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가문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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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가문 Bush family | |
2005년 1월에 촬영한 부시 가문의 사진.[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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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정치인 가문이자 기업 가문.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4세대에 걸쳐 대통령 2명, 부통령 1명, 주지사 2명, 상원의원 1명, 기타 다수의 저명한 은행가와 기업인을 배출한 명문가다. 2018년 BBC는 부시 가문을 '부시 왕조'라고 평하기도 했다. #
2. 역사
부시 가문은 17세기에 잉글랜드에서 오하이오주 콜럼버스로 이주한 이민자들의 후손이다. # 전형적인 WASP 상류층 가문으로서, 부시 가문의 조상은 주로 잉글랜드계 미국인과 독일계 미국인이 많지만 스웨덴계 미국인도 있다고 한다. # 조지 W. 부시의 증조모 루크레티아 웨어 워커는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끔찍한 대우를 경험했던 프랑스 위그노의 후손들과 관련이 있다.부시 가문의 실질적인 창시자는 새뮤얼 프레스콧 부시(Samuel Prescott Bush)이다. 새뮤얼은 막대한 부를 축적해 가문의 기반을 닦았다. 오하이오 제조 협회의 초대 회장이었으며,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철근 커플러 생산업체인 버크아이 스틸 캐스팅스 컴퍼니(Buckeye Steel Castings Co.)의 사장이었다. 또한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의 이사회에서 일했고 미국 상공회의소 설립을 도왔다. 새뮤얼은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전쟁 산업 위원회에서 병기, 소형 화기 및 탄약 부문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는 군수품 회사에 대한 정부 지원 및 관계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맡았다. 또한 새뮤얼은 록펠러 가문의 일원인 프랭크 록펠러(Frank Rockefeller)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재산을 축적했다.
새뮤얼 프레스콧 부시(왼쪽)와 프레스콧 부시 |
새뮤얼 프레스콧 부시의 아들 프레스콧 부시(Prescott Bush)는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키가 크고 운동 능력이 뛰어난 젊은이'로 상류사회에 알려졌다. 프레스콧은 1917년에 미군에 입대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프레스콧은 세인트루이스에서 철물을 팔았으며, 이곳에서 도러시 워커(Dorothy Walker)라는 여성과 결혼해 워커-부시(Walker Bush) 혈통의 시작을 알렸다. 도러시 워커의 아버지 조지 허버트 워커(George Herbert Walker)는 투자 은행 GH 워커 앤 컴퍼니(G. H. Walker & Co.)를 설립했으며, W.A. 해리스먼 & 컴퍼니(W.A. Harriman & Co.)[2]의 사장직을 역임한 부유한 금융인이었다.
프레스콧 부시는 W.A. 해리스먼 & 컴퍼니에서 부사장직을 역임했으며, 장인이 설립한 투자 은행인 유니언 뱅킹 코퍼레이션(Union Banking Corporation)에서 이사직을 역임해 부시 가문의 재산을 불렸다. 이 투자 은행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 세계로 금, 석유, 철강 및 석탄의 이동을 용이하게 했다. 이로 인해 유니언 뱅킹 코퍼레이션은 2차 대전의 막대한 수혜를 입은 은행이 됐다. 또한 2차 대전 당시, 이 투자 은행이 나치 독일 부역자를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부시의 자산이 동결되기도 했다. 하지만 후속 정부 조사에서 이러한 의혹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됐으며, 부시 역시 이 문제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프레스콧은 1952년부터 1963년까지 공화당 소속의 코네티컷 연방 상원의원으로 두 번의 임기를 지냈다.
프레스콧-도러시 부부는 다섯 명의 아이들을 가졌는데, 후일 이 아이들 중 한 명이 부시 가문의 정치적 위상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이 아이가 바로 프레스콧의 차남 조지 H. W. 부시다.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조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세 생일에 미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조지는 고등학교 때의 애인이자 잡지 임원의 딸이었던 바바라 피어스와 결혼했다. 그리고 예일 대학교에 입학하여 야구팀의 주장을 맡았으며, 스컬 앤 본즈(Skull and Bones)에 가입했다. 이후 조지 H. W. 부시는 석유 회사를 창업하기 위해 가족을 텍사스로 이주시켰으며, 아버지 프레스콧이 이사회 이사직을 역임했던 텍사스 석유 기구 회사에 들어가 일자리를 얻었다. 아버지 프레스콧의 연줄과 재산은 아들 조지가 석유 산업에서 성공하는 것을 도왔다.
