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20 23:04:57

에보 모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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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 Juan Evo Morales Ayma, 1959.10.26 ~

1. 개요2. 상세3. 4선 출마 및 부정선거4. 하야5. 역대 선거결과

1. 개요

볼리비아의 사회운동가 출신의 좌파 성향 정치인으로, 2006년부터 2019년까지 볼리비아 역사상 최장 집권한 대통령이다. 동시에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아이마라인) 대통령이다. 2010년대 중후반에도 타 중남미 국가들이 침체에 빠졌음에도 연 4%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지속, 볼리비아의 최저임금이 브라질, 페루, 아르헨티나를 추월할 정도로 볼리비아를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만든 지도자라는 평이지만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으로 지지율이 떨어졌고 이 와중에 2019년 대선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야권지지자들의 시위로 사임한 대통령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이전에 민영화 정책을 유지하고 칠레와 송유관 연결을 하려다가 반발을 사고 시위진압을 하는 과정에서의 학살사건으로 축출된 산체로 로사다와 가스국유화 정책에서 머뭇거리다가 국민의 반발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카를로스 메사의 전철을 밟은 셈이다. 자신이 사임시킨 카를로스 메사가 정계에 복귀한 뒤에[1] 지휘한 시위로 사임해서 역지사지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다.

2. 상세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당(MAS) 소속으로, 21세기를 대표하는 민주사회주의 정치인의 한 명. 그러한 말이 무색하게 푸틴마냥 은근슬쩍 장기집권을 시도하는 등 독재적인 면모도 다소 보이고 있지만, 동시에 여러 민족의 단결을 추구하는 등 화합을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 피델 카스트로와 친하게 지냈으며 차베스의 후임인 마두로가 삽질과 무능, 꼼수로 욕을 대차게 먹음에도 친분관계를 과시하며 옹호할 정도이기는 하지만, 경제운용능력은 역대 볼리비아 대통령 가운데서 가히 독보적인 수준으로 뛰어나다는 것이 주평이다.[2] 이는 부통령을 지내는 인물인 알바로 가르시아[3]와 같이 콤비를 이루면서 이루워낸 성과라는 것이 호사가들의 얘기다.

집권 이후로 천연가스 사업 국유화 조치를 통해서 재정수입을 증대시켜서 인프라와 복지수준을 크게 확충시켰는데 사실 이런 조치는 다른 남미 국가에서도 시행한 것이지만[4], 재정을 제법 건실적으로 운영했고, 2015년 이후로 칠레, 페루,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등 타 남미국가들이 좌파집권국가든 우파집권국가든 간에 죄다 경제적으로 침체에 빠졌음에도 유독 볼리비아는 성장률이 둔화되었기는 해도, 4-5%대의 경제성장률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중순 기준으로 볼리비아의 최저임금 수준이 브라질과 페루의 최저임금 수준을 추월했고, 2018년에는 베네수엘라의 환율 현실화 조치(...)로 추월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그래서 여타 남미 우파언론에서도 에보 모랄레스를 표퓰리스트라고 까도, 경제정책으로 까는 것은 덜하다.

물론 고도성장 수준은 아닌지라 여전히 볼리비아가 남미에서 가난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경제적인 성과는 크게 냈고 경제적인 성과를 통해서 빈곤율문맹률을 크게 끌어내린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동안 빈민층 신세로 살았던 대다수 원주민들로부터 지지율이 매우 높다. 하지만 권위주의적인 성향이나 즉흥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기는 해서, 환경단체나 우파언론, 일부 좌파단체로부터 비판도 많이 사는 편이고, 에보 모랄레스가 추진하고 있는 코카 합법화 조치도 코카인 문제와 엮어지면서 국내외에서 많은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고, 이로 인해서 UN 등으로부터 많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1959년에 아이마라족 농민의 아들의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는 자녀를 7명씩이나 낳았지만 모랄레스를 포함한 3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일찍 세상을 떴을 정도로[5] 형편이 어려웠고,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학업과 여러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살아야했고, 성인기 들어서는 대통령 경호원으로 지내다가 제대 후에 코카 재배농이 되었다. 일찍부터 어려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정치에 비교적 일찍 눈에 떴고 코카재배농이 된 이후로는 지역 코카재배농민조합에 가입하였고 축구를 매개로 지도력을 발휘해서 눈에 띄는 인물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걸쳐 코카재배농민조합 회장이 되어서, 정부의 코카재배불법화에 맞서서 코카재배농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활동을 벌였다. 1995년에는 좌익무장단체인 페루 빚나는 길, 콜롬비아 FARC[6]와 마약거래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당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이 없어서 1주일 만에 석방되기도 했다. 1996년에 지역 시의회에 출마해서 당선됨으로써 정계진출하였고, 1997년 총선과 1999년 지방선거에서 코차밤바 지역 선거에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운동당은 코차밤바 일대에서나 유명했지 타 지역에서는 그리 표를 얻지못하는 지역정당 수준이었고, 에보 모랄레스도 코차밤바 지역에서나 이름이 알려진 수준이었다.

