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8a9><colcolor=#fff> 파라과이 제32대 대통령 라파엘 데라크루스 프랑코 오헤다 Rafael de la Cruz Franco Ojeda | |
출생 | 1896년 10월 22일 |
파라과이 아순시온 | |
사망 | 1973년 9월 16일 (향년 76세) |
파라과이 아순시온 | |
국적 | 파라과이 |
임기 | 파라과이 제32대 대통령 |
1936년 2월 17일 ~ 1937년 8월 13일 | |
배우자 | 데이다미아 솔라린데 |
복무 | 파라과이 육군 |
1915년 ~ 193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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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라과이 제40대 대통령이자 군인. 차코 전쟁의 영웅이기도 하다.2. 생애
수학과 교수인 페데리코 프랑코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5년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1924년 8월 대위로 진급했다. 1926년 2월, 사관학교 훈육대장을 거쳐 11월 보병 제2연대로 소속을 옮겼다. 1928년 소령 시절때 그란차코 지역에 있는 볼리비아 요새를 점령하는 공적을 세웠다. 이후 군사 항공 학교의 교장으로 옮겼다.1933년 대령으로 진급한 프랑코는 차코 전쟁에서 파라과이군 제1사단을 지휘했다. 1933년 7월 12일, 알리우아타(Alihuatá) 전투에서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빠르게 적의 방어를 뚫고 들어가 볼리비아군 제4사단을 격파했다.
프랑코는 에우세비오 아얄라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아르헨티나로 추방시키자 1936년 2월 17일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대통령 즉위 후, 1936년 2월 24일 파라과이 정부는 파라과이 중앙은행을 설립했고, 증권거래소 역할까지 겸임하게 했다.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8시간 노동제, 일요일의 의무휴일 지정, 주휴시간 48시간, 임금은 현금으로만 지급, 노동자들의 노조와 파업의 권리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했다. 또한 1936년 5월 5일 파라과이 정부는 20만 헥타르의 토지를 농민 1만 가구에 분배하고 임대료를 1년 동안 동결하는 내용의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파라과이의 첫 일본인 이민자가 도착했고, 또한 볼리비아와 전쟁 포로 교환을 실시했다. 2대 대통령인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를 "로페스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 파라과이의 자주성을 드높인 위대한 지도자다."라고 평가하며 기존의 무법자, 독재자 인식을 뒤엎고 국가의 영웅이자 애국자로 추대했다. 또한 로페스가 전사한 날인 3월 1일을 '국가 영웅일'이라는 국경일로 지정했고 로페스 부부의 유해를 새로 지은 박물관에 안치했다.
1937년 8월 13일 프랑코가 차코 지역에서 파라과이 군대를 철수시키자, 군내 우익 세력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프랑코 정부가 전복되고 자유당인 펠릭스 파이바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후 프랑코는 우루과이로 망명했다. 1946년 사면을 받고 잠시 파라과이로 돌아왔으나 정치 음모 혐의로 다시 망명했다. 1963년 말이 돼서야 완전 귀국했고 10년간 조용히 지내다 사망했다.
3. 대중매체에서
Hearts of Iron 4에서 2월 혁명 이벤트를 통해 파라과이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업데이트 전에는 1936년 1월부터 지도자로 등장했다. 즉, 아직 프랑코가 집권하기 전으로 고증오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