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6 01:45:16

사회민주당(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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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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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당

7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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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민주사회-인민당

2석
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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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당

78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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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GA!

5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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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이니셔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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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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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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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동물-자연

1석
재적
23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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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do Social Democrata
약칭 PPD/PSD
한글명칭 사회민주당
슬로건 Paz, Pão, Povo e Liberdade
상징색
주황색
창당일 1974년 5월 6일
이념 자유보수주의
자유주의
기독교 민주주의
역사적 :
사회민주주의
계급협조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우파
역사적 :
중도 ~ 중도좌파
주소 Rua de S. Caetano à Lapa, 9
1249-087, 리스본
당수 루이스 몬테네그루
국제 조직

청년 조직 젊은 사회민주(JSD)
기관지 Povo Livre
정당 연합 민주동맹
유럽 정당 유럽 인민당
유럽의회 정당 유럽 인민당 그룹
공화국의회 의석 수
78석 / 230석
유럽의회 의석 수
6석 / 2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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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Clearfix]

1. 개요

포르투갈의 중도우파 정당. 사회당과 함께 원내 1,2당 지위를 놓고 경쟁하는 전통적 거대 정당이다.

당의 이념과 성향은 자유보수주의기독교 민주주의로 전형적인 중도우파 보수인데 당명이 '사회민주당'이어서 다소 혼선을 유발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당의 역사적 변천과 관련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1]

2. 역사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직후 "민주인민당(Partido Popular Democrático, 약칭 PPD)"으로 창당되었으나, 2년 후 '사회민주당'으로 개칭하였다. 다만 민주인민당 시절의 역사적 유산을 남겨두자는 당 차원의 공감대가 있었는지, 현재 당의 공식 약칭을 PPD-PSD로 쓰고 있다.

창당 초기에는 중도 ~ 중도좌파[2] 성향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창당되었으나, 좌파 내 우파 포지션이다 보니 당시 노동자 및 노동운동가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던 사회당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 게다가 카네이션 혁명으로 우익 독재정권이 붕괴된 상황에서 독재정권을 지지하던 보수우파 유권자들이 자신들이 투표할 만한 정당을 잃게 되었는데, 사회당과 함께 진보좌파 이념(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을 계속 내세우면 좌파 내에서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을 할 뿐 아니라 갈 곳 없어진 우파 유권자들을 기반으로 독재 시절을 옹호하는 보수정당이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 퍼져나갔다.

이에 '좌파 간 자리 뺏기 갈등을 멈추고 독재 옹호 세력의 득세를 차단한다'는 대의 하에 1979년 총선부터 중도우파 군소정당들과 선거연대를 꾸리면서 점차 우경화하기 시작, 1985년 신임 당대표로 취임한 아니발 카바쿠 실바[3] 체제에서 확실하게 중도우파 포지션을 점유하게 되었다. 사회당과 멀어지는 대신 보수우파 유권자들의 선택지를 선점한다는 이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이 덕에 사회당이 좌파 거대정당으로 입지를 굳히는 사이 중도우파 거대정당으로 안착하면서 극우 독재의 망령이 부활하는 것을 원천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화 + 갈 곳 없는 보수층의 표를 끌어들이며 성공한 사민당은,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79년 정권을 차지한 이후 1995년까지 16년 동안 장기집권을 이루게 된다. 특히 당을 성공적으로 이끈 실바 대표 치하에서, 사민당은 1987년과 1991년 총선에서 단독 과반 의석을 확보해, 타 정당의 도움 없이 단독정부를 무난하게 구성할 정도였다. 하지만 장기집권으로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유발되었고, 결정적으로 경기침체에 봉착하면서, 실바는 1995년 1월 대표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이후 페르난두 노게이라가 새 대표로 취임했지만, 230석 중 88석 밖에 얻지 못해 원내 2당으로 추락했으며, 사회당에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4]

이후 사민당은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를 새 대표로 선출했고 1999년 총선에서 재집권을 꾀하지만, 오히려 7석이 줄면서 앞날에 먹구름이 낀 듯 보였다. 그러다 2002년 인민당과의 연정으로 재집권에 성공하지만, 이는 바꿔 말하자면 단독 과반에 실패할 정도로 기반이 약해졌음을 의미했다. 이후 2005년 다시 패배하고, 2011년까지 야당으로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회당이 재집권한 뒤 2008년 ~ 2009년 세계 금융위기를 피하지 못했고, 이 여세를 몰아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대표를 앞세워 2011년 인민당과의 연정으로 재집권하게 된다. 코엘류는 임기 초반 지지율이 좋았으나, 곧바로 지지를 잃더니 2012년 후반기에 사회당에 도로 1위를 내주게 된다. 그렇게 20%의 지지율에서 허덕이면서 2014년 유럽의회 선거마저 패하게 되고, 사회당이 리스본 시장으로 인기를 얻은 안토니우 코스타를 앞세우자 이에 대한 반격으로 인민당과 연합해 포르투갈 전진당(이하 전진당)을 결성한다.

그렇게 2015년 총선에서 전진당은 230석 중 102석을 차지해 1위에 오르게 되었으며, 사민당도 그 중 89석[5]으로 원내 1당이 되어 86석의 사회당을 앞서게 되었다. 이 때만 해도 언론들은 총선에서 "여당연합이 승리했다"는 식으로 보도했고, 사회당은 총선 패배로 코스타 대표가 사임할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연합에도 불구하고 과반 의석(116석)에 미달했고(...), 단순 좌우 스펙트럼으로만 보자면 좌파[6]가 이미 과반을 넘겨 실질적으로는 에러가 발생한 꼴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 구성에 난항을 겪게 되었고, 일각에서는 재총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쳤다. 그럼에도 전진당은 일단 단독으로 소수정부 출범을 강행했으나, 어떻게든 코엘류를 끌어내리려고 애를 썼던 좌파 3당(사회당+좌파연합+통일민주연합)이 손을 잡고 불신임을 가결했으며, 이후 코스타가 이끄는 사회당 소수정부가 출범하면서 야당으로 복귀한다.

이후 코스타가 이끄는 사회당의 인기가 좋아진 탓에 사민당은 지지율 20% 대에서 허덕이게 되었으며, 심지어 2019년에는 지지율이 단 20%밖에 나오지 못해 창당 후 최악의 성적까지도 예상되었다. 다만 후이 히우 신임 대표가 토론에서 선방한 덕택에 최악의 성적까지는 막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탈당파가 CHEGA!를 결성했고, 오랜 연대 파트너인 인민당이 역대급으로 몰락해 원외정당으로 전락하면서 전망은 밝지 않은 편. 게다가 사회당이 중도 보수층 입맛에도 맞는 정책을 제법 내놓아 보수층 표도 흩어지고 있다.

[1] 다만 2023년 현재까지도 사민당 내부에 사회민주주의 파벌이 소수 존재한다.[2] 창당 당시에도 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당보단 우측에 있었기 때문에 유럽식 사민주의 정당보단 북미식 리버럴 정당 느낌이 더 강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이시기 사회민주당은 중도 ~ 중도좌파/사회민주주의 성향이였다고 나온다.[3] 훗날 포르투갈 대통령으로 당선된다.[4] 참고로 이 때 새로 취임한 사회당 총리가 훗날 UN 사무총장이 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이다.[5] 독자명부로 선거에 나선 마데이라아소르스의 사민당 지역당은 이와 별도로 5석을 확보했다.[6] 사회당(86석), 좌파연합(19석), 통일민주연합(17석), 사람-동물-자연(1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