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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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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변희재(邊熙宰)
출생 1974년 4월 22일, 경기도 강화군[1]
본관 원주 변씨
신체 183cm[2], 67kg[3], A형
소속 정당 무소속[4]
학력 반포초등학교
반포중학교
경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미학 학사
가족 비혼
종교 무종교(무신론)
현직 미디어워치 대표고문
링크 트위터 블로그[5]

1. 소개2. 활동
2.1. 우익 논객으로서 보이는 행보2.2. 국회의원 출마2.3. 탄핵 심판 이후2.4. 19대 대선 및 그 이후
3. 사건사고/논란
3.1. 낸시랭과의 토론3.2. 공지영 외모 비하 발언3.3. 위안부 할머니에게 막말3.4. 세월호 시위는 폭동 발언3.5. 메르스 관련 발언3.6. 노무현에 대한 고인드립3.7. 프랑스 혁명을 부정하는 발언3.8. 각종 명예훼손 소송 피소3.9. 고기 먹튀 논란 (변리바바 사건)3.10. 응답하라 1988 발언 논란3.11. 윤한봉의 무기고 답사가 '광주사태'에 대한 증거다?3.12. 탁현민 고소 사건3.13.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논란
3.13.1.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3.13.2. JTBC 태블릿 조작 주장에 따른 피소3.13.3. 구속3.13.4. 재판
3.13.4.1. 1심: 징역 2년3.13.4.2. 2심: 재판진행중
4. 여담5. 선거이력6. 저서

1. 소개

대한민국우파 정치 평론가이자 미디어 비평가, 정치인.

2. 활동

인천광역시 강화군 출신이지만 서울 용산구서초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반포중학교, 경문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해서 1994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였다.[6] 병역카투사로 마쳤다.

1999년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8년 월간조선의 기사로 소위 최장집 사상논쟁이 일어나자, 강준만, 고종석, 김정란, 진중권, 김규항, 홍세화 등 당대의 자유주의좌파 성향 지식인들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비중있는 매체인 조선일보를 무소불위의 언론권력이라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비판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고, 여기에서 변희재는 처음에는 무명의 행동대원 정도였지만 곧 왕성한 활동으로 인터넷상에서 안티조선 운동의 전사라는 평가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연치 않은 계기로 시작돼서, 명확한 노선과 행동강령이 없었던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환경의 변화나 조선일보의 영향력 쇠퇴보다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 활용되는데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했던 지식인들은 2002년 이후 각자의 신념에 따라서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그 뒤, 안티조선 운동과 인터넷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변희재는 1999년 창립된 진보성향의 인터넷 언론 대자보를 포함해서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인터넷 출신 논객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게 된다. 이때, 사사로운 자리에서는 자신의 서울대 미학과 선배인 진중권을 띄어주는 글도 여러 차례 기고하기도 했다. "진중권은 이 사회에 보기드문 상식적인 좌파이자, 유쾌하게 세상을 사는 분"이라고 띄어주면서 심지어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가 자신의 학문적 길라잡이라고 칭송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는 대자보가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하자, 아예 친노 사이트 서프라이즈로 자리를 옮겨서는 노무현을 찬양하면서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사정없이 공격하는 글들을 무수히 쏟아내었다.

그러나, 2003년 새천년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그리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점점 비노로 전향하였고, 분당 이후 쪼그라든 새천년민주당을 대놓고 지지하던 브레이크 뉴스로 활동공간을 옮기면서 비노의 선봉장으로 활동하면서 "호남을 무시하지 말라!" 같은 주장을 하였다.

그리고 브레이크 뉴스를 떠나서 2006년 9월 인터넷 우익언론 빅뉴스를 창립하면서 사실상 극우전향하였다. 변희재는 당시 진보성향을 띠는 우석훈이 제기한 88만원 세대론이 사회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자, 조선일보와 함께 실크세대론을 집중 제기하였다. 실크세대론은 요약하면 '20대 창업론', '20대 CEO론'으로 '기성세대의 도움 없이 20대 스스로 일어서자', '기회는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특히 장본인인 20~30대 사이에서 88만원 세대론 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사실 88만원 세대론도 정작 진보/좌파 성향 학자들한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통계, 실증 연구가 전혀 없이 그냥 끼워 맞춘 이야기에 불과하며 오히려 한국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20대와 50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세대갈등으로 치부해서 정작 중요한 상위 1%와 99% 사이에 있는 계급갈등이 가려졌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에서도 88만원 세대론에 상당히 많은 반론이 쏟아졌으며 개혁진영에서는 2012년 대선 뒤에 지나치게 세대갈등론에 집착해서 20~30대만 주목하다가 50대를 모두 놓쳐서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를 모두 기득권으로 규정하는 세대갈등론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위 수저계급론이 등장하였다.

빅뉴스와 실크세대론이 인터넷상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 했지만 변희재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면서 조중동의 집중 조명 속에서 일약 청년우익 논객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더더욱 우경화해서 사실상 뉴라이트와 마찬가지의 극우파로 변신해서 더더욱 활동폭을 넒혀 나갔고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 개혁세력, 좌파진영과 무수한 마찰을 일으켰다. 함께 안티조선 운동을 하는 등 한때 좋은 관계였던 진중권한테 듣보잡이라고 까이자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등 난타전을 벌인 것도 이 시기이다. 이 소송 자체는 진중권이 명예훼손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변희재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 '변듣보'라는 멸칭이 붙어버렸다. 이후 상대를 자극하는 언사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이 늘어났고 이에 격분한 인사, 단체들의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변듣보 소송 이후로는 변희재의 연전연패로 지금까지 벌금과 배상금을 꽤 물었다. 이러한 소송이력 때문에 주식 갤러리 등지에서는 변TM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

이후 빅뉴스를 미디어워치로 확대개편하면서 단순한 보도 언론에서 논문 검증 등으로 활동폭을 넒혔다.

