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Eduard Strauch 에두아르트 슈트라우흐 |
출생 | 1906년 8월 17일 |
독일 제국 에센 | |
사망 | 1955년 9월 15일 (향년 49세) |
벨기에 우클 | |
복무 | 슈츠슈타펠 (1931년~1945년) |
최종계급 | 슈츠슈타펠 아인자츠그루펜 무장친위대 중령 (상급돌격대지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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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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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트 슈트라우흐 (Eduard Strauch) |
2. 초기 행적
에센에서 태어난 슈트라우흐는 뮌헨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재학중에 전과하여 법학학위를 따 졸업했다. 1931년 8월에 나치당에 입당하고, 12월에 친위대에 들어간 그는 1934년부터 첩보부에서 근무했다.친위대 배지를 착용한 슈트라우흐 |
3. 제2차 세계 대전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슈트라우흐도 다른 장교와 같이 아인자츠그루펜의 지휘관이 되어 제2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슈트라우흐의 부대는 1만 600명의 유대인을 룸블라 숲에서 살해하고 1941년 11월 30일엔 다시 또다른 대학살에도 관여했다. 12월에 벨로루시의 보안경찰 및 첩보지휘관으로 취임한 슈트라우흐는 백러시아에서 5만 5천명의 유대인을 10주간에 걸쳐 살해했다. 그러나 슈트라우흐는 러시아 점령지의 친위대 및 경찰고급지도자였던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친위대 대장과 사이가 나빴는데,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대장은 슈트라우흐를 현재껏 만난 인물들 중 가장 최악의 인간이라고 평가했다.[1] 1944년 5월 31일부터 벨기에의 보안경찰 및 첩보지휘관으로 부임한 슈트라흐는 1944년 10월부터 무장친위대에 편입되었다.4. 전후 재판과 최후
재판에 회부된 슈트라우흐 |
[1] 허나 첼레프스키도 러시아 지역에서 민간인 학살에 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