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6 20:09:41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1][2]

민중총궐기 페이스북(비공식) #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페이스북(공식) #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공식)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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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
시위 당시 가장 많이 나왔던 구호 중 하나. 6월 민주항쟁 당시에 '호헌철폐 독재타도'가 있었다면 박근혜 퇴진 집회 당시에는 '이게 나라냐'가 있었다.

2016년 10월 29일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 및 전국에서 일어났던 촛불집회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원이 참여하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벌어지며 촉발된 집회이며 주된 요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그 결과 소수의 사익에 충실하고 부정한 권력을 쌓아온 박근혜 정부는 대다수 국민들의 분노와 헌법에 따른 정당한 절차에 따라 무너졌고 탄핵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관련 인물들은 수감되어 재판에 오르게 되었다.[3]

주최 단체는 2015년과 2016년 민중총궐기를 주최했던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를 중심으로 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다.

1~3차 집회에선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_박근혜"라는 이름을, 4차 집회에선 "모이자! 광화문으로! 밝히자! 전국에서!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나, 5차 집회부터 "박근혜 즉각 퇴진 범국민행동"이라는 이름에 부제목(문장형 제목)을 사용한다.

그리고 6차 집회는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이란 이름을 쓰고 지난 26일 3차 대국민 담화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표시를 분명히 했다. 덕분에 이날 주최 측 추산으로 역대 촛불 집회 사상 최다 인원인 232만 명이 모였다.

정확한 목표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 수감까지 목표였고 현재 그렇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20차 집회가 개시되기 하루 전인 2017년 3월 10일 박근혜대통령이 파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1차 및 22차 집회가 진행되었다.

20차 집회 이후, 주최 비용으로 1억 원의 빚이 남아있었으나, 기사가 보도되면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틀 만에 약 2만 1천여 명이 8억 8천만 원이라는 금액을 후원하였다.감사의 글

23차 집회를 마지막으로 공식 촛불 집회는 종료되었으며, 이후 2017년 5월 24일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측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식 해산을 선언하였다.

이번 집회의 성공요인중 하나로는 시위 목적에 다른 부분들을 첨가하지 않고 오직 순수하게 박근혜의 퇴진만 요구했기 때문에 많은 참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평가 받고있다. 실제로 집회 초기에는 또 박근혜의 퇴진을 가장해서 슬쩍 다른 요구 사항들을 추가하는 추태를 우려해 집회에 참가할지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주최측에서 오직 박근혜의 퇴진만을 요구 하겠다고 약속하자 집회 참가자들이 많아졌고 당시 여당과 보수계 지지자들의 많은 참가도 이끌어냈다.[4]

'한국판 명예혁명'이라고 평하는 이들도 있으나 굳이 따지자면 영국명예혁명과는 일부 차이점이 존재한다.
  • 이름 혹은 통념과 달리, 실제 영국의 명예혁명 당시에는 유혈 투쟁이 일어났다. 그것도 상당히 많이. 실제로 아일랜드 등지에서는 내전까지 일어났으며, 명예 혁명은 이후 국제적 분쟁에 영향을 끼친 측면이 없지 않아 이 문제는 영국 사학계에서 상당한 떡밥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일부 인사들의 언행과 달리 내전은커녕 유혈 충돌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탄핵 직후 친박 집회에서 팀킬(...)로 세 명이 사망한 것을 제외하고는[5] 피가 흐르지 않았다. 그마저도 촛불 시위대와 경찰은 충돌조차 하지 않았다. 요약하면 영국의 명예 혁명보다 더 사전적인 의미의 명예 혁명에 가까웠다. 청출어람 돋네
  • 약간 거칠게 말하자면 명예혁명은 백성들 입장에서는 똑같은 기득권층인 국왕과 의회과 젠트리 간의 세력 싸움에 불과했지만, 이른바 '촛불 혁명'은 그 '백성'에 해당하는 시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대통령의 퇴진을 부르짖은 사건이다. 다시 말해, '헌법을 준수하지 않은 대통령에 대항한 헌법 수호 혁명'으로 명예 혁명보다도 실제 민주주의적 이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혁명은 다른 많은 혁명들과 달리 철저히 19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제6공화국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6] 박근혜 정부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는 상당한 의의가 있다. 참고로, 만약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4월까지 미뤄졌을 것이다. 실제 당시 국회에서는 6차 집회 전까지 '4월 퇴진 6월 선거'가 정설로 받아 들여졌다.

