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정권교체는 전임 국가수반의 임기가 종료되고 후임 국가수반이 취임하면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뜻한다. 다만 제6공화국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흔히 집권당이 교체되는 정권교체만을 "정권교체"라 일컫는다.특정 세력이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기 어려운 편향된 환경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른다.
4.19 혁명과 같은 민중혁명에 의한 정권교체와 5.16 군사정변과 같은 쿠데타에 의한 정권교체 같이 반헌법적인 정권교체도 있다.
반대로 집권당이 교체되지 않고 정권을 연장하는 것은 '정권 재창출'이라고 한다.
2. 역사
전근대의 정치 제도들은 정권교체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했다. 군주정 역시 그러한 체제 중 하나로, 왕은 대체로 세습되며[1] 왕의 혈통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는 정권을 잡기가 매우 어려웠다. 휘하 권력 집단도 과거 제도와 같은 몇몇 예를 제외하면 대개 귀족으로 대표되는 혈연적 계급(신분제)끼리의 권력 투쟁으로,[2] 권력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이들의 접근이 매우 어려웠다. 때문에 권력을 차지하려면 혁명 등의 체제 전복을 꾀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은 비교적 평화롭고 단기간에 끝날 때도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장기간의 유혈사태를 동반하였다. 문제는 한 집단의 통치가 길어질수록 이에 대한 불만이 결코 전무할 수는 없기 때문에,[3] 정권교체가 어려운 체제는 쌓여가는 불만을 체제 내의 방식으로 해소하지 못하고 언젠가 체제 붕괴로 폭발할 수밖에 없는 잠재적 위험을 지니고 있었다.[4]한편 근대에 대대적으로 보급된 민주주의는 의회, 국민투표 등 국민의 의견 수렴이라는 수단으로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정치사적인 의의가 있다. 즉, 정적들의 피로 권력을 쟁취했던 시기와 달리 국민들의 투표를 통한 평화적인 방식으로 정권이 교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선진적인 정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오늘날에는 군주정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조차도 실질적인 정치 권력은 민주적 질서에 의한 정권교체가 가능한 총리가 지니는 영국식 입헌군주제의 형태가[5] 일반적이게 되었다. 이렇게 체제 내 정권교체가 가능해짐에 따라 혁명의 필수불가결성은 다소 낮아졌으며 국민들의 체제에 대한 충성도도 이전에 비해 크게 증진되었다(성즉군왕 패즉역적 참조).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기존 권력층은 잦은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차단하길 원하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갓 도입된 국가들에서는 왕이나 군대를 통해 독재 체제를 구성하려는 반동적 움직임이 자주 나타났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의 왕당파 반동이 전자의 예이며,[6] 후자는 한국의 5.16 군사정변, 12.12 군사반란을 들 수 있다.
다만 민주주의 제도가 갖추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민주적 질서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 민주적 정권교체를 원치 않는 세력들이 존재하며, 민주주의가 전세계적 대세라고 하니 형식만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7] 민주주의 제도가 그저 형식에 그치지 않고 잘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정세가 안정되어 있고, 표면적으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체적 집권세력이 바뀌는 '수평적 정권교체'가 주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작동에 뭔가 문제가 있는 상황일 가능성이 있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민주주의의 공고화(consolidation)에 대해 "두 번의 정권 교체 테스트"(two turnover test)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민주주의적 정부가 두 번 정권교체 될 때 그 민주주의가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과 같이 정권교체의 빈도가 상당히 드무면서도 민주적인 예외가 있기는 하나[8]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 미국, 영국 등 영미권은 일찌감치 이러한 기준을 통과하였고, 20세기 후반 민주화가 이행된 대한민국이나 대만, 스페인, 칠레 같은 일부 중남미 국가 역시 통과하였다는 점에서 헌팅턴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정치 선진국은 사실상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시점은 이명박의 당선에 따른 대통합민주신당에서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이다. 또한 한국은 2017년, 문재인 후보의 당선 및 2022년, 윤석열 후보의 당선으로 수평적, 평화적 정권교체를 네 번 까지 함으로서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편에 속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3. 유형
3.1. 동일 왕조 내의 정권교체
- 쿠데타가 발생하여 국왕이 폐위된 후 다른 왕족(주로 왕자)으로의 승계하는 정권교체. 대표적으로 조선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서 김종서 세력을 없애고 단종을 대신해 섭정을 하다가 세조로 즉위하고 관학파가 훈구파로 바뀌어서 집권하는 경우, 조선 연산군이 중종반정 세력의 의해 폐위되어 조선 중종이 즉위하는 경우, 조선 광해군이 서인세력에 의해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하여 서인 세력이 집권하며 대북세력이 멸망하는 경우가 있다.
- 예송논쟁이나 환국이나 옥사로 집권당파가 바뀌는 경우 대표적으로 현종 때 갑인예송으로 남인 집권 → 서인 실각하나 야당으로 영향력 행사함 → 숙종 때 경신환국으로 서인 재집권, 남인 실각 → 기사환국으로 남인 재집권, 서인 재실각 → 갑술환국으로 서인 재집권, 남인 몰락 → 신사의 옥으로 노론 반쯤 집권, 소론 반쯤 실각 → 이잠의 옥사와 임부의 옥사로 노론 영향력 확대, 소론 영향력 축소 → 병신처분으로 노론 완전 집권 성공, 소론 완전 실각 → 경종 때 신임환국으로 소론 재집권, 노론 실각 → 영조 때 을사처분으로 노론 재집권, 소론 재실각 → 정미환국으로 소론 재집권, 노론 재실각 → 기유처분으로 노소론 공동 집권 → 경신처분으로 노론 반쯤 집권, 소론 반쯤 실각 → 신유대훈으로 노론 영향력 확대, 소론 영향력 축소 → 나주 괘서 사건으로 노론 단독 집권, 소론과 남인 몰락을 들 수 있다.
3.2. 왕조교체
같은 문화권 내에서 어느 세습왕조가 쿠데타에 의하여 멸망 후 다른 세습왕조가 들어서는 정권교체. 대표적으로 태봉이 멸망하여 궁예가 폐위된 후 고려가 건국되어 고려 태조가 즉위한 경우와 고려가 멸망하여 고려 공양왕이 폐위된 후 조선이 건국되어 조선 태조가 즉위한 경우가 있다.이렇게 왕족의 가문 즉 혈통(성)이 바뀐것을 '역성혁명'이라고 한다.