변희재 본인이 훗날 인터뷰에서 밝힌 전향 계기는 한국사회의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조선일보에 대한 반감으로 안티조선에 동참했던 개혁진보 성향의 지식인들과 시민단체들이 정작 새로운 미디어 권력으로 떠오른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지지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서라고 한다. 당시 오프라인 언론사의 기사를 자기들 입맛대로 이용해서 조회수와 영향력을 높혀가는 네이버의 행태에 분노해서, 주변 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오히려 '인터넷을 키워서 조선일보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무시하더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위 민주언론 운동을 한다던 최민희 민언련 대표를 포함한 시민운동가들한테 폭언을 들었다는 주장도 인터뷰에서 했다.

그리고 인터넷 언론과 포탈사이트의 문제점에 관한 칼럼을 쓰자 소위 개혁매체들은 하나같이 싣기를 거부했고, 조선일보에서 연락이 와서 '안티조선'이라던 자신의 신념을 접고 투고하였고 이러면서 기존에 같이 하던 주변의 개혁/진보 성향 인사들과는 완전히 연이 끊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변희재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에 안티조선보단 안티포탈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문제는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개혁/진보 성향을 계속 고수하면서도 인터넷언론의 폐해와 포탈사이트의 여론독점에 관해서 비판하는 지식인들도 많기 때문이다.

한편 안티조선 운동 초창기부터 무조건 안티조선 = 노무현 = 진보개혁식의 기계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다가 2003년 민주당 분당 이후 점점 반노무현으로 돌아서면서 "나는 반노무현 = 반진보 = 보수우익"식의 논리로 전향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마디로 극단적인 흑백논리, 이분법에 사로 잡혀 있다는 비판이다.[7]

정치평론가 유재일의 의견에 따르면 정의를 위한다는 진보, 혹은 친노세력에게 매력을 느끼고 친노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진보의 민낮과 온갖 추태를 보고 환멸을 느낀 뒤 보수로 전향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서 유재일은 두 가지를 한탄하는데 하나는 왜 친노를 진보와 같게 생각하여 진보의 추태를 보고 친노까지 패대기치는가. 또하나는 "그래, 그거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저쪽으로 넘어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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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일베저장소에 인증을 남겼을 때 사진이다. 일밍아웃

이전에 본 항목에 극단적인 표현이 있을 정도로 우파 성향의 일부 커뮤니티(주로 극우)를 제외하고 주로 진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까이는 인물이다. 허나 5.18 폭동설 등 주장하는것이 비슷한 일베저장소에서 아주 인기가 높고 일베왕이란 별칭을 얻은 일베의 히어로

2014년 1월 14일 박종진의 쾌도난마 방송에서 호남지역에 대해 과도한 비방을 한 것으로 인해 3월 12일에 채널A로부터 영구 출연정지조치를 받았다. 같은 보수한테도 개까이는 변희재[8]

트위터에 밝힌 바로는 기아 타이거즈(!!!) 팬이다. 뭔가 이상하다[9]

저서로 《변희재의 청춘투쟁》이라는 자서전이 있고, 강의석이 제작한 애국청년 변희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진보 인사들에게 돈봉투를 쥐어준 공로로 올해의 기부천사상을 수상했다 카더라

2018년 5월 29일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하다 법정구속되었다. 1심에서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2.1. 우익 논객으로서 보이는 행보

각종 토론회에서 기존의 우익 성향 패널들과 달리 자세한 팩트 자료와 논리적인 어법을 구사하는, 보수 성향 사람들의 아이콘 중 하나이다. 대표적으로 곰TV 사망유희 토론에서 NLL을 주제로 진중권과 대결을 한 후 진중권이 직접 졌다고 발언했을 정도로 그 실력을 실감케하였다. 다만 진보성향 측에 공격적인 발언을 많이 하거나 논란이 될 만한 언행을 자주하기에 진보 성향 사람들에겐 매우 이미지가 나쁜 편이다.

특히 위에서 설명했듯이, 일베저장소와의 연관성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미지가 나빠진 사건 중 하나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사를 요구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는데, 2013년 100분 토론 당시 5.18 민주화운동광주사태라고 표현하며,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닐수도 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김대령 박사가 유네스코에 등록된 공식 자료를 이용해 충분히 개연성있게 정리한 주장이라고 하였다. 물론 저 김대령이라는 사람은 그리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중론.

정치색을 지우고 최대한 간결하게 보자면 가장 주목도가 높은 이슈를 끌고와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포커스가 오게 하는 방식을 많이 추구했다. 말하자면 최대한 이곳저곳 건드리며 이슈 몰이를 하는 스타일. 그런데 이거 진중권이 유명해진 방식이다. 변희재가 우파버젼 진중권 다운그레이드라는 소리를 괜히 듣는게 아니다.

2016 미국 대선이 결판나기 전에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고, 힐러리에 일방적으로 우호적 보도만을 거듭했던 국내 언론을 비판했던게 그나마 돋보이기도 했다.#

같은 우파 논객인 정규재와는 관계가 참 미묘하다. 둘은 한 때 토크파티나 강연회에도 동반출연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였고, 저서인 '변희재의 청춘투쟁' 발간 당시 정규재TV[10]에 출연해 저서 홍보영상도 찍곤 했다. 그런데 전희경 논문표절 문제가 터졌을 때 정규재를 비롯한 몇몇 보수 인사들이 그녀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변희재는 전희경과 옹호자들을 지독하리만치 디스했다. 특히 정규재를 향해선 '대기업의 사주를 받고 그들을 옹호해주는 나팔수', '그동안 같은 진영이었기에 함께 활동했던 거지만 기회주의자들과는 이제 연을 끊어야할 때' 등 수위높은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정규재TV에 출연하여 'JTBC 태블릿PC조작 논란'에 대해 주장하기 위해 약 1시간 가량 출연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해 다시 또 공동전선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탄핵 인용 후 얼마 못 가 대선 후보로 각각 조원진홍준표를 지지하면서 변희재와 정규재는 다시 갈라섰다. 뿐만 아니라 변희재는 같은 보수세력인 조갑제, 신혜식, 주옥순, 장기정 등을 거짓 보수세력으로 규정하고[11] 바른정당은 물론 자유한국당마저도 보수를 사칭하는 반애국세력이라고 비난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며 함께했던 동지들과는 하루 아침에 등을 돌리게 된 셈이다.

