 어디까지나 자기책임과 자조능력 형성 노력의 촉매가 되도록 해야 한다.

2.2. 노사공동결정제

노사공동결정제(Mitbestimmung)의 경우 사회민주당 정부가 1976년 '공동결정법'을 제정하여 완성했다.[4] 다만 그 기원을 따져보면 기독교민주연합 내각이 1951년 '몬탄-공동결정법', 1952년 '경영조직법'을 제정한 데에서도 찾을 수 있긴 하다. 허나 이것 역시 당시 사회민주당과 독일노동조합연맹이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부분적 계획경제, 생산수단의 사회화 등을 주장하자, 기독교민주연합 정부가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경영상의 공동결정제'를 도입한 것으로 결국 정반합하면서 만들어진 제도다. 이후 사회민주당 정부에서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제'가 도입된다. 어찌됐든 덕분에 오늘날 독일은 노동자노동조합 측에서 경영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5]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4부 - '기업민주주의'. 노사공동결정제 관련 영상.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제'란 기업의 감독이사회에 대한 노동자 대표의 참여와 공동의 의사결정권을 보장한 것이다. 독일에서 노동자가 5명 이상인 사업장의 경우 무조건 노동 평의회를 구성해야 하고, 2천명 이상일 경우 감독이사회를 만들고 절반은 노동자 대표, 나머지 반은 주주 대표들을 임명하도록 되어있다.[6]

독일에서는 기업의 이사회가 '감독이사회(Aufsichtsrat)'와 '경영이사회(Vorstand)'로 나뉜다. 감독이사회는 주주총회에서 뽑힌 주주를 대표하는 사용자 측 인사와 직원 평의회에서 뽑힌 노동자 대표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해당 기업의 장기적 전략이나 다른 기업의 인수, 합병 등 중요한 의사결정에 관여하며, 경영이사회 이사의 임명과 해임 등 경영진을 감독하고 견제하는 역할까지 한다. 한편, 경영이사회는 사내 이사로만 구성되며, 기업의 일상적인 업무를 주관하고 법적 또는 법 외적인 문제에서 회사를 대표한다.

직원부서 이동이나 근무시간 체계, 임금 인상, 고용, 해고에 관한 것도 직원 평의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이에 대한 토론투표가 진행되며, 노동자 대표나 경영진이나 모두 공동 목표라는 한 배를 탄다. 자본과 노동의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한 것이다. 이는 부가적인 효과도 가져왔는데, 먼저 갈등이 생기면 규정에 따라 처리하지 웬만하면 노동투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한편으론 이렇게 견제와 감시 체제가 작동하니 기업의 부정부패나 정경유착 역시 막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2.3. 복지국가

사회적 시장경제는 복지국가를 추구한다. 현대 복지국가는 사회주의 이념에도 영향을 받았지만, 사실 사회주의가 태동하기 훨씬 이전부터도 복지 개념은 있었다.[7] 서구에선 기원 이후 오랜 기간 전통적 모델이 된 가톨릭의 경우에도 사회적 약자를 구호하는 행위는 꾸준히 하는 편이었다. 그 외 1891년 교황 레오 13세는 교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에서 노동자의 단결권 인정 및 적정 임금을 받을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으며, 1931년 비오 11세는 교서 '40년 후(Quadragesimo Anno)'에서 자본주의의 폐해와 사회주의의 계급투쟁관에 대한 대안으로 노동자, 자본가, 정부가 참여하는 삼자 합의주의(협동조합주의)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톨릭 사회교리나 윤리에 바탕을 둔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 등 기독교 민주주의자들은 전후 서독에 사회적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가족공동체를 위한 각종 복지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는 등 복지국가를 지향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많은 사회주의자들도 사회적 시장경제에 호응하는 결과[8]를 낳았고, 마찬가지로 빌리 브란트사회민주주의자들 역시 복지국가를 추구했다.[9]

다만 기원을 따져봤을 때 확실히 사회민주주의사회자유주의와 차이가 있는 점은, 사회적 시장경제는 기독교 민주주의자들과 질서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고 도입한 것이기 때문에 문화적 자유주의와는 연관이 적다. 좌파가 아닌 우파가 주도했음에도 복지 친화적, 노동 친화적인 까닭은 전통관습, 특히 가족의 가치에 대한 중시, 공동체주의가 그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서에서 괜히 '가족공동체'가 강조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나치에 협력하지 않은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 법학자들이 주도한 사상이 질서자유주의인만큼, 주로 정치적 자유주의나 경제적 자유주의에 집중하기 때문에, 질서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여러 갈래들 중 가장 문화적 자유주의와의 접점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또 기독교 민주주의는 이미 잘 설명되어 있듯이 경제적 자유주의와도 거리가 있지만 문화적 자유주의와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덕분에 독일은 대다수 주류 정당들이 국민 전체의 사회복지와 권리에 있어서 정부의 개입 및 조정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며, 특히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친생명 입장이 확고한 기독교민주연합은 개인보다 가족공동체를 위한 복지를 중시한다.