그러나 2000년 코차밤바시가 수도관 사업을 미국 벡텔사에게 매각하면서 벡텔사가 물값을 두 배로 올려먹는 병크를 저지르자[7][8] 코차밤바 물전쟁에 나서는 등 투쟁의 선봉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이를 통해 사회주의 운동당과 에보 모랄레스가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대사가 에보 모랄레스가 뽑히면 볼리비아에 대한 경제지원을 중단할것이라는 발언을 한것이 공개, 오히려 지지율을 올려 2002년 총-대선에서 에보 모랄레스는 2위를 차지하는 선전을 보였다. 당시 볼리비아에서 대통령 결선투표가 간선으로 치러졌기 때문에 결국에는 물을 먹었지만 어쨌든 실패라고 볼수 없는 결과였다 이후 산체스 로사다의 퇴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이후로 후임 대통령인 카를로스 메사를 지지하기도 했지만 천연가스 국유화 정책에 대해서 머뭇거리면서 민영기업에게 로열티를 올려받을려는 선에서 타협하려하자 메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카를로스 메사를 퇴진하는 시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국을 주도하는 인물로 떠올랐고, 2005년 조기 대선에서 과반 득표로 승리함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첫 원주민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도 달게 되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카를로스 메사가 주저했던 천연가스 산업 국유화 조치를 취했는데 이 조치는 많은 우려를 샀지만여론의 지지를 압도적으로 받아서 시행했고 그 우려를 비웃듯 국유화 조치로 볼리비아의 재정수입이 크게 불어나면서 볼리비아는 만성 재정적자국에서 재정흑자국가로 돌아섰으며, 효율적인 인프라 건설과 보조금 투입을 통한 물가억제 조치, 건설업 호황으로 1인당 GDP도 2000년대 초중반까지 1000달러를 밑돌던 수준에서 상승을 시작해서 2014년에 3000달러대로 크게 상승했다. 고도성장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한 성장을 보였던 셈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환경단체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들었는데 경제개발을 위해서 천연가스 개발과 인프라 사업을 한다고 헌법을 어기고 환경을 해치는 일들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9] 임기 초기에는 개헌을 추진했다가 백인들이 많이 살고 상대적으로 경제수준이 좋았던 동부지역에서 반발이 상당해서 재신임 투표까지 갔지만 서부지역에서 압도적으로 표를 얻었고 동부지역에서도 근소한 표차이로 그리고 2009년 대통령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제조건으로 64.2%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을 거두웠다.



2기 집권기 때인 2010년대에도 상당한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면서 지지세를 높였지만 2010년 하반기에 재정절감을 위해서 연료값을 크게 올리는 조치를 취하자 대규모 시위가 터지고 지지율이 급락하여 결국 이를 철회하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그 이후로는 복지확대정책과 외환보유고 급증 등의 요인으로 지지율이 회복되었고 순항가도를 달리기는 했다만 이 과정에서 도로 건설 등 개발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일부 원주민 단체와 환경단체와의 갈등이 크게 불거졌다.



어쨌든 불협화음이 있었기는 했지만 2013년에 6.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호재가 이어지며 2014년 대선에서 역시 압도적인 표차이로 재선에 성공을 거두웠다. 그러나 대선 이듬해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집권당내의 부패문제가 제기되면서 지방선거에서 부진했고, 2016년 국민투표를 앞두고 자신의 전 애인의 비리 문제와 혼외자식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여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표차이로 패배하여 크게 타격을 입기도 했다. 혼외자식 의혹은 법원판결로 일단 일단락되었기는 했다만 큰 상처가 되었고, 전 애인 비리문제는 에보 모랄레스가 직접 인정했을 정도로 빼도박도 못하는 일이었기때문에 에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그래도 2010년대 중반 이후로 타 남미 국가들이 줄줄이 경기침체에 빠지거나 심하면 베네수엘라처럼 모라토리엄 내지 디폴트 소리가 나오는 국가도 나왔고, 아르헨티나, 브라질, 페루처럼 우파로의 정권교체가 일어났다는 국가들도 여전한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경제운용능력이 나름대로 평가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물론 볼리비아의 경제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보니 통제하기 용이하다는 점은 감안해야 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덕택에 2017년 기준 중남미 국가원수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50%대로 아주 높다고 볼 수는 없지만 레닌 모레노를 제외한 타 국가원수들의 지지율이 안습상태인 관계(...)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참고로 지지율 최하를 찍는 대통령은 브라질의 미셰우 테메르.[10]

