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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Монгол Ардын Нам | |
| 영문 명칭 | <colbgcolor=#ffffff,#1c1d1f>Mongolian People's Party | 
| 한글 명칭 | 몽골 인민당 | 
| 창당일 | 1920년 6월 25일 | 
| 당사 주소 | 울란바토르 | 
| 위원장 | 롭상남스랭 어용에르덴 (Лувсаннамсрайн Оюун-Эрдэнэ) | 
| 서기장 | 다시젝빙 아마르바요스갈릉 (Дашзэгвийн Амарбаясгалан) | 
| 청년 조직 | 사회민주몽골청년동맹 | 
| 국제 조직 | |
| 국가대후랄 의원 | 68석 / 126석 (54.0%) | 
| 지방의원[1] | 449석 / 796석 (56.4%) | 
| 스펙트럼 | 중도좌파 (2010년대 ~ ) 과거: 좌익 (1990년대 ~ 2010년대) 극좌 (1920년대 ~ 1990년대) | 
| 이념 | 사회민주주의 (2010년대 ~ ) 과거: 민주사회주의 (1990년대 ~ 2010년대) 마르크스-레닌주의 (1920년대 ~ 1990년대) | 
| 사이트 | |
1. 개요
몽골의 집권여당. 동아시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회주의 정당이자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정당이다.[2]몽골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1990년대부턴 온건화되어 2010년대 이후부터는 사회민주주의를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다. 진보동맹에도 가입되어 있다. 중도좌파 정당이지만 몽골 자체가 66년 가량 공산주의 국가였던 관계로, 자국내 정치적 스탠스는 범보수 기성 진영에 속한다.
현재 몽골 대통령인 오흐나깅 후렐수흐의 소속 정당이다. 이원집정부제 국가인 몽골에서 2016년 후랄선거[3]와 2021년 대선을 통해 총리와 대통령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2. 역사
1920년, 담딘 수흐바타르, 허를러깅 처이발상 등 복드 칸국에서 활동하던 몽골의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들이 당시 흩어져 있던 여러 성향의 독립운동 단체들을 규합해 만든 몽골 인민당이 그 시초이다. 다시 말해 본래 사회주의 단체가 아니었던 이들을 사회주의 정당으로 통일한 것이다. 1921년, 수흐바타르는 레닌을 방문하여 몽골 인민당을 몽골 공산당으로 개칭하는 것이 어떻냐고 문의했지만 레닌은 몽골은 봉건적 유목민 사회이므로 유의미한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없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몽골의 사정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몽골 인민당으로 당명을 정하라고 지시하였다. 1921년 7월 18일, 당기관지 우리아가 창간되었다.당시 몽골은 독립운동가에 러시아 백군에 공산주의자에 친중파에 아주 개판 5분전이였는데, 그 중 독립운동가들을 겨우 모은 결과가 이 인민당. 그리고 몽골인민유격대도 함께 조직해 로만 폰 운게른 슈테른베르크의 백군을 쫓아내고 외몽골 출병으로 쳐들어온 중화민국 북양정부의 안휘군벌도 쫓아낸다. 이후 1924년까지 복드 칸국에서 입헌군주제 비슷하게 공화국 수립 준비를 거쳐, 1924년 복드 칸이 사망하자 몽골 인민공화국을 건국한다. 1924년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당명을 몽골 인민혁명당으로 개명한다.
1952년까지 허를러깅 처이발상이, 1952년부터 1984년까지 욤자깅 체뎅발이, 1984년부터 1990년까지 잠빙 바트뭉흐가 최고지도자 직을 맡았다.
1990년대 전후해 소련 등에서 불어오는 자유화 바람으로 인해 민주화 열기가 거세지자 몽골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다. 결국 민주화 운동권과 협상해서 1990년에 자유 총선을 시행하고 1992년에 헌법을 개정하며 1990년 몽골 혁명을 완성한다. 이후로는 몽골 민주당과[4] 경쟁하는 양당제가 형성되었다.
2010년,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 아래 1920년 창당 당시 사용했던 당명인 몽골 인민당으로 당명을 개명했다. 그리고 이때 당의 이념 또한 민주사회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바꾸었다. 다만 이러한 당의 변화에 반대한 남바린 엥흐야바르 전 대통령이 탈당해 몽골인민혁명당을 창당했다가 2021년 다시 합당했다.