3.3. 민주주의 국가
대선 혹은 총선에서 집권 정당이 패배 이후 당선된 정당의 후보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정권교체.한국의 경우 4.19 혁명 이후 실시된 제5대 총선 결과, 상하원 모두 민주당(1955년)이 다수석을 차지해 자유당에서 민주당(1955년)으로 정권이 교체되어 장면 내각이 집권한 사례가 최초이고, 87년 민주화로 인한 87년 체제 이후에는 제15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후보 이회창이 낙선하고 새정치국민회의의 후보 김대중이 당선되어 취임한 사례가 최초이다.
정당의 이합집산 등의 이유로 전임 대통령 시기와 비교하여 당선자와 정당이 모두 달라졌다 하더라도 실체적인 집권세력이 그대로라면 정권교체로 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9]
실체적인 집권세력이 바뀌었을 경우 혁명과 구분하여 수평적 정권교체라고 한다.
3.3.1. 당내 세력 교체
당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2022년 기준 4번의 정권교체[10], 같은 정당에서 주류 계파와 거리를 두거나 아예 대립각을 세우던 다른 계파 출신 다른 인물이 정권을 잡는 것도[11] 정권교체로 여기는 여론도 상당하다.[12] 때문에 여당을 그대로 투표한다고 해서 변화를 바라지 않다고만은 해석할 수 없다. 정권교체까지는 아니더라도 계파교체는 이루어진 셈이다.예를 들어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친이와 친박의 관계에서(17대 대선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서로의 비리를 가지고 팩트폭행을 벌이고[13] 공천 학살을 한 차례씩 주고받기도 했다.) 지지율이 떨어지던 이명박과 친이를 손절하고 여당 안의 야당 포지션을 잡은 박근혜와 친박의 집권을 보수정당 재집권이 아닌 정권교체로 여긴 이들도 많았기 때문에, 정권교체를 주장한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문재인과 친노를 이길 수 있었다. 실제로 박근혜 측에서도 본인이 당선되어도 정권교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이명박근혜' 문서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때문에 정권교체 여론이 높다 해도 당이 바뀌는 정권교체로 이어지리라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양당 체제 하에서 콘크리트 지지층이 고착화 되고, 여론에 잘 잡히지 않는 샤이 지지층도 있거니와 양당 후보 다 싫어서 사표론 무시하고 기권이나 제3당 후보나 군소 후보, 또는 아예 무효표로 소신 투표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20대 대선 시즌만 봐도 국민의힘으로의 정권교체 여론이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정권재창출 여론보다 못해도 10%p, 많으면 20%p 이상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은 이재명과 고작 0.73%p에 불과한 표차로 정권교체를 하게된다. 정권교체론이 늘 과반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후보 득표율(48.56%)은 과반을 달성하지 못했으며[14], 이재명 후보는 대선날까지 여조에 집계된 어떤 정권재창출 여론보다도 훨씬 높은 득표율(47.83%)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심지어 18대 대선 때는 민주통합당으로의 정권교체 여론이 새누리당으로의 정권재창출 여론보다 컸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후보가 패배했다.
실질적으로 당이 바뀌는 정권교체는 해당 대통령의 임기 말 최저 지지율이 한자릿수대를 찍을 정도의 극심한 레임덕을 앓아야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역대 정권교체당한 대통령들의 최저 지지율은 김영삼의 6%, 노무현의 12%, 박근혜의 4% 등 심각하게 낮았으며, 문재인은 예외적으로 임기 말까지 40%대 초반 선까지 사수했음에도 정권교체당했다. 반대로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대통령들은 김대중 24%, 이명박 23% 등 처참한 수준의 레임덕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노태우는 12%였지만 이후 김영삼으로의 정권재창출은 군사정부를 완전히 끝내는 정권 교체로 볼 여지가 있다.
3.4. 독재 국가
이 경우에는 독재자가 갑자기 사망하거나, 혁명, 쿠데타로 교체되는 경우가 많다. 나세르의 사망으로 사다트가 집권했던 이집트가 대표적이다.한국에서는 10.26 사건으로 박정희의 사망 이후 12.12 사건으로 쿠데타를 시도해 집권한 전두환의 경우가 있다.
4. 사례
4.1. 아시아
4.1.1. 대한민국
대한민국 정부수립 시점인 대한민국 제1공화국부터 계산한다.<colbgcolor=#f5f5f5,#2d2f34> 제5대 국회의원 선거[15] | 이승만 [[자유당(1951년)|]] | → | 장면 |
5.16 군사정변 (쿠데타) | 장면 | → | 박정희 |
<colbgcolor=#f5f5f5,#2d2f34> 12.12 군사반란 5.17 군사내란 (쿠데타) | 최규하 [16] | → | 전두환 |
<colbgcolor=#f5f5f5,#2d2f34> 제15대 대통령 선거 | 김영삼 [실질적][18] | → | 김대중 |
제17대 대통령 선거 | 노무현 [[대통합민주신당|]][실질적][20] | → | 이명박 |
제19대 대통령 선거 | 박근혜 [[자유한국당|]] | → | 문재인 |
제20대 대통령 선거 | 문재인 | → | 윤석열 |
4.1.2. 대만
중화민국의 경우는 과거에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이렇게 양당체제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무찌르고 승리한 중국이 나중에 사상 문제로 인한 국공내전을 벌였고 거기서 승리한 공산당이 국민당을 타이완 섬으로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차지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양당 체제를 강력히 거부하고 오직 일당 체제만을 고집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정권교체가 없다. 하지만 대만은 양당 체제로 인한 정권교체가 빈번하다.[21]<colbgcolor=#f5f5f5,#2d2f34> 제10대 정부총통 선거 | 리덩후이 | → | 천수이볜 |
제12대 정부총통 선거 | 천수이볜 | → | 마잉주 |
제14대 정부총통 선거 | 마잉주 | → | 차이잉원 |
4.1.3. 일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서술 1947년 중의원 총선거 | 요시다 시게루 | → | 가타야마 데쓰 [22] |
1948년 제48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23] | 아시다 히토시 [24] | → |
[25] ||
1954년 제52대 일본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 [26] | 요시다 시게루 | → | 파일:Hatoyama_Ichirō.jpg 하토야마 이치로 |
