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00:07:59

영남후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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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후보론의 효시격인 노무현 전 대통령

1. 개요2. 과정3. 영향4. 20대 대선5. 호남불가론?6. 비판7. 같이 보기

1. 개요

영남후보론()이란, 민주당계 정당이 비록 호남(전라도)을 주요 기반 중 하나로 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호남 출신 후보가 아니라 영호남 인구수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호남 뿐 아니라 영남(경상도) 쪽에서도 어느 정도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개혁 성향의 영남 출신 후보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호남은 민주당의 압도적 텃밭으로 굳어져 있기에[1], 민주당 후보로 호남 출신이든 영남 출신이든 누가 나와도 어지간해선 절대적 지지를 먹고 들어간다. 그런데 나아가 영남에서도 이기거나 최소한 선전하려면 영남에 출신지나 활동 경력이 있는 영남 후보 쪽이 호남 후보나, 연고지 이득 자체를 보기 힘든 수도권 후보[2]보다 정치공학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15대 대선 이전부터 정계에서 논의되던 것이었으나, 실제로 구현된 것은 16대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이뤄졌다. 뒤이어 민주당의 정당의 세 번째 문재인 대통령도 노무현과 연계된 영남 출신 후보로 이와 연관이 있으며, 현재까지도 이 영남 후보론은 직·간접적으로 민주당계 정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수정당에서도 영남후보론이 검토된 적이 있는데,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총재에 반대하며 영남후보론에 근거해 대선 후보로 박근혜, 정몽준 등이 거론된 바 있다.[3] 앞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공천 물갈이[4]로 생긴 당내 反이회창 기류속에서 2000년에 TK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던 허주 김윤환 의원과 PK지역에서 영향력이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역적 연대를 이뤄 정권을 창출하자"면서 영남후보론, 영남정권 재창출론을 언급한바 있다.[5]

이 영남후보론은 킹메이커라 불리는 김윤환(허주) 전 의원의 구상이기도 했다. 이회창에게 토사구팽(공천 물갈이) 당한 복수를 하기 위해 한나라당에서는 YS와 함께, 민주당에서는 박지원과 함께 추진했던 것. #

2. 과정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계 복귀를 선언한 김대중에게 이기택 통합민주당 총재가 DJ는 영남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DJ 불가론으로 물고 늘어졌다. 재야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는데 특히 대표주자가 바로 유시민이었다. 자신의 저서인 《97대선 게임의 법칙》에서 김대중 불가론과 더불어 DJ가 아닌 제3의 후보를 내세워야만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6][7]

그러나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40만 표차의 차이로 이회창 후보에 신승을 거두면서[8] 이런 주장은 한동안 들어갔다. 하지만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영남을 석권하고 수도권에서 선전해 새천년민주당에 승리를 거두고[9], 대통령 임기 말에 터져나온 온갖 비리들이 조금씩 레임덕을 가속화시키고 있었고, 결정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이 비리를 저지르다 걸린 이른바 ‘홍삼 게이트’[10]를 비롯한 각종 게이트 사건으로 국민의 정부레임덕에 들어서자 소장파 측에서는 국민참여경선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그 이후 치러진 경선에서 초반에는 이인제 대망론과 충청 대망론을 등에 업은 이인제 후보가 새천년민주당의 후보로 무난하게 올라갈거란 예측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광주광역시의 경선 직전 문화일보의 설문조사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을 아주 근소하게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이 결과 하나로 광주 경선에서는 전략적 투표로 노무현이 경선에서 승리하는 이변이 일어나게 된다. 이후 노풍을 일으키며 민주당 경선을 뚫었고, 결국 대선에서도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3. 영향

