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31 18:28:56

자살/어록


<colbgcolor=#000>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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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고대3. 중세4. 근대5. 현대6. 연대 불명7. 대한민국

1. 개요

자살에 관련된 격언이나 문구 등을 수록한 문서. 명언들이 으레 그렇듯이 출처가 잘못됐거나 날조된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2. 고대

"죽음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 전에 겪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것이다."[1]
바킬리데스 (기원전 5세기)
"사람은 자신이 갇힌 감옥의 문을 열고 달아날 권리가 없는 죄수이다. 그는 신이 부를 때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플라톤 (기원전 428?~기원전 348?)
"자살을 위한 타당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 사람은 시원찮은 사람이다."
에피쿠로스 (기원전 341~기원전 271)
"완벽한 행복이 어떤 것이든 간에, 종종 그가 때마침 할 수만 있다면 자살은 현자들의 권리이다."
소 카토 (기원전 95~기원전 46)
"자살, 그것은 신이 인생의 온갖 형벌 중에서 인간에게 부과한 으뜸가는 은혜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 (기원전 59~17)
"사람은 능숙하게 탈 배를 선택하고 편안하게 살 집을 고른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떠날 방법을 선택할 권리도 있지 않을까? 특히 죽음에 관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마련이다."
"죽기 전에 산 사람의 집단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극단적인 악이다."
세네카 (기원전 4~65)
"죽음이 우리를 비웃거든, 마주 비웃어 주어라."[2]
"편안하게 떠나라. 신께서도 그대를 편안히 데려갈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121~180), 명상록 12.36

3. 중세

"죽음은 나의 고상한 친구들에게는 모호한 감옥의 종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병이다. 그와 함께 조용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에게 말하라, 네가 행복한 동안 죽이라. 왜냐하면 제시간에 닥쳐오는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1304~1374), 이탈리아의 시인 겸 인문주의자
"...슬픔이 일면 반드시 곡을 하는 것인데, 슬픔이 일어나는 것도 역시 단서가 여러 가지이지요... 모두 품은 생각이 있어서 운 것이지, 이별에 상심하고 억울한 마음을 품으며 하찮은 일로 해서 아녀자의 통곡을 흉내낸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더욱 말세요, 국사는 날로 그릇되고, 선비들의 행실도 날로 야박해져서 친구들 사이에 배치되는 것도 갈림길이 나뉜 것보다 더하며, 어진 선비가 고생을 겪는 것도 비단 길이 막힌 것뿐만 아니어서, 모두 인간 세상 밖으로 도망해갈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만약... 군자로 하여금 이 시대를 목격하게 한다면 어떤 생각을 품게 될는지 모르겠소. 아마도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 돌을 끌어안거나 모래를 품고 투신 자살하고자 할 것이오."
허균 (1569~1618)