<colbgcolor=#f5f5f5,#2d2f34> 1993년 중의원 총선거 | 미야자와 기이치 | → | 호소카와 모리히로 [27] |
1994년 내각 불신임 | 하타 쓰토무 [28] | → | 무라야마 도미이치 [29] |
2009년 중의원 총선거 | 아소 다로 [30] | → | 하토야마 유키오 [31] |
2012년 중의원 총선거 | 노다 요시히코 [32] | → | 아베 신조 [33] |
4.1.4. 몽골
민주화 이후부터 서술<colbgcolor=#f5f5f5,#2d2f34> 1997년 대통령 선거 | 푼살마깅 오치르바트 | → | 나차깅 바가반디 |
2009년 대통령 선거 | 남바링 엥흐바야르 | → | 차히아깅 엘베그도르지 |
2021년 대통령 선거 | 할트마깅 바트톨가 | → | 오흐나깅 후렐수흐 |
4.1.5.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독립 이래로 UMNO라는 단 하나의 정당이 61년간 말레이시아를 통치하였다가 2018년에 최초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colbgcolor=#f5f5f5,#2d2f34> 2018년 의회 선거 | 나집 라작 | → |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
4.1.6. 이란
이란의 국가원수이자 최고지도자는 종신직 성직자인 라흐바르이고, 이란 대통령은 정부수반에 해당한다.[34] 또한 이란은 고정된 정당이 존재하지 않으며, 두 정치 파벌 개혁파와 원칙파가 정계를 주도한디.<colbgcolor=#f5f5f5,#2d2f34> 1981년 대통령 선거 | 아볼하산 바니사드르 | → | 모함마드알리 라자이 |
1989년 대통령 선거 | 알리 하메네이 | → | 악바르 라프산자니 |
2005년 대통령 선거 | 모하마드 하타미 | → |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
2013년 대통령 선거 |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 → | 하산 로하니 |
2021년 대통령 선거 | 하산 로하니 | → | 에브라힘 라이시 |
2024년 대통령 선거 | 에브라힘 라이시 | → | 마수드 페제시키안 |
4.1.7. 인도
<colbgcolor=#f5f5f5,#2d2f34> 1977년 인민원 선거 | 파일:IndiraGandhi.png 인디라 간디 | → | 모라르지 데사이 |
1980년 인민원 선거 | 차란 싱 | → | 파일:IndiraGandhi.png 인디라 간디 |
1996년 인민원 선거 | P. V. 나라심하 라오 | → |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 |
2004년 인민원 선거 |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 | → | 만모한 싱 |
2014년 인민원 선거 | 만모한 싱 | → | 나렌드라 모디 |
4.2. 유럽
4.2.1. 독일
나치 독일 붕괴 이후 서독부터 계산.독일은 양대정당인 기민당과 사민당의 대연정이 빈번해서, 대연정을 하다가 총리직이 대연정을 구성하던 다른 당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정권교체로 간주한다.
<colbgcolor=#f5f5f5,#2d2f34> 제6대 연방의회 선거 | 쿠르트 키징어 | → | 빌리 브란트 |
제10대 연방의회 선거 | 헬무트 슈미트 | → | 헬무트 콜 |
제14대 연방의회 선거 | 헬무트 콜 | → | 게르하르트 슈뢰더 |
제16대 연방의회 선거 | 게르하르트 슈뢰더 | → | 앙겔라 메르켈 |
제20대 연방의회 선거 | 앙겔라 메르켈 | → | 올라프 숄츠 |
4.2.2. 프랑스
프랑스 제5공화국은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대통령 소속당과 총리직을 차지한 의회 다수당이 다른 동거정부가 형성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상태에서 총리 소속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경우도 정권교체로 간주한다.
<colbgcolor=#f5f5f5,#2d2f34> 1974년 대통령 선거 | 조르주 퐁피두 | → |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
1981년 대통령 선거 |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 → | 프랑수아 미테랑 |
1995년 대통령 선거 | 프랑수아 미테랑 | → | 자크 시라크 |
2012년 대통령 선거 | 니콜라 사르코지 | → | 프랑수아 올랑드 |
2017년 대통령 선거 | 프랑수아 올랑드 | → | 에마뉘엘 마크롱 [35] |
4.2.3. 영국
1942년 웨스트민스터 헌장 시행 이후부터 서술.<colbgcolor=#f5f5f5,#2d2f34> 1945년 의회 선거 | 윈스턴 처칠 | → | 클레멘트 애틀리 |
1951년 의회 선거 | 클레멘트 애틀리 | → | 윈스턴 처칠 |
1964년 의회 선거 | 알렉 더글러스흄 | → | 해럴드 윌슨 |
1970년 의회 선거 | 해럴드 윌슨 | → | 에드워드 히스 |
1974년 의회 선거 | 에드워드 히스 | → | 해럴드 윌슨 |
1979년 의회 선거 | 제임스 캘러헌 | → | 마거릿 대처 |
1997년 의회 선거 | 존 메이저 | → | 토니 블레어 |
2010년 의회 선거 | 고든 브라운 | → | 데이비드 캐머런 |
2024년 의회 선거 | 리시 수낙 | → | 키어 스타머 |
4.2.4. 스웨덴
현 국왕인 칼 16세 구스타프 즉위 이후부터 계산<colbgcolor=#f5f5f5,#2d2f34> 1976년 의회 총선거 | 올로프 팔메 | → | 토르비에른 펠딘 [36] |
1983년 의회 총선거 | 토르비에른 펠딘 [37] | → | 올로프 팔메 |
1991년 의회 총선거 | 잉바르 칼손 | → | 파일:칼 빌트.jpg 칼 빌트 [38] |
1994년 의회 총선거 | 파일:칼 빌트.jpg 칼 빌트 [39] | → | 잉바르 칼손 |
2006년 의회 총선거 | 예란 페르손 | → | 프레드리크 라인펠트 [40] |
2014년 의회 총선거 | 프레드리크 라인펠트 [41] | → | 스테판 뢰벤 |
2022년 의회 총선거 |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 → | 울프 크리스테르손 [42] |
4.2.5. 네덜란드
<colbgcolor=#f5f5f5,#2d2f34> 1977년 하원 선거 | 요프 던아윌 | → | 드리스 판아흐트 |
1994년 하원 선거 | 뤼트 뤼버르스 [43] | → | 빔 콕 |
2002년 하원 선거 | 빔 콕 | → | 얀 페터르 발케넨더 |
2010년 하원 선거 | 얀 페터르 발케넨더 | → | 마르크 뤼터 |
2023년 하원 선거 | 마르크 뤼터 | → | 파일:딕 스호프.jpg 딕 스호프 [44] |
4.2.6. 벨기에
현 국왕인 필리프 즉위 이후부터 계산<colbgcolor=#f5f5f5,#2d2f34> 2014년 의회 선거 | 엘리오 디 루포 | → | 샤를 미셸 |
2019년 의회 선거 | 소피 윌메스 | → | 알렉산더르 더크로 |
4.2.7. 노르웨이
현 국왕인 하랄 5세 즉위 이후부터 계산<colbgcolor=#f5f5f5,#2d2f34> 1997년 의회 선거 | 토르비에른 야글란 | → | 셸 망네 본데비크 |
2000년 내각 불신임 | 셸 망네 본데비크 | → | 옌스 스톨텐베르그 |
2001년 의회 선거 | 옌스 스톨텐베르그 | → | 셸 망네 본데비크 |
2005년 의회 선거 | 셸 망네 본데비크 | → | 옌스 스톨텐베르그 |
