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2-14 03:09:16

신경준



1. 개요2. 생애3. 저서

1. 개요

조선 후기의 문신. 는 순민(舜民). 는 여암(旅菴). 본관은 고령(高靈).

2. 생애

신경준(申景濬)은 1712년(숙종 38년) 4월 15일에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태어났으며, 신숙주의 아우 신말주(申末舟)의 후손이다.

1754년(영조 30) 43세라는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휘능별검과 성균관 전적을 거쳐 병조좌랑이 되었다. 1760년(영조 36)에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이 되고, 2년 후 서산군수(瑞山郡守)로 나갔다가 충청도사(忠淸都事)가 되었다. 1765년(영조 41)에 헌납(獻納)으로 들어오고 1767년(영조 42)에 사간(司諫)이 되었으나 밖에 있는 일이 많다고 유배당했다가 1년 만에 풀려났다.

영조의 명으로 《여지승람(輿地勝覽)》을 감수하고, 1770년(영조 46)에는 문학지사(文學之士) 8인과 함께 《문헌비고》를 편찬할 때 《여지고(輿地考)》를 담당하였으며, 이어서 그 해 6월 6일부터 8월 14일까지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의 감수를 맡았다.

이후 좌승지, 북청부사(北靑府使), 강계부사(江界府使), 제주목사(濟州牧使) 등을 역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냈다.

1781년(정조 5) 5월 21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대표적인 저작으로 《훈민정음 운해(訓民正音韻解)》이 있다.

3. 저서

3.1. 훈민정음 운해

《훈민정음 운해(訓民正音韻解)》는 조선 영조 26년(1750년)에 운도(韻圖)를 작성해서 한자로 음운(音韻)을 나타낸 책이다. 송나라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성음창화도(皇極經世聲音唱和圖)》를 본보기로 하여 일종의 운도(韻圖)를 작성해서 한자음을 나타낸 것이다.

권두에 ‘황극경세성음창화도’를 본보기로 하여 만든 ‘경세성음수도(經世聲音數圖)’를 싣고, 둘째번의 ‘훈민정음도해(訓民正音圖解)’ 부분에서 한글을 초성 · 중성 · 종성으로 나누어서, 역(易)의 상형설을 가지고 설명하되 권두의 ‘경세성음수도’에 배열된 한자음에 부합시키려고 하였다.

그래서 ‘초성도(初聲圖)’에서는 중앙의 기본문자인 ‘ㅇ’으로부터 한글의 여러 초성 글자가 생성되어가는 과정을 원(圓)으로 표시하였고, ‘초성배경세수도(初聲配經世數圖)’에서는 ‘경세성음수도’의 12도(圖)에 배열되어 있는 한자음을 완전히 표기할 수 있도록 한글의 초성 글자를 36으로 확대시켜서 제자하였다.

‘중성도(中聲圖)’에서도, 중앙의 태극으로부터 여러 중성 글자들이 생성되어가는 과정을 표로 보였고, ‘중성배경세수도’에서는 ‘경세성음수도’의 10도에 배열된 한자음의 모음 글자를 배열하였다.

‘종성도’에서는 ㅁ ㄴ ㆁ 등 3종성과, ‘오 · 우’ 등 모음으로 끝나는 운미(韻尾)를 7종으로 잡아서 이를 표로 만들었다. 끝으로, 앞에서 설명한 바를 근거로 하여 《사성통해(四聲通解)》의 음계(音系)와 비슷한 한자음을 표시하는 운도를 벌여놓았다.

이러한 서술과정에서, ① 우리나라에는 고대문자가 있었으며, ②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이며, ③ 관서 · 영남 지역에서는 설음(舌音)을 많이 쓰고, 호남 · 호서 지역에서는 치음(齒音)을 많이 쓰며, ④ ‘ᅟᆢ’ 모음자를 설정하였고, ⑤ 우리나라 한자음에서 당시까지 ‘ · ’ 중성이 많이 쓰이며, ㅎ ㅇ ㄱ ㄷ ㅌ ㄴ ㅈ ㅊ ㅅ ㅂ ㅍ ㅁ ㄹ 등 13초성만 쓴다고 하였다.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가장 심도 깊게 문자론과 음운론을 전개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훈민정음 운해"이나 발음의 오행을 논함에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에 후음(목구멍소리)을 수(水)로 하고, 순음(입술소리)을 토(土)로 창제한 것을 여암 신경준의 훈민정음 운해에서는 후음(목구멍소리)을 토(土)로 보고, 순음(입술소리)을 수(水)로 반대로 기술하였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은 송나라 황공소(黃公紹)의 《고금운회(古今韻會)》[1]와 우리나라 풍토를 중시하여 오음을 정하였으며, 신경준의 훈민정음 운해는 소옹의 황극경세성음창화도를 그대로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한글의 오행이 수토가 서로 뒤바뀌어 쓰이고 있는 것이다.

1938년에는 당시의 조선어학회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한 일이 있는데 현재 필사본 한 권으로 남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 '황극경세성음창화도'와 달리 순음을 토(土)로 보고, 후음을 수(水)로 기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