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20:50:18

기울어진 운동장/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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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발생 요인
2.1. 권력 구조의 보수 과점2.2. 남북분단을 악용한 북풍과 색깔론2.3. 영남 지역주의와 호남 고립2.4. 언론 환경의 보수 강세2.5. 보수정당의 조직력 우세
3. 반대로 기울어질 가능성
3.1. 지역 구도 약화
3.1.1. 범TK권 역고립
3.2. 기존 보수 정체성의 위기3.3. 언론 환경의 변화3.4. 인구 구조의 변화와 미약한 연령 효과3.5. 민주당의 조직력 향상
4. 결론5. 관련 문서

1. 개요

정치에서 어느 한쪽 정당 혹은 진영이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지형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거나, 또는 그러한 정치적 구도가 지속되는 현상을 축구 경기에서 유래된 용어인 기울어진 운동장에 비유한 말이다.

단순히 특정 정당/진영에게 유리한 선거 국면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리한 지형'이란 선거에서 아무런 변수(이슈, 인물론 등) 없이도 특정 정당/진영이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표 때문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 경우 불리한 쪽의 정당/진영은 시작부터 기울어진 지형 위에서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상대보다 논란을 최소화하고 후보자의 능력, 도덕성을 강조해 인물론에서도 앞서야 겨우 승리할 수 있는 매우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보수정당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유리한 쪽에 서있었고, 후술할 내용도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요인들로 구성되어있다. 다만 201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이런 요인들이 상당부분 희석되어 보수정당에 유리한 지형이 뚜렷이 나타나지는 않고 있고, 오히려 민주당계 정당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바뀌었다는 의견이 나올 만큼 상황이 많이 변화했다.

2. 발생 요인

지금 한국 정치 지형도를 봤을 때, 민주계열 정당은 축구에 비유하자면 0:3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하는 걸 감안하셔야 합니다.
유시민, 2010년 MBC 100분 토론에서
과거 군사정권 시절은 차치하고 제6공화국 시기만 봐도, 1987년 민주화 이후 한동안 대구경북(TK), 부산경남(PK), 전라도, 충청도 4자 지역정당 구도로 나눠졌던 한국의 정치 구도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TK와 PK, 충청도가 대연합해 거대 보수정당 민주자유당이 출범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뒤틀렸다. 때문에 김대중을 위시한 민주당계 정당은 전라도에 고립되는 처지에 놓였고, 보수정당은 지역주의 등을 앞세워 선거 때마다 매우 유리한 위치에서 민주당을 상대해왔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7년 15대 대선에서 비록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승리하긴 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이 연루된 한보 사태IMF 외환 위기에서 비롯된 한 자릿수대 국정 지지율,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보수 표 갈라 먹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 등 김대중 입장에서 온갖 호재가 따라줬고 DJP연합으로 충청도 표까지 끌어왔음에도 불과 1.53%p차로 신승했다는 사실은 당시 한국 정치가 얼마나 보수 진영에게 유리했는지 잘 보여준다. 만약 앞서 말한 조건들 중 단 하나라도 빠졌다면 김대중의 패배는 불 보듯 뻔했다.

민주당이 그나마 대선에서는 지금까지 세 차례 집권에 성공해봤지만, 총선에서는 1990년 3당 합당 이래 2016년 20대 총선 전까지 현직 대통령 탄핵 시도에 따른 전국민적 역풍이 불었던 단 한 번을 제외하면 원내 1당을 차지해본 적도 없는 만년 원내 2당이었다는 사실도 보수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의 증거다.

2.1. 권력 구조의 보수 과점

근대 이후 국가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지배 구조는 전근대 국가에 비해서 매우 세밀하게 분화된 형태로 운영된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인 삼권분립만 봐도, 입법권(국회)과 행정권(정부), 사법권(법원)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며 누군가 독점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또한 행정권을 쥔 정부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사법권을 쥔 법원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말단까지 모든 구성원이 관료제로 묶여있는 거대한 관료 조직이기도 하다. 여기에 여론을 움직일 힘이 있는 언론비영리 단체도 각각 제4, 제5의 권력으로 불리며, 비록 정경유착으로 연결될 여지는 크지만 재벌도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존재감을 가질 만큼 오늘날 민주 국가의 권력 구조는 매우 촘촘하게 나눠져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차지한다 해서 국가권력을 완전히 독점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한데 대한민국의 경우, 국민이 참정권을 온전히 행사하는 것이 1987년에야 가능해진 탓에 국가의 초창기에 기득권을 차지한 이들의 영향력이 아직도 막강한 것이 현실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서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30년 가까이 군부가 권력을 독점했고, 이 시기 형성된 기득권층이 정(政), 관(官), 경(經), 언론까지 장악해 민주화 이후에도 보수의 핵심 세력으로서 명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다 해서, 총선에서 야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한다 해서 단기간에 권력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을 기대하긴 어렵고, 압도적인 국민 여론을 등에 업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2.2. 남북분단을 악용한 북풍과 색깔론

한반도는 1945년 8.15 광복으로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자마자 미군소련군이 주둔하면서 남북으로 분단됐고, 1950년엔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라는 참극을 겪은 바 있었다. 휴전 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는 북한의 대남 도발, 과거 군사정권에 의해 국가적 모토 수준으로 우선시됐던 반공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은 기본적으로 북한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때문에 감정적으로는 강경한 대북 정책을 고수하는 보수가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우선시하는 진보보다 지지를 얻기 쉽다. 특히 전쟁과 무장공비 침투, 반공과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노인 세대에게 호소력이 크다.