2013년 의회 선거 | 옌스 스톨텐베르그 | → | 에르나 솔베르크 |
2021년 의회 선거 | 에르나 솔베르크 | → | 요나스 가르 스퇴레 |
4.2.8. 스페인
1977년 민주화 이후부터 서술<colbgcolor=#f5f5f5,#2d2f34> 1977년 총선거 | 카를로스 아리아스나바로 | → | 아돌포 수아레스 |
1982년 총선거 | 레오폴도 칼보소텔로 | → | 펠리페 곤살레스 |
1996년 총선거 | 펠리페 곤살레스 | → |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
2004년 총선거 |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 → |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
2011년 총선거 |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 → | 마리아노 라호이 |
2019년 총선거 | 마리아노 라호이 | → | 페드로 산체스 |
4.2.9.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에서는 간간히 사민당과 인민당의 좌우 대연정이 수립되기도 했는데 대연정 중 총리의 소속 정당이 바뀐 경우에도 기입한다.<colbgcolor=#f5f5f5,#2d2f34> 1945년 국민의회 선거 | 카를 레너 | → | 레오폴트 피글 |
1970년 국민의회 선거 | 요제프 클라우스 | → | 브루노 크라이스키 |
1999년 국민의회 선거[45] | 빅토어 클리마 | → | 볼프강 쉬셀 |
2006년 국민의회 선거[46] | 볼프강 쉬셀 | → | 알프레트 구젠바워 |
2017년 국민의회 선거 | 크리스티안 케른 | → | 제바스티안 쿠르츠 |
4.2.10. 우크라이나
<colbgcolor=#f5f5f5,#2d2f34> 1994년 대통령 선거 | 레오니드 크라우추크[47] | → | 레오니드 쿠치마[48] |
2004년 대통령 선거 | 레오니드 쿠치마[49] | → | 빅토르 유셴코[50] [51] |
2010년 대통령 선거 | 빅토르 유셴코[52] [53] | → | 빅토르 야누코비치[54] |
2014년 대통령 선거 | 빅토르 야누코비치 | → | 페트로 포로셴코 [55] |
2019년 대통령 선거 | 페트로 포로셴코 [56] | →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
4.2.11. 헝가리
<colbgcolor=#f5f5f5,#2d2f34> 1990년 국민의회 선거 | 네메트 미클로시 | → | 언털 요제프 |
1994년 국민의회 선거 | 보로시 페테르 | → | 호른 줄러 |
1998년 국민의회 선거 | 호른 줄러 | → | 오르반 빅토르 |
2002년 국민의회 선거 | 오르반 빅토르 | → | 메드제시 페테르 [57] |
2010년 국민의회 선거 | 버이너이 고르돈 | → | 오르반 빅토르 |
4.2.12. 포르투갈
<colbgcolor=#f5f5f5,#2d2f34> 2006년 대통령 선거 | 조르즈 삼파이우 | → | 아니발 카바쿠 실바 |
4.2.13. 몬테네그로
2006년 분리 독립 이후부터 서술<colbgcolor=#f5f5f5,#2d2f34> 2023년 대통령 선거 | 밀로 주카노비치 | → | 야코브 밀라토비치 |
4.2.14. 북마케도니아
북마케도니아 건국 이래로 무소속인 초대 대통령 키로 글리고로프를 제외하고[58] 민족주의 성향의 우파 정당 VMRO-DPMNE와 친NATO·EU 성향의 좌파 정당 SDSM[59]이 번갈아 가며 집권 중이다.<colbgcolor=#f5f5f5,#2d2f34> 1999년 대통령 선거 | 키로 글리고로프 [60] | → | 파일:166347302569.jpg 보리스 트라이코프스키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 VMRO-DPMNE ]] |
2004년 대통령 선거 | 파일:166347302569.jpg 보리스 트라이코프스키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 VMRO-DPMNE ]] | → | 브란코 츠르벤코프스키 [[마케도니아 사회민주주의 동맹| SDSM ]] |
2009년 대통령 선거 | 브란코 츠르벤코프스키 [[마케도니아 사회민주주의 동맹| SDSM ]] | → | 조르게 이바노프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 VMRO-DPMNE ]] |
2019년 대통령 선거 | 조르게 이바노프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 VMRO-DPMNE ]] | → | 스테보 펜다로프스키 [[마케도니아 사회민주주의 동맹| SDSM ]] |
2024년 대통령 선거 | 스테보 펜다로프스키 [[마케도니아 사회민주주의 동맹| SDSM ]] | → | 고르다나 실랴노프스카다프코바 [[내부 마케도니아 혁명 기구-마케도니아 국민통합민주당| VMRO-DPMNE ]] |
4.2.15.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건국 이래로 무소속인 11대 총리 티호미르 오레슈코비치를 제외하고[61] 민주화 운동을 이끈 민주투사들이 창당한 우익 정당인 HDZ와 구 공산주의자 중 온건파들이 창당한 좌익 정당인 SDP[62]가 번갈아 가며 집권 중이다.<colbgcolor=#f5f5f5,#2d2f34> 2000년 선거 | 즐라트코 마테샤 | → | 이비차 라찬 [[크로아티아 사회민주당| SDP ]] |
2003년 선거 | 이비차 라찬 [[크로아티아 사회민주당| SDP ]] | → | 이보 사나데르 |
2011년 선거 | 야드란카 코소르 | → |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사회민주당| SDP ]] |
2015년 선거 |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사회민주당| SDP ]] | → | 티호미르 오레슈코비치 [63] |
4.2.16. 아일랜드
아일랜드 건국 이래로 초대 총리인 윌리엄 토마스 코즈그레이브를 제외하고 피어너 팔과 피너 게일이 번갈아 가며 집권 중이다.<colbgcolor=#f5f5f5,#2d2f34> 1948년 선거 | 에이먼 데 벌레라 | → | 존 코스텔로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1951년 선거 | 존 코스텔로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 | 에이먼 데 벌레라 |
1954년 선거 | 에이먼 데 벌레라 | → | 존 코스텔로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1957년 선거 | 존 코스텔로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 | 에이먼 데 벌레라 |
1973년 선거 | 잭 린치 | → | 리엄 코즈그레이브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1977년 선거 | 리엄 코즈그레이브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 | 잭 린치 |
1981년 선거 | 찰스 호히 | → | 개럿 피츠제럴드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1982년 2월 선거 | 개럿 피츠제럴드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 | 찰스 호히 |
1982년 11월 선거 | 찰스 호히 | → | 개럿 피츠제럴드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1987년 선거 | 개럿 피츠제럴드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 | 찰스 호히 |