2.2. 국회의원 출마

우파 성향의 커뮤니티에서 많은 지지를 받아왔기 때문인지 2013년 12월, 일베저장소에 비슷한사이트 수컷닷컴을 개설했다. 일베저장소, 정사갤 등의 극우 성향 유저들을 끌어 모으려는 전략인 듯하다. 이러한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서울특별시 관악구 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0.74%(578표)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당시 당시 관악 을 지역구는 국회의원이었던 이상규가 통진당 해산 판결로 의원직을 잃는 바람에 보궐선거가 열렸는데 변희재는 여기에 출마한 것.[12][13]

변희재가 출마를 선언한 이유는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 잘 나와 있다. 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출마에 대한 나름의 명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명분이 타당하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개헌에 대한 반대 입장이나 국회의원들의 지역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 등을 들어보면 단순히 출세욕에 사로잡혀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14] 재미있는 점은 극우로 분류됨에도 동성애에 대해서는 지나친 권력화에 대한 경계 뿐, "태생부터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는 등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점이다.

여튼 변희재는 출마선언 후 좌파 정당 못지 않게 새누리당을 비판하면서 선거운동을 벌였으나 결국 이렇다할 임팩트를 주지 못하고 군소후보의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변희재식의 전략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지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극단적인 강경 우익은 다른 세력의 도움이 없는 한 중간층의 지지를 거의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넷좌익도 마찬가지, 우익이든 좌익이든 현실 정치와 동떨어진 사람들은 지지를 받기 힘들다

다만 앞서 인터뷰 기사에도 있듯이 변희재 스스로도 당선보다는[15]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알리고 나름의 지지층을 얻기 위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세과정을 보면 이런 목적을 달성했는지도 의문이 드는데, 예를 들어 변희재의 지원 유세를 했던 자칭 스님인 성호가 '빨갱이는 죽여도 돼'와 같은 과격한 연설을 해서 물의를 빚고 현장에서 시민들과 싸움을 벌였는데도 이를 말려야 할 변희재는 실실 웃으며 사태를 방관해 비난을 샀다. 비록 당선이 안 되더라도 한 표라도 더 득표를 해서 몸값을 올려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있던 표마저 등돌릴 수 있는 악재를 그대로 방치한 것.

결국 그의 첫 번째 정치 실험은 0.74%라는 초라한 득표율로 마감하고 말았다.

2.3. 탄핵 심판 이후

박근혜가 파면된 이후 과격한 발언을 쏟아내는 다른 친박 인사들과 달리 의외로 조용하게 대응하고 있다. 자신의 페이스 북에 '박근혜에게 적용된 기준으로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판단하면 살아남을 대통령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도 의외로 내각제 개헌에 반대하고 (현재는 찬성중이다. 2018.4.28일 현재) 새로운 보수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월 31일 박근혜가 구속된 이후 봉하마을에서 벌어진 친박집회의 시위에 참가해서 노 전대통령이 640만 불을 받은 것을 수사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수사를 요구하려면 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해야 되지 않나?

2.4. 19대 대선 및 그 이후

변희재는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할 때부터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재는 자유한국당)이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면서 제대로 된 보수 우익세력을 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새누리당 지지를 접고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계획한 것으로 보이는데, 마침 박근혜가 파면된 이후 탄핵에 반대했던 친박세력을 중심으로 기존의 새누리당과 동명이당인 새누리당이 결성되자 변희재도 바로 여기에 합류하였다.

당초 새누리당은 변희재와 정미홍 등이 참여한 경선을 통해 19대 대선후보를 선출할 계획이었으나 자유한국당의 조원진 의원이 탈당 후 새누리당에 합류하자 경선없이 바로 조원진을 대선후보로 추대하기로 합의하였다. 결국 조원진이 새누리당 당적으로 대선후보로 등록하였으며 변희재는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았다.

19대 대선 선거기간 동안 조원진 후보가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하자 친박세력 일부가 그나마 보수표 결집을 기대할 수 있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지지를 천명하였다. 하지만 진작에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린 변희재와 정미홍 등은 홍준표 지지를 선언한 친박 인사들을 배신자라고 강하게 비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져서 변희재를 비롯하여 끝까지 조원진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얼마 전까지 같이 탄핵반대를 외쳤던 권영해, 정광용, 정광택, 신혜식, 주옥순, 장기정 등을 거짓 보수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들과 갈라섰다. 그리고 변희재는 자유한국당 경선에서 홍준표에게 밀린 후 홍준표 지지 유세를 하고 다녔던 김진태 의원도 태극기팔이라고 비난했다.

2017년 5월 10일 대선이 치러지면서 탄핵정국은 일단락되었지만 박사모측의 갈등과 혼란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19대 대선 직후인 5월 13일에 열렸던 친박집회에서 벌어진 싸움과 비난전은 친박세력 내부의 갈등과 분열양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선 후 새누리당 내분이 격화되어 친 조원진 세력들이 대거 출당조치되었다. 새누리당에서 제명된 변희재는 같이 제명된 조원진, 정미홍, 허평환 등과 함께 친박 신당을 창당할 뜻을 밝혔으며 2017년 7월 조원진을 대표로 한 대한애국당이 창당되었다. 창당 이후 초대 정책위의장을 맡았고, 이후 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1위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대한애국당 역시 당내에서 갈등이 불거지는 바람에 변희재는 허평환, 정미홍 등과 사이가 벌어졌으며 변희재는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최고위원, 정책위의장, 서울시당 위원장 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2017년 12월 현재에는 변희재와 당대표 조원진도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분에 대한 정확한 사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로 고소고발을 주고받을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미홍은 12월 8일에 대한애국당을 탈당했으며, 변희재는 12월 19일자로 대한애국당에서 제명당했다.[16] 변희재는 이에 불복하여 재심을 청구했으나 결국 기각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대한애국당/2017년 문서 참조.

2018년 3월 23일 열린 제 40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에서 최측근인 최대집 후보가 당선됐다. 그동안 잇따른 고소고발과 벌금형에 시달리던 변희재에게 마르지 않는 캐시카우인 의사협회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그래봤자 뭐하냐 이미 구속됐는데

3. 사건사고/논란

한국의 타카다 마코토.