실제로 보수 진영에서는 오래 전부터 북한 관련 이슈로 재미를 많이 봐왔고, 심지어는 이것을 조장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해 '북풍'이라 비난 받기 일쑤다. 예를 들어 1997년 15대 대선 직전, 비록 한나라당이나 이회창 캠프 차원에서 저지른 일이 아닌 몇몇 인사들의 일탈 행위이긴 하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이 북측 인사를 만나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처벌된 총풍 사건이 유명하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김대중 등 민주 인사를 '빨갱이'로 규정해 정치적 탄압의 근거로 삼았고, 민주화 이후에도 대북 유화책을 주장하는 진보 세력을 무조건 친북 또는 종북으로 매도하는 일이 잦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이 선거를 보름 앞두고 "더 이상 나라를 범죄자들종북세력에게 내주지 맙시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전국에 걸려다가 수도권 출마자들의 반발에 철회한 적이 있을 정도로 최근에도 보수 진영이 애용하는 선거 전략 중 하나다.

2.3. 영남 지역주의와 호남 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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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합당으로 인한 호남 고립[1]

1990년 3당 합당으로 경상도지역주의를 매개로 단합하면서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 기반인 전라도가 정치적으로 고립된 것도 기울어진 운동장의 큰 요인이다.

3당 합당 이전까지는 경상도에서 대구경북(TK)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 세력을 지지한 반면 부산경남(PK)김영삼을 위시한 상도동계를 지지했고, 전라도는 김대중동교동계를, 충청도김종필청구동계를 지지하는 4자 구도였다. 이러한 구도가 두드러진 선거가 1987년 13대 대선이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여소야대 국면 타개와 김영삼의 대권 도전이라는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리면서 3당 합당으로 경상도 전역이 단합했고, 여기에 군부 세력의 일원인 김종필의 충청도까지 합류하면서 삼남 지방 중 전라도만이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 기반으로 남게 됐다.

3당 합당 이후 첫 대선이었던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지역주의를 선거에 노골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발각되기도 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남이가'로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이다. 당시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부산에 내려가 지역의 주요 정부기관장들과 모인 자리에서 "부산, 경남, 경북까지만 요렇게만 딱 단결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지역감정이 유치할진 몰라도 고향 발전엔 도움이 돼",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등의 발언을 하며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지역감정을 통해 경상도의 단결을 호소하는 선거 전략을 모의한 것이다.

충청도는 오래 지나지 않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해 제3지대로 이탈했고 김종필의 정계 은퇴와 충청권 보수정당의 몰락 이후엔 경합지역으로 변모했지만, 그럼에도 영남과 호남의 인구수 차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민주당에게 불리한 지역 구도는 계속됐다. 예를 들어 총선에서는 (최근 22대 총선을 기준으로) 민주당이 전라도 전체를 싹쓸이해도 28석에 불과하지만, 보수정당이 경상도 전체를 싹쓸이하면 65석까지 얻을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도 경상도의 광역자치단체장은 5명이지만 전라도는 3명인 탓에 시작부터 5:3의 스코어로 보수에게 유리한 게임인 셈이다.

2.4. 언론 환경의 보수 강세

시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정보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언론의 경우, 언론사별로 각자의 정치색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신문 매체에서는 일명 '조중동'이라 불리는 3대 일간지 모두 보수 색이 짙고, 양대 경제신문으로 꼽히는 매일경제신문한국경제신문도 보수 성향을 띤다. 이들은 기업의 광고 및 판촉 행사에서 얻는 수입과 많은 독자 수 덕에 자금력이 넉넉하고 사회적 영향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3대 진보 언론이라는 '한경오'도 종이신문 열독률의 감소 탓에 재벌 등 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어 기득권 세력에 대한 날선 비판이 과거보다 상당히 무뎌졌고, 그마저도 한겨레경향신문진보정당에 더 호의적이지 민주당계 정당차악으로 여기며 비판적 지지를 하는 편이기에 민주당 입장에서는 마냥 우군이라 여기기도 어렵다.

그밖에 언론들도 한경오와 마찬가지로 광고주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에 대한 비판이 날카롭지 않고, 단지 조중동만큼 노골적인 옹호만 하지 않을 뿐이다.

