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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 → | 김대중 | → | 류근일 |
<colbgcolor=#d7171f><colcolor=#fff> 김대중 金大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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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광산 김씨[1] |
출생 | 1939년 9월 1일 ([age(1939-09-01)]세) |
경기도 경성부 장교정 (現 서울특별시 중구 장교동) | |
학력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 / 학사) |
병역 | 육군 중위 만기제대 |
현직 |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 |
경력 | 조선일보 편집국장 조선일보 주필 조선일보 편집인 조선일보 부사장대우 이사 조선일보 고문 |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기자, 언론인.조선일보의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 주필, 편집인, 고문을 역임했다.
극단적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의 강경한 보수 우익 반공주의 성향의 대표자로서, 과거 한때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선일보의 강경하고 극단적인 논조와 사실상 동일시되던 인물이었다.
2. 생애
1939년 9월 1일 경기도 경성부 장교정(현 서울특별시 중구 장교동)에서 아버지 김용옥(金容玉)과 어머니 이을순(李乙順)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시절 일본에서 노동조합 운동에 종사했고, 이 때문에 투옥되어 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일본 제국 경찰로부터 요시찰 인물로 낙인찍혀 고초를 많이 겪었지만, 8.15 광복 후 제과업에 종사해 동대문에서 상회를 운영하며 동대문상인연합회 회장까지 역임한 꽤나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경상북도 금릉군(現 김천시)으로 피난하여 개령초등학교로 전학했고, 1952년 졸업했다. 이후 서울중학교, 서울고등학교(10회)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딱히 사법시험에 응시할 생각은 없었고 음악, 미술 등 예체능 쪽에 관심이 더 많아, 사시 공부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손을 대던 광산업에 문제가 생겨 가세가 기울었고, 이 충격으로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가정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져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조달하기까지 했다. 또한 폐결핵에도 걸려 대학을 1년 유급해 졸업하게 되었다.
한편, 여타 서울법대생들이 그렇듯이 이런 최상위 엘리트들은 무조건 군대를 장교로 임관하는 경우가 흔한 일이고 김대중 역시 서울법대생답게 ROTC에 1기생으로 지원하여 장교로 임관하였고[2], 제2군단 사령부 비서실에서 영어 통역장교로 군 생활을 하였다.
1965년, 조선일보가 기자를 모집한다는 소문을 듣고 시험에 응시해 제8기 공채 견습기자로 입사하였다. 당시 리영희 외신부장이 지휘하던 외신부에 배치되었고, 리영희 아래서 수습기자 생활을 했다.[3] 당시 그를 지도했던 리영희는, "김대중이 가끔 토론을 할 때 뜻을 굽히지 않아 곤란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편협하고[4] 반공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고 한다.[5] 리영희의 평에 따르면 '유신이 왜 잘못된 것인지 유일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방우영 당시 조선일보 회장의 눈에는 이 젊은이가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이후 1년 뒤에 사회부로 옮겼다.
사회부에서 근무한 지 1년째 되던 1967년 8월, 충청남도 청양군에 위치한 구봉광산에서 광부로 일하던 양창선 씨 매몰사건 보도로 유명기자로 떠올랐다. 이후, 정치부 기자로 발탁되었고, 조선일보 공채 8기 라인의 선두로 쑥쑥 커갔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6년 6개월간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약했고, 귀국 직후 외신부장 자리에 올랐다. 1980년 3월에는 공채 7기 선배였던 허문도를 밀어내고 사회부장 자리에 올라 앉았다. 이 일 때문에 허문도는 김대중에게 엄청난 열등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광주시를 '폭도가 점령한 무정부 도시, 광주시민을 난동자, 폭도 등으로 묘사하는 기사를 기사를 보도하며 전두환 신군부에 노골적으로 영합하였다.[6] 1981년 12월부터 1984년 8월까지 정치부장을 지냈고, 1984년 8월 출판국장으로 옮겼다. 1986년 3월에는 논설위원 겸 현대사연구소장으로 옮겼다. 이후 오너 일가의 권유를 받아들여 연방연구위원회 특별위원 자격으로 1년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유학을 갔다가 1987년 7월 1일 귀국해 이사대우 겸 논설주간에 발령되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대선후보 토론회 패널로 참여하였다. 이때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에게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이미 정계은퇴를 약속하지 않았느냐. 말바꾸기하지 마라." "목숨을 구걸하면서 정계은퇴를 거듭 다짐한 편지가 다 있지 않느냐. 거짓말하지 마라."는 핵펀치를 날렸다.[7] 이 한방으로 인해 정치인 김대중은 단박에 '거짓말쟁이'로 이미지메이킹이 돼버렸고, 반면에 언론인 김대중은 보수진영에서 참언론인으로 떠올랐다. 이때 두 명의 김대중이 벌인 공방은 TV 화면에 계속적으로 방영되었으며, 이로써 지지율이 상승하던 정치인 김대중의 기세는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8] 여하튼 이때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1989년 5월 25일 야전사령관 격인 편집국장, 이사로 승진해 1990년 3월 11일까지 역임했다.