이후 2017년 10월에 독일 공익·정치 재단인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집회에 참여한 1000만 국민을 '2017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리고 2017년 10월, 1주년 촛불 집회를 개최했다.[7]

이 시위도 위기가 있었다. 기무사가 탄핵이 부결될 경우를 상정한다는 명목으로 군대로 이 평화 시위를 무력으로 가로막고 나아가 언론 기관 전체를 장악해 국민들의 목소리 자체를 선동 저지라는 이유로 틀어막을 계획을 획책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회가 탄핵소추을 가결시켜서 위기을 넘겼다. 국군 기무사령부가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내려지기 직전 탄핵 기각 결정에 불복한 국민들이 청와대와 헌재에 진입을 시도할 것에 대비해 계엄령 선포를 검토한 것으로 2018년 7월에 확인됐다. 기무사 문건은 초기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상황이 악화할 경우 계엄 선포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계엄군으로는 탱크와 장갑차로 중무장하고 있는 기계화보병사단 6개와 공수특전여단 6개 등을 포함시켰다.여기에 시위대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등 부득이한 경우에는 발포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서 공수부대의 총에 수백명의 시민들이 사살되었었다. 그 끔직한 일이 반복될 뻔한 것. 이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무사가 국민을 가상의 벽으로 설정하고 위수령 발동, 계엄령 절차, 군병력 이동까지 계획한 것은 헌법상 내란음모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발언하였다.#1#2#3#4

또한 해산된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이석기 석방' 과 같은 팻말을 들어서 시위의 의미를 왜곡시키려 할때마다 참가한 시민들이 저지하였다.

2019년 6월에는 기무사가 촛불집회를 민주주의국민행동[8]조총련과 함께 묶어서 이를 간첩 사건으로 기획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계엄령 선포시, 촛불집회를 간첩사건으로 몰아서 국민들이 저항할 의지를 꺾어 놓으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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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차 집회

10월 29일 개최되었다.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문서 참조.

2.2. 2차 집회

11월 5일 개최되었다.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서 참조.

2.3. 3차 집회

11월 12일 개최되었다. 2016년 11월 민중총궐기 문서 참조.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집회는 지난 집회들과는 달리 6차 민중총궐기로 진행되었다.

2.4. 4차 집회

11월 19일 개최되었다. 모이자! 광화문으로! 밝히자! 전국에서!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 문서 참조.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후인 만큼 정유라 특혜에 분노한 수능 끝난 고3들이 참여하였다. 집회 이름이 "모이자! 광화문으로! 밝히자! 전국에서!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으로 변경되었다.

2.5. 5차 집회

11월 26일 개최되었다.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 문서 참조. 초대형으로 치른다. 200~300만 명 참가가 예상되었으나, 이 날 전국적으로 눈이 온 관계로 서울 150만 명 지방 40만 명으로 총 190만 명이 참가하였다. 오히려 날씨 때문에 인원이 크게 줄 것이라 예측되었음에도 헌정 사상 두 번째로[9] 많은 인원이 참가한 집회가 되었다.

2.6. 6차 집회

12월 3일 개최되었다.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문서 참조.