주로 텔레비전을 통해 송출되는 뉴스에서도 보수 성향이 매우 두드러지는데, 지상파 방송은 정권에 따라 성향이 달라진다지만 종편 방송의 경우 TV CHOSUN, JTBC, 채널A, MBN 모두 보수 언론인 조중동매일경제신문에서 소유하고 있고 따라서 보수 성향이 우세하며, 그나마 JTBC 하나만이 신문과는 다르게 중도좌파 성향을 띠고 있다. 이러한 방송 지형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한나라당미디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면서 형성된 것이다.

2.5. 보수정당의 조직력 우세

위의 요인들에 힘입은 보수정당은 지방선거에서도 자주 승리하면서 정당의 조직력을 결정짓는 광역의원과 기초의원도 민주당계 정당보다 많이 확보해왔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한 1991년 지방선거 이후 2018년 7회 지방선거 전까지 광역 및 기초의원 선거에서 민주당계 정당이 보수 진영을 앞선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3. 반대로 기울어질 가능성

모든 것이 다 무너진 것이죠. 탄핵으로 우파 진영이 붕괴가 되었습니다. 정권 교체기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국정 파탄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우리가 질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홍준표, 2017년 7월 25일 KBS2 냄비받침에서
2016년 말, JTBC 뉴스룸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역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거론되기도 했다.

당장 박근혜 탄핵을 사유로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구경북경남을 제외한 전 지역을 차지하면서 2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17.05%p차로 크게 누르고 압승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1주년 즈음하여 치러진 7회 지방선거에서도 대구경북과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의 광역자치단체장을 싹쓸이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수도권에서만 100석 넘게 가져가면서 의석 수 180석에 도달했다.

하지만 일부 정치학자들은 이러한 보수 우위 구도의 붕괴가 2016년 10월 국정농단 사태에서 6개월 전에 있었던 4월 20대 총선에서 이미 시작됐다 보기도 한다. 보수 진영은 2012년 19대 총선18대 대선에서 각각 42.8%, 51.6%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박근혜 정부의 중간평가격이었던 2014년 6회 지방선거에서도 47.1%를 얻었지만, 2016년 20대 총선의 33.5%를 시작으로 2017년 19대 대선(30.8%), 2018년 7회 지방선거(34.8%), 2020년 21대 총선(33.8%)에 이르기까지 득표율이 계속 30%대에서 맴돌고 있는 게 확인된 것이다. 이는 2016년 이전까지 40~50%에 달하던 보수의 지형이 30%대로 크게 내려앉았고, 2019년 이후 조국 사태문재인 정부의 실책이 드러나는 와중에도 지형을 회복하지 못해 보수가 소수파로 쪼그라들었다는 뜻이다.

선거에서 각 정당이 어필하는 모습을 보면 유권자들이 정당을 '쇼핑하듯이' 고르는 것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러한 유형의 유권자는 드문 편이고 대부분의 유권자는 마치 프로 스포츠 팀을 응원하듯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애착과 일체감을 가지면서 지지 정당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매번 결과가 다른 것은 지지 정당이 투표하고 싶게 만들면 투표소에 나오고, 그렇지 않다면 나오지 않는 유권자들의 특성 때문이다. 이것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관계 맺음이고 정치학자들은 이를 정당과 유권자 사이의 '정렬'이라 부른다. 이러한 정렬이 흔들리는 순간이 아주 드물게 존재하는데, 이것은 '재정렬'(Realignment)라 불리며 재정렬이 시작되는 선거를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라 부른다.

그 재정렬의 징후가 나타난 중대선거가 바로 2016년 20대 총선이었다. 보수의 투표연합이 구조적으로 쪼그라들었다는 의미인데, 보수정당 입장에서의 문제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정치적 지형 변화가 일단 발생하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유불리를 만든다는 데 있다. #

3.1. 지역 구도 약화

경상도의 경우 1990년 3당 합당 이래 '우리가 남이가'로 대표되는 지역주의 아래 대구경북부울경이 정치적으로 한 배를 타왔지만, 경상도 인구의 약 60%를 차지하는 부울경에서 과거보다 점차 보수정당의 세가 약해지고 민주당의 세가 강해지면서 단일 대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거제시, 울산 북구동구, 창원시 성산구 등 공단 지대와 낙동강 벨트 일대는 경합지역으로 분류될 정도로 보수세가 많이 약해졌고, 해당 지역 인근에서도 경합지역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역이 여럿 나타나는 등[2]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사실 부울경은 3당 합당으로 보수 진영에 합류한 이후에도, 지역의 맹주 김영삼이 출마한 1992년 14대 대선을 제외하면 선거마다 보수정당 득표율이 대구경북보다 낮은 경향을 보여왔다. 본래 부울경은 공업과 해운업이 발달한 특성상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등 타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이 많아 대구경북보다 주민 구성이 다양한 편인 데다가, 3당 합당 이후 문민정부 시기를 제외하면 대구경북이 민자당계 보수정당의 주도권을 쥐고 '성골' 노릇을 하면서 부울경은 상대적으로 낮은 '진골' 대우를 받았었고, 2002년 16대 대선에서 김해시 출신 노무현이 집권하면서 부울경 기반 민주당계 세력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이곳에서 30% 안팎의 득표율을 기록한 바 있었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이 14대 대선15대 대선에서 10%대 초반의 득표율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나 뛰어오른 현저한 변화다. 이때 부울경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민주당은 친노를 중심으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왔다. 그 결과 2012년 19대 대선19대 대선에서 민주당 득표율이 30%대 후반까지 올라와 40% 돌파를 눈앞에 뒀고, 2016년 20대 총선에선 40석 중 8석을 가져가는 성과를 거뒀다.

