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09:58:24

진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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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여담

1. 개요

진대법()은 194년 고구려에서 실시된 구휼(救恤) 제도이다.

시기상 당시 고구려 국상이었던 을파소가 실시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하진 않다. 을파소 열전에서는 진대법 이야기가 안 나오며, 고국천왕 본기의 16년 10월에 실시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누가 주도했는지는 안 나오고 그냥 실시했다고만 나온다. 다만 을파소가 국정을 맡고 있을 시기이니 그도 최소한 일정 수준의 관여는 했을 것으로 보인다.[1]

2. 내용

흉년기나, 춘궁기에 국가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양곡을 대여해 주고 수확기인 10월 즈음에 낮은 이자를 쳐 갚게 한(춘대추납) 제도로,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목적 외 다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데, 보통 흉년기나 춘궁기를 버틸 수 없는 사람들은 귀족 등으로부터 돈이든 식량이든 빌리거나 아예 자기 땅을 바친다. 빌린 경우 갚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갚지 못하면 노비로 들어가는 경우가 빈번했기에 진대법 같은 제도가 없다면 국가의 입장에서는 흉년 한번 터질 때마다 백성들이 귀족 등에게 의탁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국가가 거두는 세수가 줄고 또 왕이 아닌 특정인이 과다한 토지를 갖게 되어 통제력도 엉망이 된다.[2] 진대법은 이를 방지할 수 있다.

3. 여담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했던 이다지 강사는 세계 최초의 사회 복지 제도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사실 세계 최초는 아니고 한국사 최초가 맞다. 고구려가 세워지기 200년 전,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의 중흥기를 이끈 아소카 대왕 시기에도 이미 저리로 곡물을 빌려주는 제도가 있었으며, 비슷한 시기였던 고대 로마시대에도 부자들이 자신의 도시의 빈민들을 먹여 살리는 복지 시스템이 있었다. 물론 진대법 이전 한국사에서 이와 비슷한 제도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기록상으론 처음 등장하는 복지 제도이기 때문에 한국사 최초의 사회복지제도라 할만하다.

이후 진대법과 비슷한 환곡제도로는 흑창(태조 왕건이 설립했으며 고려 성종 때 의창으로 바뀐다. 조선 때도 이어진다.), 상평창, 환곡, 사창이 있었다.


[1] 설령 진대법을 처음생각해낸게 을파소가 아니더라도 을파소는 관직에오르기전에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살았던 만큼 당시 실행한 진대법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2] 로마 제국이 라티푼디움으로 지나치게 귀족들에게 많은 권력과 부가 집중된 후, 설 곳을 잃은 농민들이 몰락하고 귀족들에게 의탁하며 오히려 더더욱 귀족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져 공화정의 탈을 쓴 귀족정치가 되어버린 것이 비슷한 전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