집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발표일까지 계속한다고 한다. 다만 집회 주최 측에서 "날씨가 추운 12월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100만 명 이상의 군중 집결을 제안하거나 목표로 삼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10] 장소는 마련되어 있으니 자발적으로 참여를 원하는 시민들의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형태로 집회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11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3차 대국민 담화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높아져서 또 다시 대규모 집회로 진행되었다. '''집회 측 추산으로 보면 전국 합산 200만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한, 헌정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가 되었으며 6월 민주항쟁3.1운동의 참가자 수를 넘겼다

6차 집회 이전에 1차 총파업과 시민불복종행동이 11월 30일부터 진행되기 시작했다.

2.7. 7차 집회

대통령 탄핵안 투표 후 최초 시위이며 12월 10일 개최했다. 안나오면 쳐들어간다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문서 참조.
국회에서 탄핵안이 압도적인 수로 가결되면서, 주최 측 추산 80만 명, 전국 104만 명이 집결했고 축제분위기 속에 인권콘서트가 열렸다.

2.8. 8차 집회

대통령 탄핵안 투표 후 두 번째 시위이며 12월 17일 진행되었다.

2.9. 9차 집회

대통령 탄핵안 투표 후 세 번째 시위이며 12월 24일 진행되었다.

2.10. 10차 집회

12월 31일 진행되었다. 2016년 마지막 날이고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식이 열리는 날이라 보신각 현장은 촛불로 가득 찼다. 더불어 이번 집회에서 누적 인원 1000만 명을 달성했다.

2.11. 11차 집회

2017년 1월 7일 진행되었다. 이날 정원스님이 분신하였다.

2.12. 12차 집회

2017년 1월 14일 진행. 이 날은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30주기가 돌아오는 지라 비상행동 측은 이 날 집회에 박종철 추모행사를 가질것임을 예고했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측은 14일 오후 2시에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박종철 추모행사후 촛불집회에 합류하기로 했으며 박종철의 유가족들도 촛불집회에 참석할것으로 전해졌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낮 12시부터 박종철 추모전시회도 예정되어 있다.

한편 11차 집회후 소신공양으로 숨진 정원스님의 영결식도 이날 오후 2시에 광화문 광장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2.13. 13차 집회

2017년 1월 21일 진행되었다. 28일은 설날 연휴라 범국민행동 집회가 일어나지 않았다.

2.14. 14차 집회

2017년 2월 4일 진행되었다.

2.15. 15차 집회

2017년 2월 11일 진행되었다. 계속 늘어지는 탄핵 심판을 끝내자는 의미로 대규모 인원이 운집하였다.

2.16. 16차 집회

2017년 2월 18일 진행되었다. 꽤 날씨가 추워서 급격한 인원 감소가 예상되었으나 80만이 넘는 인파가 운집하여 촛불 민심의 건재함을 알렸다.

2.17. 17차 집회

2016년 11월 민중총궐기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되는 7차 민중총궐기로 진행된다. 2017년 2월 25일 진행되었다.

2.18. 18차 집회

2017년 3월 1일 진행되었다. 토요일은 아니지만 3.1절 공휴일이고, 친박 단체가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여 이에 맞서서 개최하였다.

2.19. 19차 집회

2017년 3월 4일 진행되었다. 이번 집회에서 누적 인원 1500만 명을 달성하였다.

2.20. 20차 집회

2017년 3월 11일 오후 7시에 진행되었다. 이번 집회에서 누적 참여 인원 1600만 명을 돌파했다.
헌법재판소3월 10일 11시 21분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마지막 범국민행동 집회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것이 탄핵 인용을 축하하는 집회가 되어 탄핵전을 나누는 등 축제 분위기로 집회를 마쳤다.

한편으로는 박근혜는 도주 우려가 매우 큰 인물이라 주장하고 있어서 출국 금지, 자택 압수수색, 구속 수사를 요구했다.