보수 진영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자멸한 상태에서 치러진 2017년 19대 대선에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3당 합당 이후 민주당계 대선후보로서 처음으로 부울경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선 민주당이 부울경 세 곳의 광역자치단체장을 싹쓸이하는 결과까지 나타났으며 재보궐선거에서 2석을 더 얻어서 40석 중 10석을 점유하는 초유의 성과까지 나타났다.[3] 그리고 그 이후 21대 총선에선 40석 중 7석으로 지역구 의석은 줄었들었지만, 지역구의 평균 득표율이 40%를 넘겼고, 20대 대선에선 4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얻고, 22대 총선에선 40석 중 6석으로 줄었지만 동부경남, 부산, 울산 전역에서 40%를 넘기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적어도 경합열세까진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한편 3당 합당을 통해 한동안 민주자유당에서 영남과 함께했다가 자유민주연합으로 이탈한 충청도의 경우, 1997년 15대 대선에서 DJP연합에 따라 김대중 후보를 밀어줬고 2002년 16대 대선에선 충청도로의 수도 이전을 공약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등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충청권 보수정당이 선전했던 것과는 별개로 대선에선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충청 지역 맹주인 김종필이 정계에서 은퇴하고 충청권 보수정당까지 맥이 끊긴 이후로는 보수정당과 민주당 어느 쪽에도 쏠리지 않는 정석적인 경합지역이 된 만큼, 민주당 입장에서 충청도에서의 불리함도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TK는 여전히 민주당에게 사지에 가깝지만, PK는 이미 경합 열세 수준까지 올렸고, 충청도도 경합지역이 됐기에 지역 구도상의 불리함이 사라졌다 봐도 무방하다.

3.1.1. 범TK권 역고립

파일:21대 국회 지역구 카토그램(총선 결과).png 파일:22대총선카토그램.jpg
범TK권의 고립을 보여준 사례들

사진의 왼쪽은 2020년 21대 총선으로, 미래통합당은 103석을 얻어 개헌 저지선만 간신히 지켰으나 더불어민주당180석을 차지해 개헌을 제외한 모든 입법 권력을 손에 쥐었다. 오른쪽은 2024년 22대 총선으로, 여당 국민의힘이 108석으로 또다시 개헌 저지선만 사수했고 민주계열 야권[4]에게 188석을 허용하며 참패했다.