1953년 조지 H. W. 부시는 텍사스에서 석유 회사인 자파타 석유(Zapata Petroleum)를 설립하기 위해 사업을 확장했으며, 1954년에는 자파타 석유의 회장이 됐다.[3] 석유 사업으로 승승장구한 조지는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으며, 1962년에 지역 공화당 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었다.[4] 그로부터 5년 후인 1967년, 미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하원 의원이 됐고, 1971년에는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UN 미국 대사에 임명했으며, 이후에도 공화당 전국 위원회 의장, 중화인민공화국 연락사무소장, CIA 국장, 로널드 레이건 정권의 미국 부통령을 역임하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조지 H. W. 부시는 부통령 재임 당시인 1988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며, 민주당 후보 마이클 두카키스를 꺾고 마침내 미합중국 제4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조지 H. W. 부시와 조지 W. 부시 |
조지 H. W. 부시의 장남 조지 W. 부시는 아버지와 비슷한 커리어를 쌓았다.[5] 조지 W. 부시는 1968년에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군대에 입대해 텍사스 주 방위군에서 전투기를 조종했다.[6] 그리고 1975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석유 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1970년대 후반에 조지 W. 부시가 첫 번째로 설립한 벤처기업은 아르부스토 에너지(Arbusto Energy)라는 석유 회사였다.[7] 하지만 아르부스토 에너지는 사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공공 석유 시추 파트너십을 제공하기로 결정했지만 청약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했지만 수익을 얻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결국 아르부스토 에너지는 재정난에 빠져 1986년 하켄 에너지(Harken Energy)에 인수되었고, 조지 W. 부시는 하켄 에너지 이사회에 합류했다.
1989년 조지 W. 부시는 하켄 에너지의 주식을 팔아 텍사스 레인저스를 매입해 야구 구단주가 됐다. 5년 후인 1994년, 조지 W. 부시는 마침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부시는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앤 리처즈를 꺾고 제58대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됐다. 1998년에는 연임에도 성공했으며, 두 번째 임기 동안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부시는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민주당 후보 앨 고어를 꺾고 미합중국 제4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로 인해 부시 가문은 두 명의 미국 대통령을 배출한 네 가문 중 하나가 됐다.[8] 또한 조지 H. W. 부시와 조지 W. 부시는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 이후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두 번째 부자(父子)가 되었다. 또 조지 W. 부시는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승리하여 아버지와 달리 연임에도 성공했다.
조지 H. W. 부시의 차남이자 조지 W. 부시의 동생 젭 부시는 플로리다 주지사를 역임했을 정도로 성공한 정치인이지만, 2016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굴욕적으로 낙마해 영향력이나 인기가 많이 떨어졌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부시 가문의 영향력이 많이 축소된 상태다. 트럼프에게 당 내 기득권을 완전히 빼앗겼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부시 가문이 차세대 정치인으로 밀고있는 인물은 젭 부시의 아들 조지 P. 부시이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텍사스 주 일반토지국장을 역임했다. 2022년 6월 조지 P. 부시는 텍사스 법무장관에 출마했지만, 예비 선거에서 32%의 득표율을 얻어 패배했다. 텍사스 트리뷴은 조지 P. 부시의 낙마가 "4대에 걸친 부시 가문의 정치 왕조의 종말을 나타낼 수 있다"라고 평했다. #
3. 가계도
- 새뮤얼 프레스콧 부시 (1863~1948) - 플로라 셸던 부시 (1870~1920)
- 1남 프레스콧 셸던 부시 (1895~1972) 코네티컷주 상원의원 - 도로시 웨어 워커 카우프만 부시 (1901~1992)
- 1남 프레스콧 셸던 '프레시' 부시 주니어 (1922~2010) 미·중 상공회의소 회장 - 엘리자베스 '베스' 부시 (1922~2014)
- 1남 프레스콧 셸던 부시 3세 (1945~2009) - 프란체스카 에머슨 파 부시
- 1녀 켈시 부시 나두 - 필립 제럴드 나두
- 2남 제임스 로렌스 '제이미' 부시 - 윌리엄 '드레이크' 리치 부시
- 2남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1924~2018) 미국 대통령 - 바버라 피어스 부시 (1925~2018) 미국 대통령 배우자
- 1남 조지 워커 부시 (1946~) 미국 대통령 - 로라 랜 웰치 부시 (1946~) 미국 대통령 배우자
- 1녀 바바라 피어스 부시 코인 (1981~) 세계 보건 단체 의장 - 크레이크 루이스 코인
- 1녀