1990년 3월 드디어 조선일부 주필 직에 취임했다. 김대중은 주필이 되고서 조선일보의 전권을 장악하여 조선일보 기사 전체의 논조를 설정할 권한을 가졌는데, 이것만 봐도 오너 일가에게 얼마나 신임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조선일보 주필로 있던 시절 조선일보의 유료부수가 200만 부를 돌파했고, 90년대 종이신문 시장의 최전성기를 영위하면서 조선일보는 매체 영향력으로나 매출액으로나 최고 황금기를 누렸다. 가구별 신문 구독률 70%의 시대에, 그 신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힘이 센 조선일보 논조의 전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었으니, 김대중 주필이라는 언론인의 정치적 영향력은 당연히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9] 이 때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가 이른바 독보적 언론 권력으로서 '주필 김대중'의 최고 전성기였다.
그가 주필과 편집인으로 재직하는 동안 3번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영삼을 적극적으로 밀어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지만 문민정부와는 충돌과 반목을 반복했다. YS는 자유주의 우파 성향을 띄어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인사들을 전부 교도소에 보내고, 박정희 정부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는데, 훨씬 오른쪽에 있는 김대중 주필 및 조선일보로서는 당연히 김영삼 정부와 정치적인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대선 기간 때까지만 해도 김영삼을 적극 비호해주던 조선일보였지만, 특히 김영삼 대통령 임기 초반부터 한완상 통일부장관에 대한 색깔론 공격을 하면서 김영삼 정부와 크게 충돌하기 시작했다.[10] 결정적으로 임기 후반에 아들 김현철 비리 사건이 터지자 김대중 주필과 조선일보는 문민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비토에 나섰으며,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을 거친 이후부터는 노골적으로 차기 후보 이회창 띄우기 작업에 들어갔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자 김대중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적극 지지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여러 네거티브와 색깔론을 펼쳤지만, IMF의 여파 및 이인제의 독자출마와 DJP연합으로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국민의 정부 기간 내내 김대중 주필과 조선일보는 정부를 맹비난하는 칼럼과 보도를 두루 쏟아냈으며, 특히 햇볕정책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집중 공격했다. 특히 2001년 국민의 정부가 언론사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실시하자, 조선일보와 국민의 정부 사이의 관계는 전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험악해졌고, 김대중 주필과 조선일보는 국민의 정부에 대한 공격 수위를 더더욱 올렸다. 이로 인해 집권 여당 새천년민주당으로부터 파시스트라고 비난당하기도 했다. #
1998년 전무이사대우로 승진했고, 편집인 직함까지 더 얻었다. 이렇듯 13년간 조선일보의 편집국장 및 주필로 있으면서 조선일보의 보수적 논설 및 편집 방향을 총괄하던 중, 2002년 3월 주필직을 류근일에게 넘기고 '편집인' 단독 직함이 되었다. 2003년 1월에는 편집인 직함까지 떼어 변용식 편집국장에게 넘겼고, 이사 직급을 달고 워싱턴으로 갔다. 김대중의 직책 인계와 워싱턴 발령은 조선일보의 본격적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부분이었는데, 이는 다분히 2002년 대선 결과의 충격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언론계에 파다했다. 같은 해 2월에는 류근일 주필이, 11월에는 안병훈 부사장이 같이 정년퇴임을 맞이했고, 방우영 회장의 퇴임이 이뤄지면서, 세대교체가 마무리 되었으며, 그렇게 방일영 일가(정확히는 방상훈 사장)의 조선일보 지배 체제가 확립되었다.