특히 수도권에서 민주당은 두 번 연속 100석 이상을 휩쓸어 '수도권 정당'이라는 평가까지 받은 반면 보수정당은 2020년 16석, 2024년 20석에 그쳤다. 충청권에서도 2020년 20:8, 2024년 22:6으로 민주당이 크게 이겼다. 한편 보수의 영남 의존도는 상당히 높아 2020년에는 지역구 84석 중 56석이, 2024년에는 지역구 90석 중 59석이 영남에 위치한 반면 민주당은 지역구 의석의 60% 이상이 수도권에 위치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졌던 영남 vs 호남 구도가 영남 vs 수도권+호남 구도로 재편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는 인천 계양구 을을 지역구로 둔 이재명 대표와 서울에 지역구를 둔 홍익표 원내대표 체제다. 홍 원내대표는 21대 총선까지 서울 중구·성동구 갑에서 내리 3선을 기록했지만 내년 총선에는 서초구 을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정청래(서울 마포구 을박찬대(인천 연수구 갑고민정(서울 광진구 을서영교(서울 중랑구 갑) 등 당 지도부 모두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선출직만 놓고 보면 지도부 전원이 수도권 출신인 셈이다. 이는 민주당의 호남 의존도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음을 보여준다. 호남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게 아니라, 호남 이외에도 국민의힘에 맞설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설령 과거 국민의당 같은 정당이 등장해 그들에게 호남 의석을 상당 부분 내준다고 해도 여당을 견제할 만한 의석을 갖출 수 있는 정당이 됐다. 수도권 지지 기반 덕분이다.
국민의힘, 수도권에서 고전(苦戰)할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 (신동아, 2023. 10. 12.)
영남 고립 시 TK 의원들이 당 주류를 지키면서 수도권·중도 민심과 더 멀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총선 결과도 4년 전부터 이어진 TK 중심의 당 운영과 무관치 않다. 선대위 출범 뒤에도 선거 부담이 적은 TK 출신 의원들이 선거의 큰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짰기 때문이다. 대구 달서구 을에 출마한 윤재옥 원내대표와 경북 영천시·청도군 출신으로 상황실장을 맡았던 이만희 의원 등이 컨트롤타워를 맡으면서 수도권과 충청권 대응이 무디다는 평가가 선거 도중에도 이어졌지만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실패한 한동훈의 실험... "4년 더 영남당에 갇혔다" (한국일보, 2024. 04. 11.)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수도권에서의 진보 우위는 승자독식 방식의 소선거구제가 만들어낸 허상이다'고 주장하나, 실상을 알아보면 보수 진영이 크게 밀렸음이 확인된다. 예를 들어 2024년 22대 총선 지역구 투표에서 서울특별시는 진보[5] 52.30% : 보수 46.29%, 경기도는 54.66% : 42.82%, 인천광역시는 53.53% : 44.88%로 나타났는데, 경기도의 경우 격차가 12%p 정도로 벌어졌고 서울과 인천은 보수 텃밭강남3구, 강화군, 옹진군을 제외하면 나머지 지역에서 모두 10%p 이상 밀린 것이다. 게다가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서울, 경기, 인천에서 모두 보수가 10%p 이상 열세를 보였다.

반면 부울경은 수도권과 달리 보수 우위 지역이긴 하나, 득표율을 살펴보면 민주당의 경합 열세 지역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2024년 22대 총선 지역구 투표에서 부산광역시는 보수[6] 53.97% : 진보[7] 45.93%, 울산광역시 51.37% : 46.52%, 경상남도 55.43% : 42.35%로, 부산과 울산에서는 격차가 한 자릿수로 좁혀졌으며 그나마 10%p 이상 우위를 차지한 경남에서도 동부 경남에 한정하면 한 자릿수 격차를 보였다. 민주·진보 진영은 비례대표 투표에서도 부산은 0~1%p로 매우 근소하게 밀렸고, 울산은 오히려 앞섰으며, 경남은 5%p 가량 밀렸지만 역시 동부 경남만 보면 약 2%p 차이로 밀린 창원시 의창구 외 전 지역에서 1%p 미만 열세였거나 오히려 앞섰다.

이를 감안하면 '영남 고립'이라고 말하기는 하나, 흐린 눈으로 봐야 영남 고립이고 자세히 보면 보수정당이 확실히 앞설 수 있는 지역은 대구·경북과 서부 경남밖에 남지 않아 사실상 '범TK권 고립'이라 불러야 할 지경까지 온 것이다.

3.2. 기존 보수 정체성의 위기

대한민국 보수가 겪는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보수 정신’의 부재다. 참패를 거듭하면서 “바보들의 무리”라고 조롱받던 미국 보수주의가 부활할 수 있는 사상적 기초를 정립한 것은 러셀 커크의 ‘보수의 정신’이란 책이다. 그는 ‘불변하는 도덕적 질서가 있다는 신념’, ‘획일성과 평등주의 배격’, ‘계급 없는 사회’가 아니라 ‘질서와 위계의 필요’, ‘위대한 문명은 사유재산권을 토대로 수립’ 등을 보수의 핵심 기둥으로 삼았다. 이런 보수 정신은 청년 보수 운동의 기반이 됐고, 궁극적으로 위대한 보수주의자 레이건 대통령의 탄생을 견인했다.
한국에는 보수는 있지만 보수 정신은 없다. 정신이 흔들리면서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됐다. 일각에선 ‘보수 정체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김종인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요즘 어떤 사람들은 ‘보수정당 정체성’ 운운하며 더욱 더 보수적으로 보이기 위해 안달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보수주의가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을 해소하기 위해선 한국 보수의 정신을 분명히 하고, 이를 토대로 보수주의 원칙과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면서 국민에게 현실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좋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에 보수는 있지만 ‘보수 정신’이 없다” (신동아, 2024, 07. 23.)
근본 원인은 민주화 이후 보수정치가 독재 시대의 유산과 단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독재를 겪은 많은 나라에서 보수정치는 그런 역사적 과제에 직면했다. 보수가 이 문턱을 넘은 나라에서 정치발전이 가능했다. 일례로 독일기독민주연합나치 패망 이후 보수적 가치를 바탕으로 노동·복지·젠더·환경 등 개혁의제를 포용한 국민정당이 되어갔다.
‘어쩌다 윤석열’…한국 보수정치가 이렇게 된 3가지 이유 (한겨레, 2022. 08. 24.)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은 단연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하면서 반공국시(national motto)로 내걸었다. 또한 공산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민족의 번영을 이루기 위해선 정치 안정 및 경제 성장과 근대화를 우선해야 하며, 서구식 민주주의의 실현은 유보할 수 있다는 개발독재 논리는 장장 18년 동안 그의 권력을 뒷받침했다. 비록 장기 집권과 독재 권력 강화를 위해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사회 운동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고 여러모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한 독재자였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지만, 박정희 정부 18년의 경제적 성과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실로 놀라운 것으로 그의 사후 대한민국이 북한을 완전히 압도하고 지역강국이자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토대가 됐다.

