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31 13:48:37

구스타프 아돌프 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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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스타프 아돌프 노스케.png
이름 Gustav Adolf Nosske
구스타프 아돌프 노스케
출생 1902년 12월 29일
독일 제국 작센 주 할레
사망 1986년 8월 9일 (향년 83세)
서독 뒤셀도르프
복무 친위대 (1936년 ~ 1945년)
최종계급 친위대 아인자츠그루펜 D 중령 (상급돌격대지도자)
주요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2. 초기 행적3. 나치당 입당4. 제2차 세계 대전5. 전후 재판과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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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치 독일친위대 중령. 아인자츠그루펜의 일원이다.

2. 초기 행적

작센 주의 할레에서 태어난 노스케는 할레와 아헨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3. 나치당 입당

1933년나치당슈투름압타일룽에 가입했고 1936년에 친위대에 입대했다. 노스케는 1935년에 아헨의 게슈타포 장관대리로 일했다. 그리고 1936년 9월부터 1941년 6월에 걸쳐 프랑크푸르트 안 데 오더의 게슈타포 장관으로 일했다.

4. 제2차 세계 대전

독소전쟁이 일어나자 아인자츠그루펜 D 예하의 아인자츠코만도 12의 대대장이 된 노스케는 1942년 2월 16일부터 2월 28일간에 1,515명의 군민을 살해하여 이를 베를린에 보고했다. 1942년 10월부터 베를린의 국가보안본부에서 근무한 노스케는 제4국(게슈타포국) D부(점령지부) 부장을 지냈다.

그러나 1943년알프레트 로젠베르크의 동방담당부처로 발령이 난 노스케는 국가보안본부와의 사이에서 연락장교로 일하다가 1944년 여름에 뒤셀도르프의 경찰국장이 되었다.

5. 전후 재판과 행적

파일:법정에서의 노스케.jpg
법정에서의 노스케
독일의 패전 후 뉘른베르크 특수작전집단 재판이 열렸을때 노스케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노스케는 1944년 9월에 뒤셀도르프의 친위대 및 경찰고급지도자의 유대인 말살명령 책임자로 재판도중 1951년 12월에 석방되었다. 그 후 노스케의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고 1965년 3월 26일의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에 증인으로 호출되기도 했다. 이후 1986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