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21:00:37

김상기(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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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제15대 사장

김상기
金相琪
파일:김상기.jpg
<colbgcolor=#0f8184> 출생 1918년 4월 14일
전라북도 부안군
사망 2011년 7월 3일 (향년 93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울산 김씨
부모 아버지 김성수 어머니 고광석
형제자매 김상만
누나 김상옥
남동생 김상선, 김상흠, 김상오, 김상종, 김남, 김상석, 김상겸
여동생 김상숙, 김상현, 김순민
배우자 배우자 원종숙
자녀 장남 김병국
차남 김병표
장녀 김창원
차녀 김영원
삼녀 김효신

1. 개요2. 상세3. 가족관계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한국의 언론인, 기업가.

2. 상세

1918년 전라북도 부안군 출생으로 동아일보 창업주인 인촌 김성수의 차남이다.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 와세다대학 상과를 졸업했다.

1957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뒤 1963년 4월 동아방송 개국과 함께 초대 방송국장으로서 방송을 진두지휘하고 1974년 2월 박정희 정권의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때 회사를 떠났다가 다음해 재입사했다.

1981년 3월 2일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했는데, 취임사에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기로에 당면한 현 상황에서 동아일보의 사장 자리는 영광의 좌석이 아니라 고난의 자리임을 잘 알고 있다.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은 오랜 시일이 걸리는 일종의 지구전이기 때문에 동아의 과거가 그랬듯,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궁극의 목표를 향해 꾸준하고 의연하게 전진해 나가자"고 말했다.# 1983년에는 동아일보 회장에 올라 1989년까지 자리에 있었다.

실제 동아일보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에서 저 발언의 정점을 이뤘다. 동아일보는 사건 직후부터 부검의인 오연상의 증언과 박종철 삼촌의 증언들을 통해 이 사건이 단순 사망 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1987년 1월 19일 자에서는 12개 면 중 6개면에 걸쳐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질식사했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것은 6.10 민주 항쟁을 촉발한 결정적인 보도였다.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이 나온 날에는 서울 시내 가판대에서만 동아일보 40만 2800부가 팔리기도 했다.#

3. 가족관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동아일보/오너 일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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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김병국과 차남 김병표는 1972년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필립스 앤도버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김병국은 1981년 자신의 유학 경험담을 담은 '무서운 아이들'을 발간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1] 두 형제는 필립스 앤도버를 졸업 후 나란히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했으며 이들의 자녀들도 모두 필립스 앤도버에 입학했다.

김병국은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1982년), 정치학 박사(1988년) 학위를 취득했으며 귀국 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국립외교원장을 역임했다. 25살 위의 사촌형[2] 김병관은 동아일보 사장, 10살 위의 사촌형[3] 김병철은 고려대 총장을 역임했다. 김병표는 개인사업(주식회사 주원 대표이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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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f8184,#ddd> 일생 일생 · 평가
가족 남동생 김연수 · 아들 김상만 · 아들 김상기 · 아들 김상흠 · 아들 김남
역대 선거 제2대 부통령 선거
설립 기관 동아일보(오너 일가) · 고려대학교
관련 단체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 국민총력조선연맹 · 한국국민당 · 한국민주당 · 민주국민당
}}}}}}}}} ||



[1] 홍정욱구정중학교 재학 시절 이 책을 읽고 미국 유학을 결심했으며 초우트 로즈마리홀 아카데미를 거쳐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했다.[2] 김성수의 장남 김상만의 아들[3] 김성수의 5남 김상오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