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공화국 대통령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 #003893; color: #fff;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라파엘 누녜스 | 미겔 안토니오 카로 | 마누엘 안토니오 상클레멘테 | 호세 마누엘 마로킨 | |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라파엘 레예스 | 라몬 곤살레스 빌렌시아 | 카를로스 에우헤니오 레스트레포 | 호세 비센테 콘차 | |
제9대 |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
마르코 피델 수아레스 | 호르헤 올긴 | 페드로 넬 오스피나 | 미겔 아바디아 멘데스 |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제16대 | |
엔리케 올라야 에레라 | 알폰소 로페스 푸마레호 | 에두아르도 산토스 몬테호 | 알폰소 로페스 푸마레호 |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
마리아노 오스피나 페레스 | 라우레아노 고메스 | 구스타보 로하스 피니야 | 알베르토 예라스 카마르고 | |
제21대 | 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
기예르모 레온 발렌시아 | 카를로스 예라스 레스트레포 | 미사엘 파스트라나 보레로 | 알폰소 로페스 미첼센 | |
제25대 | 제26대 | 제27대 | 제28대 | |
훌리오 세사르 투르바이 아얄라 | 벨리사리오 베탕쿠르 | 비르힐리오 바르코 바르가스 | 세사르 가비리아 | |
제29대 | 제30대 | 제31대 | 제32대 | |
에르네스토 삼페르 |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 알바로 우리베 | 후안 마누엘 산토스 | |
제33대 | 제34대 | |||
이반 두케 | 구스타보 페트로 | }}}}}}}}} |
무궁화대훈장 수훈자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한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상훈 연도 | 결정일 | 수여일 | 이름 | 직책 | 국적 | 비고 |
1949년 | 8월 15일 | 이승만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60년 | 8월 13일 | 윤보선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63년 | 12월 5일 | 12월 17일 | 박정희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67년 | 6월 23일 | 육영수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79년 | 12월 7일 | 최규하 | 대통령 | 대한민국 | 12.12 군사반란으로 하야 | ||
1979년 | 12월 7일 | 홍기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80년 | 8월 29일 | 8월 29일 | 전두환 | 대통령 | 대한민국 |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 |
1980년 | 8월 29일 | 8월 29일 | 이순자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88년 | 2월 24일 | 2월 25일 | 노태우 | 대통령 | 대한민국 | 무궁화대훈장 이외의 모든 훈장 취소 | |
1988년 | 2월 24일 | 2월 25일 | 김옥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93년 | 2월 11일 | 2월 23일 | 김영삼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93년 | 2월 11일 | 2월 23일 | 손명순 | 영부인 | 대한민국 | ||
1998년 | 2월 17일 | 2월 25일 | 김대중 | 대통령 | 대한민국 | ||
1998년 | 2월 17일 | 2월 25일 | 이희호 | 영부인 | 대한민국 | ||
2008년 | 1월 28일 | 노무현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08년 | 1월 28일 | 권양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2013년 | 2월 12일 | 이명박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13년 | 2월 12일 | 김윤옥 | 영부인 | 대한민국 | |||
2013년 | 2월 19일 | 박근혜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22년 | 5월 3일 | 문재인 | 대통령 | 대한민국 | |||
