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Heimatwehr(하이마트베어)[1]는 192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결성된 극우 민족주의 정치운동으로, 반공주의, 반자유주의, 반유대주의, 기독교적 보수주의, 스위스 전통주의를 강조했다. 초기에는 정당 체제와 의회주의를 강력히 비판하면서 대중 선전에 집중했지만, 1930년대에는 직접적인 정치 참여로 노선을 수정하며 지방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2. 역사
하이마트베어는 1925년 취리히에서 창설된 민족주의 성향의 극우 단체로, 당시 스위스 사회에서 확산되던 좌익 사상과 계급 투쟁의 영향력에 대응하고자 하는 보수적·반공주의적 인사들에 의해 조직되었다. 창립자들은 정당이나 특정 계층에 얽매이지 않은 “진정한 애국자”를 자처하며, 스위스의 전통적인 자유, 중립성, 민족적 단결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하이마트베어는 특히 스위스 헌법 질서가 프리메이슨, 유대자본, 사회주의 세력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 ‘초국가적 세력’의 영향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해야 한다는 강한 민족주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를 위해 자체 기관지인 《Schweizerbanner》를 1926년부터 발간하며, 전국에 100,000부씩 배포하는 등 광범위한 대중 선전활동을 펼쳤다. 이 신문은 기존 정당 언론이 다루지 않던 음모론적 서사와 반유대주의적 담론을 퍼뜨리는 데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하이마트베어는 초기에 정치 참여보다는 계몽운동에 집중하며 자신들을 정당이 아닌 “국민운동”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점차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고자 하였고, 특히 보수적인 농촌 지역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34년 베른의 대의원 선거(Grossratswahlen)에 출마하였으며, 프루티겐(Frutigen), 툰(Thun) 등에서 세 명의 후보를 당선시켰다. 당선자들은 모두 농민 출신으로, 이 시기 하이마트베어는 농촌 중산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1934년 2월에는 스위스 파시스트 운동(Schweizerische Faschistische Bewegung)과 함께 헬베티아 행동(Helvetische Aktion)이라는 연합체를 결성하였다. 이 시도는 당시 유럽 각국에서 고조되던 파시즘의 영향을 받아 스위스 내 극우 세력 간의 정치적 통합을 도모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헬베티아 행동은 스위스 파시스트 운동 사이의 협력에 대한 이견으로 같은 해 말에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하이마트베어는 단체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스위스 헌법과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을 선언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회주의와 정당 체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정치적 참여보다는 민족주의적 사상 확산에 집중했다.
1935년에는 국민전선(Nationale Front)과 힘을 합쳐 국가 의회의 총선에 출마했으나,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1936년에는 《Schweizerbanner》 신문의 발행이 중단되었고, 이후 당의 활동은 점차 쇠퇴했다. 그러나 1938년, 하이마트베어는 여전히 베른주에서 지방 선거에 출마했으며, 그 결과 루트비히 렝가허 한 명이 당선되었다. 이는 하이마트베어가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지지를 얻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렝가허는 1942년에 사망했으며, 이후 하이마트베어의 활동은 사실상 종료, 1946년 공식적으로 해산을 선언하였다.
[1] Heimat은 고향, 조국 등을 뜻하고 wehr는 방어를 뜻한다. 고로 Heimatwehr는 조국방위대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