노무현은 영남 출신에다, 김영삼의 추천으로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가 나중에 3당 합당에 반발해 갈라섰으므로 대선 전부터 민주당 내 비주류 계열이었다. 그런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여당이었음에도 새천년민주당의 주류였던 호남, 동교동계와 새로이 주류로 떠오른 노무현 사이에 심각한 대립이 있었다. 이 와중에 한나라당이 밀어붙인 대북송금 특검 법안에 대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심끝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승인하면서 호남과 김대중 전 대통령 지지 세력 사이에서 노무현과 친노 세력에 대한 민심이 악화되었다.[11] 이런 상황에 노무현 집권 이후 민주당 내에서 당을 장악하고 있는 구주류 동교동계에 대해서 신주류 친노세력이 일제히 정치개혁을 요구하면서 대립이 격화되었고, 양쪽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12] 결국 2003년 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노 세력이 탈당해서 신당 열린우리당을 창당하게 된다. 그 후 친노가 빠져나간 새천년민주당한나라당, 자민련의 동참을 받으며 노무현 탄핵소추를 주도했다. 그 외에도 재임 중에 전라도 정치인(국회의원) 들하고 정치를 못해먹겠다, “호남민들이 나를 찍은 이유는 이회창이 싫어서“라는 투의 발언을 말한다던지, 임기가 끝난 후에도 인터넷을 통해 '땅짚고 헤엄치려는 호남 정치인들과 호남표 받아 당선되려는 수도권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거나 '호남 단결로는 영원히 다수당이 될 수 없다'는 발언을 하여 구민주계(특히 호남 출신) 정치인들과 갈등을 일으켰다.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도 본인도 영남 출신이다, 영남후보론의 원조인 노무현의 동반자라는 정체성을 내걸고 부울경에서 이전 대선보다 크게 늘어난 40% 가량의 지지를 주축으로 하여 당선되었으므로, 이 영남후보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문재인이 당선된 19대 대선의 경우 수도권에서 워낙 크게 승리해서 부울경에서 졌어도 충분히 이겼을 선거였다. 19대 대선은 보수정당이 궤멸 위기에 처했던 특수상황이었므로 문재인의 경우 오히려 낙선한 18대 대선을 분석해봐야 하는데 이 때도 부울경에서 40% 가량을 득표해서 표차를 많이 줄였지만 수도권에서 무승부에 그치고, 충청도에서 패하면서 결국 낙선하고 말았다.

노무현 사후에 호남계 인사들과 친노 계파와의 갈등은 심해졌고, 결국 호남계 인사들은 안철수를 중심으로 국민의당을 창당한 뒤 제 3지대론과 친노의 호남소외론을 선거전략으로 들고 나왔다. 그 결과 20대 총선 당시 호남에서 5석을 제외하고 남은 23석을 싹쓸이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 직후 대선에서 패배한 국민의당이 분당되고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지역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하게 되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고 2020년 기준으로는 영남후보론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앞서 말한 호남계 인사들이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영향력이 크게 떨어졌고,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압도적인 지지 기반을 확보한데다 호남 출신인 이낙연국무총리가 꾸준히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호남 후보로도 승리가 가능하다'라는 공감대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4. 20대 대선

2021년 기준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인 이재명경기도지사가 한때 떠올랐던 이낙연을 누르고 대권후보로 추대되면서 다시 영남후보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강성 지지층을 제외한 호남의 대다수 민주당원들과 민주당 지지층들은 단순히 같은 지역 출신보다 확실히 이기면서 호남의 명예와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민주당 후보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어찌 될 지 알 수 없다.

물론 이재명은 그동안의 영남후보론과 차이점도 많다. 일단 노무현문재인민주당 지지세가 어느 정도 있는 부울경 동부 지역 출신인데다 부산에서 법조인, 정치인으로 활동한 이력이 길다. 특히 노무현은 험지였던 부산에서 세 차례나 낙선해 가며 도전했다는 이력이 있다. 반대로 이재명의 출신지는 국민의힘 지지세가 대경권에서도 강한 축에 드는 경북 북부 지역 출신인데다 태어난 곳[13]안동일 뿐 대경권과 접점이 없다. 그리고 현재도 문중의 영향력이 강한 안동에서 주류 가문이 아닌 경주 이씨다보니 고향인 안동에서도 입지가 약하다.[14] 즉 그동안의 영남 후보론은 후보 본인의 연고지를 통해 영남에서 어느 정도 표를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었는데, 이재명의 경우 본인의 성장, 정치행적에 더해 전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대경권의 성향상 연고지 덕을 유의미하게 보기 어려우며, 그나마 민주당세가 좀 있는 부울경과는 출신지로는 더욱 접점이 없다. 결국 20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광주전남에서는 이낙연이 초접전승했지만, 호남에서도 비주류라서 민주당 내 비주류에 대한 지지가 강한 전북에서는 이재명이 압승했다.