2022년 | 5월 3일 | 김정숙 | 영부인 | 대한민국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외국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상훈 연도 | 결정일 | 수여일 | 이름 | 직책 | 국적 | 비고 |
1964년 | 12월 3일 | 12월 8일 | 하인리히 뤼프케 | 대통령 | 서독 | 외국인 최초 상훈자 | |
1964년 | 12월 3일 | 12월 8일 | 빌헬미네 뤼브케 | 영부인 | 서독 | 외국인 최초 상훈자 | |
1966년 | 2월 1일 | 2월 7일 | 이스마일 나시루딘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66년 | 2월 1일 | 2월 7일 | 틍쿠 인탄 자하라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66년 | 2월 1일 | 2월 10일 | 푸미폰 아둔야뎃 | 국왕 | 태국 | ||
1966년 | 2월 1일 | 2월 10일 | 시리낏 끼띠야콘 | 왕비 | 태국 | ||
1966년 | 2월 1일 | 2월 15일 | 장제스 | 총통 | 중화민국 | ||
1968년 | 5월 10일 | 5월 18일 | 하일레 셀라시에 | 황제 | 에티오피아 | ||
1969년 | 5월 23일 | 5월 27일 | 응우옌반티에우 | 총통 | 남베트남 | ||
1969년 | 5월 23일 | 5월 27일 | 응우옌티마이아인 | 제1부인 | 남베트남 | ||
1969년 | 10월 28일 | 10월 28일 | 하마니 디오리 | 대통령 | 니제르 | ||
1969년 | 10월 28일 | 10월 28일 | 아이샤 디오리 | 영부인 | 니제르 | ||
1970년 | 9월 25일 | 9월 28일 |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 대통령 | 엘살바도르 | ||
1970년 | 9월 25일 | 9월 28일 | 마리나데 산체스 에르난데스 | 영부인 | 엘살바도르 | ||
1975년 | 6월 27일 | 7월 5일 | 오마르 봉고 | 대통령 | 가봉 | ||
1975년 | 6월 27일 | 7월 5일 | 조세핀 봉고 | 영부인 | 가봉 | ||
1979년 | 4월 17일 | 4월 23일 |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 | 대통령 | 세네갈 | ||
1979년 | 4월 17일 | 4월 23일 | 콜레테 위베르트 상고르 | 영부인 | 세네갈 | ||
1980년 | 5월 11일 | 할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드 | 국왕 | 사우디아라비아 | |||
1980년 | 5월 14일 | 자베르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국왕 | 쿠웨이트 | |||
1981년 | 6월 25일 | 수하르토 | 대통령 | 인도네시아 | |||
1981년 | 6월 25일 | 시티 하티나 | 영부인 | 인도네시아 | |||
1981년 | 6월 29일 | 아마드 샤 이브니 아부 바카르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81년 | 6월 29일 | 틍쿠 아프잔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81년 | 7월 6일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 대통령 | 필리핀 | |||
1981년 | 7월 6일 | 이멜다 마르코스 | 영부인 | 필리핀 | |||
1981년 | 10월 13일 | 로드리고 카라소 | 대통령 | 코스타리카 | |||
1981년 | 10월 13일 | 에스트레야 셀레돈 리사노 | 영부인 | 코스타리카 | |||
1982년 | 5월 10일 | 사무엘 도 | 대통령 | 라이베리아 | |||
1982년 | 6월 7일 | 모부투 세세 세코 | 대통령 | 자이르 | |||
1982년 | 6월 7일 | 보비 라다와 | 영부인 | 자이르 | |||
1982년 | 8월 25일 | 압두 디우프 | 대통령 | 세네갈 | |||
1982년 | 12월 21일 | 케난 에브렌 | 대통령 | 튀르키예 | |||
1983년 | 3월 10일 | 3월 15일 | 자파르 모하메드 니메이리 | 대통령 | 수단 | ||
1983년 | 3월 10일 | 3월 15일 | 부띠나 칼릴 압불핫산 | 영부인 | 수단 | ||
1983년 | 9월 10일 | 후세인 1세 | 국왕 | 요르단 | |||
1983년 | 9월 10일 | 누르 | 왕비 | 요르단 | |||
1984년 | 4월 9일 | 하사날 볼키아 | 국왕 | 브루나이 | |||
1984년 | 4월 21일 |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 국왕 | 카타르 | |||
1984년 | 8월 30일 | 9월 13일 | 다우다 자와라 | 대통령 | 감비아 | ||
1984년 | 8월 30일 | 9월 13일 | 치렐 자와라 | 영부인 | 감비아 | ||
1985년 | 5월 17일 |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 대통령 | 파키스탄 | |||
1985년 | 5월 20일 | 루이스 알베르토 몽헤 | 대통령 | 코스타리카 | |||
1986년 | 9월 4일 | 4월 10일 | 엘리자베스 2세 | 국왕 | 영국 | ||
