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66666> 이름 | Albert Maria Forster 알베르트 마리아 포르스터 |
출생 | 1902년 7월 26일 |
바이에른 왕국 퓌르트 | |
사망 | 1952년 2월 28일 (향년 49세) |
폴란드 인민 공화국 바르샤바 | |
복무 | 슈츠슈타펠 (1926년 ~ 1945년) |
최종 계급 | 슈츠슈타펠 대장 (상급집단지도자) |
주요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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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베르트 마리아 포르스터 (Albert Maria Forster) |
2. 초기 행적
형무소 소장이던 부친아래 바이에른 왕국의 퓌르트에서 태어난 포르스터는 학교졸업 후 은행에서 일하다가 1923년 11월 7일에 나치당에 입당해 뮌헨 폭동에 참가했지만 폭동 실패 후 나치당이 해체되자 율리우스 슈트라이허와 헤르만 에서가 주동한 대독일민족 조합에 가입했다. 1925년 2월에 나치당을 재건중이던 히틀러와 처음 만난 포르스터는 나치당의 반유대주의 신문인 <슈트르머>의 편집기자가 되었다.3. 나치당에서의 행적
1925년 4월 5일에 나치당에 복당한 포르스터는 나치당의 연설가로 활동했는데 1926년 5월 12일에 친위대에 입대해 1928년 2월부터 1930년 10월까지 뉘른베르크의 독일국가상업인 연합에 출납장으로서 근무했다. 1929년 12월에 함부르크의 친위대 지도자가 된 후 1930년 9월 14일에 나치당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나치당 국회의원단의 노동자부문 고문이 되었다.4. 제2차 세계 대전
사열하는 포르스터[1][2] |
5. 전후 재판과 최후
전후 1945년 5월 27일에 영국군의 포로가 된 포르스터는 1946년 8월에 폴란드로 인계되어 1948년에 폴란드에서 개최된 법정에서 학살과 전쟁범죄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고 1952년 2월 28일에 바르샤바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1] 가운데 검은색 친위대 제복[2] 맨 왼쪽은 한스-프리데만 괴체(Hans-Friedemann Götze) 무장친위대 대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