2.21. 21차 집회

2017년 3월 25일 진행했다. 모임 주제는 박근혜 구속 만인선언.
3월25일(토) 광화문광장 박근혜구속 21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 일정
3월25일(토) 박근혜 구속 촛불집회 전국일정

2.22. 22차 집회

2017년 4월 15일 진행.(모임 주제: 세월호 3주기 전야제)

박근혜 대통령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고 동시에 세월호도 인양되어 선체를 수색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사실상 집회의 목적은 이룬 상황이기에 이 집회가 '박근혜 퇴진 집회'로선 마지막 집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담으로 역대 나무위키 문서 제목 길이 4위에 랭크되었다.

2.23. 23차 집회

2017년 4월 29일 진행.

정권이 성공적으로 교체가 됨에 따라 이 집회가 마지막 집회가 되었다. 퇴진행동 측도 이번 집회가 대선 전 마지막 집회라고 밝혔다.

2.24. 1주년 기념집회

2017년 10월 28일 진행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촛불은 계속된다 사전대회 항목 참조. 그 외에 주최 측과 별개로 문재인 지지자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1주년 기념 집회를 열었는데, 그쪽은 여의도 촛불파티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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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GM은 Coldplay - Viva la Vida(더 정확히 말하면 2012년 Mylo Xyloto 월드 투어 당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했던 시드니 콘서트에서 부른 버전). 몰락한 왕최후를 다루는 가사의 노래를 영상에 삽입한 것을 보면 정말 적절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2] 원 출처는 이곳인데 유튜브와 약간 다르다. 원본 영상에서는 처음에 일렉기타음(Joe Satriani - I'll Put A Stone On Your Cairn)을 BGM으로 깔고 태극기 집회가 잠깐 보이며 이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가 흘러나오는데, 이 부분이 유튜브에서는 짤렸다.[3] 비록 탄핵은 국회에서 가결되었지만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한참 늦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12월 3일 촛불시위 전에는 '4월 퇴진 6월 대선'이라는 의견이 국회에서 공공연히 나오던 상황이었다. 탄핵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근거 중의 하나도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1년 남짓으로 얼마 안 남았으니 복잡한 탄핵 절차를 거치면 사실상 임기 만료 때와 별 차이 없을 것이니 4월에 질서 있는 퇴진을 하고 6월에 대선을 치르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루어진 과정도 3월 탄핵 인용과 5월 대선이었으므로 4월 퇴진 6월 대선과 그렇게 큰 시간적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을 헌법의 절차인 탄핵으로 심판한다는 정당성 측면, 12월 9일 탄핵 가결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정지 되었으므로 실제 대통령 임기가 4개월 가까이 차이 난다는 실익(?)적 측면에서 탄핵을 요구한 국민들과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 측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4] 집회 내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이석기 석방, 한미 FTA 폐기 등등을 요구하는 현수막과 피켓들을 흔들었으나 이는 개인 참가자들이 요구한 사항이기 때문에 집회 주최측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또한 많은 집회 참가자들이 민감한 정치사안을 꺼내는 이들을 저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 측에서 촛불집회의 참여를 근거로 들어 셀프 프레임화 한 행동도 집회 주최측과는 아무 관련 없는 문제였다.[5] 흥분한 시위대 한 명이 경찰 버스를 기습 탈취했는데 버스 위에 설치된 스피커가 떨어져 사상자가 나왔다.[6] 화염병이나 투석은 물론, 하다못해 죽창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던 상당히 이례적인 시위가 이어졌다.[7] 다만 주최 측이 기념 집회 외 다른 정치적 요구까지 포함한 집회 성격을 주창해, 이에 동의하지 않는 혹은 이번엔 기념만 하자는 사람들끼리 여의도에 집회 장소를 하나 더 만들었다. 물론 2군데 모두 큰 문제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촛불은 계속된다 사전대회, 여의도 촛불파티 항목 참조.[8] 해산된 통합진보당 당원이 다수 모인 단체[9] 6차 집회 이전에는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한 집회였다.[10] 많은 집회 참가 시민들이 언론 인터뷰에서 "추워서 사람들이 많이 안 나올 거라고 하기에 내가 나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