1992년 선거[64] | 앨버트 레이놀즈 | → | 존 브루턴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1997년 선거 | 존 브루턴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 | 버티 어헌 |
2011년 선거 | 브라이언 카우언 | → | 엔다 케니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2020년 선거 | 리오 버래드커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 | 미할 마틴 |
2020년 선거[65] | 미할 마틴 | → | 리오 버래드커 [[피너 게일| 피너 게일 ]] |
4.2.17. 몰타
1974년 몰타 독립 이래로 무소속인 초대 대통령 앤서니 마모를 제외하고[66] 좌파 정당인 노동당과 우파 정당인 국민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 중이다.<colbgcolor=#f5f5f5,#2d2f34> 1976년 대통령 선거 | 앤서니 마모 | → | 안톤 부티기에그 |
1989년 대통령 선거 | 폴 쉬에렙 | → | 센수 타보네 |
2009년 대통령 선거 | 에디 페네치 아다미 | → | 조지 아벨라 |
4.3. 아메리카
4.3.1. 미국
4.3.2. 캐나다
<colbgcolor=#f5f5f5,#2d2f34> 1874년 연방 선거 | 존 맥도널드 | → | 윌리엄 매켄지 |
1878년 연방 선거 | 윌리엄 매켄지 | → | 존 맥도널드 |
1896년 연방 선거 | 찰스 터퍼 | → | 윌프리드 로리에 |
1911년 연방 선거 | 윌프리드 로리에 | → | 로버트 보든 |
1921년 연방 선거 | 아서 미언 | → | 윌리엄 매켄지 |
1926년 연방 선거 | 윌리엄 매켄지 | → | 아서 미언 |
1926년 연방 선거 | 아서 미언 | → | 윌리엄 매켄지 |
1930년 연방 선거 | 윌리엄 매켄지 | → | 리처드 B. 베넷 |
1935년 연방 선거 | 리처드 B. 베넷 | → | 윌리엄 매켄지 |
1957년 연방 선거 | 루이 생로랑 | → | 존 디펜베이커 |
1963년 연방 선거 | 존 디펜베이커 | → | 레스터 피어슨 |
1979년 연방 선거 | 피에르 트뤼도 | → | 조 클라크 |
1980년 연방 선거 | 조 클라크 | → | 피에르 트뤼도 |
1984년 연방 선거 | 존 터너 | → | 브라이언 멀로니 |
1993년 연방 선거 | 킴 캠벨 | → | 장 크레티앵 |
2006년 연방 선거 | 폴 마틴 | → | 스티븐 하퍼 |
2015년 연방 선거 | 스티븐 하퍼 | → | 쥐스탱 트뤼도 |
4.3.3. 멕시코
- 멕시코 혁명 이후부터 계산.
<colbgcolor=#f5f5f5,#2d2f34> 1920년 대통령 선거 | 아돌포 데 라 우에르타 | → | 알바로 오브레곤 |
2000년 대통령 선거 | 에르네스토 세디요 [67] | → | 비센테 폭스 |
2012년 대통령 선거 | 펠리페 칼데론 | → | 엔리케 페냐 니에토 |
2018년 대통령 선거 | 엔리케 페냐 니에토 | → |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
4.3.4. 콜롬비아
콜롬비아는 우파 성향의 정부가 집권한 역사가 길다. 그러나 2022년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좌익 게릴라 출신의 구스타보 페트로가 당선되어, 콜롬비아에서는 처음으로 좌파 대통령이 탄생하였다.<colbgcolor=#f5f5f5,#2d2f34> 2022년 대통령 선거 | 이반 두케 | → | 구스타보 페트로 |
4.3.5. 브라질
- 브라질 제6공화국
<colbgcolor=#f5f5f5,#2d2f34> 2002년 대통령 선거 | 페르난두 카르도주 | → | 룰라 다 실바 |
2018년 대통령 선거 | 미셰우 테메르 [68] | → | 자이르 보우소나루 |
2022년 대통령 선거 | 자이르 보우소나루 | → | 룰라 다 실바 |
4.3.6. 파라과이
4.3.7. 엘살바도르
<colbgcolor=#f5f5f5,#2d2f34> 1989년 대통령 선거 | 호세 나폴레옹 두아르테 | → | 알프레도 크리스티아니 |
2009년 대통령 선거 | 안토니오 사카 | → | 마우리시오 푸네스 |
2019년 대통령 선거 | 살바도르 산체스 세렌 | → | 나이브 부켈레 |
4.3.8. 우루과이
1984년 민주화 이후부터 서술<colbgcolor=#f5f5f5,#2d2f34> 1984년 대통령 선거 | 라파엘 아디에고 브루노 [70] | → | 훌리오 마리아 상기네티 [[콜로라도당(우루과이)| 콜로라도당 ]] |
1989년 대통령 선거 | 훌리오 마리아 상기네티 [[콜로라도당(우루과이)| 콜로라도당 ]] | → |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 |
1994년 대통령 선거 |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 | → | 훌리오 마리아 상기네티 [[콜로라도당(우루과이)| 콜로라도당 ]] |
2004년 대통령 선거 | 호르헤 바트예 [[콜로라도당(우루과이)| 콜로라도당 ]] | → | 타바레 바스케즈 |
2019년 대통령 선거 | 타바레 바스케즈 | → | 루이스 라카예 포우 |
4.4. 아프리카
4.4.1. 가나
- 가나 제4공화국
<colbgcolor=#f5f5f5,#2d2f34> 2000년 대통령 선거 | 제리 존 롤링스 | → | 존 쿠푸오르 |
2008년 대통령 선거 | 존 쿠푸오르 | → | 존 아타 밀스 |
2016년 대통령 선거 | 존 드라마니 마하마 | → | 나나 아쿠포아도 |
2024년 대통령 선거 | 나나 아쿠포아도 | → | 존 드라마니 마하마 |
4.4.2. 나이지리아
- 나이지리아 제4공화국
<colbgcolor=#f5f5f5,#2d2f34> 2015년 대통령 선거 | 굿럭 조너선 | → | 모하마두 부하리 |
4.4.3. 남아프리카 공화국
1994년 총선 결과, 46년 동안 집권해온 국민당 정권에서 넬슨 만델라의 아프리카 국민회의로 정권교체된 이후 현재까지 아프리카 국민회의가 집권하고 있다.<colbgcolor=#f5f5f5,#2d2f34> 1994년 의회 총선거 | F. W. 더클레르크 | → | 넬슨 만델라 |
4.5. 오세아니아
4.5.1. 호주
1986년 완전 독립 이후부터 서술.호주는 노동당과 자유당(국민당과 연정)의 양당제 국가로 여러번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왔다.
<colbgcolor=#f5f5f5,#2d2f34> 1996년 연방 선거 | 폴 키팅 | → | 존 하워드 |
2007년 연방 선거 | 존 하워드 | → | 케빈 러드 |
2013년 연방 선거 | 케빈 러드 | → | 토니 애벗 |
2022년 연방 선거 | 스콧 모리슨 | → | 앤서니 앨버니지 |
4.5.2. 뉴질랜드
1947년 웨스트민스터 헌장 비준 이후부터 서술.뉴질랜드는 노동당과 국민당으로 여러번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왔다.
<colbgcolor=#f5f5f5,#2d2f34> 1949년 의회 선거 | 피터 프레이저 | → | 시드니 홀랜드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1957년 의회 선거 | 키스 홀리오크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 | 월터 내시 |
1960년 의회 선거 | 월터 내시 | → | 키스 홀리오크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1972년 의회 선거 | 잭 마셜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 | 노먼 커크 |