3.1. 낸시랭과의 토론

2012년 INSIT TV 3분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변희재VS낸시랭 토론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3분토론 변희재VS낸시랭 이 3분 토론은 의외로 낸시랭이 변희재에게 물러서지 않는 형국으로 토론을 펼쳤다.[17] 그러나 그 후에 변희재와 벌인 SNS 설전에서 낸시랭은 자신이 주장한 BBC 초청과 아버지의 사망이 모두 거짓으로 밝혀져 변희재에게 꼬리를 내렸다. 근데 아무리 봐도 주변사람들의 인식은 피로스의 승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오십보백보

3.2. 공지영 외모 비하 발언

2012년 5월경 소설가 공지영의 SNS인 트위터에 올라온 공지영의 사진을 보고 변희재는 자신의 트위터에 "총선 때 공지영이 투표 독려한다고 자기 생얼 올렸잖아요. 진짜 토할 뻔 했어요. 50먹은 여자가 생얼 왜 올립니까? 공주병이 확실해 보여요."라고 외모를 비하하는 글을 남겨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관련 글

3.3. 위안부 할머니에게 막말

2013년 편향된 서술로 물의를 빚은 교학사 역사 교과서에 이용수 위안부 할머니가 항의하자, 그분이 민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단 점을 들어 지금 선동 중이란 막말을 일삼기도 했다.

3.4. 세월호 시위는 폭동 발언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가 발생하자 '속보! 세월호 폭동 발생'이란 글을 올려 지탄을 받았다.

3.5. 메르스 관련 발언

파일:external/photo.hankooki.com/present20150606085538_O_01_C_1.jpg
2015년 6월 메르스의 유행으로 혼란이 가중되자 서울특별시장인 박원순이 긴급 브리핑을 개최한 것을 두고 "이번 사태는 친노 세력의 거짓난동"이라며 힐난한 바 있다.

3.6. 노무현에 대한 고인드립

국회의원 출마 후 선거운동을 하던 도중에는 선거 노래를 MC 무현으로 하겠다.라고 하며 물의를 빚었다.[18] 서프라이즈 친노 논객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세월이 흘러 부정하고 비하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19]

3.7. 프랑스 혁명을 부정하는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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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삭제되었지만 프랑스 혁명을 부정하는 트윗을 올린 적이 있다. 하필 저때 당시가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이 일어나던 때였고, 그로 인해 잘못된 역사 인식에 대한 경각심이 일던 때여서 숱한 지탄을 받기도 했다. 물론 해당 트윗의 내용처럼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프랑스 혁명의 발생 원인과 역사적 의의를 완전히 부정하는 발언이었기에 비판이 거세었다. 애초에 해당 트윗의 발언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 국한되는 내용이다.[20]. 사실 프랑스 혁명이 역사에 긍정적으로 각인된 이유는 이후 나폴레옹이 독재의 명분과 정당성을 대혁명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며, 자신의 정권은 대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해왔기에 대혁명이란 사건 자체가 나폴레옹에 의해 기억이 미화된 경향이 크긴 하지만, 나폴레옹 독재 또한 탈 봉건시대에 걸쳐있음을 볼 때, 어찌되었건 견고한 봉건세력 자체를 붕괴시킨 대혁명을 오로지 폭동의 면모만 부각시키며 부정하는것은 균형된 관점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3.8. 각종 명예훼손 소송 피소

전술한 바와 같이 변희재는 진보 쪽 인사들에게 종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개인사를 폭로하는 등 과격한 주장을 많이 해서 여기저기 송사에 많이 휘말린다.

문제는 변희재의 이런 발언들이 대부분 특별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막상 경찰/검찰 조사나 법원에서는 당연히 제대로 해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벌금(형사소송)이나 배상금(민사소송)을 물어주는 경우가 많다. 이미 배상한 사례로는 낸시랭, 김미화,[21][22] 문성근, 김광진 의원, 이재명 전 성남시장 등이 있다. 이렇다 보니 생긴 별명이 BTM(...).

다만 소송 문제에서 매번 진 것은 아니고 진중권 교수가 예전에 변희재에게 "듣보잡"이라고 발언한 것으로 고소를 해 진중권 교수에게 벌금 300만 원을 물게 한 일이 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에게도 2심에서 1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2017년 5월 20일에는 고 이남종 씨 분신 자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주장을 한 변희재에 대해 한국진보연대(대표자 박석운)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에서 원고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이 나왔다.

같은 6월 15일에는 카카오에 대한 명예훼손성 게시물에 대해서도 2000만 원의 배상 판결이 나왔다.[23] 이 사건의 판결에 의해 변희재는 앞으로 '종북', '좌편향 편집', '친노', '김정은 또는 북한 비호', '문재인 안철수 당의 비호'라는 용어를 사용해 카카오를 설명 또는 비난하는 취지의 글을 트위터에 게시할 경우, 1건당 50만 원을 카카오에 지급해야 한다(...). 원문 보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도 이런저런 소송과 고발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되었으며 결국 구속 수감되었다.

2013년 6월 20일 재일교포 축구선수인 정대세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는데, 무혐의판결이 났다.
검찰 '국보법 위반' 혐의 정대세 수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축구 선수 정대세 ‘무혐의’


3.9. 고기 먹튀 논란 (변리바바 사건)

2013년 12월 17일에는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고깃값 300만 원을 계산하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다. 관련기사 식당 주인이 밥값을 깎아주지 않자 변희재는 식당 주인이 종북 편향 사람들과 어울렸다는 음해성 기사를 자신이 운영하는 미디어워치에 싣기까지 했다.

2014년 초 밥값 300만 원을 돌려준 뒤 이자는 개나 주고 소송을 건 병크를 터뜨렸다. 그러나, 당연히 소송은 변희재의 패배로 끝났다.

하지만 이 사건이 아직도 배가 아팠는지 당시 기사에 자신에 대한 비판 댓글을 단 사람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병크를 또 터트렸다. 해당 댓글들로 인해 자신의 직장대체 언제 직업을 탤런트로 바꿨는지인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게 됐으니 150만 원을 물어내라는 것이다.

