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7 21:02:35

민주당(1955년)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민주국민당민주당강제해산
(민주당)
신민당
통일당
파일:대한민국 국무총리 휘장.png 대한민국 여당
자유당
,(1951.12~1960.4),
민주당
(1960.8~1961.5)
민주공화당
,(1963.12~1979.10),
파일:1955민주당1.jpg
파일:1955민주당2-4.jpg
1956년 제3대 정·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의 선거 포스터와 유세차량.[1]
파일:1955민주당3.jpg
▲ 1955년 민주당의 적통을 이었음을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

1. 개요2. 창당 과정과 통합3. 제2공화국 시기4. 구파와 신파5. 창당에 동원된 정당과 계파6. 민주당(1955년) 출신 정치인7. 역대 선거결과8. 관련 문서

1. 개요

제2공화국의 집권 여당. 1955년 9월 18일에 자유당의 사사오입 개헌이 동기가 되어 창당된 정당이다.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의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 민주당을 자신들 당의 뿌리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학계나 일반 국민들 사이엔 한국민주당[2]이나 신한민주당[3], 평화민주당[4] 등을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로 보는 시각도 있다.

2. 창당 과정과 통합

사건 순서 민주당(1955년)의 창당 과정
1 민주국민당 흥사단계(장면, 정일형 등) 자유당 탈당파(현석호, 이태용 등) 무소속 일부
2 1955년 9월 18일 민주당(1955년) 창당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한 야당 세력이 모여 만든 정당이다. 한 정당에 여러 계파가 모여 있다 보니 창당 이후에도 이합집산으로 모인 계파와 과거 정당 출신들이 갈등을 벌였다. 구 한국민주당, 민주국민당 출신 구파,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계 등 신파의 내부적 갈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민주당 창당에는 이승만 정권에 참여했으나 권력투쟁 과정에서 밀려나있던 우익 정치인 장택상 전 국무총리와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주도했으나 노선갈등으로 물러난 뒤에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혁신계(진보세력)의 조봉암도 참여하려 했다. 장택상과 조봉암은 사상적으로 정반대였지만, 사적으로는 대단한 절친으로 장택상이 조봉암은 혁신계지만 사상적으로는 투철한 반공주의자라고 보증하면서 민주당에 참여시킬려고 하였다. 그러나 구 한민당, 민국당 출신들이 장택상의 보증에도 불구하고 "사상이 의심스러운 조봉암은 안 된다"면서 거부하면서 조봉암은 민주당에서 배제된다. 이렇게 되자 조봉암의 절친인 장택상도 민주당 창당에서 빠지고 자유당으로 돌아가버렸다. 한편 조봉암은 혁신계를 결집시켜서 독자적으로 진보당 창당에 나선다.

3. 제2공화국 시기

4.19 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의석의 약 75%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둔다.[5] 하지만 이 때문에 민주당의 신-구 갈등은 더욱 악화되어 따로 원내교섭단체를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960년 11월, 민주당을 탈당한 구파세력이 신민당을 창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민주당은 제2공화국의 집권 여당이었지만 5.16 군사정변이 터져서 와해되어버린다.

4. 구파와 신파

구파 신익희, 조병옥, 김도연, 김준연, 윤보선, 유진산, 윤제술, 허정, 백남훈
신파 곽상훈, 장면, 현석호, 오위영, 박순천, 이철승, 정일형, 김영선

참고로 김영삼은 유진산과 가까운 구파, 김대중은 장면의 추천으로 정계에 입문해서 정일형과 가까웠던 신파이다.

구파는 구파동지회라는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였으며, 분당파와 협상파로 나뉘어 대립하다가 분당파는 신민당을 창당하였고 협상파는 신파로 넘어가 합작파가 되었다.

신파는 노장파, 소장파, 합작파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소장파 의원 32명이 신풍회를 조직하였고, 합작파는 정안회를 조직하였다. 노장파에서도 비주류로 구성된 중도파는 신풍회와 협력하려 했다.

5. 창당에 동원된 정당과 계파

6. 민주당(1955년) 출신 정치인

민주당(1955년) 출신 정치인
소속기간 이름 직위 비고
? 김상돈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선임.
※ 제헌 국회의원(마포구) 무소속
※ 제3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마포 갑) 민주국민당
※ 제4대~5대 민주당(1955년) 창당에 참여.
1963년 군정 반대 운동에 참여.
1969년 삼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 고문으로 참여.
1958년~? 계광순 일제강점기의 관료.[6]
친일반민족행위자 708인 명단 등록
친일인명사전에 수록.
※ 민주당(1955년) 제4대~6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춘천시, 전국구
장면 계열의 민주당 신파 소속.
고담룡 ※ 민주당(1955년) 제4대~5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제주시 일원
※ 독립운동으로 8년형
곽상훈 ※ 민주당(1955년) 제4대~5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인천시
무소속 제1대~3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인천시 갑, 을
※ 민주당(1955년) 신파의 지도자
1955년 호헌동지회 결성 참여.
1930년 11월 29일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정산(今井山) 근처의 무관 가문의 아들.
1919년 3.1운동 참여
※ 상해 한인청년동맹간부로 독립운동.
※ 초대 국회의원 재임 시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검찰관으로 활동. [7]

7. 역대 선거결과

8. 관련 문서


민주당계 정당
제1공화국 ~ 제4공화국
(1948 ~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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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익희, 지청천 등 일부 의원이 이탈하여 민주국민당에 편입
제5공화국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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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 후보는 신익희, 부통령 후보는 장면이다.[2] 이승만 정권기 최초의 야당.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민주당의 전신 격이다. 그러나 친일반민족 논란으로 인해 새정치민주연합에 의해 족보에서 파이는 굴욕을 맞았다. 1955년 민주당 창립 시점부터 60년 뒤인 2015년에 민주당 60주년을 기념했기 때문이다.[3] 전두환 집권기였던 1985년 1월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어용야당 민주한국당에 반발해 생긴 정당. 본격적으로 이 이끄는 민주계의 시작이다.[4] 1987년 대선 당시 신한민주당의 후신인 통일민주당에서 분리된 당. 상도동계가 중심인 김영삼통일민주당에 대응해 김대중동교동계를 필두로 갈라져 나온 정당이다. 이후 통일민주당이 민주정의당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 여당이 되어버리면서 평화민주당은 유일하게 남은 민주계 정당이 되었다. 이후 이 평민당의 계보는 약간의 변화를 거쳐(분열, 재합당 등) 지금의 민주당까지 이르고 있다.[5] 이승만의 자유당이나 박정희의 민주공화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도 달성하지 못했던 마의 3/4선의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90년대 초반의 민자당이 이에 비견되는 의석비율을 확보하긴 했지만 선거로 이루워진 건 아니었고, 92년 총선에서 149석(... 이후에 무소속 의원과 통일국민당 의원 영입으로 170석대까지 늘리긴 했다.)으로 쪼그라들았으니 뭐...[6] 계광순(桂珖淳)[7] 곽상훈(郭尙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