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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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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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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Çay.[1]

튀르키예에서 즐겨 마시는 튀르키예식 홍차. 차이는 홍차터키어다.[2]

2. 상세

우유를 섞지 않고 설탕을 타서 마시는데,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무지막지하게 설탕을 타서 마시기도 한다. 튀르키예에서 쓰는 찻잔은 사진처럼 허리가 잘록한데다가 크기도 작은데[3][4] 보통은 각설탕 1개에서 2개 정도 넣지만, 심한 사람들은 3-4개씩 넣는다. 가끔 각설탕을 차에 찍어서 차가 아닌 각설탕을 먹는 사람도 있다.

아랍권에서는 '샤이'(شاي, Shāy)라고 발음하며, 가격은 튀르키예의 경우 찻집에서 마신다면 1잔에 2리라에서 4리라 사이 (280-560원), 슈퍼마켓이나 시장에 가면 찻잎을 500g, 1kg단위로 포장해서 파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가격도 미친 듯이 싸서 튀르키예산 중품의 경우 500g 1팩에 20리라(약 2800원)에도 구할 수 있다.[5] 홍차는 빵과 마찬가지로 생필품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튀르키예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물가를 관리한다. 잘하면 거저로 한 번에 10잔 넘게 얻어마실 수 있다.. 다만 수다를 동반하면서 물건을 안 사주고 가게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마시는 고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경우 차는 그냥 서비스로 주는게 암묵의 룰이다.[6]

튀르키예식 차는 굉장히 오랫동안 끓이는데, 특유의 2층 주전자인 차이단륵(Çaydanlık)이나 세마베르[7]를 이용해서, 아랫층에는 뜨거운 물을, 윗층에는 홍차잎을 넣고 끓인다. 이때 아랫층 물이 끓기 시작하면 끓는 물을 윗층에 따라 홍차를 우리고, 이 상태로 계속 끓여서 차를 마시고 싶을 때마다 윗층 주전자의 진한 차와 아랫층 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섞어서 차를 따르는 방법을 이용한다. 차이단륵을 사용하면, 불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뜨거운 차를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8] 홍차는 너무 오랫동안 우리면 떫은 맛이 나는데, 때문에 튀르키예의 홍차는 물을 많이 섞어서 연하며, 떫은맛을 덜기 위해 설탕을 많이 쓰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튀르키예의 차이는 엄청 단 홍차라고 할 수 있다. 본격 홍차맛 설탕물 장난 안 하고 미치도록 달다 진짜 [9]사람들마다 마시는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많은 튀르키예인들이 200ml 정도 되는 작은 잔에 각설탕을 2~3개 정도 넣고 마신다. 애초에 찻집에서 차를 시키면 말을 하든 안하든 각설탕 2개가 따라온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라도 너무 단 홍차는 자제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2020년 현재는 설탕없이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예전부터 차에 설탕을 너무 많이 넣는 사람은 하류층, 아예 안 넣거나 1개정도만 넣는 사람은 상류층 하는 식으로 계급의식이 있었다. 저기 위에 쓰여진대로 각설탕을 4개씩 넣는 사람을 보면 튀르키예인들도 신기해하거나 "역시 차맛을 모르는 천박한 인간이구만"하고 무시하는 태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튀르키예인들은 하루에 차이를 10잔은 기본으로 마신다. 아니 10잔도 적게 마시는 사람들이며, 아예 튀르키예인들은 차를 아예 물처럼 마신다고 할 수 있다. 튀르키예인들이 매해 마시는 차는 무려 2,000잔에 이른다!잠만, 하루에 10잔 마시면 연간 3,600잔이잖아(다만 차이를 담는 잔이 작아서 우리가 마시는 컵으로 치자면 절반 수준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별로 차이나지 않는다. 일반적인 영국식 찻잔이 200ml 정도인데 반해 튀르키예 찻잔은 140-160ml 정도로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매해 평균 1,000잔... 참고로 세계에서 홍차 섭취량이 가장 많은 국가는 영국이 아니고 튀르키예다. 출처 아침식사 때 차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한 것 같지 않다고 말하는 튀르키예인들도 많고, 아침식사에도 차를 1잔만 마시지는 않는다.[10] 그 외에 일할때나, 어딘가를 방문하거나, 물건을 사러가거나 할때도 기본적으로 차를 대접받는다. 관공서에는 차 끓이는 일만 하는 공무원도 있을 정도다. 일반 회사에서도 사무실 청소 및 업무관리 목적으로 고용하는 하데메(hademe) 혹은 카프즈(kapıcı)라는 직원이 있는데, 이들은 자신의 본업무 이외에 차를 끓이는 일도 한다. 다른 아랍권 사람들도 이보단 못할지 몰라도 역시 무척 많이 마신다.