1986년 | 9월 4일 | 4월 16일 | 보두앵 | 국왕 | 벨기에 | ||
1987년 | 4월 7일 | 아메드 압달라 | 대통령 | 코모로 | |||
1988년 | 11월 3일 | 이스칸다르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88년 | 11월 3일 | 자나리아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20일 |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 대통령 | 서독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30일 | 프랑수아 미테랑 | 대통령 | 프랑스 | ||
1989년 | 11월 3일 | 11월 30일 | 다니엘 미테랑 | 영부인 | 프랑스 | ||
1990년 | 6월 21일 | 안드레스 로드리게스 | 대통령 | 파라과이 | |||
1990년 | 11월 5일 | 괸츠 아르파드 | 대통령 | 헝가리 | |||
1991년 | 9월 13일 | 아즐란 샤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91년 | 9월 13일 | 투안쿠 바이눈 | 왕비 | 말레이시아 | |||
1991년 | 9월 25일 |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 대통령 | 멕시코 | |||
1992년 | 8월 13일 | 호르헤 안토니오 세라노 엘리아스 | 대통령 | 과테말라 | |||
1993년 | 5월 20일 | 5월 25일 | 피델 라모스 | 대통령 | 필리핀 | ||
1993년 | 5월 20일 | 5월 25일 | 이멜리타 마르티네스 라모스 | 영부인 | 필리핀 | ||
1994년 | 11월 7일 | 11월 21일 |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 타글레 | 대통령 | 칠레 | ||
1994년 | 12월 5일 | 12월 9일 | 레흐 바웬사 | 대통령 | 폴란드 | ||
1995년 | 2월 7일 | 2월 16일 | 이슬람 카리모프 | 대통령 | 우즈베키스탄 | ||
1995년 | 2월 21일 | 3월 6일 | 로만 헤어초크 | 대통령 | 독일 | ||
1995년 | 3월 28일 | 4월 3일 | 젤류 젤레프 | 대통령 | 불가리아 | ||
1995년 | 6월 26일 | 7월 7일 | 넬슨 만델라 | 대통령 | 남아프리카 공화국 | ||
1995년 | 9월 26일 | 9월 29일 | 카를로스 메넴 | 대통령 | 아르헨티나 | ||
1996년 | 7월 23일 | 9월 4일 | 알바로 아르수 | 대통령 | 과테말라 | ||
1996년 | 7월 23일 | 페르난두 카르도주 | 대통령 | 브라질 | |||
1996년 | 10월 8일 | 10월 20일 | 후안 카를로스 1세 | 국왕 | 스페인 | ||
1996년 | 10월 8일 | 10월 20일 | 소피아 마르가리타 빅토리아 프리데리키 | 왕비 | 스페인 | ||
1996년 | 11월 26일 | 자파 이브니 압둘 라만 | 국왕 | 말레이시아 | |||
1996년 | 12월 10일 | 12월 15일 | 레오니드 쿠치마 | 대통령 | 우크라이나 | ||
2000년 | 2월 22일 | 3월 3일 | 카를로 아첼리오 참피 | 대통령 | 이탈리아 | ||
2000년 | 2월 22일 | 3월 6일 | 자크 시라크 | 대통령 | 프랑스 | ||
2006년 | 3월 12일 |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 대통령 | 알제리 | |||
2007년 | 3월 26일 | 사마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국왕 | 쿠웨이트 | |||
2007년 | 3월 28일 |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 국왕 | 카타르 | |||
2009년 | 5월 13일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 대통령 | 카자흐스탄 | |||
2009년 | 11월 12일 | 알란 가르시아 | 대통령 | 페루 | |||
2012년 | 5월 30일 | 칼 16세 구스타프 | 국왕 | 스웨덴 | |||
2012년 | 11월 21일 | 할리파 빈 자이드 나하얀 | 대통령 | 아랍에미리트 | |||
2018년 | 10월 8일 | 에마뉘엘 마크롱 | 대통령 | 프랑스 | |||
2019년 | 하랄 5세 | 국왕 | 노르웨이 | ||||
2021년 | 6월 14일 |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 대통령 | 오스트리아 | |||
2021년 | 6월 16일 | 펠리페 6세 | 국왕 | 스페인 | |||
2021년 | 6월 16일 | 레티시아 오르티스 로카솔라노 | 왕비 | 스페인 | |||
2021년 | 8월 25일 | 이반 두케 | 대통령 | 콜롬비아 | |||
2021년 | 9월 21일 | 보루트 파호르 | 대통령 | 슬로베니아 | |||
2023년 | 7월 13일 | 안제이 두다 | 대통령 | 폴란드 | |||
2023년 | 11월 21일 | 찰스 3세 | 국왕 | 영국 | |||