여담이지만 프로축구 선수로 데뷔하려고 했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즐겨한데다가 코카재배농민단체에서 일했을 때 축구를 통해서 나름대로 지도력을 다진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친선경기 때만 되면 주기적으로 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열혈 축구광이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2014년에 어느 프로축구팀 회장이 축구선수로 뛰라고 권해서 볼리비아 2부 축구 리그에서 진짜 프로축구선수로 뛰려고 계약까지 맺었는데 당연히 축구계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진짜로 프로팀 데뷔를 위해 연습하고 그러다보니까 체력에 한계가 와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프로축구선수 데뷔는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2018년 들어서 대통령궁을 상당히 호화스럽게 지으면서 욕을 쳐먹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라틴아메리카에서 경제적으로 나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해도 볼리비아가 아직은 가난한 축에 드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 때문인데 집권 초중기 동안의 검소한 모습과 대조되면서 욕을 쳐먹고 있다. 그래도 8월 이후로는 어떻게든 수습되고 있는 상황이고 탄탄한 고정지지층이 있기 때문에 일단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선두는 유지하고 있었다.사실 까놓고 보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페루 정치판이 볼리비아보다 절대적으로 낫다고하기에는 영 거시기한 건 마찬가지라서 그렇다 하지만 2019년 이후로는 그의 지지율도 상당히 떨어진 상태이고, 결정적으로 산불에 대한 미흡한 대처로 대선 당선 가능성조차 알 수 없는 상태였다.#

3. 4선 출마 및 부정선거

2016년 2월에 대통령의 재선을 1회만 허용하는 헌법 제168조를 2회까지 허용하도록 개정할 것인가를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찬성표가 48.7%에 반대표가 51.3%라서 부결되었다. 사실 2017년 기준 현 임기는 3번째 임기이다. 2009년에 현행 헌법이 만들어졌는데 첫 번째 임기는 그 이전에 시작된 임기이므로 현행 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근거로 2014년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었기 때문.[11] 그런데 여당 MAS에서 2019년 선거에서도 모랄레스가 대통령 후보 출마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냥 알바로 가르시아가 대통령으로 출마하면 되는 거 아닌가? 2016년 국민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부결되었지만 이후로도 포기를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항소를 해서 2017년 11월 28일 볼리비아 헌법재판소에서 4선 도전(현행 헌법상으로 3선)이 합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여당 MAS에는 이후로 마땅한 후보가 없는 데다가 야당 후보들이 쩌리에 가깝고 민주화 이후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만 한 성과를 낸 대통령이 없어 4선에 출마하면 당선 가능성이 유력하다. 당연히 야권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2019년 대선 여론조사에서는 에보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면 안정적으로 재집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애매하게 나오고 있다. 장기집권에 대한 피로감이 반영되어서 카를로스 메사 등 야권후보가 도시지역에서 선전하고 있고 여론조사에서도 에보와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으로 나오고 있다. 물론 볼리비아의 여론조사 자체가 그리 믿을만한 것이 못되고 여당의 지지기반 자체는 단단한 축이기는 하지만 그렇다해도 도시지역에서 MAS의 지지율이 크게 낮아진 것은 엄연한 사실로, 재선한다 해도 총선에서 의석 상당수를 잃을 것이 확실시 되는 상황이다.

2019년 치러진 1차 대선에서 모랄레스는 45.28%를 얻어 결선까지 간다.# 그런데 개표 과정에서 갑자기 개표가 중단되었고, 다시 개표가 시작되었을 때 양 후보의 격차가 벌어져 부정선거 의혹이 나오고 있다.# 볼리비아 선거법 상 40% 이상을 득표한 후보는 2위 후보를 10%p 이상 차이로 이겼을 때 결선투표 없이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하고 있는데, 개표가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되고 나니 모랄레스와 메사 후보의 득표율이 7%p에서 10%p 차이로 늘어난 것이었다. 야당 후보인 메사가 야권의 지지세가 강한 동부는 물론이고 라파즈 등 주요 도심지에서 선전하여 결선진출이 유력해보였지만 에보의 지지세가 여전히 강한 농촌지역 개표가 며칠에 걸쳐서 이상하게 매우 천천히 진행된데다가 개표 중단 후 당락여부가 갈릴 정도의 표차가 갑자기 나게되니 사단이 일어나지 않는게 이상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후에 미주기구(OAS)의 검토결과 여러 부정의혹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판명되었다.
분노한 야권 지지자들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지방 선거재판소를 불태우는 등 시위를 벌였고, 모랄레스는 야권 지지자들의 시위는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

10월 25일 볼리비아 선관위는 공식적으로 모랄레스의 당선을 선언했지만, 야권 측은 이에 반발하고 있고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11월 들어 경찰들도 시위에 가담하여 시위 규모는 계속 확대되는 중이다 # 결국 모랄레스는 미주기구의 선거 무효화 권고 이후 대선을 다시 치르겠다고 발표한다.#

4. 하야

미주기구(OAS)와 UN에서 합동조사위를 꾸려서 지난 10월 볼리비아 대선을 점검했다. UN과 OAS는 보고서에서 부정선거 정황이 많아 볼리비아 대선 개표결과를 추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한국시간 2019년 11월 10일 21:30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UN/OAS의 보고서를 수용하여 기존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대선을 다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선거관리위원회 역시 전면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기사 볼리비아 군대와 경찰까지 모랄레스 대통령을 따르지 않고 시위대 편에 서자 결국 모랄레스 대통령이 항복한 것이다.