이렇게 튀르키예인들이 차이를 많이 마시는 이유는 튀르키예의 사회와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튀르키예에서 차를 마신다는 것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시작한다거나, 식사를 한다거나, 손님을 환대한다거나, 기타 등등 사교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기념품을 사는 관광객에게도 가게 주인은 으레 차를 따라주기 마련인데, 부담스러워할 필요 없다. 튀르키예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인이 식사 중일 땐 음식까지 권하기도 한다.

튀르키예뿐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도 이런 설탕차는 흔하디 흔한 풍경이다. 대표적으로 만화 팔레스타인을 그린 조 사코도 작중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설탕물 홍차에 진저리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설탕이 다 녹지 않고 잔을 절반이나 채울 정도로 가라앉아서 조 사코가 "제 설탕에 차 좀 더 부어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할 지경. 참고로 차에 설탕이 많이 들어갈수록 손님을 크게 환대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먹을 게 많이 재배되는 튀르키예인지라 당연히 차도 많이 재배하는데, 특히 흑해지방에 위치한 작은도시 리제(Rize)는 세계적인 홍차생산지로 이름이 높다. 이 도시의 연고 축구팀인 리제스포르의 구단주는 아예 홍차 제조사인 차이쿠르(Çaykur) 사다. 비록 한국에서는 듣보잡 수준이지만, 리제에서 생산된 홍차는 산뜻하면서도 오랫동안 끓여도 떫은 맛이 덜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구할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이태원을 방문해보자. 국내에서는 Rize Turistik Çayı(리제 투리스틱 차이으)와 Çaykur(차이쿠르), Doğudoğan(도우도안), Ülker(윌케르), Halk(할크)사 제품을 흔히 볼 수 있다.[11]

또한 차이를 자주 먹는 지역 사람들은 잔에 높이 따를수록 행운이 온다고 여겨서, 길거리에서 차이장수들이나 그냥 사람들이 높이 주전자를 쳐들고도 한 방울도 안 떨어뜨리고 차이를 잔에 따르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12] 다만 여행 중에 낯선 사람이 주는 차이를 먹고 마취제나 최음제에 취한 채로 성범죄의 타겟이 되는 사례가 매우 많은 등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도 있으니 되도록이면 주의하는 것이 상책이다.

일본인 차 연구가인 오사다 사치코[13]가 쓴 <세계의 차>란 책자를 보면, 지은이가 2010년 튀르키예의 차이 농장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튀르키예에선 현재 차이가 남아돈다고 한다. 그래서 농장들이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한다. 사치코도 튀르키예에서 정말 차를 많이 마신다고 놀라워 할 정도였는데[14] 그렇게도 차이를 많이 마시는데도 남아돌다니 대체 이 튀르키예에서는 얼마나 많이 재배된다는 거야? 라고 놀랐다고 한다.

튀르키예에서는 몇 해전만 해도 이웃 조지아인이나 아르메니아인, 아니면 아프리카인동남아시아인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써서 싼 인건비로 찻잎을 따게 하고 재배했는데, 자국인 노동자만을 쓰게 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인건비가 올랐다는 것. 하지만 차밭은 엄청 넓고 찻잎 따는 일은 힘들어서 인건비가 올라도 튀르키예 젊은 층에게는 고역이라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상황까지 오게된 것.

이런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이 터져서 차농가에서 잎을 따지 않고 항의시위를 벌이는 통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미봉책으로 세금으로 찻잎을 대거 수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사줄 순 없는 노릇이라 어찌할지 모를 상황이라고 한다.