고문직을 받고 퇴임한 이들과 달리, 정년퇴임을 앞둔 김대중을 워싱턴으로 보낸 것은 그 동안 고생하셨으니, 멀리서 좀 쉬시라는 뜻에 가까웠다. 이 때를 기점으로 김대중은 현역 기자로서는 사실상 은퇴하였으며, 신문의 편집에서도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조선일보 입사 후 약 37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는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조선일보도 이회창을 적극 밀었다. 상대 후보인 노무현은 초선 의원 시절부터 조선일보의 적 같은 존재였다.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 때부터 노무현의 장인과 관련된 색깔론을 적극적으로 밀었고, 대선 전날 정몽준이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단일화를 파기하자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라는 노골적이고 원색적인 제목의 사설까지 실었다.# [11] 편집인 직함을 달고 있었던 김대중은 선거 기간 내내 조선일보의 논조에 발맞춰 노무현에 대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칼럼들을 꾸준히 게시했기에, 기타 언론으로부터 이회창과 노무현에 대해 다루는 조선일보의 편파성에 대해 엄청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선거 결과 이회창은 또 다시 대선에서 떨어지면서 정계를 은퇴해야 했고,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 김대중은 임원급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받으면서 본인도 현역 기자로서 은퇴 수순을 밟게 되었다.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조선일보 내의 막강한 핵심 권력에서 비로소 한발짝 물러나게 된 것이다.
이후 김대중은 2004년 3월에 조선일보 부사장대우 이사로 잠시 복귀하였다가, 11월에 비로소 정식으로 정년퇴임하였다. 그 후로는 고문 직함으로 지면에 칼럼을 기고하였다. 이후 2020년 3월 31일부로 조선일보 고문직에서도 물러나게 되었으나, 칼럼니스트 타이틀로 김대중 칼럼은 계속 지면에 연재하였다. 과거 이규태, 류근일 고문이 5년간 고문 직함을 달았는데 김대중은 15년 반이라는 긴 세월동안 고문 직함을 유지했던 것을 보면, 그가 한때 조선일보에 미쳤던 압도적 영향력의 긴 그림자를 알 수 있다.
그는 현재 조선일보의 주식 0.5%를 소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3. 평가
김대중이 현역 언론인으로서 조선일보의 주필과 편집인 등을 맡아 활동하던 1990년대~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한국 언론계에서 가장 막강하고 독보적인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다. 일례로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시사저널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오랫동안 1위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당시는 '조선일보'라는 신문의 타이틀과 매체 영향력이 곧 '김대중 주필'이라는 이름의 권력과 사실상 동일시 되던 시대였다. 그런데 그러던 중, 2005년 조사부터는 MBC의 손석희 앵커에게 1위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이 생겼는데, 당시 이 사건은 언론계에서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것은 '김대중 주필'이라는 한 개인이 '손석희 앵커'라는 한 개인에게 사회적 영향력 평가에서 밀렸다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종이신문 매체들이, 방송이라는 매체에게 영향력 및 의제 설정 능력에서 확실하게 추월당한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12]그래도 2000년대 후반까지는 여전히 신문이라는 매체의 영향력이 시퍼렇게 살아있었기 때문에, '조선일보 김대중'이라는 이름값과 위력도 비교적 막강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보급으로 인한 모바일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0년대 초반 부터는 종이신문 사양 산업화가 뚜렷해 지면서, 조선일보의 매체 영향력 또한 과거에 비해 더욱 급격히 쪼그라들었고, 이와 더불어 김대중의 존재감 또한 빠르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한 이후에도 한동안은 조선일보라는 매체의 위력을 등에 업고서 꾸준히 언론계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거론되었던 점을 보면, 그의 영향력이 하루아침에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도 시대의 전면적이고 거대한 변화와 매체 환경의 격변을 거스를 수는 없었고, 본인이 급격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도 막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2010년대 초중반부터는 시사저널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의 순위 및 지목률이 크게 낮아지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2020년 조사에서부터는 김대중 전 주필의 이름이 아예 순위권 리스트에서도 사라졌다.[14] 이른바 종이신문으로 대표되는 전통 미디어의 급격한 쇠퇴와 영향력 상실 때문에, 한때 조선일보 전성기의 대표적 상징이자, 막강한 언론 권력의 독보적 표상이었던 김대중마저도 결국 조용히 도태되고 만 것이다.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김대중이 칼럼에 무슨 내용을 쓰든, 조선일보가 지면 1면 헤드라인으로 뭘 내보내든, 조선일보 사설에 무슨 주장이 나오든, 관심을 가지는 사람 자체가 없어진 시대가 되었다.