미주기구(OAS)에서는 해당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볼리비아 대선 개표 결과가 확실하게 조작됐다며 그 증거를 찾아서 보고서에 기재했다고 폭로했다. 기사 미주기구에서는 개표가 중단된 24시간 동안 농촌 지역의 개표 결과가 아닌 도시 지역의 개표 결과를 조작했다고 폭로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대선에서 2위였던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의 표 일부를 3위 후보인 한국계 볼리비아인 사업가 정치현 후보의 표로 조작했다. 볼리비아 대선은 1위 후보가 40% 이상 득표했을 경우 2위 후보와 10%p 이상 차이를 내면 결선투표 없이 당선된다. 즉 모랄레스는 자신의 득표수를 올리는 것과 동시에 2위 후보인 메사 전 대통령의 표를 깎아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현 후보한테 메사 후보의 표 일부를 옮기는 방법으로 득표율 격차를 조작했으며, 24시간 개표가 중단된 와중에, 농촌 지역의 개표에서는 개표소에 있던 야당 참관인들이 전부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이때 모랄레스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정상적으로 선거 개표를 하고 카를로스 메사와 결선투표를 했다면 모랄레스가 승리할 확률이 99.9%였다는 것이다. 왜 굳이 결선투표를 안 하고 1차 투표에서 투표함에 손을 댔는 지 이해가 안 될 정도. 모랄레스가 2009년, 2014년 선거때처럼 60%대 득표율로 압승하지는 못하겠지만, 정상적인 결선투표를 했으면 적어도 53:47로 메사를 꺾고 4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됐다. 각종 외신에 보도된 여론조사에서도 모랄레스와 메사 간 결선진출 후 결선에서 모랄레스의 4선 성공이 유력하다고 전망됐는데 왜 굳이 부정선거라는 자폭스위치를 누른 건지 이해가 안 되는 수준.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사퇴한 지 30분 만에 대선 러닝메이트였던 알버트 가르시아 부통령도 동반 사퇴했고, 모랄레스한테 사임을 요구한 국방장관과 경찰청장, 내무장관, 볼리비아 대법원장, 선거관리위원회 위원 전원, 집권 여당 대표와 최고위원들, 국회의장까지 전부 동반 사퇴했다. 결국 볼리비아는 집권세력 전부가 한 방에 날아가버린 완전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볼리비아의 대통령 재선거는 2020년 1월로 잡았으며 그때까지 볼리비아 대통령직은 헤아니녜 아녜스 상원의원 겸 재무장관이 대행한다. 주요 각료와 법원, 선관위, 국회 지도부까지 날아가버린 상황에서 아녜스 재무장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11월 11일까지 추인받지 못하고 있다. 사태의 여파로 모랄레스 대통령 휘하의 내각 인사들이 하루가 지나도록 줄줄이 사퇴하는 중[12]이라 아녜스 재무장관도 곧 사퇴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있다. 일단 아녜스는 원래 반 모랄레스, 즉 야당 출신 인사로 볼리비아 대선 정국에서 여야 협의로 선거내각을 구성할 때 입각한 인사이다. 그녀까지 없으면 대통령직을 이어받을 고위직이 단 한 명도 없이 깨끗이 증발한다(...)고 하여 임시내각을 운영하고 대통령 선거나 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에보는 처음에야 사임을 거부했지만 결국 군에서 지지를 철회하자 결국 버터지 못하고 사임했는데 1차 선거에서 붙었던 메사가 가스국유화에 머뭇거리다가 에보와 농민단체가 주도한 시위로 결국 사임해서 한 동안 야인으로 지냈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13] 이 역시도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다만 시위를 이끈 인물 중 하나인 카미초를 까는 연설을 했기에 뒤끝을 보여주기는 했다.[14] 다만 선언발표 직전에 엘알토 공항에서 대통령기가 보여서 아르헨티나로 망명가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본인이 직접 부정했다.

다만 에보 모랄레스가 대규모 시위로 동시에 사임압력을 받는 칠레의 세바스티안 피녜라[15], 온두라스의 후안 에르난데스, 아이티의 모이즈[16]와는 다르게 탄탄한 지지기반과[17] 뛰어난 경제실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음에도 예상보다 무기력하게 사임한것을 보면 다른 뭐가 있는 것이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특히 니콜라스 마두로다니엘 오르테가가 수백명이 죽어나가는 유혈사태가 몇달에 걸쳐 벌어졌음에도 버틴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는 것. 특히 이웃 피녜라와 비교해봐도 그렇다.[18] 본인말로는 버틸 수야 있지만 유혈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사임한다는 투다.[19] 흔히 함께 묶이는 마두로나 오르테가 정권과 달리 선거로 모랄레스는 장기 집권에도 불구하고 군부를 충분히 장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베네수엘라등과 비교하면-[20] 경미한 압박과 결코 낮지 않은 지지율에도 순식간에 정권이 무너진 것. 여기에는 칠레처럼 유혈사태를 감당할 수 없던 모랄레스의 의중도 있겠지만 군부의 사임권유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21] 또한 2002년 쿠데타-석유파업 당시의 차베스처럼 사임을 대놓고 강요하는 군부나 반정부 시위대를 상대로 돌파해서 역공을 취하기에도 부담이 너무 컸다.