실제 대선에서는 고향 안동에서 약간의 출신지 버프[15]를 받기는 했지만 경북 내에서 실질적인 득표를 끌어내진 못했고 자신이 정치활동을 주로 해 온 경기도에서 선전했으나 결국 윤석열에게 패배했다. 결국 이전에 승리했던 두 대통령의 영남후보론 효과를 제대로 보진 못했다. 이재명의 경우 부울경이 아닌 대경권 출신이라 영남 출신 후보인 것이 영향을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부울경에서 18대 대선에서의 문재인과 비슷할 정도로 표차를 줄이기는 했다. 물론 18대 대선에서 영남박근혜의 위상이 어마어마했던 것을 비교하면 윤석열의 입지가 약한 것도 맞다. 하지만 18대 대선에서와 비슷하게 수도권의 경우 경기, 인천에서는 이겼지만 서울에서 지면서 생각보다 크게 이기지 못했고[16], 역시 충청도에서 패하면서 낙선하고 만다. 따라서 부울경에서 아무리 표차를 줄이더라도 아예 부울경에서 이길 정도가 아닌 이상, 수도권충청도에서의 승리가 영남후보론이 통하기 위한 핵심요소임을 알 수 있다.

5. 호남불가론?

  • <조선일보>이재명 ‘백제 발언’에… 이낙연 “호남 불가론인가” 반발. 20대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낙연과 이재명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이재명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이재명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해 이낙연 전 대표가 당대표 전당대회에 출마할 무렵 만난 일화를 소개하면서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백제·호남 쪽이 주체가 돼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며 “당시에 이낙연 전 대표가 전국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고 계셔서 이분이 나가서 이긴다면 역사(歷史)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후로 지지율이 많이 바뀌어 버렸고 지금은 제일 중요한 게 확장력”이라면서 “전국에서 골고루 득표 받을 수 있는 후보가 저라는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낙연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호남 출신 후보의 확장성을 문제 삼은 중대한 실언”이라고 반발했다. 이낙연 캠프의 배재정 대변인도 논평에서 “이재명 지사는 ‘호남 불가론’을 내세우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이재명 지사도 페이스북을 통해 "호남 출신의 이낙연 전 대표가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는 덕담이었다"고 반박했다. 이 지사는 “(이낙연 캠프 측에서) 지역주의 조장을 하지 말자면서 되레 망국적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지금이 삼국시대냐”면서 “정치적 확장력을 출신 지역으로 규정하는 관점은 사실상 일베와 같다”라며 최악의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 16대 대선을 앞둔 2000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이제는 국민들이 정서상 호남인을 계속 당선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영남인 지지를 받지 않으면 대통령에 당선되기 어렵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언론인협회 발행 `정경뉴스' 와의 인터뷰에서 4.13 총선후 거론되고 있는 `영남대권론'(영남후보론)에 대해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YS "영남 지지받아야 정권창출" YS는 앞선 1999년에 '민주산악회'(민산)을 재건하면서 `영남정권 재창출론'을 거론했으며, "나는 나라를 바로 잡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다음 대통령에 누가 되느냐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 유시민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영남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선 후보는 당선되기 어렵다'는 내용의 `김대중 불가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 김종인은 2016년에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됐는데, 김 비대위원장은 광주에 방문해 '호남불가론'을 언급하며 호남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호남이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는 소외되는 아픔을 겪었다며, 김대중 대통령 이후 호남 출신의 유력한 대권 주자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가슴 아픈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더불어민주당에서 ‘호남불가론’은 사라진 용어가 될 것”이라며 “호남의 참신하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역동적이고 포용력 있는 대권 주자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6. 비판