- 2녀 제나 웰치 부시 헤이거[9] (1981~) - 헨리 체이스 헤이거[10]
- 1녀
- 2녀
- 1남
- 1녀 폴린 로빈슨 "로빈" 부시[11] (1949~1953)
- 2남 존 엘리스 "젭" 부시 (1953~) 플로리다 주 주지사 - 콜럼바 가니카 갤로 부시 (1953~)
- 1남 조지 프레스콧 부시 (1976~) 텍사스 주 일반토지국장 - 아만다 윌리엄스 부시
- 1남
- 2남
- 1녀 노엘 루실라 부시 (1977~)
- 2남 존 엘리스 "제비" 부시 주니어 (1983~) - 산드라 메리 앨구다디 부시
- 1녀
- 2녀
- 3남 닐 말론 부시[12] (1955~) - 샤론 머레이 부시[13]
- 1녀 로렌 부시[14] (1984~) - 데이비드 로런[15] (1971~)
- 1남
- 2남
- 3남
- 1남 피어스 말론 부시 (1986~) - 사라베스 멜튼 부시
- 1녀
- 2녀 애슐리 워커 부시 (1989~) - 줄리안 르페브르
- 4남 마빈 피어스 부시[16] (1956~) - 마가렛 콘웨이 부시
- 1녀 마샬 로이드 부시 (1986~) - 닉 로시
- 1남 찰스 워커 부시 (1989~) - 로라 베누아
- 2녀 도로시 워커 부시 코흐[17] (1959~) - 로버트 P. 코흐[18] (1960~)
- 1남 새뮤얼 부시 르블론 (1984~)
- 1녀 낸시 엘리스 '엘리' 르블론 (1986~) - 닉 소사
- 1녀
- 2남 로버트 데이비드 코흐 (1993~) - 캐서린 '키티' 몬테시
- 2녀 조지아 그레이스 '지지' 코흐 (1996~)
- 1녀 낸시 워커 부시 엘리스[19] (1926~2021) - 알렉산더 엘리스 2세 (1922~1989)
- 4남 조너산 제임스 부시[23] (1931~2021) - 조세핀 브래들리 부시
- 5남 윌리엄 헨리 트로터 "버키" 부시[26] (1938~2018) - 페트리샤 부시 (1938~2015)
- 1남 윌리엄 프레스콧 "스콧" 부시 (1964~) - 린제이 부시
- 1녀 루이자 부시 맥콜 (1970~)
4. 여담
-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2023년 기준 부시 가문의 재산은 4억 달러에서 5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
- 부시 가문의 일원들은 대부분 예일 대학교 출신이다. 프레스콧 부시대부터 대대로 예일 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또한 조지 H. W. 부시대까진 대대로 성공회를 믿어왔다. 다만, 조지 W. 부시는 아내를 따라 감리회로 개종했다.
- 트럼프 가문과 사이가 매우 안좋다. # 조지 H. W. 부시와 조지 W. 부시는 도널드 트럼프를 매우 싫어해, 같은 당 출신 대선후보에게 같은 당 출신 전임 대통령이 지지 연설을 해주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지지 연설을 해주지 않았다. 또한 트럼프 임기 내내 그의 정치 스타일에 회의를 갖고 거리를 둬온 것으로 알려졌다.
- 텍사스 미들랜드에 있는 부시 가문의 집은 미국 국립 사적지에 등록됐다. #
- 대한민국 재계와 인연이 깊은 가문이기도 하다. 부시 가문과 한국 재계 2023년 부시 가문의 일원인 조지 P. 부시가 한화오션의 사외이사로 합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5. 관련 문서
6. 외부 링크
[1]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가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한 직후로, 그야말로 부시 가문의 전성기이자, 위상과 영향력이 최정점이던 시절이다.[2]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민간 투자 은행 중 하나다.[3] 이 회사는 10년 후에 합병되어 펜조일이라는 거대 기업이 되었다. 펜조일은 1999년에 3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대기업이 됐다.[4] 이 해에 아버지 프레스콧이 상원 의원직에서 은퇴했다.[5]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답습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미국의 명문 사립 학교인 매사추세츠 주 필립스 앤도버 아카데미를 거쳐 예일 대학교를 졸업한 것도 같으며, 석유회사를 운영한 것도 같다. 또 둘 다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했다.[6] 이 군 복무는 상당한 논란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조지 W. 부시/생애 참고.[7] 당시 조지 W. 부시는 아버지가 25년 전에 사용했던 사무실을 이용했다.[8] 애덤스 가문, 루스벨트 가문, 해리슨 가문도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9] 미국의 뉴스 진행자. NBC 소속이다.[10] 제37대 버지니아 주지사 존 H. 헤이거의 아들이다.[11] 어린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12] 투자가로 활동하고 있다.[13] 2003년 이 부부는 이혼했다.[14] 모델로 활동했으며, 피드 프로젝트라는 패션 회사를 설립했다.[15] 랄프 로렌 코퍼레이션의 설립자 랠프 로런의 아들이다.[16] 벤처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두 아이들 모두 입양했다.[17] 대기업 이사이다. 1990년 윌리엄 르블론과 이혼했으며 코흐와 재혼했다.[18] 폴란드에서 보드카를 제조하는 중유럽 유통공사의 지분을 가진 와인 연구소의 회장이다.[19] 환경 운동가이자 정치 운동가로 활동했다. 민주당 소속이었다.[20] 대체 에너지 회사의 임원이었으며 현재는 벤처 캐피털 회사에 활동하고 있다.[21] 언론인. 폭스 뉴스에서 활동했다.[22] 스포츠 경영인. 덴버 브롱코스의 사장이자 CEO였다.[23] 은행가로 활동했다.[24] 의료 기술 기업 아테나헬스의 설립자다. 사라 셀던과 이혼한 후, 페이 부시와 재혼했다.[25] 유명 라디오 및 텔레비전 진행자. 이 부부는 2018년 이혼했다.[26] 은행가이자 사업가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