기사에 써 있는 것처럼 "좌파 쪽에서 일베나 수컷닷컴 회원들 소송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맞대응 차원에서 우리가 댓글을 단 사람들에게 소송을 걸겠다고 해서 한 것이다", "내 개인의 피해구제보다 우리(보수진영)를 음해한 사람들에 대해 600명 정도 고소를 했다. 미성년자나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한 이들, 사과를 한 사람들은 취하도 해줬다"라는 헛소리를 내세우고 있다. 즉, 자신이 고기집에 돈을 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에 따른 비판 때문에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변희재 본인의 책임이 명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와 특정 인물들을 종북으로 매도하고, 국회의원 선거까지 출마한 사회적, 정치적 공인으로서 본인의 경솔한 행동은 무시하고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상대에 대해 재갈을 물리는 것과 다름없다.

3.10. 응답하라 1988 발언 논란

2015년 12월 25일 오후 11시 10분에 트위터에서 성보라가 통진당이정희의 모델이라고 개소리를 했다. 정작 응팔갤에서도 이런 개소리는 안 나왔다.출처 아마 시위를 했다고 이러한 주장을 펼친 거 같은데, 이정희는 애초에 학력고사 전국 수석이었다. 성보라의 대입 컨셉과 많은 차이가 난다. 노을이 여자친구는 박근혜인가

3.11. 윤한봉의 무기고 답사가 '광주사태'에 대한 증거다?

파일:변희재.jpg
변희재는 트위터에 이런 주장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럼 '윤한봉 사령관' 주장은 사실인가?

일단 그 출처가 된 게 윤한봉 자신의 증언인데 정작 그 증언 안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4월 1일인데 아무도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아. 뭔 쓸데없는 소리 한다느니 회의 분위기 깬다느니 여 다른 나라 이야기 하고 앉았다느니 그런 식으로 우스워 보인거지. 내가 잔뜩 다급해 가지고 그래도 지방에서는 부산은 부마항쟁으로 피해를 많이 봤으니까……근데, 아무도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고. 돌아와 가지고 아예 4월 달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한테 그 이야기를 했어. 개똥이를 만나면 이 이야기, 또 두셋이 만나면 이 이야기,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를 안 기울이고, 아 쓸데없는 소리 왜 자꾸 해싸요, 아이고 그런 날이 좀 왔으면 좋겠소 내가 봤을 때는 어림 반 푼어치도 인자 어림없다 이거지, 민중들이 무슨 들고 일어나야 그러지. 우리가 뭐 부마항쟁은 예측이라도 했었냐. 아 그건 어떤 특수한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거지, 아이고
윤한봉은 무기답사를 주장하긴 했으나 주변 사람들에게 씹혔다.
다 잡아간 거다. 기습 당한 거죠. 아 이거. 와 눈 앞에 캄캄해져 불죠. 왜 그냐면 기습을 예측을 못했으니까. 뭐 뜬 눈으로 밤 새우고 새벽에 이제 집에서 빠져 나가 가지고 시내 용화 후배네 집에 가서 잤어요. 안전한 곳에 가서 동태를 살펴보니까 엉망이지. 다 잽혀들어가 불고. 전대 조대 할 것 없이 전부 접수되어 버리고 학생회 간부도 일부 도망가고 일부 다 잽혀불고. 긍게 인제 박살나분 거야, 박살이. 아무 준비 없이. 와 그때처럼 내가 후회스러웠을 때가 없었어. 왜냐면 나는 21일부터 25일로 봤지, 17일 날 밤에 당할 것을 생각을 못하고, 기습에 대해서는 예측을 못했거든. 그래 가지고 19일 날 아침에 새벽에 빠져나갔지, 광주로. 뭐 인제 연락할 길이 없는 거야.[24]
그런 상황에서 윤한봉은 대비도 없이 당했다고 한다.

윤한봉 증언을 근거했는데 정작 윤한봉 증언에서도 폭동설은 반박이 된다.

3.12. 탁현민 고소 사건

또라이라고 했다고 탁현민 교수를 고소했는데, 대법원에서 탁현민 교수에게 무죄를 최종 선고했다.

3.13.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논란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의 참가자 수가 자기가 봤을 땐 10만이라고 주장했으며 이 인원이 곧 빠지고 만 명 정도만 남아서 폭력 집회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발언까지 하였다.14분 4초 부터 물론 이 주장은 2016년 12월 17일 8차집회까지 상황을 보았을 때 사실과 동떨어진 엉터리 주장이며 2017년에도 촛불집회에서 폭력 성향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3.13.1.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

JTBC에서 2016년 12월 8일 문제의 태블릿 PC의 입수 경로를 다시 보도하였는데, 그 직전에 변희재는 페이스북과 미디어워치를 통해 어떻게 사진 찍기 좋아하는 최순실의 태블릿에 정유라 사진 한 장이 없냐며 최순실의 것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검찰에서 이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것이 맞는다라고 조사 결과를 밝혔고 최순실이 태블릿 PC의 증거 은폐를 시도한 녹취까지 공개됐는데도 변희재 측은 아직도 JTBC 측이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것이라는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면서 그 태블릿 PC가 김한수 전 행정관의 것일거라며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25]# 그리고 이 주장을 MBC가 받아 의혹을 부풀리고 있고 늘 그렇듯 일베는 이 주장을 맹목으로 복붙하고 있다 변희재는 JTBC가 자신이 제기한 의혹을 해명하지 않는다며 JTBC 측을 거짓말쟁이, 도망자 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손석희와 사망유희 토론을 벌이면 10분 만에 손석희가 도망가고 있다는 기사가 뜰 거라는 자신감까지 내비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향신문이 JTBC보다 더블루K 사무실을 먼저 방문했다' 등, 사실과 다른 주장도 이어간 바가 있다.