이렇게 튀르키예의 국민음료가 된 차이지만, 사실 그 역사는 의외로 길지 않다. 기록상으로는 13세기 중앙아시아지역의 튀르크인들이 중국에서 차를 수입해서 마시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 전통은 이란까지는 널리 퍼졌지만 지금의 튀르키예에는 퍼지지 못했다. 그 대신 튀르크 커피를 마셨다. 지금의 튀르키예 땅에서 차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오스만 제국시절인 19세기 중후반의 일인데, 사실 그 이전에도 차이가 조금씩 소비되기는 했다. 다름아닌 러시아 때문이었다. 18세기 중엽 이후 러시아에서도 일부 귀족이나 중앙아시아, 시베리아일대에서나 소비되던 차가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해 기존의 중앙아시아-시베리아 카라반 교역만으로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러시아 상인들은 무역선으로 중국으로부터 차를 직수입하기 시작했는데 중국의 차 수확기인 4-5월에 찻잎을 구입하고 (당시에는 수에즈 운하 건설 전이라) 말레이반도, 인도,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지브롤터 해협에 다다르면 이미 10-11월로 그곳에서 발트해로 진입하면 이미 항구들이 꽁꽁 얼어 제기능을 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무역선들은 크림반도의 오데사 등지에 기항해서 거기서 육로로 러시아 전국으로 운송했는데, 그 무역로 중간에 이스탄불이 있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지나가는 모든 무역선에 통과세를 물리고 있었고, 이는 오스만 제국의 중요한 세입중 하나였다. 또한 러시아 무역선들은 기왕 이스탄불을 지나가는 김에 찻잎과 중국 물건들을 일부 팔고 빈 창고에 카펫같은 오스만 제국의 사치품들을 싣고 러시아로 가져가서 함께 팔았는데, 이로 인해 차가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또한 이스탄불에 거주하던 외국인들과 일부 상류층들이 차를 마시기 시작하자 차를 마신다는 것이 서구화, 고급문화를 의미하게 되었고, 차의 수요가 부유층을 중심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자 이스탄불의 몇몇 무역상들이 자체적으로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차의 보급이 시작되었다. 튀르키예 최초의 차에 대한 책인 하즈 메흐메트 이젯트 에펜디(Hacı Mehmet İzzet Efendi)의 “Çay Risalesi” (차 안내서)는 1879년 이스탄불에서 발행되었다. 당시의 차는 영국과 별반 다를거 없는 밀크티나 설탕을 넣지 않거나 한스푼 정도만 넣고 레몬을 띄워 먹는것이 주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제국에서는 차보다 커피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이 커피의 원산지인 중동지역의 내란 등으로 인해 커피수급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자 압뒬하미트 2세시기 오스만 제국은 커피를 아나톨리아에서 재배하려고 시도했다. 물론 커피는 열대작물이기때문에 실패했다. 결국 차나무는 온대지방에서도 잘 자란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1892년에 중국에서 차나무 모종을 가져와서 부르사에 심었지만 그마저도 기후가 맞지 않아서 실패했다. 하지만 이 시기 에르투으룰호 침몰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관계가 좋아진 일본이 도움을 주었다. 일본은 차나무와 종자를 오스만 제국에 지원했는데, 이게 1917년, 리제지방에서 성공적으로 재배됨에 따라 드디어 튀르키예에서 차를 재배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 해체 이후 튀르키예는 커피를 공급하던 중동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고, 공화국 수립 이후 튀르키예 공화국은 커피 대신 신생작물인 차에 집중투자하기 시작했다.

1940년에는 제3788호 차에 대한 법이 시행되어 튀르키예 국내에서의 차 생산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1947년에는 리제에 (Merkez Çay Fabrikası)중앙 차 공장이라는 국영기업을 설립했다. 생산규모는 일일 60톤으로 꽤 큰 규모이며 원래 일본에선 녹차를 만들기 위해 쓰던 리제 품종으로 홍차를 가공하기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튀르키예 국내에서 차의 수요는 커피를 완전히 대체하게 되었고,[15] 튀르키예에서 차가 커피를 밀어낸 시기가 이때쯤의 일이다. 현재도 튀르키예는 차를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차회사인 차이쿠르 - 차산업부(Çaykur: Çay İşletmeleri Genel Müdürlüğü)는 1983년 세워진 국영기업이다. [16]

참고로 러시아어로도 차를 чай(차이)라고 한다. 외래어로 중국 내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전래된 모양. <오! 이런 이란>이라는 책자를 보면, 이란에서도 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기도 튀르키예 못지않게 엄청 마신다고. 차이와 같이 엄청 단 디저트 과자케이크, 들을 곁들어 먹길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차를 우리는 방식도 사모바르를 쓸 경우 튀르키예나 아제르바이잔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진한 홍차 액기스를 우려놨다가 끓는 물과 섞어서 마신다.

