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프리크의 주요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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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내무장관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의 2대 총독 빌헬름 프리크 Wilhelm Fric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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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Wilhelm Frick 빌헬름 프리크 | |
출생 | 1877년 3월 12일 | |
독일국 아르센츠 | ||
사망 | 1946년 10월 16일 (향년 69세) | |
연합군 점령하 독일 뉘른베르크 | ||
정당 | ||
시민권 | 독일인 | |
서명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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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프리크 (Wilhelm Frick) |
2. 초기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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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프리크 |
3. 나치당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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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출범한 나치 정권은 연립내각으로써 나치당 인사는 총리인 히틀러 포함해 단 3명뿐이었고, 그가 임명된 내무장관 자리는 출범 당시 기준으로는 별 권한도 없었다.[2] 그러나 그 해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계기로 나치 독재의 합법적인 틀을 마련한 수권법의 입안을 주도하면서 나치의 법률 전문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어 뉘른베르크 법 등 유대인 탄압을 위한 법안과 독일 재무장의 합리화,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병합에 따른 관련 법규의 제정 등에 관여했다. 사법권 외에 경찰권도 얻기 위해 당내 다른 지도자들과 권력 투쟁을 벌였으나, 하인리히 힘러가 독일 경찰청장에 임명되면서 영향력이 급속도로 감퇴하기 시작했다. 결국 1943년에 힘러가 내무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실각했고, 이후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의 총독으로 재직하며 점령지에서 강권 정치를 펼쳤다.
4.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과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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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의 프리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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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의 프리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