그는 현재까지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모든 상황이 JTBC가 검찰과 짜고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것이라고 거짓 선동을 한 결과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이 사태를 손석희 게이트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탄핵 반대 시위에도 참여한다고 한다. 본인은 아무래도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것이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 일련의 모든 사태가 다 거짓 선동임이 증명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설령 태블릿 PC가 김한수 전 행정관의 것이었다고 해도 일련의 사태가 거짓이 될 일은 당연히 없다. 탄핵을 반대하는 사유가 다른 것도 아니고 단지 태블릿 PC는 JTBC와 검찰이 짜고 조작한 거라는 자신의 주장 하나이다. 오히려 박근혜, 최순실을 비롯해 벌어진 일련의 모든 사태들에 대한 언급 없이 태블릿 PC는 조작됐다며 탄핵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탄핵 사유를 단지 태블릿 PC 하나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결국 JTBC의 무시에 화가 났는지 방송통신위원회에 JTBC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 징계요청 사유는 물론 태블릿 PC 건인데, 변희재에 따르면 JTBC가 공개한 뉴스룸 공개자료 화면이 태블릿 PC의 화면이 아닌데도 최순실의 태블릿 PC 화면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순실 태블릿 PC를 연속 보도한 공로로 제 14회 올해의 여기자상을 수상한 JTBC 심수미 기자의 시상식에 보수단체 회원 20여 명과 함께 진입하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변희재의 주장은 스스로 컴맹 인증을 한 것에 가까운데, 멘탈리티 측면에서 과거 모 사건에서 숱한 음모론으로 정신승리를 하려고 했던 이 분들과 유사하다. 애초에 JTBC는 태블릿 자료 전체를 백업한 다음에 내용물에는 손을 대지 않고 검경에 넘겼기 때문에 방송 도중에 나온 화면은 당연히 JTBC 회사 컴퓨터의 백업본 화면이다. 원본을 함부로 열어 보면 증거자료에 손댔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그 외에도 태블릿 PC에 정유라 사진이 한 장도 없으니 최순실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 애초에 태블릿의 카메라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이 태블릿에서는 최순실의 셀카 사진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태블릿 PC가 최순실의 것이 적실하다는 각종 증거가 나오고 있는데도 변희재는 태블릿 PC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2017년 1월 10일에는 자유총연맹 총재인 김경재와 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 정미홍 전 언론인 등과 함께 "태블릿 PC 조작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하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발족한 당일에 특검이 장시호에게서 건네받은 최순실의 것인 두 번째 태블릿 PC를 공개하면서 이 위원회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 존재 이유가 사라질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변희재는 장시호가 건네준 태블릿PC도 진짜가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최순실 것으로 알려진 태블릿 PC들을 법원에서 감정을 받자고 주장하였다. 최순실 측에서는 변희재를 태블릿 PC 감정 전문가(?)로서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바로 기각되었다.

이후에도 박근혜를 옹호하는 일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태블릿 조작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결국 이 태블릿은 국과수의 감정을 받게 되었는데, 2017년 11월 27일 국과수에서 이 태블릿에는 수정이나 조작의 흔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검찰 측이 밝혔다. 또, 정호성 재판과 마찬가지로 태블릿 PC가 박근혜의 공무상기밀누설죄의 증거로 채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급이 없으므로 채택되지 않았다는 황당한 주장까지도 이야기한 상황이며, 현재까지도 JTBC가 '그동안 최순실씨 측과 미디어워치 변희재씨 등은 JTBC가 태블릿PC를 입수한 이후, 내부 문건 등을 조작하고 훼손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왔습니다' 라는 앵커 멘트에 대해 '자신은 내부 문건을 조작했다고 한 적이 없고, 태블릿 PC 내 5659개의 파일이 수정되었다고 했다'면서 해당 보도를 거짓 음해로 규정해 언중위에 제소하기까지 했다. -누가 누구를???-

3.13.2. JTBC 태블릿 조작 주장에 따른 피소

이처럼 지속적으로 태블릿 PC가 조작되었다며 의혹을 제기했으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자 결국 몇몇 사람들과 함께 2017년 1월 18일 손석희 사장을 '모해증거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였다. 그러나 변희재의 흠집내기 시도에 견디다 못한 JTBC에서도 결국 변희재를 명예훼손을 사유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는 손석희 사장과 토론을 원한다며 JTBC 뉴스룸 출연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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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토요일마다 평창동에 있는 손석희 사장의 자택 앞에서 JTBC 조작보도와 호화주택(?) 구입 경위를 해명하라는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다만 이후 집회가 열렸다는 소식은 없었다.

2017년 12월 '손석희의 저주'라는 책을 출간한 후 JTBC 사옥 앞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책을 들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는데 JTBC 정치부 회의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였다. 이 책 내용을 보면 태블릿PC 조작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결국 최순실 태블릿 PC와 관련된 악의적 허위사실 유포를 통해 JTBC와 손석희 사장 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변희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 자세한 것은 후술되는 내용 참조.

3.13.3. 구속

2018년 5월 24일, 검찰에서 변희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검찰은 특검과 법원 판결 등으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이 사실무근으로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변씨가 JTBC 손석희 사장 등을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계속 유포하고 관련자의 신변도 위협하고 있다고 영장에 적시하였다. 관련 기사

5월 29일 구속영장 실질심사 당일 변희재는 기자들에게 자신을 구속하는 것은 언론 자유 침해라고 주장하였으며 태블릿PC 조작건은 불순한 의도가 없는 정당한 의혹제기라고 주장하였다. 영장 실질심사에서는 그간의 태도를 바꾸어 손석희 사장에 대해 과한 발언을 한 것을 사과한다고 말했다. 다만 명예훼손이나 손석희 사장과 그의 가족을 위협했다는 혐의는 모두 부인하였다.

실질심사 당일 자정 경에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으며 이에 따라 구속 수감되었다.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높아서 구속 처리가 되었다고.