심지어 2025년, 한국언론학회 소속 언론학자 114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3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는 방송인 김어준(!!)에게조차 순위가 밀리는 신세가 됐다. # 관련 보도에 따르면, 1위는 40표를 기록한 손석희였고, 2위가 13표를 기록한 김어준이었는데, 김대중은 10표를 기록하면서 리영희와 공동 3위에 올랐다고 한다.
물론 손석희와 김어준의 경우, 각각 충격적 특종을 통해 대통령 탄핵의 결정적 계기가 되거나, 한국의 시사 뉴미디어 컨텐츠 판도 및 유튜브 저널리즘 생태계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공이 있는 만큼, 두 사람 다 대단한 영향력으로 꼽힐 만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최근 3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조선일보 안티테제'의 화신이자 비주류 저널리스트 출신인 김어준이, 한때 오랫동안 무소불위의 독보적 언론 권력을 휘두르던 '천하의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꺾었다는 점이 상당한 충격인 것도 분명했다.[15]
4. 논란
-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광주를 '폭도가 점령한 무정부 도시'로 보도하며 신군부의 편을 드는 기사를 썼다.[16] 광주 민주화 운동 참가자들을 '폭도'로 평가한 것이야 자기 개인적 견해라든가 아니면 신군부의 압박에 순응한 결과물이라고 쳐도, 당시 광주의 상황에 대해 “생필품의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기사를 쓴 것은 명백한 왜곡 보도였다. 한 마디로 광주를 무법천지로 묘사하며 계엄군의 신속한 진압을 간절히 요청한 것. 당연히 이는 그의 언론인 생활에 치명적인 오점 중 하나로 남았다. 참고로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이던 김대중 기자가 군부에 의해 철저히 봉쇄된 광주에 가서 취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두환 신군부가 각 신문사 사회부장들에게 100만 원 씩 봉투를 쥐어 주고 5월 24일에 직접 광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당시 신문사 사회부장 월급이 45만 원 정도였던 때다. 물론 신군부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라는 주문이었다.[17] 훗날, 그는 이 일에 대해서 1997년에 <5.18 특파원 리포트>라는 책을 출간하여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명하였다. 물론 그 해명, 또는 변명이라는 것이 "별것도 아닌 스케치 기사를 놓고 검열 당국은 '폭도'라는 단어를 쓸 것을 (기사) 통과의 조건으로 냈다. 승강이 끝에 나는 안 쓰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는 것이 보였다'는 표현으로 고쳐줬다" 정도였지만 말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의 긴 시간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17년이 지나서야 겨우 꺼낸 허술한 변명들이 진짜 진심어린 반성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 평소 안하무인적 성격으로 인해 구설에 오르내린 적이 많았다. 특히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상태에서,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조선일보의 편파적 보도에 항의하던 새정치국민회의와 국민신당 선거 운동원들에게 술에 취한 채 손가락질을 하며 "너네들 내일 모레면 끝이야. 국민회의, 국민신당 너희는 싹 죽어. 까불지 마. 내일 모레면 없어질 정당이."라며 술주정을 부렸던 사건은 유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과 한번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장담과는 달리, 선거 결과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인 1997년 12월 24일, 김 당선인에 대해 다룬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영문 기사를 완전히 조작하여 번역한 가짜 뉴스를 써서 조선일보 지면 1면에 발행한 전적도 있다.[18] 이는 당시 한창 물오르던 딴지일보에 의해 발각되었고, 온라인 기사로 발행되어 엄청난 히트를 쳤다. 이 딴지일보 기사는 초창기 인터넷 세상에서 대단히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심지어 현재까지도 언론 비평 관련 저작물이나 연구자료 등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역사적 사례가 되었다.[19] 참고로, 대부분의 고유명사를 비틀었던 초창기 딴지일보답게, 이 인물의 이름도 비틀었는데, 김대중 대통령과 구분하기 위해서 김대중 주필은 '김대충'으로 비틀어 썼다.