1975년 의회 선거 | 빌 롤링 | → | 로버트 멀둔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1984년 의회 선거 | 로버트 멀둔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 | 데이비드 롱이 |
1990년 의회 선거 | 마이크 무어 | → | 짐 볼저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1999년 의회 선거 | 제니 시플리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 | 헬렌 클라크 |
2008년 의회 선거 | 헬렌 클라크 | → | 존 키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2017년 의회 선거 | 빌 잉글리시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 | 저신다 아던 |
2023년 의회 선거 | 크리스 힙킨스 | → |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국민당| 국민당 ]] |
5. 여담
- 일본에서는 이 개념을 '정권교대'(政権交代)라고 한다. 교체(交替)의 체(替)가 상용한자 외인 것은 아닌데 왠지 모르게 그렇게 됐다. 한국에서 쓰는 '교체'와 딱히 의미상의 차이를 두려고 '교대'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니며 일본어 발음은 동일하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장기집권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이 정권을 잃은 것으로 유명한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는 흔히 '정권교대 선거'(政権交代選挙)이라고 불리곤 한다.
- 러시아는 아직 단 한번도 정권교체가 이루어진적이 없으나, 소련 공산당을 계승하는 제1야당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당수인 겐나디 주가노프를 중심으로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차지하고 대선에서도 보리스 옐친을 상대로 선전했던 정당이였으나, 현재의 러시아 공산당은 차르와 다름없는 푸틴의 존재로 인하여 집권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1] 대체로 그러하지만 선거로 왕을 결정하는 선거군주제와 같은 것도 있다. 선거군주는 선거를 통한 군주의 교체의 길을 열어두었다는 점에서 공화주의의 속성을 지니며, 오늘날의 대통령제와도 일정 부분 유사한 면이 있다.[2] 과거 제도 문서의 다른 제도 문단에서 시험을 제외한 여러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추첨, 선거, 세습, 천거, 매관, 엽관 등의 방법이 있다. 이 중 세습과 매관은 사회 부조리로 전락했고 추첨은 불확실성이 커 널리 쓰이진 못한다. 나머지 방법들(시험, 선거, 천거, 엽관 등)은 민주국가에서도 종종 쓰이곤 한다.[3]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일당우위제 국가에서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4] 다만 불만 해소가 오로지 정권교체만을 통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포퓰리즘 제도를 통해서도 불만 해소는 가능한데, 때문에 오늘날 전제군주제 국가는 오일 머니를 위시한 산유국들이 많다. 동아시아 군주정에서는 군주의 가족적 애민정신에 입각한 책임을 부여하고, 관료를 시험으로 선출하며(과거 제도), 민심과 천명에 따른 역성혁명의 가능성을 열어두어 이를 해소하려 했고 이를 민본주의라 한다.[5] 입헌군주제 문서에서도 다루듯 입헌군주제는 왕이 헌법을 따른다는 의미로, 반드시 총리에 전권을 위임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에도 리히텐슈타인처럼 왕의 권한이 강력한 국가가 존재하며 19세기 프로이센 왕국도 입헌군주제이긴 했지만 독일 황제의 권한은 막대하였다.[6] 한국에서는 전제군주적 왕정복고의 움직임이 나타난 적은 없는데, 군주정이 몰락하고 공화정이 정착하는 사이에 일제강점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구심점이 될 고종은 1919년 사망했으며 이를 계기로 촉발된 3.1 운동 이후 시기부터는 이미 공화정이 대세가 되었다.[7] 대표적인 예로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념에 따라 일당독재 체제를 유지했으며 공산당을 제외한 세력의 집권은 전혀 불가능했다. 북한은 그 중 가장 극단적인 예로, 백두혈통을 명분으로 지도자 세습까지 이루어지면서 실질적으로는 군주정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때문에 자본주의 진영에서는 (설령 모든 자본주의 진영 국가들이 민주적이진 않을지언정) 자신들을 "민주 진영", "자유 진영" 등으로 말하곤 했다. 대만을 "자유중국"이라고 했던 것도 그 예로,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의 대만은 30년 가까이 지속된 계엄령과 3당 훈정으로 결코 자유로운 체제는 아니었다.[8] 그 어떤 자료를 보아도 일본은 선거의 공정성, 정부 기능, 정치적 권리, 시민자유 등 그 어느 분야에서도 나머지 G7, EU 평균, 한국, 대만, 호주 등에 밀리지 않는다. 일본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을 거론하기도 하는데,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진행된 정치적 양극화 이전에는 다를 게 없었다. 일본은 1945년 이래 정치적, 사회적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국가며, 그중 반 이상의 기간 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정치와 사회를 가진 선진국이었다. 비록 일당 우위 정당제이기는 하나 자민당 정권들은 평가에 관계없이 그 아래서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정권이다. 북유럽, 캐나다 등에서 보듯 일당 우위 정당제라고 해서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9]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는 이후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도 바뀌었으나 거기서 배출된 노무현을 정권교체로 보는 시각은 적다.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는 한 세트로 묶여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재창출로 보는 편이다.[10] 1998년 한나라당 → 새정치국민회의,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 한나라당, 2017년 자유한국당 → 더불어민주당, 2022년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힘이 있다.