구속된 직후 변희재측은 구속 적부심을 청구했으나 6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이성복 부장판사)는 이 청구를 기각했다. 변희재 "구속 풀어달라"했지만 법원 기각 이에 따라 변희재는 구속상태에서 관련 재판을 받게 되었다. 변희재 지지자 및 극우세력들은 타라 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26]이 한 블로그에 올린 기고문을 들며, 'OECD 국가에서 최초로 언론인이 명예훼손으로 구속된 사례'라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당장 OECD 가입 국가인 터키의 사례로 볼 때 잘잘못을 떠나서 주장 자체가 틀렸음은 물론이거니와, 명예훼손은 아니더라도 2009년에 주류 언론인 YTN 기자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던 한편, 가장 최근에는 개그맨 출신 기자인 이재포 씨가 명예훼손 유죄로 구속[27]되는 경우와, 기자의 지위를 악용해 허위기사를 작성함으로서 강요미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된 기자#도 있었다. 특히, 검찰이 악의적 명예훼손에 대하여 구속수사와 처벌 강화를 천명한 것은 2013년#으로, 변희재의 구속사유 역시 악의적 명예훼손을 지속적으로 벌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물론 해외에서는 명예훼손을 주로 민사로 푸는 경우가 많지만.

3.13.4. 재판

결국 2018년 6월 15일 미디어워치 관계자들(대표고문 변희재, 대표이사 황의원, 선임기자 이우희, 기자 오문영)이 함께 기소되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고단3660. 변희재 외에는 불구속기소).

첫 공판을 하루 앞둔 2018년 7월 10일, 강용석 등의 변희재 변호인단이 모두 사임하였다. 법원에서는 급히 국선 변호사를 선임하여 재판을 시작하였으며, 7월 11일 열린 첫 공판에서 변희재는 '태블릿PC 조작 의혹' 등은 모두 음해나 공작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혹 제기라고 주장했다. 현재는 국선변호사가 아닌, 30대 변호사 한명을 선임해 재판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는 '재판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변호사를 선임한 것'이라고 밝혔다.# 지면 잃는 것이 큰 유명 변호사 대신 몸빵을 맞아줄 변호사를 선임한 셈 사선변호인이 제출한 의견서의 내용은 기사 참조.

미디어워치에서는 2018년 7월 11일 제1회 공판기일, 7월 27일 제2회 공판기일(기사 참조), 8월 27일 제3회 공판기일(기사 참조), 9월 10일 제4회 공판기일(기사 참조), 10월 1일 제5회 공판기일(기사 참조), 10월 15일 제6회 공판기일(기사 참조) 등을 기사로 내놓고 있는데, 미디어워치 관계자들이 피고인이다 보니, 미디어워치에서, 비록 주관이 많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재판 진행내용만큼은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재판 진행 내용은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 문서에 소개되어 있다.

한편 2018년 10월에 보석허가 청구를 했으나 결국 기각되었다. 법원으로부터 보석이나 선처를 얻기 위해서는 일단 태블릿 PC가 조작이라는 주장을 철회해야 될텐데 현재 변희재의 상황에서 이런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3.13.4.1. 1심: 징역 2년
2018년 12월 5일, 검찰이 변희재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죄[28]와 온라인 명예훼손죄[29]의 혐의로는 꽤 높은 형을 구형받은 셈. 이어 12월 10일 이루어진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동안 알려진 명예훼손죄 판례에 비하면 상당히 강도가 높은 형량인데, 이는 변희재가 그동안 다수의 명예훼손 고발로 인해 처벌받았던 이력으로 형량이 가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변희재 지지자들이나 보수 인사들은 이를 정치적 판결로 보는 경향도 있다.

추가로 미디어워치 대표 황의원도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미디어워치 이우희 기자는 징역6월에 집행유예 2년, 오문영 기자는 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비록 본인들이 출당시키긴 했지만 대한애국당 측에서는 이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며 비난 중이다. 문제는 거기서 비난중인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변희재를 포함, 1심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선고가 있고 3일이 지난 2018년 12월 13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3.13.4.2. 2심: 재판진행중
검찰과 피고인 쌍방간의 항소장 제출에 따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형사부[30]에 사건이 배당되었고, 2019년 4월 9일부터 항소심 공판절차가 개시되었다. 이 와중에 변희재는 2019년 3월 4일 다시 재판부에 보석을 신청하였다. 이 와중에 수갑 논란을 통해 재판에 불출석하는 등 재판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움직임도 보였다.

2019년 4월 30일에 보석심문기일이 진행되었고, 보름이 조금 지난 2019년 5월 17일 주거지 제한 및 사건 관련자 접촉 금지[31], 집회나 시위 참가 금지 등 조건을 준수하라는 병과내용이 붙으며 인용되었다. 헌데 이 보석조건이 부당하다며 구치소 내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32] 보석결정이 나오더라도 보석금납입액이 너무 과다하던가 하는 사유로 교정시설에서 나가고 싶어도 못나가는 사례는 있지만 형사사건 피고인 당사자 스스로의 뜻으로 위와 같이 구치소에서 석방을 거부하는 사태는 정말 드문 경우[33]이다. 그러나, 이미 보석금이 입금되었고[34] 이에 따라 석방 지휘로 결국 변희재는 퇴거에 가깝게 석방되었다. 강제석방이라니 변희재는 소송조건에 없는 기자회견이나 유튜브 활동을 토대로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이것이 '관련자 접촉 금지'와 위배되기 때문에 해당 활동을 재판부가 어떻게 해석할지, 그리고 다음 공판기일에 재판부가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되는 부분이라 하겠다.

4. 여담

디시인사이드의 여초 갤러리인 남자 연예인 갤러리에서 윤서인외모 평가를 해서 이겼다. # 변희재는 그래도 사람의 형상을 갖췄는데 윤서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반응이 다수이다(...).