- 그는 조선일보 주필이 되기 전부터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혹은 가장 악명이 높은 언론인[20]이었고 또한 동시에 가장 영향력 있는 기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권력을 자기가 지목한 타겟의 '살인'에 꺼리낌 없이 사용했다. 그가 조선일보 주필 시절 얼마나 편향되게 펜대를 휘둘렀는지는 간단한 통계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2000년에 기고한 26건의 '김대중 칼럼' 가운데 15건이 대통령인 김대중과 국민의 정부, 새천년민주당을 비판한 것이었는데, 반면에 야당 총재인 이회창을 비난한 칼럼은 단 1건도 없었다. 그러나 김대중 측의 인사들과는 사적으로는 약간의 친분은 있었다고 한다.[21] 그의 레이더망에 걸리는 인물들은 족족 파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동료 류근일은 김대중 주필에 대해 "그 놈? 못 됐지. 아주 나쁜 놈이야."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은 문제인 것이 김대중과 류근일 두 원로는 서로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정도로 친한 사이다. 따라서 저런 평가는 반어법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 2001년에는 조선일보가 차명계좌를 통해 탈세를 했다는 혐의에 연루되어 검찰에 소환되었으나, 여기에 불응하였다.
- 2019년 1월 1일, 본인의 조선일보 칼럼에서 '대한민국은 '평화'를 좇다가 '통일연방'(북한 철도상의 발언) 쳐다보는 꼴이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관계 자체에 오류가 있는 칼럼이었다. 칼럼이 게재되기 며칠 전인 2018년 12월 26일, 남북 철도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에 참가한 북한의 김윤혁 철도상이 기념사에서 "남의 눈치를 보며 주춤거려서는 어느 때 가서도 민족의 뜨거운 통일열망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라고 발언했던 것을 당시 공동 취재단의 담당 기자가 잘못 알아듣고, 통일연방으로 받아쓰기 한 것이 그대로 기사로 나갔다가, 기념사 영상이 공개된 뒤 해당 발언이 확인되면서 잘못 나갔던 기사들이 죄다 정정되었던 헤프닝이 있었는데,[22] 김대중 전 주필은 정정보도가 나간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해당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팩트체크를 하지 않은 채, 사실 관계에 심대한 오류가 있는 글을 그대로 기고했던 것. 이 때문에 김 전 주필의 기자로서의 기초적 취재 능력 자체의 문제가 오랜만에 드러났다거나,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김대중 칼럼'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는 등의 뒷말이 언론계에 돌기도 했다.
- 2020년 5월 26일자 칼럼에서는 통계상의 오류와 사전투표지 발견 등의 주장을 인용하며 극우 유튜브와 극우층 일각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음모론에 힘을 싣었다. 그러나 이 항목과 이 항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 김대중 주필이 칼럼에서 제기한 의혹 중 대다수는 이미 반박된 부분이다. 게다가 김 주필은 실질적인 재검표 절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선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대법원에 재검표를 요청하면 된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민경욱 의원은 대법원이 아닌 인천지방법원에 증거보전신청만 했을 뿐,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5. 여담
-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명이인에 한자까지 똑같다.[23] 그러다보니 언론에 다루어질 때 항상 조선일보 김대중 혹은 김대중 주필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는 편이다. 두 명의 김대중이 각각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의 정점에 있던 국민의 정부 시기, 김대중 기자는 김대중 정부, 새천년민주당, 동교동계 정치인들을 사사건건 맹비판하며 엄청난 대립각을 세웠다. 그래서 "김대중의 최대 적은 김대중이다."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 1990년대 말, 적극적인 언론 비평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에 김대중 당시 주필에 대한 강력한 실명 비판을 앞장서서 수행했던 사람이 바로 강준만 교수이다. 강준만이 김대중을 평가하던 시각은 다음 글에서 잘 드러난다.[24]
유감스럽게도 김 주필님은 그간 자신의 위상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그에 따른 권력을 즐기는 데에만 몰두해 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없겠죠. 이해합니다. 당신이 세상을 우습게 볼만 합니다. 저는 정말 이해합니다. 그간 아무도 당신을, 조선일보를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진보적 지식인들이라는 사람들까지도 말입니다. 그들은 외국에서 수입된 좌파 이론이나 갖고 떠들 뿐 조선일보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조선일보와의 적대적 공존 관계를 통해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 지경이니 김 주필님의 간이 크게 부어 있다고 해도 전 놀라지 않을 겁니다. - 강준만, 월간 <인물과 사상>, 1998년 12월 호