[11] 그래서 20대 대선 때에는 설령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명이 당선되었더라도 정권재창출보다는 정권교체에 가깝게 되었을 거라는 시각이 많다. 이재명은 진보 성향 비문재인의 수장으로, 다소 보수적이고 보신적인 성향의 문재인과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재인과 이재명은 19대 대선 시기 정책 및 기득권 청산 의지 등으로 대립하기도 했고, 문 집권 이후에도 이재명이 당시 국내 최다인구 지자체 수장으로서 재난지원금이나 지역사랑상품권 문제를 놓고 기탄없이 청와대와 대립하는 등 같은 당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열성 지지자들인 문빠, 찢빠 또한 철천지 원수 사이다. 다만 문재인의 고정 지지층 자체는 온존하고 있기 때문에 20대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이재명은 문재인과의 대립을 자제하고, 문재인도 이재명과 뜻을 함께 한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정권재창출은 실패했지만 문재인의 고정 지지층은 임기 종료 이후에도 유지되고 있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지지율 급락 사태가 터지고 문재인 정부 긍정적 재평가 여론도 강하기 때문에 문재인-이재명 간의 우호적 스탠스는 유지되고 있다.[12] 직선제를 실시한 이래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대통령들은 노태우,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가 있지만 이들 모두 후임이 되어 뒤를 이은 김영삼,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 모두 본인의 계파가 아닌 다른 계파 출신이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같은 정당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임 대통령 소속 계파들과 대립하거나 더 나아가서 공천학살을 단행까지 하였다.[13]
이후 서로의 비리로 팩폭을 벌인 이 두명은 둘 다 감옥에 가게 된다.[14] 하지만 민주화 이후 당선자가 50% 이상을 득표한 경우는 현재까지도 18대 대선의 박근혜가 유일하다. 열린우리당의 연이은 실정과 레임덕, 그리고 높은 정권교체 열망 속에서 한나라당은 누가 나와도 당선이 확정인 17대 대선에서도 이명박은 과반 득표에 실패한다. 그만큼 과반 득표는 쉬운 일이 아니다.[15]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총선으로 인한 정권교체이자 첫번째 정권교체. 이때는 한국 역사상 유일하게 집권당을 견제할 정당이 없었다. 당시 결과를 보면 정원 233명 중에서 민주당 175석, 사회대중당 4석, 자유당 2석, 한국사회당•통일당•헌정동지회 1석, 무소속 49석으로 민주당 1당 독주 체제가 완성되었다. 4.19 혁명을 바탕으로 이뤄졌으므로 좁은 의미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아니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부터 총선이 실시되기까지의 과정 자체는 당시의 법과 제도가 정하는 바에 따라 이뤄졌기에 대놓고 총구를 들이댄 이후 두 차례의 쿠데타와는 달랐다. 그러나 민주당은 윤보선 대통령을 지지하는 구파와 장면 총리를 지지하는 신파로 나뉘어 대립하다가, 구파가 탈당하여 신민당을 창당하면서 갈라졌고, 이로써 한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민주당계 정당 간의 양당제가 형성되었다. 다만 의원내각제라서 정부수반은 윤보선 대통령이 아닌 장면 총리였기에, 5.16 쿠데타 직전까지 민주당이 여당 지위를 유지했다.[16] 최규하 본인은 문민 관료였으나, 군부정권의 총리였기에 사실상 군부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다만 10.26 사건으로 인한 권력공백으로 정권 이양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거국 내각의 성격을 가졌다.[실질적]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이미 탈당하여 무소속 신분이었으나 편의상 이렇게 표현했다.[18] 김영삼 본인이 가진 마지막 당적은 신한국당이었다.[실질적] [20] 노무현 본인이 가진 마지막 당적은 열린우리당이었다.[21] 다만 대만도 정권교체가 빈번하게 된 것은 마치 한국처럼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대만도 국부천대 이후로 장기간 독재를 경험했다. 2000년에 민주진보당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되면서 정권교체 했다.[22] 연립여당 :
[23] 아시다 히토시 사임[24] 연립여당 :
[25] 연립여당 : [26] 요시다 시게루 사임[27] 연립여당:
, ,
, , , [28] 연립여당:
, , , [29] 연립여당:
, [30] 연립여당:
[31] 연립여당:
,
[32] 연립여당:
[33] 연립여당:
[34] 라흐바르가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행정 등, 일정 부분 라흐바르의 개입을 받을 수 있다.[35] 사실 에마뉘엘 마크롱도 사회당 출신이긴 하나, 그가 세운 앙 마르슈는 중도에 가깝다.[36] 연립여당: 온건당, 국민당, 기독교민주당[37] 연립여당: 국민당[38]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39]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40]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41]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42] 연립여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43] 기독민주애원당은 가톨릭인민당, 반혁명당, 기독교역사연맹 등이 합당하여 탄생하였다.[44] 자유당 지명, 노동당 출신[45] 총선은 1999년 10월에 있었으나 연정 문제로 인하여 인민당 내각은 2000년 2월에 들어섰다.[46] 총선은 2006년 10월에 있었으나 연정문제로 인하여 사회민주당 내각은 2007년 1월에 들어섰다.[47] 서부 지지[48] 동부 지지[49] 동부 지지[50] 서부 지지[51] 우리의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받았다.[52] 서부 지지[53] 우리의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받았다.[54] 동부 지지[55] 유럽연대의 지지를 받았다.[56] 유럽연대의 지지를 받았다.[57] 헝가리 사회당의 총리 후보로 지명되어 총리직에 올랐으나 무소속을 유지했다.[58] 사실상 SDSM의 지지를 받았다.[59] 마케도니아 공산당 연맹의 후신[60] 사실상 SDSM의 지지를 받았다.[61] 사실상 HDZ의 지지를 받았다.[62] 크로아티아 공산주의자 동맹의 후신[63] 사실상 HDZ의 지지를 받았다.[64] 연정협정[65] 연정협정[66] 영국령 몰타 최후의 총독이기도 했다.[67] 노동자당의 후신이다.[68] 노동자당과 연립여당이었다.[69] 기독교민주당과 연립여당이었다. 다만, 페르난도 루고와는 대립적인 관계였다.[70] 사실상 군부가 임명하였다.