1987년 6월 항쟁6.29 선언, 9차 개헌을 통해 비로소 독재 정권이 종식되고 민주화가 이뤄진 제6공화국 체제에서도 보수 세력은 한국 정치의 주류로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독재 정권의 후신이라는 빈약한 도덕적 정당성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냈다는 '안보적 자부심'과 가난한 나라를 선진국으로 일으켜 세웠다는 '경제적 성취'가 이러한 약점을 봉합해왔다. 박정희 시대의 '성장 제일주의'는 '시장 보수' 이명박 정부에게, '반공 권위주의'는 '안보 보수' 박근혜 정부에게 계승됐다.

한국 보수는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경제, 즉 자유를 핵심 가치로 삼아왔다. 자유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의 이름에도 애용된 단어가 바로 자유다. 그러나 이들이 사랑한다는 '자유'가 과연 어떤 의미인가?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철학 중 하나는 토마스 홉스사회계약론인데, 그의 사상에는 국가주의 색채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국가전쟁과 같은 외부의 위협, 반란과 같은 내부의 무질서와 혼란을 막기 위해 시민들의 계약으로 성립된 필요악으로 정의했고, 따라서 국가는 체제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유일하게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속의 신'으로 간주됐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가 힘이 없어 일제강점기남북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20세기 한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자연스레 6.25 전쟁 이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가장 큰 사명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내부의 무질서를 제압하는 것으로 설정됐다.

때문에 8.15 광복 이후 서구 정치 체제를 이식받은 대한민국은 명목상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긴 했지만, 한국에서 이것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자유세계, 즉 반공주의진영논리의 의미가 강했다. 독재 정권 아래서 '공산주의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통치자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국가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포장돼 사상 통제를 위한 재갈로 작용했고, 지금까지도 많은 보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반공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며, 그런 탓에 한국 보수는 정작 표현의 자유 등 서구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를 외면해왔다.

또,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 자체도 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서방세계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확산시켰던 냉전은 1991년 막을 내렸고, 시간은 [age(1991-12-26)]년 이상 흘렀다. 공산권의 수장이었던 소련공산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러시아 연방으로 탈바꿈했으며, 중국도 1980년대부터 개혁·개방을 통해 실질적으로 탈공산주의의 길을 밟아왔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주체사상핵개발에 집착하는 사실상의 전제군주제, 신정 국가로 전락했다. 2010년대 후반 이후 서방과 중국·러시아의 신냉전이 본격화하고 있다지만, 중·러가 과거 냉전에서 공산권에 속했던 것과는 별개로 공산주의라는 이념은 이미 힘을 잃은 지 오래며 신냉전의 구도도 공산주의 vs 반공주의가 아니다.

그럼에도 2022년 20대 대선 당시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멸공 챌린지,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에서의 '공산전체주의' 발언 등 보수 진영은 철 지난 색깔론에나 매달리면서,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민주 진영에서는 지역주의 타파, 지역균형발전, 양극화 해소, 복지국가, 탈권위주의, 성평등, 남북 화해·협력 등 성과 및 평가와는 별개로 새로운 비전을 많이 내놓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반공과 친재벌 기조만 답습할 뿐 이렇다 할 개혁적인 비전이 없었다. 사실 보수 진영에서 새로운 비전을 전혀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2021~2022년 국민의힘 당권을 잡은 이준석 등 신진 보수 세력이 개인주의, 능력주의, 문화적 자유주의, 세대포위론 등을 내세우며 기성 보수와 다른 길을 개척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으나, 윤석열-이준석 갈등 끝에 이준석 대표 체제가 붕괴되면서 금세 무위로 돌아갔다. 아직까지는 군사정권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는 '산업화 세대'(1950년대 이전 출생자)가 적잖게 생존해 있어 호응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인간 수명의 한계는 거스를 수 없기에 고령인 이 세대는 타 세대보다 그 수가 빠르게 줄어들기 마련이다.