2020년 국가대후랄 선거(총선)에서 전체 76석 중 무려 62석을 얻으며 압승, 민주당 소속인 할트마깅 바트톨가 대통령의 국정 동력을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는 수준의 의회 권력을 손에 쥐었다.
2021년 대통령 선거에서 오흐나깅 후렐수흐를 후보로 내세워 승리했다. 이로써 대통령과 총리, 국회 과반수를 모두 차지하며 압도적인 집권여당으로 발돋움했다.
2024년 국가대후랄 선거에서 의원정수가 50석 늘어나며 126석이 된 전체 의석 중 68석을 얻는데 그쳐, 과반선(64석)을 간신히 넘는 의석수로 승리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12석에서 42석으로, 제2야당인 인간당이 1석에서 8석으로 의석을 크게 늘리고 그동안 원외 정당을 전전하던 시민의지녹색당 등이 원내에 진출한 것을 감안하면 의회 장악력은 전보다 현저히 떨어진 셈. 일단 당대표인 롭상남스라이 어용에르덴 총리가 선거 승리를 선언하긴 했지만, 향후 국정 운영에서 야당들의 견제가 심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이후 야당인 민주당과 인간당과의 연대를 결정하며 118석의 거대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용에르덴 총리와 관련된 부패 스캔들과 이로 촉발된 시위로 연정 내 내분이 발발하였고, 2025년 5월 21일 몽골 인민당은 시위를 지지한 민주당을 연정에서 추방했다.# 이후 어용에르덴 총리는 민주당이 불참한 가운데 6월 3일 불신임투표 가결로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후임으로 곰보자빙 잔단샤타르 전 국회의장이 총리로 취임했다.
2025년 10월 17일 곰보자빙 잔당샤타르 총리가 다시젝빙 아마르바요스갈릉 신임 국회의장과의 당대표 경선에서 패한 뒤 일련의 당내 갈등을 빚었고, 반대파의 주도 하에 해임 반대에 대한 비동의 안건이 본회의에서 가결되며 재임 4개월여 만에 실각하였다. 다만 법적 다툼 등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다. # 그리고 10월 20일 오흐나깅 후렐수흐 대통령이 해당 해임에 대해 "절차상의 오류가 있다"며 수용을 거부하면서 잔당샤타르 총리는 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3. 역대 선거 결과
1992년 민주화 이후의 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다.3.1. 대통령 선거
| 연도 | 후보자 | 득표수 | 득표율 | 결과 | 
| 1993년 | 러덩깅 투데브 | 397,061표 | 40.1% | 낙선 | 
| 1997년 | 나차깅 바가반디 | 597,573표 | 62.5% | 당선 | 
| 2001년 | 581,381표 | 59.2% | 당선 | |
| 2005년 | 남바링 엥흐바야르 | 497,491표 | 54.2% | 당선 | 
| 2009년 | 520,948표 | 48.1% | 낙선 | |
| 2013년 | 바드마냠보깅 바트에르덴 | 520,380표 | 42.5% | 낙선 | 
| 2017년 | 미예검빙 엥흐벌드 | 497,067표 | 44.8% | 낙선 | 
| 2021년 | 오흐나 후렐수흐 | 823,326표 | 72.0% | 당선 | 
3.2. 국가대후랄 선거
과반수를 차지한 경우 붉은 바탕으로, 원내 1당이었던 경우 흰 바탕에 붉은 글자로 표시.| 연도 | 당수 | 의석수 | 득표수[5] | 득표율 | 
| 1992년 | 부드락차깅 다시영덩 | 70/76석 | 1,719,257표 | 56.9% | 
| 1996년 | 폰차깅 자스라이 | 25/76석 | 408,977표 | 40.5% | 
| 2000년 | 남바링 엥흐바야르 | 72/76석 | 517,746표 | 51.6% | 
| 2004년 | 36/76석 | 517,443표 | 48.2% | |
| 2008년 | 산자깅 바야르 | 45/76석 | 914,037표 | 52.7% | 
| 2012년 | 수흐바타링 바트벌드 | 25/76석 | 353,839표 | 29.5% | 
| 2016년 | 미예검빙 엥흐벌드 | 65/76석 | 636,138표 | 45.1% | 
| 2020년 | 오흐나 후렐수흐 | 62/76석 | 795,793표 | 44.9% | 
| 2024년 | 롭상남스랭 어용에르덴 | 68/126석 | 509,482표 | 3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