2024년 | 11월 16일 | 디나 볼루아르테 | 대통령 | 페루 | }}}}}}}}} |
콜롬비아 공화국 제33대 대통령 Iván Duque | |
이름 | <colbgcolor=#FFFFFF,#191919> Iván Duque Márquez 이반 두케 마르케즈 |
출생일 | 1976년 8월 1일 ([age(1976-08-01)]세) |
출생지 | 콜롬비아 보고타 |
국적 | [[콜롬비아|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로체스터 고등학교 (졸업) (-1994년) 세르히오 아르볼레다 대학 (법학 / 학사) 아메리칸 대학교 (법학 / 석사) 조지 워싱턴 대학교 (공공정책학 / 석사)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
가족 | 배우자: 마리아 산도발 슬하 1남 2녀 |
약력 | 중남미개발은행 컨설턴트 (1999년) 미주개발은행 수석변호사 콜롬비아 상원의원 (2014년 – 2018년) 콜롬비아 제33대 대통령 (2018년 – 2022년) |
정당 | [[민주중도당| 민주중도당 ]] |
재임기간 | 2018년 8월 7일 ~ 2022년 8월 7일 |
직업 | 정치인, 법조인, 저술가 |
종교 | 가톨릭 |
서명 |
[clearfix]
1. 개요
이반 두케는 콜롬비아의 제33대 대통령이다.2. 생애
보고타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 이반 두케 에스코바르는 한때 콜롬비아 자유당 소속으로 안티오키아 주지사 및 자원에너지부 장관 등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었다. 출생 배경만으로도 두케 대통령은 상류층 출신에 속했으며, 후에 미국에서 유학하기까지 했다.[1]3. 정치 활동
1999년 중남미개발은행에서 컨설턴트로 일하였으며 2001년부터 2013년까지 미주개발은행에서 일했다. 이 시절 후반기 쯤에는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조언자로 일했는데, 부친이 자유당 출신이다보니 두케 본인 또한 나름 진보적인 성향이 있었지만,[2] 강경우파 성향의 우리베 곁에서 일하면서 본인 또한 급격하게 우경화되었다.[3] 다만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에서 일한 경력만으로도 충분히 우경화될 만도 했다.[4]이후 우리베 대통령이 퇴임하고 민주중도당을 창당하자 두케 대통령은 여기에 합류했으며, 2014년 민주중도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 시절 각종 족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산후휴가법 개정. 기존 최대 14주만 가능했던 것을 최대 18주로 연장했으며, 이러한 두케 대통령의 활약은 한마디로 갑툭튀한 두케 대통령을 단숨에 대권 주자로 끌어올리는데 크게 일조했다.
4. 2018년 대선
2017년 대선을 약 1년 앞두고 출마를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민주중도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한때 콜롬비아의 보수우파를 대표하던 콜롬비아 보수당의 마르타 루시아 라미레스 후보[5] 등과 함께 범보수진영 경선에 진입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라미레스를 큰 표차로 누르고 범보수진영의 실질적인 단일후보로 선출되었다. 이 당시 라미레스 후보와 앙금이 붙기도 했고, 라미레스 또한 이번에는 정권을 차출해야 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었는지 경선이 끝나고 후유증이 가시지 않는 듯 싶었지만, 두케 대통령은 이렇게 낙심한 라미레스를 본인의 러닝메이트로 지명해 곧바로 경선 갈등을 해결했다.하지만 후안 마누엘 산토스 정권의 지지율이 좋지 않았음에도, 여당인 국민통합사회당에서 밀어준 무소속[6] 헤르만 바르가스 예라스 후보가 급진좌파 성향의 무소속[7] 후보인 구스타보 페트로와 양자구도를 형성하면서, 처음에는 가망이 없는 듯 싶었다. 그러나 산토스 정권에 대한 심판을 내세웠고, 동시에 산토스 대통령의 업적으로 남은 FARC와의 평화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이를 바탕으로 보수층을 빠르게 결집시켰으며, 동시에 바르가스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페트로와 새로운 양자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페트로와 함께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케의 강경우파적 성향은 범진보(내지 범중도) 진영의 비토를 크게 샀으며, 안그래도 콜롬비아를 나름 안정시킨 평화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것만으로도 전국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한때 두케의 아버지가 일했다던 자유당의 움베르토 