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롬바르트 Gustav Lombard | ||
출생 | 1895년 4월 10일 | |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주 클라인슈피겔베르크 | ||
사망 | 1992년 9월 18일 (향년 97세) | |
독일 바이에른주 뮐도르프암인 | ||
정당 | ||
최종 계급 | 친위대 여단지도자 및 무장친위대 소장[1] | |
복무 | 친위대 (1933년~1945년) | |
시민권 | 독일인 | |
주요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 침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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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스타프 롬바르트 (Gustav Lombard) |
2. 초기 행적
프렌츨라우 부근 클라인 슈피겔베르크 마을에서 태어난 롬바르트는 1906년에 부친을 여의고 미국의 친척인 롬바르트 가에 맡겨졌다. 미국의 미주리 대학을 졸업 후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독일로 귀국해 미국경험을 바탕으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와 크라이슬러 등의 미국 기업 베를린 지사에서 일했다.3. 제2차 세계 대전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인 1933년 2월에 나치당에 입당한 롬바르트는 5월엔 친위대에 입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시 제1토텐코프기병연대의 중대장으로서 폴란드 침공에 종군한 그는 헤르만 페겔라인 연대장의 지휘하에 유격대원 혐의가 있는 주민(90%가 유대인)의 처형을 지휘했다. 그리고 독소전 후에는 연대장으로 승진하여 브레스트 동쪽의 핀스크 마르세스에 연대를 전개시켜 이곳에서도 유대계 주민의 학살을 담당했다. 페겔라인 연대장은 11,000명의 유대인을 총살했다고 보고했다. 그 후 친위대 작전본부로 자리를 옮긴 페겔라인 대신 제8SS기병사단의 사단장이 되었지만 페겔라인의 복귀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1942년 10월부터 12월에는 제29무장척탄병 사단, 1943년 4월부터 5월엔 다시 제8SS기병사단, 1944년 8월부터 9월엔 제6SS산악사단, 1944년 9월부터 10월엔 제2SS무장산악사단, 그리고 1944년 10월부터 패전까지 제31SS의용척탄병사단과 다수의 사단장 자리를 거쳤다.4. 전후 체포 및 재판
1945년 4월에 소련군에 항복한 롬바르트는 재판에 회부되어 1947년에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서독수상 콘라트 아데나워에 의해 독일인 포로의 석방송환으로 서독으로 귀국한 롬바르트는 이후 뮌헨의 알리안츠 사에서 일하다가 1992년에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SS-Brigadeführer und Generalmajor der Waffen-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