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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ascist(Fascism) feminism페미니즘이 파시즘과 융합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영국에서 유행하였던 사상이나 파시즘으로 인한 여성의 자유화는 다른 파시즘 국가에서도 일어났다.
2. 설명
전투적 참정권 운동은 원류 파시즘적인 요소를 대량 함유하고 있는데, 과격파 참정권 운동과 파시즘은 민족주의, 국수주의, 강한 리더십, 영웅주의, 민족성 회복에 대한 낭만적 열정 등의 요소를 공유했다.[1]파시즘의 속성인 극단적인 민족주의는 여성을 국민으로 승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프랑스 파시즘 연구자 캐빈 패스모어(Kevin Passmore)에 따르면 사실 젠더사 연구의 진전에 따른 여성 책임론의 부상은 영국 뿐 만 아니라 유럽 파시즘에 공통되는 현상이다. 파시스트의 엘리트층에 여성의 비율은 매우 높았고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를 모토로 삼았던 파시스트 정당도 실제 상황에서는 유연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 여성들은 남성우월적 나치즘의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유대인과 아프리카 출신 독일인, 집시 등을 인종적 타자로 만드는 작업에 적극 가담한 가해자이기도 했다.[2] 우리가 주로 나치 수뇌부를 떠올렸을때 나오는 인물은 거의 남성밖에 없겠지만 나치 독일에도 게르트루트 숄츠클링크같은 여성 파시즘 지도자가 분명히 있었다. 의외로 서프러제트로 유명한 영국 파시즘에 여성지도자가 적은 편이었지만 영국 파시스트 연합 인물들의 24%는 여성이었으며 페미니스트에서 파시스트로 전향한 예도 굉장히 많다.[3]
영국의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이 파시스트 조직에서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파시스트 페미니즘이 페미니스트 파시즘으로 변모했음을 알 수 있다.[4] 메리 리처드슨(Mary Richardson), 노라 엘람(Norah Elam), 메리 앨런(Mary Allen) 등 참정권 운동가 출신 여성들은 전투적 페미니즘의 유산을 안고 파시즘에 투신했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파시즘 활동을 딱히 배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그들에게는 과격한 참정권 운동이나 파시즘이나 다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다. 노라 엘람은 자신이 쓴 「파시즘, 여성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여성 투표권의 획득으로 나아진 여성의 처우는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는데 실제로도 첫 선거에서 당선된 여성 최초의 의원은 영국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미국인 백만장자의 아내인 낸시 애스터(Nancy Astor)와 아일랜드인으로 사회주의자이며 신페인 당원인 콘스탄츠 마키비츠(Constance Markiewicz)였다. 당시 평균적인 영국 여성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5]
1936년 노라 엘람을 영국 파시스트 연합의 선거 후보로 소개하면서 모슬리는 “이제 국가사회주의가 영국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려 한다는 오해는 불식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영국 파시스트 연합에서는 여성 분과를 설치하여 단순한 보조업무만 맏기는 것이 아니라 검은셔츠단 활동이나 대표로 활동하며 파시스트 신문을 판매하고 기금을 모으고 대중연설을 하게 했다. 또한 아동 클럽이나 청년 클럽을 운영하고 펜싱이나 유도 훈련 등 스포츠 활동에 참가했다. 『여성파시스트(The Woman Fascist)』라는 정기 간행물도 있었다.
1923년 5월 19일 국제여성참정권연맹의 제9차 회의가 파시스트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되었다. 본 회의에는 세계 각국에서 약 1,000여 명의 대표단이 참석하여, 당시까지 열린 여성 참정권 관련 행사 가운데 최대 규모로 기록된다. 행사 연단에는 1922년 로마 진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국가파시스트당의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동석하였다. 파시즘 이데올로기 하에서 여성은 애국적 모성의 수행자로서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출산과 양육의 역할을 핵심적 사명으로 부여받았다. 이에 따라 교육, 고용 등 사회적 영역 전반에서 여성이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았으며, 여성 참정권 역시 배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솔리니는 대규모 국제 행사를 정권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고, 연설에서 “일부 여성 계층에 대해 지방선거 참정권을 우선적으로 부여하고, 점차 전국 선거로 확대할 것을 약속할 수 있다”는 발언을 남겼다. 이 발언 이후 1923년 6월 3일 이탈리아에서는 지방선거에 한해 여성에게 제한적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1925년 자유선거 제도가 전면 폐지됨에 따라 해당 조치는 실효성을 상실하였다.[6]
파시즘은 유럽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깊은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자유주의 사상 확대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빠른 변화가 이루어졌으나 파시즘은 그러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남녀의 구분을 뚜렷히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파시스트 정부는 국가의 경제를 되살리고 다가오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사회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야 했는데 그로 인하여 그들이 격렬하게 비난하며 막으려고 했던 그 변화들을 가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었다. 즉 정치적 동원과 근대적인 사회 복지 정책, 그리고 정복 전쟁을 위한 준비 등으로 인하여 그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과 가족생활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7]
3. 인물
4. 참고 문헌
- 염운옥. (2008). 파시즘과 페미니즘 사이에서 - 영국파시스트연합의 여성 활동가들 -. 대구사학, 92, 75-97.
- Wolf, Naomi. “Fascism with a Feminist Face.” The New Republic, 13 Sept. 1993, pp. 24–29.
- 1923년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페미니즘.” 한국일보, 27 May 2024,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711040000937.
- “파시즘-페미니즘 어떻게 공존했나…‘대중독재와 젠더 정치’.” 동아일보, 5 July 2006, 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060705/8325898/1.
- "페미니스트의 얼굴을 한 파시즘." PPSS, 2016.02.01, https://www.ppss.kr/news/articleView.html?idxno=36574.
- 유정희. (2001). 파시즘 국가와 여성. 페미니즘 연구,(1), 115-146.
[1] 염운옥. (2008). 파시즘과 페미니즘 사이에서 - 영국파시스트연합의 여성 활동가들 -. 대구사학, 92, 75-97. 81p[2] “파시즘-페미니즘 어떻게 공존했나…‘대중독재와 젠더 정치’.” 동아일보, 5 July 2006, 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060705/8325898/1.[3] Julie Gottlieb, Feminine Fascism, p. 147.[4] “파시즘-페미니즘 어떻게 공존했나…‘대중독재와 젠더 정치’.” 동아일보, 5 July 2006, 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060705/8325898/1.[5] Norah Elam, “Fascism, Women and Democracy”, Fascist Quarterly, Vol. 1, No. 3 (1935), pp.290-298.[6] “1923년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페미니즘.” 한국일보, 27 May 2024,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52711040000937.[7] 유정희. (2001). 파시즘 국가와 여성. 페미니즘 연구,(1), 115-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