델라카예 후보라던가, 녹색동맹 출신으로 대표적인 중도좌파 후보인 세르히오 파하르도 후보 또한 평화협정을 지지했기에, 두케가 결선에 진출하더라도 각계의 비토를 사면서 결국에는 낙선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상대편의 페트로가 두케와 정반대 위치에 있는 강경좌파였던지라 중도파들로서는 "그 놈이 그 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더더욱이나 이러한 성향으로 반군 활동까지 한 경력이 재조명되면서, "페트로=FARC"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콜롬비아는 인접한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와는 달리 보수우파 성향이 강한 나라다. 특히 FARC 덕에 더욱 더 우경화한 것은 덤. 거기다가 바로 옆나라인 베네수엘라가 강경좌파 정권 하에서 나라가 망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게[8] 바로 콜롬비아고, 실제로 두케 또한 페트로를 베네수엘라 정권과 연관 짓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정작 평화협정을 지지하며 두케를 비토했던 자유당이 두케 지지를 선언했으며, 3위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파하르도가 유권자들에게 "알아서 투표하라"며 말을 얼버무리는 등, 선거 구도가 두케 위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를 노린 두케는 살짝 좌클릭하면서, 평화협정을 파기를 취소하는 대신 수정으로 변경해, 일단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53.98%로 41.81%를 기록한 구스타보 페트로를 생각보다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9]
5. 대통령
2018년 8월 7일 정식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취임 후로는 평가가 썩 좋지 않다. 취임 극초기에만 지지율이 50%대를 찍었을뿐 이후로는 지지율이 추락해버렸고, 취임 100일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7~33%대를 기록하고, 비지지율이 지지율의 약 2배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레임덕 상태라는 평이 나와도 무방할 정도의 수준이 되어버렸다.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부가가치세를 18%에서 21%대로 올릴 계획을 내놓은것인데 정작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은 올리지 않으면서 괜히 서민물가가 오르는거 아니냐는 우려가 퍼지면서 서민층들과 중산층들의 반감을 사서 지지율을 왕창 깍아먹었으며 그 와중에 교육예산도 동결해버려서 대학생들이 예산을 올려달라면서 시위에 참여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전 후안 산토스 정권때와 마찬가지로 FARC가 철수한 지역에서 친정부 민병대와 상당수 반군들이 마약을 놓고 싸움질을 벌이는 일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데다가 사회 인권 운동가들이 살해당하는 상황에서도 별로 손을 쓰지 못하는것은 마찬가지이기도 하고, FARC와의 협정을 별 대안없이 뒤엎을려는 점도[10] 마이너스 평을 듣고 있다. 일단 대학예산은 정부가 반쯤 굴복하는 식으로 겨우 마무리 되었지만, 학생운동을 강경진압하는 모습을 보여왔기에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베의 이미지도 같이 추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쓴맛이 될듯.다만 이후로는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대립 및 게릴라의 테러 등 정치적인 호재가 잇따르면서 지지율이 다시금 회복세를 보여서 40%대 초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 재임 초기임을 감안하면 지지율이 썩 높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정치위기가 잠시 주춤한 국면에 들어가면서 원주민들과의 갈등으로 고속도로가 봉쇄되는 등의 일이 장기화되면서 다시금 지지율이 떨어졌다. 한달씩이나 고속도로가 막히는 상황인데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가 지지율 하락압력에 겨우 합의를 봤지만 삐그덕거리고 있는 형국이고 평화특별재판소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을 제출했다가 하원에서 110:44로 압도적으로 부결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다시 입었다.