당장 집권여당이었던 사회주의 운동당 (MAS)이 대통령 선거와 함께 실시된 총선에서 상원과 하원 과반을 방어한데다가 2015년 이후로 상당수 젊은층과 도시 중산층들의 지지를 잃었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농촌과 원주민, 빈곤층을 중심으로 여전히 탄탄한 지지기반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볼리비아의 정국은 혼란으로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카미쵸와 메사가 대규모 시위를 탄탄한 지지층을 지닌 에보를 상대로 유능하게 지휘해서 대통령과 부통령, 내각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기본적으로 군대와 볼리비아 야당이 과거의 전력이나 시위 과정에서의 인종차별. 폭력유발 문제 때문에 국민들의 신임을 얻고 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22] 까놓고 얘기하자면 시위를 이끈 양대 인물인 메사와 카미쵸 둘 다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는 평을 듣는것이 크다. 메사는 과거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가스 국유화를 머뭇거리다가 거절하는 바람에 여론의 반발을 사며 결국 시위로 인해 물러난 전적이 있는데다가 집권 기간동안 특별한 업적을 쌓아올린것도 아니기때문에 에보보다 뭘 더 잘할지에 대한 공약을 내걸어도 비전이나 능력면에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다가[23] 카미초는 대규모 시위동원에 있어서 산타크루즈에서 라파스로 시위인력을 성공적으로 움직이거나 미주기구 회장인 알마그로[24] 에게 촉구문건을 나눠주려고하는 등 시위동원면에 있어서 유능했고 반 에보 모랄레스파를 결집시키는 등 사람을 끌여들이는 면에서 꽤나 유능한 정치인이라고 평가되지만 파나마 페이퍼즈로 대표되는 돈세탁이나 보우소나루를 연상케하는 극우적인 정치노선 때문에 눈총을 사고있으며, 시위과정에서 노조원들을 잡아서 나무에 매단다거나 정부인사들의 집을 약탈하는 행동이 카미초 그룹에 의해 장려되어서 메사도 카미초가 도저히 못 봐줄 행동을 한다면서 한 소리 했을 정도이다. 더군다나 에보가 사임의사를 밝힌 이후로도 의회에 진입해서 협박을 한다거나 산하 조직원들이 MAS 당원들을 사냥해야된다는 식의 트윗을 올리는 등 공포감을 조성하여 정치깡패스러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몇주 뒤면 메사와 볼리비아군도 손절할듯 휘팔라가 태워지는 영상이 역풍이 거셌기에 뒤늦게 휘팔라도 볼리비아의 상징이라는 글을 올리는 모드가 되었지만.

거기에다가 시위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원주민과 메스티조/백인 계층들과의 인종 갈등 및 세대 갈등 역시 크게 확산되었고 특히 에보가 사임하고나서는 볼리비아 경찰이 원주민의 깃발인[25] 위팔라를 표식에서 떼어내거나 야당 시위대가 위팔라를 태우는 동영상이 퍼저 큰 논란이 되었으며 이런 상황속에서 원주민 농민 및 도시 서민층들이 백인들에게 무시당하고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약 20년가량 시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던 기억을 되살리면서[26] 메스티조/백인 및 도시 중산층 및 부유층에게 반발하는 기류가 커지면 폭력이 더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1970, 80년대 군사독재의 기억을 다시 살아야 할 수도 있을 것인데. 또한 군부와 경찰이 에보가 사임한 이후로 사회를 안정시켜야된다면서 야당에 반발하는 원주민들의 시위를 강경진압하고 있는 상태라 이러한 기억이 단순한 불안은 아니라는것을 입증했다. 즉, 볼리비아 야권에게는 아르헨티나에서 페론당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칠레와 에콰도르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시위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보조금 철폐나 공공요금 인상, 민영화 같은 과거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다시 펼칠 것이라는 의구심을 풀지 못하거나 신자유주의 정책을 다시 펼치는 등 에보의 정책을 뒤엎는데 집중한다면 언제든 역품이 불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임시정부에서 임명된 통신부 장관이 언론탄압을 대놓고 공언하는 발언을 하고, 경제부 장관이 물가통제로 수출이 제한되고있다며 물가안정정책 폐지를 시사하고있는데다가 경찰과 군이 친 에보 시위대를 강경진압하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있고, 해외언론인들도 위험을 받고있는 상황인지라[27] 이 예측은 들이맞고 있는 중이다.