5.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5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19대 국회 서울 관악 을)[35][36] 무소속 578 (0.74%) 낙선 (5위)

6.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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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천광역시 강화군[2] 키가 꽤 큰 편인데, 그래서 진중권을 키를 가지고 놀리는 트윗을 하기도 했다. 진중권은 165cm 언저리.[3] 키와 덩치로 봐서는 납득가지 않는 프로필상의 체중이다. 위의 프로필 사진상으로 미루어보면 이 키일 경우 80kg은 되어야 정상이다. 영혼의 라이벌 진중권과 프로필상 체중이 같다.[4] 원래는 대한애국당 소속이었지만 조원진정미홍하고 내홍이 커졌다. 그러나 정미홍이 자진탈당한 것하고 다르게 제명되어 출당당했다.[5] 다만 블로그는 2015년 4월 이후로 소식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6] 진중권과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으로 진중권이 변희재의 11년 선배다(...). 극과 극은 통한다[7] 실제로 글을 보면 보수우파 이념 전파보다는 자신이 몸담았던 친노세력에 대한 디스가 주류다.[8] 검색결과관련기사 참조. 덤으로 관련 프로그램도 징계를 받았다.[9] 사실 반호남 정서는 없고 오히려 친호남에 가까운 인물이다. 이러다 보니 그를 지지하는 극우 세력들로부터는 '은근슬쩍 김대중을 지지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도 받고 있다.[10] 최근 박대통령 인터뷰를 한 그 인터넷 방송이다.[11] 조갑제는 안철수를 지지를 한다는 이류로 신혜식과 장기정과 주옥순은 홍준표를 지지한다는 이류로 갈라섰다.[12] 참고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면 관계 법령에 따라 300인 이상 500인 이하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고로 딱 그만큼만 득표했다는 뜻이다.[13] 저 관악구 을은 이해찬을 배출한 지역구인데, 18대 총선에서 김희철 前 구청장이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 19대 총선에서 이상규 통합진보당 후보가 당선된 지역구이다. 허나,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오신환을 당선시켰다. 이어진 20대 총선에서도 마찬가지.[14] 인터뷰를 진행한 딴지일보 기자도 인터뷰 말미에 이런 관점에서 나름 변희재를 높게 평가했다.[15] 스스로 지지율이 1~2% 정도 될 것으로 예상했다.[16] 변희재 제명에 대한 팩트는 미디어워치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2017년 12월 현재 대한애국당의 내분에 대한 사항은 미디어워치등 이해관계가 있는 극소수 매체를 제외한 다른 언론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같은 시기 바른정당과 통합을 둘러싼 국민의당의 내분이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는 것과 대조적. 두 당의 위상 차이를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17] 사실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 토론 내내 윽박지르는 변희재와 토론 내내 깐죽거린 낸시랭의 대결이었다. 낸시랭이 변희재를 농락했다기보다도 그냥 두 명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로 토론했다. 사실 애초에 3분토론 자체가 100분토론이나 끝장토론, 심야토론처럼 긴 시간을 가지고 설전을 벌이는 프로그램이 아닌지라 짧은 대화 속에서 누가 이겼냐, 졌냐를 판가름하는 것도 쉽지 않고, 어찌보면 낸시랭이 여유있는 토론을 하는 것 같지만 변희재가 그 페이스에 말려들거나 이성을 잃어 흥분을 한 게 아니라 본인 스타일로 조목조목 말했을 뿐이다. 물론 보는 이들에게는 낸시랭의 태도에 변희재가 딥빡해서 소리만 지르다가 끝나는 것으로 보이는 건 정치성향에 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기분 탓일 것이다.[18] MC 무현은 원래 합성 필수요소 갤러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를 이용해 만든 음악 등에 붙은 이름이나, 노무현 대통령 사후 고인드립의 소지가 있어 합필갤조차 사용을 꺼리던 소스였다. 오히려 일간베스트에서 고인의 희화화를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합성 소스이다.[19] 다만 그것은 노무현에 대한 본인의 판단이므로 과거의 행동을 제3자가 배신자 운운할 건 아니다. 인물과 그 행동을 판단하는 데서 본인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 것은 자유이고, 그것이 이치와 논리에 옳냐, 그르냐가 문제이기 때문.[20] 그마저도 로베스피에르는 무분별한 처형을 반대하고 막던 인물이었다.[21] 김미화 소송건은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시켜서 다시 재판에 들어갔다. 그런데 중요한건 이게 변희재가 이겨서 파기환송된 게 아니다.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서 2심 재판부는 아예 재판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는데, 그 부분이 잘못되었으니 정상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라고 파기환송한 것이다. 고법이나 대법 모두 변희재가 배상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살펴본 적이 없다.[22] 결국 12월 22일 손해배상 청구소송 조정을 통해 김미화에게 '친노좌파', '종북' 등의 표현을 쓰지 말라는 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이 나왔다. 조정 확정일 전까지 저 표현을 쓰면 건당 500만 원 지급하기로 되었다. 또 초상권 침해건으로 8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해야된다. 기사[23] 관련기사[24] 연구소 자료총서 3권에서 확인가능.[25] 하지만 김한수 전 행정관의 것이라고 해도 문제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26] 공군 예비역 출신이자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객원 연구원으로, 같은 블로그에서 "MBC 좌익세력에게 장악 당했다" 등 극우적 색채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27] 이 경우 구속수사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형의 확정으로 인한 법정구속이기 때문.[28]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29]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30] 1심이 단독사건이었기 때문에 서울고등법원이 아닌 1심과 같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별개의 항소재판부가 사건을 맡은 것이다. 만일 상고심까지 가는경우 역시 서울고등법원이 아닌, 대법원으로 넘어간다.[31] 심지어 SNS를 통한 접촉도 금지되어 있다[32] 통상적으로 일정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 인사의 경우, 도주 및 증거 인멸을 우려해 이러한 보석 조건이 붙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변희재는 "집회 및 시위도 할 수 없으며, 구치소 내에서는 태블릿 관련 전문가나 조원진 및 김진태 의원 등과 서신으로 의견을 주고받을수 있었지만 위 보석조건 하에서 석방되는 경우 그럴수 없다"며 이러한 조건 자체를 거부한 것.[33] 현재까지 찾을 수 있는 사례로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으로 수감된 두 명이 수감을 거부한 사례가 거의 유일하다.[34] 간접적으로 보석인용결정을 통보받은 상태에서 직접적인 결정취지가 명시된 보석사건결정문이 송달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세부조건을 알지못한 변호사가, 조속히 석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먼저 보석보증금을 납입해버려 어쩔수 없었다고 변희재 측에서는 설명한다[35] 전임자 이상규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로 의원직 상실.[36] 이 당시 선거운동을 배경으로 그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애국청년 변희재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