덧붙이자면, 사실 튀르키예 전통 홍차라고 알려진 차이의 진짜 기원은 이란이다. 애초에 차이라는 단어를 튀르키예와 러시아로 퍼뜨린 것도 이란이고, 이란에서는 러시아식으로 잼을 곁들이는 문화와 튀르키예식으로 설탕을 곁들이는 문화를 둘 다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이란에서 차를 마시기 시작한 역사는 20세기에야 보편화된 튀르키예나, 17세기 이전에는 차를 마셨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러시아와는 달리 14세기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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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키어 알파벳으로는 C는 'ㅈ', Ç는 'ㅊ'로 발음된다(터키어로 아주 좋다!가 çok iyi /촉 이이/로 발음한다).[2] 차이라떼의 차이를 찾는다면 짜이 참고[3] 이런 특징 때문에 튀르키예의 찻잔은 손잡이는 없는데 차는 아주 뜨거워서 잘록한 허리 부분을 잡으면 손 덴다. 위의 유리 부분을 잡는 것이 보통이나. 찻잔의 모양은 튀르키예에서는 국화인 튤립을 형상화했다고 하고,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서양배의 모양에서 따왔다고 말한다. 이 찻잔의 이름은 터키어로는 ince belli bardak(가는 허리 잔, 인제 벨리 바르닥)이고, 아제르바이잔어로는 Armudu stəkan(서양배 잔, 아르무두 스태캰)이다. 러시아에서도 아제르바이잔어를 따와서 Стаканы Армуду (스따까느이 아르무두)라고 부른다.[4] 이 찻잔은 허리가 가늘기 때문에 잔에 담긴 차가 잔 아랫부분에서는 천천히 식고, 입이 닿는 윗부분에서는 빨리 식기 때문에 일반적인 유리잔보다 더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우유를 섞어서 미지근하게 마시는 영국과 달리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러시아쪽은 차를 가능하면 뜨겁게 마시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잔이 고안되었다.[5] 한국에서는 아무리 싸게 사도 2배 이상이다. 홈플러스의 TESCO 홍차가 250g에 5,000~6,000원씩 하니까.[6] 물론 그 식당에서 차를 끓일 경우에만이다. 길거리 조그만 케밥집에서 밥먹고 차를 서비스로 줄거라곤 기대하지 말자.[7] 차이단륵은 튀르키예에서 가스스토브와 석유곤로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1930년대에 발명된 비교적 최근의 것이다. 현재도 튀르키예에서 활동중인 Öztiryakiler(외즈티리야킬레르)라는 주방용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처음 만들었다. 단순히 가스레인지에 올려놓든가, 아니면 튀르키예에서 현대에도 일상적인 난로 위에다가 올려놓으면 알아서 끓기 때문에 별도의 땔감이 필요한 사모바르보다 더 편리해서 곧 튀르키예에서 일상화되었다.[8] 차이단륵 대신 일반 티포트로 우리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이 경우에는 중국식으로 차를 우선 한 번 뜨거운 물을 적셔서 세차하고, 물을 바로 버린 다음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3분정도 우려낸다. 중국식 다기와 달리 튀르키예식 다기는 꽤 크기 때문에 차를 우리는데 중국식보다 오래걸린다.[9] 튀르키예사람들이 홍차에 곁들이로 로쿰까지 먹는다는걸 생각해보면...티타임에 하루 권장치 설탕을 거의 다 때려박는 셈.[10] 동네에 따라 집에 초대를 받아서 손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차를 세 잔 내 놓는 동네도 있다. 이 차 세 잔을 모두 마시지 않으면 결례가 된다.[11] 이 중 윌케르, 할크같은 기업의 경우 튀르키예 본토에서 제과업으로 유명한 편이다. 특히 윌케르는 튀르키예 굴지의 과자 제조사중 하나이며 이 회사의 모기업이 고다이버 초콜렛 생산회사를 인수하기도 했다.[12] 이것은 원래 중국에서 비롯된 풍습이다. '현호고충' 이라고 해서,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차를 우릴때, 차엽이 담긴 주전자나 개완에 뜨거운 물을 최대한 높은 위치에서 따르는걸 선호하는데, 이렇게 해야 뜨거운 물이 가느다랗게 내려오면서 시각적으로도 멋지고, 물이 차를 우리기에 적절한 온도로 식는데다 차엽에 최대한 많이 물이 닿기 때문에 차가 빨리 우러난다.[13]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다[14] 그녀는 중국, 일본, 대만, 몽골, 우즈베키스탄, 영국, 미국, 케냐,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이란... 전세계 여러 차 유명지. 차를 많이 마시는 나라를 싸그리 가서 취재했는데, 그녀도 튀르키예가 정말 많이 마신다고 할 정도였다.[15] 여기서 왜 차이에 대량의 설탕이 들어가는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다. 오스만 제국때까지만 해도 차는 영국식으로 밀크티를 마셔왔지만, 공화국 시기 들어 튀르키예 커피의 대체재로서 차가 도입되었고, 과거에 쓴 튀르키예 커피를 마시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설탕을 넣게 된 것이다. 다기 또한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영국의 영향을 받아 은이나 도자기가 주류였지만 공화국 시기에 들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리잔와 동주전자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튀르키예식 동제 티포트를 보면 생김새가 완전히 튀르키예 커피 끓이는 이브릭과 유사한데 실제로 여기서 발전한 양식이다.[16] 다만 튀르키예인 노인들에 따르면 1950-60년대에도 차는 비쌌고 귀했다고 한다. 귀한 손님이 찾아오거나 어르신들 대접할때나 마실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