- 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직접 김대중을 가르쳤던 리영희는 김대중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들(수습기자 6명)은 머리가 좋았던 만큼, 외신부에 들어와서 접하게 되는 세계정세와 인류사적인 변혁과 사건들에 대응해 이해하는 속도가 무척 빨랐어요. 그 세대들을 어려서부터 교육하고 세뇌했던 병적인 반공주의 사상도 나의 시각교정·의식수정 노력에 의해서 놀랄 만큼 교정되어 곧 정상적 가치판단을 하게 됐다, 그랬는데 그 가운데 김대중 군은 사사건건 반공주의만 고집하는 거예요. 베트남 전쟁, 중국 혁명[25], 제3세계 인민들의 진보적 운동에서 도도한 시대정신의 세례를 받으면서도, 김대중 군만은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그 낡은 비이성적인 극우반공주의자라는 의식의 틀을 깨질 못하더라고. 나는 다른 견습기자들은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면 우수한 저널리스트가 되겠지만, 김대중 군만은 어렵겠다고 실망했어. 그런데 훌륭한 저널리스트가 될 것으로 믿었던 기자들은 1974년에 일어난 언론자유투쟁 때 앞장섰다가 다 쫓겨났어. 반대로 도저히 구제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던 그 김대중 기자만은 그대로 남아서 논설주간이 되고, 주필이 되고, 한국 여론을 쥐고 흔드는 막강한 <조선일보>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더군." - 리영희, 임헌영, <대화>, 2005
- 시사저널의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90년대부터 2004년까지 오랫동안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5년 조사에서부터 손석희에게 1위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는데, 앞서 서술된 대로 당시 이 일은 언론계에서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후로도 약 10여년 간은 2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지만, 2017년 조사에서는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에게 2위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또한 2018년 조사에서는 유시민 작가에게도 밀려 4위로 내려 앉았고, 지목률도 2.0%에 불과한 수치가 나와서, 1위인 손석희 사장의 72.1%와는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고, 2위인 김어준 총수의 6.4%, 3위인 유시민 작가의 3.4%와도 차이가 많이 나는 수준이 되었다. 심지어 2019년 조사에서는 한해 전보다 더 낮아진 1.7%의 지목도가 나와서 5위로 내려 앉았고, 급기야 2020년 조사에서는 해당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아예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여러모로 종이신문 몰락의 한 단면이라는 언론계의 평가가 많다.
- 그의 극단적인 정치 성향과는 별개로, 박근혜 탄핵 사건 이후에는 친박 극우 진영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이다. 김대중 전 주필과 조선일보가 당시 박근혜 탄핵에 상당히 동조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편 2020년 제21대 총선 이후에는 정작 자신을 그렇게 욕하던 그 친박 극우 진영에서 열심히 주장한 부정선거 음모론에 김 전 주필이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나오자, 또 반대로 해당 음모론을 비판하는 보수 인사들이 김 전 주필을 비난하는 일까지 많아졌다. 여러모로 과거 잘 나가던 시절에 비해, 보수 진영 내에서의 비토가 이리저리 많아졌다.
- 지금도 조선일보에 '김대중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는데, 그를 싫어하는 독자들이 댓글로 하도 욕을 해서[26] 조선일보 사이트에서 유일하게 이 사람의 칼럼란에만 댓글 기능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6. 가족
- 김대중과 2살 터울인 맏형 무세중(본명 김세중)은 한국 전위예술 1세대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예술가이며,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현역 행위예술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형인 무세중의 정치적 성향은 동생인 김대중과는 정반대인 진보 성향인데, 이런 성향 차이 때문에 형제가 서로 크게 싸우기도 했다고. 동생 김길중 전 나라무역 대표는 2009년에 작고했다.
- 부인 김문자는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출신으로, 김대중 주필의 대학 동기이자 친구인 김광웅 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의 누나이다. 나이로는 김대중 보다 한살 많은 1938년생이다.