3. 한국에서

  • 현재 국내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내세우는 정치인으로는 거대 양당의 당 대표를 모두 지낸 바 있는 김종인이 있다. 물론 독고다이 스타일로 본인의 정치 세력은 미미한지라, 이당저당 옮겨가면서 본인의 이념을 설파하곤 있지만 딱히 주류화되진 못하고 있다. 그나마 김종인이 자주 얘기하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좀 더 호응하는 편이다. 이는 미국식 경제 시스템에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의 특성상, 사회적 시장경제조차 좌클릭된 이념으로 판단되기 때문도 있다. 미국 민주당이나 한국의 민주당계 정당들이나 사회자유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선 비슷한 점이 있긴 하다.[10][11]

4. 같이 보기



[1] 사회자유주의와 추구하는 경제 정책의 방향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자유주의 역시 시장경제 체제를 추구하나 그 방향성이 공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해 공공재 민영화 반대, 최저시급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근로자 재산 형성을 하게 하고, 대기업과 같은 경제적 강자의 독과점 방지를 적극 지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사회적 시장경제 역시 사회자유주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질서자유주의에 대해서 다룬 여러 서적들은 질서자유주의와 사회자유주의자들이 주로 지지하는 케인즈주의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다. 실제로도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케인즈주의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오히려 하이에크나 프리드먼과 같은 오스트리아학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함께 했다. 물론, 이들과도 입장 차이가 존재해서 갈라지게 되지만 말이다.[2] 특히 독과점을 경계했다.[3] 다만 목적성에서 차이가 있을 뿐, 사회민주주의 세력도 결국 시장경제를 인정하는 쪽으로 오면서 결과적으론 비슷하게 수렴되긴 했다. 결국 이런 이념들이 어찌저찌 조합되면서(비율은 서로 유리한대로 주장하기 나름이긴 하다) 독일식으로 나온게 사회적 시장경제. 하지만 케인즈주의가 사회자유주의자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로 지지하는 경제적 입장인 것은 분명하며, 질서자유주의자들 또한 케인즈주의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물론, 사회적 시장경제는 케인즈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주로 빌리 브란트나 헬무트 슈미트가 집권했을 때 사회민주당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변형시킨 것에 가까웠다. 콘라트 아데나워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가 집권했을 때 기독교민주연합이 도입했던 본래적 의미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질서자유주의와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그에 훨씬 가까웠다. 자세한 내용은 김호균 교수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나 이근식 교수의 <서독의 질서자유주의>, 황준성 교수의 <질서자유주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한독경상학회에서 펴낸 <사회적 시장경제와 독일의 경제정책> 등 참고. 최근에 나온 홍훈 교수의 <시장주의란 무엇인가>에도 질서자유주의를 다루고 있다.[4] 초창기 급진적인 민주적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쪽 역시 보다 온건한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하면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받아들인다.[5] 영미권과 대비되는, 독일어권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 경제 시스템상의 큰 차이점이다.[6] 때론 노동자 권리를 위해 주주회사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7] 한국만 해도 무려 고구려 시절부터 전해져오는 사회복지제도의 일종인 진대법이 있다.[8] 비스마르크가 사회주의 물결 막을려고 근대적 사회보장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물론 자유방임을 지지하는 측에선 이것조차 빨갱이 소리 들었겠지만. 여담으로 아데나워는 군주국, 군국주의 냄새나는 비스마르크 시절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9] 사실 이런거 보면 기원 따지는거부터가 좀 우문인게,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에 심취한 이유 역시 노동자 권리가 보장되고 복지국가를 만들려는 목적이었기 때문. 즉, 어찌 포장해도 짬뽕된 이념인거 맞다.[10] 실제 사회적 시장경제는 한국 정치 지형에서 보수 성향을 표방하는 이들이 자주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나 친재벌 정책에 비해선 훨씬 중도 성향에 가까운 경제 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중도 진보 성향의 민주당계 정당들이 자주 내세우는 사회자유주의와도 꽤 일치하는 입장이 많다. 사회자유주의 역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나 그 방향성이 공정하고 건전한 시장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정부의 경제 개입을 지지하고,시장의 자유 뿐만이 아닌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자유도 함께 주장하여 복지 정책의 확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11] 뿐만 아니라 사회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원리에 맞게 노동자 임금 책정을 하는 것을 주장하나, 노동자의 인권 신장을 외치면서 최저임금 이상을 주게끔 해야 한다 이야기하고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추구하여 법적 노동시간을 규제해 그러한 법적 노동시간 안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근로시간을 정하게 하는 정책을 펼친다. 이렇듯 사회자유주의자들은 노동자 친화적 시장경제를 펼치는 것까지 사회적 시장경제는 꽤 일치하는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