에보 모랄레스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가서 혼란스러웠던 시대가 올 것이란 두려움에서 시위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사임발표 이후로 야권시위대들이 에보의 집을 불태워서 딱히 마땅한 거쳐가 없다는 소식도 전해졌고, 즉, 육군과 경찰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러나 이 소식은 카미초의 가짜뉴스로 밝혀졌고, 경찰 차원에서 에보 모랄레스에게 체포 영장을 내릴일은 없다고 밝혔다. 어쨌든 사임 다음날에 코차밤바에 머물다가 멕시코 정부에서 망명제의를 하자 망명제의를 받아들여서 멕시코로 망명을 가게 되었고 그리고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즉, 앞으로는 망명생활을 하면서 영향력을 지닌 인사로 활동하겠다는 것이고, 지지기반이 만만치 않은 만큼 야권과 군부, 경찰이 패악질이나 삽질 여부에 따라서 돌아올수있다는 것이다. 야인신세가 되어 멕시코로 망명와서도 군인들이 자신을 향해서 살인청부를 했다는 사실을 공개하고 트위터를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활발히 정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쯤되면 사임한거 맞냐 싶지만

일부 좌파 네티즌은 미주기구의 보고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있다. 미주기구는 "냉전시대 때 미국의 영향을 퍼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부를 반대하기 위하여 조직된 단체이다.(a Cold War-era group that acts as a vehicle for US influence, opposing leftist governments in Latin America.)"(영어 출처) 즉 미국 쪽에서, 정확히 말해서는 CIA 쪽에서 계획한 우파 정부의 강제 집행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고있다. 사실 알마그로가 미주기구 회장으로 선출된 이래로 보우소나루와 트럼프가 인종차별적인 소리를 해도 뭐라 하지 않는데다가 베네수엘라와 쿠바, 니카라과에 대해서 민주적이지 않다며 규탄하는 경우가 많지만 막상 칠레와 온두라스, 아이티에서 벌어지는 사회적인 반발과 시위 강경진압에 대해서는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상황이라 눈총을 사고있고, 2019년 10월 초에 벌어진 에콰도르의 연료비 인상반대 시위에서는 시위의 원인인 연료비 인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채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시위대에 지원을 보냈다는 주장에 동조하며[28] 시위대를 비난하고 레닌 모레노를 지원했기에 이중잣대를 적용한다며 까였기에 이런 의심을 사는것이 별로 이상한것이 아니고, 보고서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이래저래 말이 나오는 상황이기도 하다. 즉, 보고서에 나온대로 해도 수개표 작업도 같이 한 결과를 살펴보면 결과가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주기구가 과거 1970년대와 80년대에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군사독재정권을 용인한 잔력이 있기도 하고, 타국가의 정부에 간섭한 것은 전에도 2000년에 아이티에서 일어난 일이다. (영어로 된 기사) (정보를 모와둔 한국어 블로그 글)

미국 대통령 후보 버니 샌더스"쿠데타로 보이는 사건"이라 불렀고 "(볼리비아 내에서) 폭력을 끝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그를 지지하는 연방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볼리비아의 국민들은 폭력을 이용한 쿠데타가 아니라 공평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적 선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에서는 모랄레스의 러시아 망명 요청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볼리비아의 혁명이 극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우려가된다며, 제3국이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기사 나중에 러시아는 아녜스 임시대통령 인정하게 된다.

망명을 하면서 영공 통과 불가 등 여정이 고생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중남미 정치 여행이라고 표현했다. 하야한 뒤에 멕시코 시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녜스 대통령 대행에게 국민의 피를 묻히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의회가 승인하지 않아 자신이 대통령이라 주장하기 나섰다.#

11월 15일 코차밤바 인근 사카바에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 9명이 사망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몇달 남은 임기를 마칠 수있게 해주면 새로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5. 역대 선거결과