이후 서로의 비리로 팩폭을 벌인 이 두명은 둘 다 감옥에 가게 된다.[14] 하지만 민주화 이후 당선자가 50% 이상을 득표한 경우는 현재까지도 18대 대선의 박근혜가 유일하다. 열린우리당의 연이은 실정과 레임덕, 그리고 높은 정권교체 열망 속에서 한나라당은 누가 나와도 당선이 확정인 17대 대선에서도 이명박은 과반 득표에 실패한다. 그만큼 과반 득표는 쉬운 일이 아니다.[15]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총선으로 인한 정권교체이자 첫번째 정권교체. 이때는 한국 역사상 유일하게 집권당을 견제할 정당이 없었다. 당시 결과를 보면 정원 233명 중에서 민주당 175석, 사회대중당 4석, 자유당 2석, 한국사회당•통일당•헌정동지회 1석, 무소속 49석으로 민주당 1당 독주 체제가 완성되었다. 4.19 혁명을 바탕으로 이뤄졌으므로 좁은 의미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아니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부터 총선이 실시되기까지의 과정 자체는 당시의 법과 제도가 정하는 바에 따라 이뤄졌기에 대놓고 총구를 들이댄 이후 두 차례의 쿠데타와는 달랐다. 그러나 민주당은 윤보선 대통령을 지지하는 구파와 장면 총리를 지지하는 신파로 나뉘어 대립하다가, 구파가 탈당하여 신민당을 창당하면서 갈라졌고, 이로써 한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민주당계 정당 간의 양당제가 형성되었다. 다만 의원내각제라서 정부수반은 윤보선 대통령이 아닌 장면 총리였기에, 5.16 쿠데타 직전까지 민주당이 여당 지위를 유지했다.[16] 최규하 본인은 문민 관료였으나, 군부정권의 총리였기에 사실상 군부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다만 10.26 사건으로 인한 권력공백으로 정권 이양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거국 내각의 성격을 가졌다.[실질적]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이미 탈당하여 무소속 신분이었으나 편의상 이렇게 표현했다.[18] 김영삼 본인이 가진 마지막 당적은 신한국당이었다.[실질적] [20] 노무현 본인이 가진 마지막 당적은 열린우리당이었다.[21] 다만 대만도 정권교체가 빈번하게 된 것은 마치 한국처럼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대만도 국부천대 이후로 장기간 독재를 경험했다. 2000년에 민주진보당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되면서 정권교체 했다.[22] 연립여당 :
[23] 아시다 히토시 사임[24] 연립여당 :
[25] 연립여당 : [26] 요시다 시게루 사임[27] 연립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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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8] 연립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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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연립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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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연립여당:
[33] 연립여당:
[34] 라흐바르가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행정 등, 일정 부분 라흐바르의 개입을 받을 수 있다.[35] 사실 에마뉘엘 마크롱도 사회당 출신이긴 하나, 그가 세운 앙 마르슈는 중도에 가깝다.[36] 연립여당: 온건당, 국민당, 기독교민주당[37] 연립여당: 국민당[38]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39]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40]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41] 연립여당: 중앙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42] 연립여당: 자유당, 기독교민주당[43] 기독민주애원당은 가톨릭인민당, 반혁명당, 기독교역사연맹 등이 합당하여 탄생하였다.[44] 자유당 지명, 노동당 출신[45] 총선은 1999년 10월에 있었으나 연정 문제로 인하여 인민당 내각은 2000년 2월에 들어섰다.[46] 총선은 2006년 10월에 있었으나 연정문제로 인하여 사회민주당 내각은 2007년 1월에 들어섰다.[47] 서부 지지[48] 동부 지지[49] 동부 지지[50] 서부 지지[51] 우리의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받았다.[52] 서부 지지[53] 우리의 우크라이나의 지지를 받았다.[54] 동부 지지[55] 유럽연대의 지지를 받았다.[56] 유럽연대의 지지를 받았다.[57] 헝가리 사회당의 총리 후보로 지명되어 총리직에 올랐으나 무소속을 유지했다.[58] 사실상 SDSM의 지지를 받았다.[59] 마케도니아 공산당 연맹의 후신[60] 사실상 SDSM의 지지를 받았다.[61] 사실상 HDZ의 지지를 받았다.[62] 크로아티아 공산주의자 동맹의 후신[63] 사실상 HDZ의 지지를 받았다.[64] 연정협정[65] 연정협정[66] 영국령 몰타 최후의 총독이기도 했다.[67] 노동자당의 후신이다.[68] 노동자당과 연립여당이었다.[69] 기독교민주당과 연립여당이었다. 다만, 페르난도 루고와는 대립적인 관계였다.[70] 사실상 군부가 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