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07 08:07:33

영남대로

1. 조선 시대의 주요 간선도로 중 하나
1.1. 당시의 쓰임1.2. 현재 상황1.3. 재발굴
2. 경상북도 김천시의 도로

1. 조선 시대의 주요 간선도로 중 하나

↖의주로
(관서대로·연행로)
경흥로↗
(관북대로·동북로)
←강화로
(강화대로)
평해로→
(관동대로)
↙수원로
봉화로↘
↙충청수영로
↓제주로
(삼남대로)
통영로
동래로↘
(영남대로)


파일:external/db.kookje.co.kr/L20120104.22007202503i1.jpg
위 이미지는 좌로와 우로가 거꾸로 나와 있다. 한양에서 봤을 때 우측인 추풍령 경유가 우로, 왼쪽인 죽령 경유가 좌로이다.

한양동래를 잇는 가장 짧은 길이며 동래(오늘날의 부산광역시)로 가는 길이라 하여 '동래로(東萊路)'라고도 하였다. 10대 대로 중 하나이다. 신경준도로고』에 따른 명칭은 경성동남저동래로제사(京城東南抵東萊路第四).[A]

한성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시작하여 숭례문(남대문)과 이태원동 일대를 지나 한강진(현 한남대교 일대)에서 한강을 건넌 후, (조선 시대 고을 기준으로) 광주[2]-용인[3]-양지[4]-죽산[5]-음죽[6]-충주-연풍[7]-문경새재(조령관)-문경-함창[8]-상주-선산[9]또는 금릉[10] -대구-청도-밀양을 거쳐 동래에 이르렀다.

1.1. 당시의 쓰임

『여지고(輿地考)』에 따른 총 거리는 960리에 달했고 도보로 보름 정도 걸렸다고 한다. 한강낙동강 줄기를 따라 형성되었으며, 지선은 29개로,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여러 고을로 통했으며, 일제강점기의 서울-부산 간 신작로의 모체가 되었다.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내륙이라서 전략상 중요한 교통로였으며[11] 군대의 이동로로 이용되는 등 정치·군사적 기능도 함께 지녔었다. 영남에서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지나던 등 인물들이 상경하는 통로였었고, 외국 문물이 전파되는 중요한 통로였으며, 세금인 곡식이 이동하던 한강-낙동강을 연결하기도 했다. 험한 산악구간에는 절벽을 따라 잔도가 있는데, 경북 문경의 관갑천잔도(토끼비리), 경남 밀양의 작원잔도, 경남 양산의 황산잔도가 영남대로의 3대 잔도이다.[A]

1.2. 현재 상황

오늘날의 도로로 바꾸면 한남대교-경부고속도로-신갈JC-영동고속도로-양지IC-죽양대로[13]-죽산교차로-서동대로[14]-감곡IC-중부내륙고속도로-김천JC-경부고속도로-동대구JC-중앙고속도로-대저JC-남해고속도로-만덕터널-동래역 경로이다.

사실 간선도로라고 해도 형편 좋은 곳이 오늘날의 오프로드 우마차도로 수준이고 대부분의 길은 수레도 다니기 어려운 오솔길이었다. 지금도 옛 영남대로를 답사하는 지리덕후들이 가끔 있는데 이 분들이 개인 블로그 등에 올려놓은 답사기를 보면 "이게 정녕 대로인가?" 싶은 구간이 꽤 된다. 심지어 밀양-물금 사이는 낙동강을 옆에 끼고 경부선 철도와 같은 선형으로 산기슭을 타고 가는 잔도 비슷한 구간인데, 여기는 21세기 현재도 구불구불한 자동차도로가 뚫려 있으되[15] 사고가 하도 많이 나서 마산MBC[16] 지역뉴스 오피셜 악마의 도로라고 불렸던 곳이다. 이 구간은 조선시대에는 작원관(鵲院關)이라 하여, 문경새재 조령관과 함께 영남대로의 대표 관문이었다.

따라서 밀양~물금 간의 작원관과 대구~청도 간의 팔조령[17]을 각각 우회하는 도로가 근대에 뚫렸는데 지금의 25번 국도의 전신이다.

오늘날에는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추풍령[18]이화령[19]으로 양분되었고 둘 다 많이 이용되고 있다.