  • 2000년에 국민일보에서는 영남후보론에 대해 "지역정서 부추기지 말라"고 비판했다. 당시 김윤환 전 의원이 “차기 정권은 영남인이 지지하는 인물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서 “지역적 연대로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김 전 대통령도 이 점에서는 간간이 유사한 입장을 드러내 보이고 “영남인 지지를 받지 않으면 대통령에 당선되기 어렵다”고 강조한 적도 있다면서 이를 비판했다. 국민일보
  • 변희재는 서양에서도 자기 지역 정치인 몰표주는 양상이 흔히 보이듯이 호남에서 김대중 몰표가 나온 것을 지역주의로 보지는 않는다면서, 민주당의 영남후보론이 오히려 지역주의라고 비판했다. 다만 노무현 대선후보 선출까지는 당위성이 있었다면서 그 이후의 양상에 대해 비판했다. 덧붙여 민주당에서 호남 출신 대선 후보가 나올 경우 DJ가 그랬던 것처럼 영남, 강원 등에 확장성을 위해 중도화, 우클릭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지금의 민주당에서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과를 비판하더라도 동시에 공도 인정하는 모습은 보일 것이라면서, 정권만 잡으면 이념전쟁만 벌어지는 행태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보수 측에서도 중도화 측면에서 진보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 중 맞는 말에는 귀를 귀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상

7. 같이 보기


[1] 정확히 말하면 역사적 이유로 그러한 짓을 자행한 군사독재정권의 사실상 후신인 민자당계 정당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지역민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민자당계 정당이 아닌 제3정당을 모색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20대 총선 국민의당 돌풍.[2] 이주민이 많은 수도권에서는 출신지에 연연하는 성향 자체가 약하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로 나올 정도의 중견 정치인이라면 대개 수도권 기반 중앙정치 경력도 가지고 있다.[3] 박근혜 의원 탈당, '영남후보론' 수면위로 떠오르나[4] 마찬가지로 나중에는 이회창도 비슷한 처지가 됐는데,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 반대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했었던 이회창은, 대선 직후 있었던 18대 총선에서 친이계에 의해 친박계, 이회창계가 컷오프 되자 보수야당인 자유선진당을 창당하고 소위 '이삭줍기'를 하는 신세가 되었다.[5] YS-허주, 다시 ˝우리가 남이가˝[6] 제3의 후보로는 강원도 출신으로 영호남 지역감정과 아예 무관한 조순서울시장이 주로 거론되었다.[7] 유시민은 영남 출신의 후보, 즉 노무현 만이 한나라당을 꺾을 수 있다는 논조를 2002년에도 지속적으로 설파했다.[8] 물론 나라 경제가 거의 망하다시피한 1997년 외환위기, 이인제의 독자출마에 따른 영남표 분산 및 보수진영의 분열, 이회창 아들들의 병역의혹, 충청도와 보수진영을 끌어들인 DJP연합 등 다양한 변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이회창에게 불리한 악재들을 쏟아냈는데도 겨우 40만표 차로 석패했다는 것은 정치구도가 민주당에게 불리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물론 이회창 후보의 이미지가 좋고 대쪽 같은 행보에 지지율이 높았던 것도 맞다. 이회창이 은퇴한 이후로 보수정당은 이만한 역량의 후보를 좀처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9] 출구조사에서는 민주당이 제1당으로 예측됐지만 개표결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한나라당이 133석을 가져가며 제1당이 되었다. 다만 출구조사는 전통적으로 실제 결과와 무관하게 여당이 우세하다는 결과인 경우가 많다.[10]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 ‘홍’ 자 돌림을 쓰기 때문에 그들을 일컬어 홍삼이라고 불렀다.[11] 당시 호남 민심은 대북송금 특검이 결국은 DJ를 겨냥한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라고 인식하고 있었다.[12] 핵심은 결국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누가 당권, 공천권을 가지냐의 문제였다. 동교동계와 호남 중진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했고, 반면에 친노 진영은 진성당원제, 당원 경선에 의한 상향식 공천 등을 주장하면서 구주류의 기득권을 무너트릴려고 했다.[13] 어렸을 때 성남 상대원동으로 올라와 소년공 생활을 했고 이 지역을 기반으로 변호사 생활을 했으며 성남시장 - 경기도지사 테크를 차근차근 밟았다. 사실상 경기도가 지역기반인 셈이다.[14] 부인인 김혜경 씨가 안동 김씨이긴 하나, 아무래도 후보 본인이 안동 지역 명문가인 것보다는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15] 약 30% 정도의 득표율을 획득했다.[16] 18대 대선에서 문재인은 정반대로 서울에서 이기고 경기, 인천에서 패배했다. 결과가 뒤집힌 것은 서울의 인구가 계속 경기, 인천으로 유출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