2002년 대통령 선거 20.9% 결선 43/130 낙선 [29]
2005년 대통령 선거 53.7%당선
2009년 대통령 선거 64.2% 당선
2014년 대통령 선거 63.3% 당선
2019년 대통령 선거 47.1% 무효
[1] 사실 이렇게 정계에 복귀한 것도 이유가 웃긴데 메사는 에보의 집권 이후로 부패혐의로 기소되는 등 외국에서 야인으로 지내던 신세였지만 국제사법재판소 소송 당시에 칠레와 영유권 분쟁에서 우위에 차지하기 위해서 에보가 자기손으로 메사를 사면시켰다. 하지만 결국 영유권 소송에서 결국 패배했고, 메사는 에보의 사면을 발판삼아 결국 정계로 복귀한 것은 물론이고에보를 몰아내는데 앞장서서 결국 사임시켰으니 에보 입장에서는 독이 된 셈이다. 이런걸 보면 악연인것같지만 처음부터 모랄레스와 메사가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것은 아니고 2003년 메사가 대통령직을 넘겨받은 직후부터 2005년 2차 가스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는 모랄레스가 메사를 지원해주는 스탠스였고 2004년 국민투표에서도 타 시민단체나 노조원들이 보이콧하는 와중에도 메사를 지원해주는 등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한다.*역으로 이때문에 볼리비아 노총에게 일시적으로 제명을 당하기도 했을 정도.) 메사가 천연가스 국유화를 주저하고 단순히 로열티를 올려받는다는 선에서 타협하려하면서 가스 국유화를 강경하게 주장했던 모랄레스와 사이가 틀어진것이다.[2] 이걸 역으로 말하자면 그 이전 대통령들의 경제운용능력이 안습이었다는 애기도 된다(...) 이런 점에서는 모랄레스가 푸틴이랑 비슷하다. 후술할 4선 개헌 시도도 그렇고... 사실 이건 당시 대통령들만 탓할 수는 없는 것이 1980년대 민주화 되기 직전부터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볼리비아가 외채문제로 멱살(?)을 단단히 잡혔기 때문에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펴기 힘들었다.[3] 모랄레스가 푸틴이라 하면 가르시아는 메드베데프라 할 수 있다.[4] 대표적으로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나 베네수엘라의 미션 시리즈. 다만 볼사 파밀리아는 2015년 이후로 크게 위축되었고, 베네수엘라의 미션 시리즈도 2015년 이후로는 석유값 폭락으로 인한 세자릿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5] 사실 한국도 비슷한 시기까지는 유아사망률이 높아서 호적을 늦게 등록한다거나 하는 일이 빈번했다.[6] 두 단체 모두 마약판매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에선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있다.[7] 물론 서구 선진국 입장에서는 이 정도 금액이 큰 금액이 아니라고 봤지만 볼리비아는 가난한 데다가 빈부격차 또한 극심한 나라라는것을 철저하게 간과했다. 이 사건은 진보/좌파/반신자유주의 진영에서 무분별한 민영화의 폐해로 흔하게 언급하는 사례이다.[8]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영화가 2008년 개봉한 007 퀀텀 오브 솔러스이다.[9] 대표적으로 전세계에서 절경으로 이름난 우유니 사막에서 리튬을 채굴한다는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 MB정부에서 자원외교의 일환으로 여기에 참여했다가 계약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무산됬고, 결국 중국기업들이 합작파트너로 들어갔다.[10] 무능으로 악명 높은 니콜라스 마두로의 1/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11] 이건 라파엘 코레아도 마찬가지이기는 한데, 그래도 라파엘 코레아는 4선을 말끔하게 포기해서 4선 출마는 하지 않았다.[12] 하루사이에 복지부 장관, 법무장관, 주미대사, 주중대사, 주러대사, 주UN대사가 내각 총사퇴 대열에 동참했다.[13] 2002년에 대선에서 당선된(참고로 당시에는 결선투표가 직선제였다) 곤살로 산체스 로사다가 70명 가량이 강경진압으로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대통령직에서 사임해서 메사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메사 역시 썩 유능치 않은 인물이었고 가스국유화에 머뭇거리다가 결국 대규모의 시위에 시달렸고 결국 2005년에 조기사임해서 대통령 선거에서 에보 모랄레스가 당선되었다. 에보가 당선된 이후로 가스 국유화가 시행되어서 볼리비아가 경제성장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14] 사실 카미초는 볼리비아 시위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원주민 비하 등 여러 인종차별적인 언행과 폭력행위 때문에 메사측에서도 영 꺼리는 인물이다. 행동대장으로 쓸만 하지만 적극적인 지지를 얻기는 어렵다는 것(...) 근데 그건 메사도 마찬가지잖아?[15] 특히 피녜라는 사임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중이라 우군이 늘어날수는 있지만 경제성장률이 2% 안팍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에보의 사임이 달가울 리는 없다.(...) 경제성장률 4%대를 연속으로 기록한 대통령도 사임하는데 경제성장률 2%를 기록하면 아예 탄핵[16] 이 셋은 셋다 의회에서 여소야대 정국에 처해있으며 경제적인 성과는 영 잼병이라는 평이다. 피녜라는 1기 집권기 때야 5%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는 하지만 2기 집권기 들면서 여전한 침체 때문에 국민들의 불만이 쌓인 상태이고, 에르난데스는 국민들이 재선과정에 의문이 제기된 데다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판국에 본인이 마약범죄에 연루되었으며 아이티의 모이즈는 무능하기는 매한가지라서 몇달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17] 도시지역에서 지지율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농촌지역에서는 여전히 지지가 압도적이며 동시에 치러진 총선에서 의석수가 크게 줄기는 했지만 어쨌든 과반의석을 확보했다.