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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의식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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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의의3. 같이 보기

1. 개요

Victimhood Nationalism

역사학자인 임지현이 주창한 정치학 용어이자 이를 다룬 동명의 . 스스로를 희생자라고 간주함으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민족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세습적 희생자의식(Hereditary victimhood)을 발전시킨 이론이다. '세습적 희생자의식'이란 과거의 희생자성이 세습되어 일상에서의 폭력이 없는 지금 현재에도 마치 자신이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본인이 폭력의 피해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체성화하는 역사 가운데 폭력에 의한 피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 자신 역시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후속 세대들이 앞 세대가 겪은 희생자의 경험과 지위를 세습하고, 세습된 희생자의식을 통해 현재 자신들의 민족주의에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알리바이를 부여하는 기억 서사이다. 기억 서사로서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가해자 민족을 선험적으로 전제한다. 가해자가 없는 희생자를 생각하기 어렵듯이, 가해자 민족 없는 희생자 민족은 상상하기 어렵다. 가해자 민족과 희생자 민족이 함께 구성하는 ‘부정적 공생(negative symbiosis)’의 인식론적 프레임은 20세기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의 지구사를 구성하는 연쇄 고리다.
임지현(2021),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 고통을 경쟁하는 지구적 기억 전쟁》, pp. 24~25.
의미론의 관점에서 보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언어에 따라 피해자가 희생자로 승화되는 양상이 다르다. 먼저 독일어와 폴란드어에서는 피해자와 희생자를 거의 구분하지 않는다. 독일어의 ‘Opfer’나 폴란드어의 ‘ofiara’는 피해자와 희생자라는 의미를 모두 갖고 있으며, 단어가 쓰이는 문맥에 따라 불쌍한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숭고한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독일어의 ‘Opfer’가 죽음을 뜻하는 ‘Tod’와 결합해서 만들어진 합성어 ‘Opfertod’가 희생적인 죽음을 뜻하거나 폴란드어의 ‘ofiara’가 전체를 태운다는 ‘całopalna’라는 형용사를 받아 산 짐승을 태워서 공양하는 <구약성서>의 홀로코스트를 지시할 때, ‘Opfer’와 ‘ofiara’는 모두 희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구어체에서는 단순한 피해자를 의미할 때가 많다. 독일어나 폴란드어 모두 수동적 피해자와 구분해서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희생자를 지칭할 때는 순교자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더 분명하게 뜻을 전달할 수 있다. 독일어의 ‘Märtyrer’와 폴란드어의 ‘męczennik’가 그렇다. 믿는 바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는 사람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mártyr’에 기원을 둔 독일어 ‘Märtyrer’는 순교자의 의미가 분명하고, 고난과 고통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의 폴란드어 ‘męczennik’ 역시 분명하게 순교자를 의미해서 혼동의 여지가 없다.
영어에서는 비교적 ‘피해자(victim)’와 ‘희생자(sacrifice)’가 잘 구분되는 편이다. 두 단어가 상호교차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victim’은 수동적 피해자에 가깝고 ‘sacrifice’는 대의를 위한 능동적 희생자를 의미할 때가 많다. 그런데 영어로는 ‘victimhood nationalism’이라 쓰고 한국어로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라고 번안한다면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들 수 있다. 한국어로는 ‘피해자의식 민족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뒤에서도 되풀이해서 설명하겠지만,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는 전후의 기억 문화에서 전쟁과 식민주의, 제노사이드의 무고한 피해자(victim)가 조국, 민족, 해방, 혁명, 평화, 인권, 민주주의 등의 대의를 위한 이타적 희생자(sacrifice)로 승화하는 단계에 출현한다. 먼저 ‘피해자’를 질료로 대상화한 후, 그 대상을 ‘희생자’로 승화시켜야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다. 억울한 죽음을 운명적 희생으로 받아들이는 죽음의 승화 의례는 죽음과 불멸에 대한 민족주의적 상상력과 코드를 공유한다. 무의미한 고난과 억울한 죽음이 민족적 대의를 위한 희생으로 각인되는 순간 그 희생은 민족주의에 영속적인 생명을 불어넣는 불멸의 죽음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사용되는 ‘희생’은 제사 때 제물로 바치는 산 짐승을 일컫는 말로, 순수한 흰 색깔의 제물인 양을 뜻하는 ‘희(犧)’와 제사 때 통째로 바치는 소를 뜻하는 ‘생(牲)’의 합성어이다. 영어의 sacrifice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sacer와 뜻이 거의 일치해서 흥미롭다. 한자어에 바탕을 둔 한국어나 일본어 등 동아시아의 언어권에서 해를 입는다는 수동의 뜻을 가진 ‘피해’와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 등을 버리는 능동적인 행위로서의 ‘희생’은 분명히 구분된다. ‘희생’이라는 단어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다는 의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도덕적으로 정당한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의 목숨과 재산, 명예 등을 기꺼이 바치는 주체적 결단과 행위라는 의미가 압도적이다. 동아시아의 언어권에서 ‘犧牲者意識 民族主義’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면 거의 그대로 의미가 통한다고 볼 수 있다. ‘희생자’라는 단어 뒤에 굳이 ‘의식’을 붙여 ‘희생자의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피해자를 희생자로 승화시키는 기억의 전이 과정을 담기 위해서이다. 실제 희생자가 아닌 ‘포스트메모리’ 세대가 가진 역사의식으로서의 ‘세습적 희생자의식’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임지현(2021), 《희생자의식 민족주의 - 승화》, pp. 122~124.