- 아들 김선우[27]는 김대중 전 주필이 워싱턴 D.C.에서 주미특파원으로 있던 시절에 그곳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한국에서 마치고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에 유학해 지리학을 공부했다. 이후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했으며 같은 동아일보 기자였던 박혜윤[28]을 만나 결혼했다. 이후 아들 내외는 기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민 가서 현재는 농사를 지으며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김선우는 《40세에 은퇴하다》라는 책을 냈고,[29] 박혜윤은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썼다.# # 부부 공저로 《싸우지 않는 부부가 위험하다》가 있다.
[1] 광산 김씨 '중(中)'자 항렬이다.[2] 서울대 학군단은 국내에 최초로 창설된 학군단이며 한 때 준장이 학군단장을 맡았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3] 훗날 리영희는 김대중 논설위원에 대하여 "그는 내가 일구어낸 최고의 성과이자 최악의 상처다."라고 평하였다.[4] 중국의 대하무협소설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고려인 천건남의 이미지와 흡사하기도 하다. 물론 의천도룡기의 집필 시기인 1961년과 김대중의 조선일보 입사 시기가 맞지 않기 때문에, 선배 언론인으로 실력이 쟁쟁했던 선우휘나 리영희 쪽이 어느 정도 캐릭터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지만, 김대중 주필이 장수하면서 오랫동안 활동해왔기 때문에 인상은 이쪽이 더 깊게 박히는 것이다.[5] 김대중의 이후 행보를 보면 대단히 수구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 리영희의 사상이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과 일하던 시기 리영희가 가진 수정주의적 사고관도 편협하기 짝이 없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후일 후회하긴 하지만, 당시 리영희는 문화대혁명과 마오주의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던 인물이었다.[6] 당시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로 인해 상당수의 기자들이 이런 식으로 영합하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반면 이에 굴하지 않고 싸운 언론인들도 소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언론통폐합, 보도지침 및 땡전뉴스 문서로.[7] 김대중이 사형선고 사건 당시 자기를 죽이려 한 전두환에게서 빠져 나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썼던 거짓 편지를 갖고서 전후 맥락(콘텍스트 context)을 몽땅 삭제한 채 계속 '약속해놓고 안 지켰다' '다시는 정치 안 한다 해놓고 거짓말한다'고 몰아세웠다. 물론 김대중 대통령은 훗날 1986년 11월에, 직선제 개헌이 된다면 대통령 불출마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얘기를 뒤집고 1년 뒤 대선에 출마했다. 한참 지난 10년 전 일도 아니고 바로 작년에 불출마를 선언한 사람이 대선 토론회에 나와 있으니 충분히 토론회에서 할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악의에 가득찬 질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8] 단, 지지율이 상승 추세였다 하더라도 당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보다는 김영삼 대통령이 더 지지율도 높았고, 여론조사에서도 김대중, 노태우 후보를 서울에서 여유있게 이기고 있음이 CIA보고서에 나와 있다.[9] 조선일보의 전성기는 2000년대 초반까지였다. 2001년 248만 부로 최고 부수를 찍고, 이듬해인 2002년 4,817억 원의 최고 매출을 찍었다.[10] 결국 한완상 장관은 조선일보의 집요한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취임 10개월만에 교체되었다.[11] 이 노골적인 사설은 당시 언론계에서도 엄청난 이슈가 되었는데, 조선일보 내부에서도 이건 너무 심했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대선 며칠 뒤 해당 사설을 비난하는 독자의 항의를 지면에 실으면서 어쩔수 없이 결국 비판을 일부 수용하는 제스쳐를 취해야만 했다.# #[12] 물론 90년대 말부터는 문화, 예술 분야의 권력이 방송 매체로 완전히 넘어간 상황이었고, 2000년대 초 부터는 인터넷 뉴미디어 저널리즘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정치적 의제 설정 권력 만큼은 여전히 신문에게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손석희가 김대중을 꺾은 것은 그 '한줌 남은 권력' 마저도 조용히 붕괴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신호탄이었다.