[18] 특히 에보는 집권 기간 내내 의회가 여대야소지만 피녜라는 여소야대인 상황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칠레 군부가 시위진압에 나서는 것은 칠레 군부가 우파성향이라는 점을 감안해야된다.[19] 마침 메사가 대통령 재임시에는 별 업적이 없는지라 자신도 나중에 복귀할 채비를 하고있는 것일지도 모른다.[20] 특히 베네수엘라의 경우에는 유가폭락도 있지만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석유수출량이 폭락하고 있고 다른 자원의 수출도 여의치 않은 상황인지라 파탄 상태인 경제를 재건하는 것은 그저 꿈일 정도로 그야말로 암담한 상태이고, 니카라과 역시 고위층들과 주요기업체에 대한 경제제재가 가해져서 연 5%대인 경제성장률이 뚝 떨어지거나 1%~마이너스~2%로 내려앉아서 경제가 침체되었는데 이에 비하면 볼리비아는 미국의 경제재제가 있던 것도 아니고 경제실적 또한 뛰어났기에 타 남미국가들에서 볼리비아에게 뭘 압박할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은밀한 공작같은 것은 있겠지만.[21] 사실 베네수엘라에서는 차베스가 군인 출신인데다가 국정운영 과정에서 군대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어서 마두로와 군부간 친분관계가 유지되고 있고, 니카라과의 오르테가는 1980년대에 산티니스타 출신으로 군을 채운 적도 있는데다가, 이들이 1990년 이후로 내전이 끝날을 때도 이들이 경호업체를 차리면서 먹고살게 해주는 데 도움을 주었던지라 오르테가를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그에 비하면 에보가 위성위성을 쏘는 등 군부에 해준 것이 없지는 않지만 소소(?)한 것이라는 것.[22] 자세히 얘기하자면 볼리비아 자체가 동부와 서부의 정치성향 자체의 차이가 많이 난다. 서부는 에보가 집권한 이후로 좌파성향이 강하고 동부는 우파성향이 강한데, 에보는 서부에서 지지율이 높은데 반해 동부지역에서 지지율이 낮았고, 메사도 서부지역에서도 대선에서 서부지역에서도 중산층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지지를 확보했지만 주 지지층은 동부에 집중되어있다. 에보의 1기 집권기 당시 천연가스 국유화를 시행하고 결선투표 직선제를 모토로 한 개헌안을 통과시켰을때 동부지역 부유층과 중산층이 대거 반발해서 국민투표로 독립하느니 마느니 탄핵해야된다느니 말이 나오는 등 동서갈등으로 1년간 시끄러웠을 정도.(2008년~2009년 볼리비아 정치위기)[23] 물론 본인도 이를 모르는건 아니기때문에 대선과정에서 에보의 경제정책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하기는 했다.[24] 다만 정치현황에 대해서 이중잣대를 대놓고 드러내기때문에 평이 썩 좋은것은 아니다. 쿠바를 강하게 욕하고 베네수엘라와 니카라과에서 벌어진 일에 있어서는 재제를 해야된다느니 민주주의를 지켜야된다고 강변하면서도 막상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가 당선되어서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하거나 온두라스나 아이티, 에콰도르와 칠레에서 우익정부의 실책으로 시위가 일어났을 때는 입을 꽉 다물고 침목하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 사람이 우루과이에서 호세 무히카 시절에 외무장관을 지낸 이력 때문에 선출되었을 때는 진보정부가 차지한 나라에서 지지표를 얻었다는 것. 그래서 대놓고 우경화 노선을 걷게 된 것이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우파정부가 들어선 국가들이 늘어나다보니까 권력지향적인 노선을 걷게 되었다는 얘기가 많다.[25] 과거 잉카제국 시절때부터 쓰였던 전통있는 깃발로, 1970년대 이후로 안데스 원주민들 사이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에보 모랄레스도 이를 반영해서 2008년 볼리비아 헌법에서도 공동국기로 지정되었다.[26] 2000년대 초중반 당시에 지니계수가 0.7을 찍어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혔던 나라가 볼리비아였고, 당연히 백인 부유층들이 원주민 빈곤층 보다 사회적인 지위가 넘사벽급으로 높았다. 코차밤바 물전쟁의 원인도 당시 원주민들은 한국돈으로 몇십원 정도의 작은 돈도 무시할수 없는 수준으로 가난했던것이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원주민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것이 1952년으로 볼리비아 공화국 성립 이후로 쳐도 아직 반도 안 지낸데다가 기본적인 교육격차나 사회적인 지위의 차이는 단시간에 좁혀지지도 않았고, 1980년대와 90년대의 민영화 정책으로 격차가 더더욱 벌어져나갔다. 에보 시절에 천연가스 국유화로 인한 수익을 원주민들을 위한 인프라 개선에 및 복지정책에 썼기때문에 빈부격차가 크게 줄었지만 그럼에도 볼리비아의 지니게수는 0.44정도로 여전히 심각한 편이다.[27] 특히 아르헨티나 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경찰이나 반 에보 지지자들에게 위험을 받는 과정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다, 놀라운점이라면 보수계열 언론사 기자들도 같이 반 에보 지지자들에게 위험을 받았다는 점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공격한 셈이기때문에 아르헨티나 기자들이 본국으로 돌아오거나 대사관에서 머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28] 이에 대해 니콜라스 마두로는 내 콧수염이 다른 나라 정권을 뒤흔들정도로 대단한거냐며 비웃었다[29] 결선까지 갔지만 1980년부터 2009년까지 볼리비아가 대통령 선거 1차 투표는 직선제지만 결선투표에서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를 체택했기 때문에 MAS가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하지 못하여 결선투표에서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