보수 진영은 그동안 항상 유리한 지형에서 정치를 해왔다. 지역적 기반인 영남의 인구와 의석수가 다른 지역을 압도했고,[8] '산업화 세대'로 불리는 기성 세대도 많은 인구와 높은 투표율로 보수를 뒷받침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보수 진영은 현실에 안주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국민보수주의, 권위주의에서 나아가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민주 진영은 3당 합당으로 형성된 호남에서의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인구가 많은 PK 지역을 꾸준히 공략하며 진보적 의제의 설정을 멈추지 않은 결과 지금과 같은 역전을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보수 진영이 그저 영남 & 노인의 정당에 머무르는 것에 안주한다면, 보수 진영에서 진정한 자유주의가 수용될 일은 없을 것이다.

3.3. 언론 환경의 변화

언론 환경에서의 기울어진 운동장도 상당히 희석된 상태다. 이미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부터 당시 청년층은 보수 우위의 기성 언론이 아닌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도 정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21세기 들어선 정보통신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팟캐스트 등 신형 미디어가 출현했다. 특히 2010년대 초 전국민적인 스마트폰 보급으로 유튜브의 생활화가 이뤄지면서 일방적인 정보 전달의 한계를 가진 기성 언론의 권위가 많이 추락한 상태다.

3.4. 인구 구조의 변화와 미약한 연령 효과

2024년 기준 세대별로 봤을 때 국민의힘은 60대 이상에서, 더불어민주당은 40~50대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는다.

그러나 1960년 이전에 태어난 현 60대 이상은 점차 고령으로 수가 줄어드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이 우위인 1960년대생은 해마다 60대에 진입하고 있고, 10년 후에는 1970년대생도 60대가 되기 시작한다는 사실은 민주당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보수정당에겐 재앙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세히 기술하자면, 일명 '산업화 세대'(~1950년대생)의 인구는 4년에 한 번씩 총선을 치를 때마다 인구가 약 100만 명씩 자연 감소하고 있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1,388만 명이었던 인구가 2016년 20대 총선 1,294만 명, 2020년 21대 총선 1,196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다시 4년이 지난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1,087만 명으로 23대 총선이 치러지는 2028년에는 967만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유권자에서 산업화 세대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2년 34.8%에서 2024년 24.3%로 이미 3분의 1 가까이 감소했고 2028년에는 21.4%까지 줄어든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지지 기반으로 꼽히는 1961~1980년생은 2012년 1,698만 명에서 2024년 1,666만 명으로 4년마다 10만 명씩 줄어드는 데 그쳐 2028년 유권자 중 차지하는 비중은 36.4%에 달할 전망이다.

여기에 '나이가 들면 보수화한다'는 연령 효과의 통념도 깨지고 있다. 산업화 세대가 50대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2012년에는 50대의 43%가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이들이 60대 이상으로 넘어간 2024년에는 50대의 53%가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을 지지한 것이다.

또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지방 소멸도 보수정당에게 큰 타격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전국 인구감소지역 시군구는 총 89곳인데, 양당의 지역구 중 인구감소지역 비율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161곳 중 16곳으로 10% 정도에 불과한 반면 국민의힘은 90곳 중 27곳으로 3분의 1에 육박한다. 이는 당연한 결과인데, 지난 2020년 21대 총선과 2024년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두 번 연속 수도권에서 100석 이상을 가져갔지만 국민의힘은 20석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가 당장 지방의 지역구를 빠르게 통폐합하진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초당적인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소멸은 막을 수 없는 현실이기에 보수정당 입장에선 결코 안일하게 바라봐선 안될 문제다. 결국 보수 언론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중앙일보 한국경제

3.5. 민주당의 조직력 향상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기초의원의 56.03%, 광역의원의 78.65%를 싹쓸이하면서 민주당계 정당이 사실상 처음으로 보수정당 이상의 지방 조직력을 갖추게 됐다. 특히 그동안 민주당 조직력이 약했던 부울경강원도에서도 광역 및 기초의원을 쓸어 담은 것이 고무적이었다. 윤석열 정부의 허니문 선거였던 2022년 8회 지방선거에서 비록 자치단체장은 크게 빼앗겼지만, 기초의원은 국민의힘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수는 약 240만 명, 국민의힘 책임당원 수는 약 80만 명으로 후원당원 수도 차이가 크다.