[13] 물론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조선일보 내에서도 완연히 2선으로 후퇴한 인물이었고, 계속해서 지면에 고정 칼럼을 연재하면서 조선일보 논조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다고는 하지만, 예전처럼 주도적으로 그가 조선일보 전체를 한손에 좌지우지 하지는 못했다.[14] 지명도가 1% 미만이 나왔는지 10위권 리스트에도 들지 못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 결과 리스트에서 김대중 전 주필의 이름이 없어진 것이다. 시사저널의 해당 조사 외의 다른 매체의 '언론인 영향력' 관련 조사에서는 간혹 순위권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순위 최하위권을 맴돌거나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15] 공교롭게도, 손석희, 김어준, 김대중은 각각 방송, 인터넷, 신문을 상징하는 캐릭터이다.[16] 반면 현재 김대중과 함께 대표적인 극우파 언론인으로 분류되는 조갑제는 당시 반쯤 목숨 걸고 직접 광주에 현장취재를 다녀왔고, 제대로 된 르포기사를 썼다. 조갑제는 적어도 1980년대 당시까지는 반정부 성향의 국제신문 기자였다.[17] 출처 : 윤덕한, <한국언론 바로보기 100년>[18] 예를 들면, "김대중의 경제 정책에 대한 우려는 틀림없이 근거없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라고 번역해야 할 대목을, "김대중의 경제 정책은 분명히 근거없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완전히 반대로 왜곡했다.[19] 출처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90년대편 3 : 3당합당에서 스타벅스까지>[20] 영미권의 루퍼트 머독에 비유되기도 했다. 다만 머독은 같은 보수언론이기도 한 더 선의 사주로, 김대중보다는 김대중이 모셨던 방일영, 방우영 회장과 더 비슷한 포지션이다. 김대중과 진짜 비슷한 인물은 1980~90년대에 더 선의 편집장을 지낸 영국의 원로 보수 언론인 켈빈 맥켄지라고 할 수 있다.[21] 김대중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이던 시절부터 대통령 당선 이후까지, 사실상의 언론 창구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무소불위의 언론 권력을 자랑하던 김대중 주필을 어떻게든 설득해 내기 위해 박지원 실장이 김대중 주필을 거의 매일 만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가 김대중 주필 기자 50주년 기념 칼럼에 실리기도 했다.#[22] 이 때문에 그 다음날인 27일까지 여러 언론에서 해당 기사를 정정하는 관련 보도를 냈으며, 또한 JTBC 뉴스룸도 팩트체크 코너에서 해당 내용을 다루기도 했다.[23] 다만 김대중 기자의 본관은 광산 김씨여서 김 전 대통령의 본관인 김해 김씨와는 다르다. 또 김대중 대통령은 이름의 한자를 바꾼 적이 있다. 한편 야구선수 김대중과도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다.[24] 이토록 한때 사사건건 조선일보와 엄청나게 충돌하며 보수 언론에 대한 강력한 비판 활동을 하던 강준만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 급격히 보수주의 우익 성향으로 방향을 틀었고, 결국 보수 언론에서 주로 활동하며 보수 정당에 찬동하게 된다. 20년을 돌고 돌아 조선일보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난 셈. 자세한 사항은 강준만 항목 참고.[25] 단, 이는 리영희의 오류였다. 문화대혁명을 옹호한 그의 전력은 평생의 흑역사로 남았고, 그 스스로도 한정된 정보로 인한 오류였다고 시인하고 사과한 적이 있다. 당시 장폴 사르트르처럼 서구 지식인들 중에도 문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례가 좀 있었다.[26] 조선일보 사이트에 가입 후 오랫동안 고정적으로 활동하는 유저들은 당연히 보수 정당과의 일체감이 강력한 충성도 높은 강성 보수 우파 지지층인데, 이 유저들이 김대중 전 주필이 가끔 보수 정당을 비판하는 칼럼을 쓸 때마다 그를 공격하는 댓글을 꽤나 달곤 했기 때문.[27] 야구선수 김선우와는 동명이인인데 우연히도 김선우 선수의 아버지 이름도 김대중(金大中)이다.[28]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워싱턴 대학교 교육심리학 석사·박사.[29] 책 내용만 보면 평범한 기러기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고 소박한 인생을 사는 이야기이지만, 정작 저자가 금수저라는 배경을 알게 되면 '낚였다'라는 감상이 든다. 사실, 저자의 배경을 모르고 읽었더라도 이미 40세에 내 집 마련을 하고 주택담보대출까지 다 갚았다는 대목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 부전자전이라고, 문장은 매우 유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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