외교적으로는 당장 베네수엘라 난민로부터 난제가 있으며, 마두로 대통령와 대립하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틈타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였고, 정식 의전까지 가지는 등 어느 정도 영항력을 가지는 모양이다. 마두로에 대해 전범과 같다는 발언을 하였다.#
게다가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의 자녀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이것때문에 인권단체로부터 반이민 물결 속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이후로 경기침체와 은사인 우리베에 대한 유죄판결로 다시금 지지율이 하락하였고, 2019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중도당이 대도시 지역에서 참패하는 결과를 보였다. 또한 미투항 반군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사살하는 병크까지 발생했다. 결국 이러한 것에 더해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을 하여 연금지급시기를 늘리고 최저임금 지급시점을 늘리겠다는 방안까지 나오면서 반정부 시위가 일게 되었다. 일단 두케는 해당 사안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없다고는 하지만 이미 사망자가 발생한 상태가 되었다. 2019년 11월에 불거진 반정부시위에 대해 국민과 대화하겠다고 한다.#
2020년 2월에 콜롬비아의 인권 상황과 관련한 유엔의 보고서 내용을 두고 '주권 간섭'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2021년 5월에 소득세 징수 기준을 낮춰 납세자를 늘리고 일부 부가가치세 면세 혜택을 폐지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세제개편안을 내놨지만 서민들만 세금 부담 커지는 것에 대한 반발시위가 매우 거세면서 폐기하였다.# 그럼에도 시위가 지속되면서 숨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2021년 8월 24일 대한민국을 국빈 방문한다.#
6. 여담
민주중도당 소속으로 콜롬비아인들 사이에서 "콜롬비아의 마크롱"이라고 불리지만, 두케 본인과 민주중도당 둘 다 이와는 달리 중도주의가 전혀 아니며, 실제로는 강경우파로 분류된다.프랑스의 정치인으로 약진하는 프랑스의 대표인 니콜라 뒤퐁에냥과 묘하게 닮았다. 둘 다 강경우파로 성향도 나름 비슷하고.
2019년 중남미 순방 중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기도 했다.#
[1] 이때문에 영어를 프리토킹할 정도로 잘한다. 그래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통역을 쓰지않고 했다.#[2] 대한민국에서는 어감 때문에 보수 정당이라고 알기 쉽지만, 콜롬비아의 자유당은 캐나다의 자유당처럼 진보 성향을 띈다.[3] 다만 우리베 또한 자유당 출신이었다.[4] 다만 우리베보다는 덜 극우적이다.[5] 일전에 보수당 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지만 1차에서 탈락했다.[6] 산토스 정권 2기 때 급진변혁당 소속으로 부통령을 지냈지만, 차기 대선에 출마하고자 부통령직을 사임함과 동시에 급진변혁당을 탈당했다. 이후 Mejor Vargas Lleras(바르가스 예라스가 최고)라는 정치운동을 조직했지만, 정당은 아니므로 무소속이라 봐야 한다.[7] 진보운동이라는 정치단체를 조직했고 대선 때는 인간적인 콜롬비아라는 이름을 내세웠지만, 정당은 아니므로 엄연한 무소속이다.[8] 다만 이건 베네수엘라가 유난히 특이한것이기는 하다. 반대로 볼리비아는 외환보유고를 잘 쌓아놓은 덕택에 남미에서도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이 낮기는 하지만 어쨌든 성장률 1위는 유지하고 있고, 에콰도르는 유가폭락하에서도 일단 현상유지는 했고, 다만 코레아가 모레노와 사이가 벌어지면서 뭐해졌다 말 그대로 외환보유고 관리를 소흘히하다가 벌어진 참사다. 사실 니카라과도 연5%대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오르테가가 IMF 조언을 받아들였다가 정치면에서 제대로 망테크를 탔다.[9] 그런데 둘을 더하면 100%에 못 미친다. 이는 콜롬비아가 기권표도 따로 인정하기 때문인데, 기권표가 4.21%가 나왔다. 이 기권표를 제외하고 재환산할 경우, 두케는 56.35%, 페트로는 43.65%가 나오면서 오히려 격차가 더 벌어진다.[10] 까놓고 얘기하자면 FARC가 마약과 내전에서 손을 떼는 것은 좋았지만 사후처리가 엉망으로 진행되어서 불법벌목이 성행하고 갱단들이나 상대 게릴라들이 침투해서 마약업을 확대해나가고 있으며 해당지역에 주거하고 있던 주민들을 살해하는 등의 난장판이 되고있다. 이런상황에서 FARC와의 협상을 뒤엎어봐야 FARC 대원들 상당수가 다시 마약에 손을 댈게 뻔하기 때문에 상황이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일은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