경부고속도로의 대체 루트라 할 수 있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중부내륙선(서울-구미)[20]경부선(구미-동래 한정) 철도가 영남대로와 비슷한 루트를 따라가며, 서울과 부산을 잇는 Y782번 항공로도 거의 이 길 바로 위로 날아간다. 이 외에도 사진 속 영남대로 우도가 현재 중앙선철도의 선형과 유사하다.

근대 시기에 경부선 철도를 부설할 때에도 당연히 원래는 이 길을 따라 부설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조령을 넘기 어려워 철길이 추풍령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 경부선에서 호남으로 가는 분기점이 되며[21] 커진 도시가 지금의 대전이다.

만약 철도가 영남대로를 거의 그대로 따라갔다면 과거에 잘 나갔던 상주시, 충주시가 지금도 그 위세를 떨치고 대전은 흔한 지방 소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아울러 호남선 또한 삼남대로와 비슷한 경로를 따라 대전을 거치지 않고 천안과 익산을 바로 잇도록 놓였을 것이다. 이렇게 놓이는 것이 서울과 목포를 최단 거리로 잇기 때문이다. 2001년을 기해 논산천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삼남대로는 고속도로로 대부분 구현이 완료되었다. 남은 구간은 광주-해남을 잇는 광주해남고속도로가 공사중이다.[22] 더불어 중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등의 고속도로도 선형, 명칭 등이 달라졌을 것이다.

1.3. 재발굴

둘레길 중 경기옛길 동래길이 이를 따른다. 문서 참조.

2. 경상북도 김천시의 도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영남대로(김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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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영남대로(김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A] [2] 한강진(오늘날의 한남대교 일대)부터 달래내고개까지는 과천과의 경계선이었다. 옛 광주군과 과천군(1914년 이후 시흥군)의 경계선이 바로 이 길이었다. 이는 현재의 강남대로 선형이자 서초구강남구의 경계선과 거의 같다. 또한 양재역은 과거 영남대로를 왕래하면서 에게 죽을 끓여 먹였다 하여 '말죽거리'라 불렸던 역원(驛院)이었으며, 인근의 '원지동(院趾洞)', '신원동(新院洞)' 등의 지명을 통해서도 이를 알 수 있다.[3] 달래내고개를 지나 광주 판교원과 낙생역(현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 분당신도시 일대)을 거쳐 현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일대를 지났다. 참고로 구성동 일대는 구한말까지 용인의 읍치(邑治, 관아)가 있었던 곳이다.[4] 현 용인시 양지면.[5]안성시 죽산면.[6]이천시 장호원읍[7] 현 충주시 수안보면괴산군 연풍면.[8] 현 상주시 함창읍.[9]구미시 해평면.[10]김천시[11] 북상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 백두대간을 넘는 문경새재에는 3개의 관문을 설치했다.[A] [13] 17번 국도의 구간이다.[14] 38번 국도의 구간이며 본 구간에서 일죽IC를 통과한다.[15] 현재 이 구간은 1022번 지방도로 지정되어 있다.[16]MBC경남 창원본부.[17] 팔조령은 30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대신 터널개량은 25번 국도의 남성현보다 이쪽이 훨씬 먼저 되었다.[18] 경부고속도로경부선 철도, 경부고속선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시내버스 여행 역시 여기에 해당된다.[19] 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터널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자전거 여행오토바이 여행 역시 여기에 해당된다.[20] 아직은 이천~문경 까지만 개통되었고, 수서광주선까지 완전 개통시 수서부터 김천까지 이어지며, 이후 남부내륙선과 직결해 합천, 진주, 거제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다만 부발~판교 구간의 경우 죽산, 용인을 경유하는 영남대로와는 달리 이천, 광주를 경유하는 루트로 이어진다. 수서광주선이 개통되도 부발-광주-성남-수서를 지나므로 차이가 좀 있다.[21] 분기도 원래는 서울 방면이 아니라 부산 방면에서 분기가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만큼 일본 내지와 이어지는 부산 방면이 상행이었기 때문이다.[22] 강진-광주 구간만 예타를 통과했었으나 강진-해남구간도 예타조사를 통과하여 해남까지 모두 고속도로가 이어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