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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 |||||||||
지역별 결선 결과 | |||||||||
{{{#!wiki style="margin: -7px -12px" | 2004 대선 | → | 2010 대선 | → | 2014 대선 | }}} | |||
선거 일시 | 1차: 1월 17일 | ||||||||
결선: 2월 7일 | |||||||||
투표율 | 1차: 66.76% (▼7.78%p) | ||||||||
결선: 69.15% (▼8.13%p) | |||||||||
선거 결과 | |||||||||
후보 | 빅토르 야누코비치 | 율리야 티모셴코 | |||||||
1차 | |||||||||
35.30% 8,686,642표 | 25.10% 6,159,810표 | ||||||||
결선 | |||||||||
49.00% 12,481,266표 | 45.50% 11,593,357표 | ||||||||
당선인 | |||||||||
우크라이나 지역당 빅토르 야누코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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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에 실시된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2. 배경
2004년 오렌지 혁명을 통해 대선에서 결선 재투표를 거쳐 당선된 빅토르 유셴코는 이원집정부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내세웠다. 그러나 유셴코는 2004년 12%이던 경제 성장률을 1년만에 2%대로 추락시키고 물가 안정에 실패해버렸고, 율리아 티모셴코가 유셴코와 결별하며, 낮은 지지율에 시달려야했다. 또한 2008년 대침체 이후 IMF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우크라이나의 경제가 큰 타격을 받아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년대 중반 수준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유셴코의 지지율은 완전히 추락했고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심지어 2009년 3월에는 총리 율리야 티모셴코가 유셴코의 정적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총리와 연대를 꾀하면서까지 반 유셴코 성향을 드러내며 정치적 혼란이 심화되었다.3. 선거 결과
3.1. 개표 결과
3.1.1. 1차 투표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2010. 1. 17.) | ||||||
순위 | 후보자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결선 여부 | |
1위 | 빅토르 야누코비치 | 우크라이나 지역당 | 8,686,642 | 35.32% | 진출 | |
2위 | 율리야 티모셴코 | 바티키우시나 | 6,159,810 | 25.05% | 진출 | |
3위 | 세르히 티힙코 | 강한 우크라이나 | 3,211,198 | 13.05% | 탈락 | |
4위 | 아르세니 야체뉴크 | 무소속 | 1,711,737 | 6.96% | ||
5위 | 빅토르 유셴코 | 무소속 | 1,341,534 | 5.45% | ||
6위 | 페트로 시모넨코 | 우크라이나 공산당 | 872,877 | 3.54% | ||
7위 | 볼로디미르 리트빈 | 우크라이나 국민당 | 578,883 | 2.35% | ||
8위 | 올레흐 탸흐니보크 | 스보보다 | 352,282 | 1.43% | ||
9위 | 아나톨리 흐리첸코 | 무소속 | 296,412 | 1.20% | ||
10위 | 인나 보호슬로우스카 | 무소속 | 102,435 | 0.14% | ||
11위 | 올렉산드르 모로즈 | 우크라이나 사회당 | 95,169 | 0.38% | ||
12위 | 유리 코스텐코 | 우크라이나 인민당 | 54,376 | 0.22% | ||
13위 | 류드밀라 수프룬 | 인민민주당 | 47,349 | 0.19% | ||
14위 | 바실리 프로티브시 | 무소속 | 40,352 | 0.16% | ||
15위 | 올렉산드르 파바트 | 무소속 | 35,474 | 0.14% | ||
16위 | 세르히 라투시냐크 | 무소속 | 29,795 | 0.12% | ||
17위 | 미하일로 브로드스키 | 무소속 | 14,991 | 0.06% | ||
18위 | 올레흐 리아보콘 | 무소속 | 8,334 | 0.03% | ||
선거인수 | - | 투표수 | 24,588,268표 | - | ||
무효표수 (백지표+무효표) | 948,608표 | 투표율 | 66.76% | - |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유셴코가 1차 투표에서 낙선하고 율리야 티모셴코와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결선 투표에서 대결하였다.
3.1.2. 결선 투표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 |||
<rowcolor=#373a3c,#dddddd>이름 | 득표수 | 순위 | |
<rowcolor=#373a3c,#dddddd>정당 | 득표율 | 당락 | |
빅토르 야누코비치 | 12,481,266 | 1위 | |
48.95% | 당선 | ||
율리야 티모셴코 | 11,593,357 | 2위 | |
45.47% | 낙선 | ||
<rowcolor=#373a3c,#dddddd>계 | 선거인 수 | - | 투표율 69.15% |
<rowcolor=#373a3c,#dddddd>투표 수 | 25,493,529 | ||
<rowcolor=#373a3c,#dddddd>무효표 수 | 1,418,892 |
결선투표 자체는 2009년의 여론조사 결과에 비해서는 상당히 접전이었다.
3.2. 선거 이후
선거 후 티모셴코는 "야누코비치를 적법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라며 부정선거를 강하게 주장했다. 동시에 선거 결과에 불복해 우크라이나 지역당 측의 선거 부정 행위를 행정 법원에 제소했고 이로 인해 행정 법원의 선거 부정 심의일인 2월 25일까지 대선 결과의 효력이 정지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소송을 걸었으나, 취임식 취소 청구 등 대부분의 소송이 기각되었다. 2월 16일에는 선거 무효 소송까지 제기했으나 20일 여러 소송이 기각된 이후 "재판부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소송을 계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며 소송을 전부 취하했다. # 그러나 취하 이후에도 "비록 소송은 취하했지만 이 소송을 통해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라는 역사적 증거가 남게 됐다"라고 정신승리하며 선거 결과에 불복했다. 여담으로, 유럽연합을 비롯한 서방 세력 역시 대선 결과를 문제삼지 않았다.이후 대통령으로 취임한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율리아 티모셴코 총리를 해임시켰고, 검찰은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를 배임혐의로 구금 수사했으며, 법원은 티모셴코 총리에게 7년형을 선고하였다. 이는 당대에도 논란이 많아서, 서부지역에서 야누코비치에 대한 반감을 한층 더 심화시켰고, 나중에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한편 유셴코는 내심 반겨하는 반응이었고, 우리우크라이나당은 티모셴코의 구금을 반대했지만 묵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