4. 결론

위 요인들을 종합해서 보면, 2020년대가 된 지금은 민주당계 정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울어진 운동장이 역으로 뒤집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는 2010년 유시민의 발언처럼 축구 경기로 치면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0:3, 때로는 0:5에서도 시작해야 했지만, 201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한 골 차이까지 좁혀졌으며 경우에 따라 3:0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실 2015년까지만 해도 경상도 전역에서의 보수 우위와 수도권충청도에서의 백중세 때문에 '보수 20년 집권론'까지 나돌았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총선에서 180석 이상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할 정도였다.# 그러나 2016년 20대 총선 정국에서 여당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공천을 주겠다'는 황당한 논란으로 당내 잡음을 일으킨 탓에 더불어민주당에게 참패했고, 연말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민심을 완전히 잃고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대통령까지 배출하면서 수십 년 동안 누려온 보수 우위의 정치 지형이 대거 붕괴해버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상대가 자멸해버린 덕에 2017년 19대 대선, 2018년 7회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180석을 확보했다. 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승리하지 못한 권역은 대구·경북(TK)뿐이었고, 7회 지방선거에서도 자유한국당이 수성한 권역은 대구경북뿐이었다. 따라서 그간 민주당이 전라도에 고립되었던 구도가 완전히 뒤집혔고, 되려 보수정당이 TK에 고립되는 구도로 바뀌었다. 특히 21대 총선에선 180석은 물론이고, 수도권에서 겨우 15석을 건진 미래통합당과 달리 민주당은 103석을 차지하면서 이견의 여지가 없는 수도권 정당으로 도약했다. 민주당도 '진보 20년 집권론'을 꺼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19년을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토 여론이 강해지면서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의 참패를 시작으로 20대 대선에선 정권교체를 당해야 했고, 대선 3개월 후 치러진 8회 지방선거에서도 허니문 선거의 특성상 전라도제주도, 경기도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오래 지나지 않아 2024년 22대 총선에서 직전 총선과 거의 같은 규모의 압승을 거두면서 범진보 190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확보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충청도에서 각각 102석, 22석을 쓸어 담아 20석, 6석을 가져간 국민의힘을 완전히 압도했고, 부울경에서도 40%에 근접한 득표율로 선전하는 결과를 얻었다. 보수 진영으로서는 2021~22년 주요 선거 3연승을 달리면서[9] 잠시 보수 우위 지형 복원이라는 달콤한 꿈을 꾸기도 했었지만, 22대 총선에서 근본적인 정치 지형의 변화만 확인한 꼴이 됐다.

더욱이 보수정당이 다시 집권하고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실정을 벌이자 국민들이 보수 자체에 등을 돌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박근혜로 인해 보수 자체가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었는데, 그것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민자당계 보수정당 자체가 붕괴되고, 중도·진보 빅텐트 정당의 장기간 일당우위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10] 이렇게 된다면 한국의 정치 지형은 이웃나라 일본의 그것을 성향만 반대로 뒤집은 격이 될 것이다.

5. 관련 문서



[1] 왼쪽은 1987년 13대 대선, 오른쪽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첫 대선이었던 1992년 14대 대선. 1987년에는 부산경남대전충남이 각각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텃밭이었으나 3당 합당을 거쳐 모두 거대 보수정당 민주자유당의 지지 기반으로 바뀌었음을 14대 대선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2] 울산 울주군, 부산 기장군, 창원시 진해구가 대표적이다.[3] 3당 합당 이후로 민주당계 정당이 해당 지역에서 두 자릿수까지 들고 간 건 2018년이 처음이였다.[4]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5] 더불어민주당 + 진보당.[6] 국민의힘.[7] 더불어민주당 + 진보당.[8] 한국 내 권역 중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수도권이지만, 수도권은 인구 구성이 매우 다양하다는 걸 고려하면 단일한 정체성을 갖고 있는 지역 집단으로서는 영남에 비견될 만한 곳이 없다. 호남+충청+강원+제주를 모두 합쳐야 겨우 영남 전체 인구와 비슷해진다.[9] 2021년 재보궐선거,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하지만 뜯어보면 보수 진영이 확실히 이겼다고 볼 만한 선거는 사실상 없었다. 2021년 재보궐선거의 경우,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열리게 된 책임부터가 더불어민주당에 있었기에 국민의힘이 지는 게 이상한 선거였고, 특히 부산은 보수 텃밭이므로 더더욱 그러했다. 20대 대선은 윤석열이 당선되긴 했으나 2위 이재명과의 격차가 0.73%p에 불과한 진땀승이었고, 8회 지방선거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치러졌기에 국민의힘이 압승하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는 선거 승패의 키를 쥐고 있는 중도층의 투표율이 낮다는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10] 이 경우 민주당계가 국회의 3분의 2 가량인 200석 내외를 장악하고, 나머지 3분의 1을 보수계, 진보계 군소정당들이 나눠 갖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다만 민주당도 빅텐트 정당인 만큼 내부에서 진보파와 보수파의 알력 다툼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민자당계 보수정당의 궤멸 후에는 민주당이 분열되어 민주당 내 일부 보수파와 민자당계 출신 온건파의 연합이 진보파 중심의 민주당에 맞서는 새로운 양당제 구도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진보파와 보수파는 지지 기반이나 이념적 차이는 은근 큰 데다가, 공동의 적을 누르기 위해 손잡은 면이 크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민주당 진보파를 상징하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보수파를 상징하는 새천년민주당이 분열되어 극심한 갈등을 빚다가 한나라당에게 다 털어 먹힐 것 같으니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다시 결집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공동의 적이었던 거대 보수정당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는 이들의 결합이 느슨해지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