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6:31:29

신윤희

'''육군본부 헌병참모부장
{{{+1'''
파일:신윤희.jpg
출생 1941년 (83세)[1]
일제강점기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65년 ~ 1992년
임관 육군사관학교 (21기)
최종 계급 소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대한민국 육군본부 헌병참모부장
주요 보직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 부단장
대한민국 육군본부 헌병감

1. 개요2. 생애3. 처음부터 반란군이었나?4. 반란 이후5. 대중매체에서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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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군인. 12.12 군사반란 가담자이다.

2. 생애

1941년 경성부에서 태어나 1965년 육군사관학교 21기로 임관하였다. 학력은 육군기갑학교 졸업, 육군보병학교 졸업, 육군포병학교 졸업, 육군대학 졸업

1979년 12.12 군사반란 때 육군 수도경비사령부 헌병단 부단장이었다.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체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새벽 3시경 헌병단 소속 무장 헌병 60명을 앞세워 수도경비사령부 외곽과 1, 2층을 포위한 뒤 사령관실로 진입해서 장태완 사령관을 체포했다.

3. 처음부터 반란군이었나?

처음부터 반란군은 아니었다. 하나회 멤버도 아니었으며,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하나회들을 체포하려한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명령대로 지키려 그의 명령을 지켰다고 한다.

장세동의 수경사 30경비단장이 명령대로 장태완을 체포하려고 다수의 병력을 출동시키자, 야포단장 구명회 대령도 노재현 국방장관의 명령으로 활동도 중지 된 상태였다.
수경사 측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의 체포 명령으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즉 자신의 사령관을 직접 체포했다.

4. 반란 이후

반란 후 14일, 단체사진에도 출연하였다. 윗줄 왼쪽 순으로 3번째에 위치하며 당당하게 사진에 등장하였다.

육군 소장 예편 후, 신윤희는 1995년 7월에서 같은 해 1995년 9월까지 두 달 간 자유민주연합 특임행정위원을 잠시 역임하였으며 이듬해 1996년 1월에 12.12 및 5.18 사건 관련 재평가 심판 기소 처분 조치에 의하여 구속 기소되었고,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열린 12·12 사태 및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 모의 참여 주요 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사면되었다.

현재도 잘 살아있으며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진술을 직접했다. 아직도 신윤희는 군사반란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듯 하다.

5. 대중매체에서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차래형이 연기했다. 모티브로 등장하여 이름은 '허동윤' 중령.

6. 둘러보기

12.12 군사반란 반란군 가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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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군부 단체사진 고화질(컬러).jpg
1979년 12월 14일 12·12 군사반란 성공 기념사진
국군보안사령부 청사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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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인물 배치 순서상 표기
※ 단 우국일 준장은 군사반란 가담자로서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국군보안사령부 참모장 자격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다.[A]
{{{#!folding [ 각주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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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비 하나회였던 우국일 준장이 12.12 군사반란 당시 한 일은 연희동 요정에서 접대업무를 맡았을 뿐 접대를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그는 결백한 인물이었다.



[1] 본관은 평산 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