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슬람 공화국 대통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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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슬람 공화국 초대 대통령 세예드 아볼하산 바니사드르 ابوالحسن بنیصدر | Sayyid Abolhassan Banisadr | |||
<colbgcolor=#303A3B><colcolor=#ffffff> 출생 | 1933년 3월 22일 | ||
이란 제국 하마단주 하마단 | |||
사망 | 2021년 10월 9일 (향년 88세) | ||
프랑스 파리 | |||
재임기간 | 초대 대통령 | ||
1980년 2월 4일 ~ 1981년 6월 22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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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3명 | ||
종교 | 이슬람교 (시아파, 사실상 무종교)[1] | ||
소속 파벌 | [[개혁파| 개혁파 ]] | ||
소속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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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سید ابوالحسن بنیصدر
1933년 3월 22일 ~ 2021년 10월 9일
이란의 정치인으로, 초대 대통령이자 이란 최연소(46세) 대통령이다.
2. 생애
하마단에서 종교 지도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루홀라 호메이니와 매우 가까운 사이었지만 정작 바니사드르 본인은 호메이니를 직접 만났던 적이 없었는데, 1972년 부친이 사망하고 장례식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소르본 대학교에서 재정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일찍이 반정부 활동에 눈을 뜨는 바람에 당국의 탄압을 받아 프랑스로 도로 망명했다. 이후 호메이니와 가까워지면서 신임을 얻기 시작했고, 1979년 혁명 이후 재무장관 및 외무장관 대행을 거쳐 198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성직자가 아니었음에도, 이슬람 신정 체제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현재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지만 이란 건국 극초창기인 이때까지만 해도 호메이니가 성직자는 공직을 맡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2]
하지만 중도파에 가까웠던 그는[3] 막상 대선에서 압승한 것과는 달리, 이슬람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던 국회[4]와 수시로 충돌을 빚었으며, 대통령 위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의 눈 밖에 나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1981년 6월 21일, 취임한 지 약 1년 만에 국회로부터 탄핵되었으며, 이후 서방으로 망명했다. 당연히 혁명 지도부가 적대한 서방으로 망명했으니 이들 눈에는 "배신자"로 제대로 찍혀버린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후임으로 선출된 모함마드알리 라자이[5]가 취임 1개월 만에 공산 반군 인민전사기구에 의해 암살되면서, 이란은 이후 더욱 더 우경화하게 된다.
2021년 10월 9일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88세.
3. 매체에서
이란 혁명기를 다룬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에 자주 등장하며 특히 서방 망명으로 접근이 쉽다는 점에서 많은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이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역대 이란 대통령 및 라흐바르 중에서는 유일하게 서방 언론에서 부담없이 인터뷰하기 쉬웠던 인물이었다. 아르고에서는 바니사드르의 초상화와 더불어 인질 사태 초기에 바니사드르가 곧 인질들이 석방될 것이라고 전해왔다는 대사가 있지만 한국 개봉 당시 무식한 번역가들이 바니사드르가 누군지 모르고 그의 이름을 대사에서 삭제해버렸다.4.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0 | 이란 대통령 선거 | 이란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10,709,330 (75.60%) | 당선 (1위) | 초선 |
[1] 아버지가 종교지도자인데다 본인 역시 이슬람 혁명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으므로 공식적으론 이슬람 시아파를 표방했으나 사실상 무종교에 거의 가까웠으며 호메이니의 미움을 사는 이유 중 하나였다.[2] 이는 이란 혁명을 주도한 세력 중에 자신과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아닌 나머지 세속주의 공화파 세력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내세운 조치였으며, 바니사드르가 마음에 안 들어 바니사드르를 탄핵하고 이후에 당선된 라자이 암살 이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차기 대통령으로 이란 혁명 이전부터 본인의 2인자였던 성직자 출신의 하메네이가 나왔다. 하메네이 집권기엔 더 심해져 아마디네자드, 페제시키안 빼고 다 성직자 출신.[3] 애초에 샤와 그 체제에만 반대했을 뿐이지 호메이니가 주장한 신정제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샤를 몰아내기 위해 잠시 호메이니와 손을 잡았던 것일 뿐이었다. 바니사드르는 옷차림에서 보면 알수있듯 세속주의자였다.[4] 총선 당시만 해도 의석수가 과반에 한참 모자란 원내 1당이었지만,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호메이니 등 보수파 지도부의 계략으로 상대 정당들이 모조리 사라져(…) 이슬람공화당 및 이들과 가까운 무소속이 장악하게 되었다.[5] 바니사드르 밑에서 총리를 지냈는데, 보수파라서 바니사드르와 당연히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바니사드르가 탄핵된 이후 호메이니의 신임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