2. 의의

victimhood은 피해자를 뜻하는 victim 뒤에 영어 접미사 -hood이 붙은 용어이다. 영어 접미사 hood는 어간을 추상화하는 기능접미사이다. 예를 들어 neighbourhood는 구체적 실체(entity)인 neighbour의 추상화된 개념이기 때문에 '이웃관계', '지역' 등으로 옮긴다. 한국어의 접미사 -성(性)이 -hood의 개념과 가장 맞닿아있 다.

즉, victimhood이라고 하면 본인이 실제로 희생자였는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희생자인냥 하는 것 혹은 희생자적인 그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 간단히 말하자면 자기자신을 스스로 희생자라고 간주함으로서 자기가 가진 민족주의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2019년엔 임지현 교수가 나치에게 희생당한 집시를 기억하는 '이웃하지않은 이웃'이란 사진전을 열었던 적이 있다.기사(중앙일보) 이 사진전의 의도는 집시도 우리 한국처럼 희생자였다는 것이 아니라 집시 학살을 방관하거나 가담했던 나치 독일인들처럼 우리도 충분히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한 사진전이다. 이 사진전 마지막 챕터엔 외국인 노동자 등 타자화된 대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임지현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특정 국가에만 해당되지 않고 전세계적인 초국적(transnational) 현상이라고 진단하며, 특히 아시아에선 한국, 일본 유럽에선 독일, 폴란드, 이스라엘을 중점으로 책을 지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임지현 교수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주창한 계기는 요코 이야기 사태였다. 2007년 1월 7일 보수언론, 진보언론을 막론하고 신문 1면에 동시에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를 비판하는 기사가 실린 것이다. 임지현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보고 코리아헤럴드에 이것은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아닐까라고 칼럼을 썼다. 그러자 재미교포로부터 항의 메일이 쇄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임지현 교수에 따르면 이 현상은 장거리 민족주의 현상으로, 그것도 해외에 있는 동포들의 민족주의가 본국으로 역수입되는 현상으로 바라봤다.

그렇다면 왜 요코 이야기가 한국에서 문제가 된 것은 바로 과잉맥락화 현상 때문으로 일본 식민지 시절을 과잉맥락화 하여 일본의 히키아게샤의 고통은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반면 요코 이야기는 자신이 왜 함경북도 나남에 살고 있었으며 왜 일본으로 피난가야 했는지에 대한 맥락이 빠진 문제가 있는 탈맥락화 현상이 있었다.

반면에, 독일의 귄터 그라스의 게걸음으로 가다는 독일 피난민들의 희생을 다루면서도 이 희생자들의 가해 행위를 정확히 기술하여 대조를 보였다.

요코 이야기의 문제에서 임지현 교수는 실증주의적으로 요코가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역사 맥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미국의 서구중심주의 교육을 바로잡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3.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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