4. 근대

"본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훌륭한 선물은 삶으로부터 도망치게 내버려둔다는 점이다."
"삶은 타인들의 의지에 달려 있으나, 죽음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미셸 드 몽테뉴 (1533~1592)
"사람은 태양도 죽음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프랑수아 6세 드 라 로슈푸코 (1613~1680)
"죽을 때에 죽지 않도록 죽기 전에 죽어두어라.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어버린다."
앙겔루스 실레시우스 (1624~1677), 독일의 가톨릭 신부 겸 의사
"인간에게는 세 가지 사건이 있다. 태어남, 삶, 죽음. 인간은 태어남은 느끼지 못하지만, 죽음으로 고통받고 삶은 잊어버린다."
장 드 라부뤼예르 (1645~1696), 프랑스의 도덕주의자
"왜 사람들은 내가 존재하는 것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데도 그 사회를 위해 일을 하며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사회 규약들을 지키기 바라는 것일까? 사회는 상호 이익에 근거를 두고 세워진 것이지만 이 사회가 나에게 너무 짐이 될 때는 과연 누가 나로 하여금 이 사회를 스스로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몽테스키외 (1689~1755)
"인생에서 완전히 길을 잃고 희망마저 없을 때, 삶은 치욕이고 죽음은 의무가 된다. 최고로 불행한 순간은 집을 뛰쳐나올 수도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을 때이다. 야만인들은 결코 생각해내지 못하는 자살을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실천한다."
볼테르 (1694~1778)
"죽음은 단지 한순간의 고통이지만 삶은 기나긴 고통이다."
베르나르 조셉 소린 (1706~1781)
"자살하는 모든 사람들은 유죄"
드니 디드로 (1713~1784)
"어떤 면에서 자살은 비열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안이한 해결 방식임에 틀림없다. 나는 내가 내 자신을 죽일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아주 풍요로운 원천을 발견한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내가 자살하지 않을 때에만 유효한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 (1724~1804)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는 동안 베르테르가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썼던 것과 같은 순간을 한번쯤은 가져야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1749~1832)
"자신의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은 엄격한 영혼을 가졌다기보다는 오히려 본성이 감퇴된 것이 아닐까?"
프랑수아 르네 드 샤토브리앙 (1768~1848)
"인간은 자살할 권리가 있을까? 그렇다. 그의 죽음이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타인이 그에게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는 자살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저항하지도 않고 슬픔에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것, 즉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것은 이기기도 전에 전투를 내팽개쳐 버리는 것과 같다. 절망의 행위로서의 자살은 나태함일 수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769~1821)
어떤 당나귀가 죽으면 자신의 비참한 운명이 마감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운명의 여신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당나귀가 죽자 사람들은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었고 그 북을 마구 때리며 축제를 벌였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북소리에 맞춰 처녀들은 풀밭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다.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데 리자르디 (1776~1827) & 호세 로사스 모레노, 똑똑한 바보[3] 中 <불행한 당나귀>
"의지의 부정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이러한 자살은 의지를 강력히 긍정하는 현상이다. 부정의 본질은 삶의 고통이 아닌 삶의 향락을 혐오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자살자는 삶을 원하나, 그가 처한 삶의 조건에 만족하지 못할 뿐이다. 그 때문에 그는 결코 삶에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현상(육체)을 파괴하면서 단지 삶만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는 삶을 원하고, 신체의 방해받지 않는 생존과 긍정을 원한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1788~1860),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4장 中
"잠이 좋다. 더 나은 것은 죽음이다. 아예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가장 좋았으리라."
하인리히 하이네 (1797~1856)
"자살은 애수 어린 한 편의 시이다. 감정을 죽인 채 늙을 때까지 생명을 연장하든가 열정의 순교를 받아들여 젊어서 죽기, 이것이 우리 삶의 숙명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 (1799~1850)
"자살하는 힘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앨프리드 테니슨 (1809~1892)
"죽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일어날 수 없다."
월트 휘트먼 (1819~1892)
"사람들은 인간의 권리 안에 있는 또 다른 권리를 잊어버린다.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없어질 권리."
샤를 보들레르 (1821~1867)
자살은 인간의 특권이지만, 결코 사용해서는 안될 특권이다.
장 앙리 파브르 (1823~1915)
인생은 유희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의사로 이것을 포기할 권리는 없다.
레프 톨스토이 (1828~1910)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다." (비극의 탄생 中)[4]
"더 이상 자신 있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
Der Gedanke an den Selbstmord ist ein starkes Trostmittel: mit ihm kommt man gut über manche böse Nacht hinweg.
자살을 생각하는 일은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 생각으로 불쾌한 밤을 잘 지낼 수 있다. (선악의 저편 中)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
"자살은 친근하고도 기나긴 운명으로 준비된다. 자살은 문학적으로 가장 잘 준비되고 정교하게 손질된 종합적인 죽음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1884~1962)
"천재가 아니면 죽는 것이 낫다."
오토 바이닝거 (1880~1903), 23세의 나이로 자살.

5. 현대

※ 1880년 이후 출생자를 수록함.
"자살행위는 한 번도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없는 사람들과 앞으로도 결코 자살을 시도하지 않을 사람들에게만 공포를 준다."
조르주 베르나노스 (1888~1948), 프랑스의 소설가
"심장은 권총을 열망하고 목구멍은 면도날을 꿈꾼다."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1893~1930)
"면도칼은 아프고 강물은 축축하다. 산은 흉터를 남기고 약은 경련을 일으킨다. 총기 사용은 불법이고 올가미는 풀리며 가스는 냄새가 지독하다. 차라리 사는 것이 낫다."
도로시 파커 (1893~1967), 미국의 시인이자 평론가 겸 풍자 작가
"자살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살해하려는 욕구, 살해당하려는 욕구, 살려는 욕구."
칼 A. 메닝거 (1893~1990), 미국의 정신과 의사, 저서 '자신을 배반하는 사람' 中
"사회는 숙명을 넘어 온갖 종류의 물질적, 도덕적 불행을 낳는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사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처벌할 권리를 사회에 부여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파울 루트비히 란즈베르크 (1901~1944),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가
"원하는 순간에 자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게 된다."
"원할 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살고 있다. 자살이라는 '가능성'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자살했을 것이다."
"자살하는 건 소용 없는 일이다. 왜냐면 사람들은 언제나 너무 늦게 자살하므로."
에밀 시오랑 (1911~1995)
"뭐 다 살려고 하는 일이죠." 자신이 저지른 추악한 일들을 두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자주 쓰는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묻자. 살아야만 한다고? 일단 태어난 이상 살아야만 한다고? 뛰어내리기 직전의 순간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깨뜨린다. 자유 죽음을 찾는 이는 누가 묻기도 전에 먼저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아니야! 혹은 둔중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한다. 살아야만 한다면 그렇게 해, 나는 아니야! 나는 원치 않아. 밖에서는 사회의 법으로, 안에서는 '렉스 나투라에'로 느끼도록 충동하는 강제 앞에 굴복하지 않을 거야. 사회의 법이든, 자연법이든 나는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어. ㅡ 이게 바로 뛰어내리기 직전의 상황이다.
장 아메리 (1912~1978), 오스트리아의 작가, 〈자유죽음〉 中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을 괴로워하며 살 값어치가 있나 없나 판단을 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5]
"살인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그러나 삶에는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자살은 위대한 예술 작품처럼 마음의 고요함 속에서 준비된다. 삶의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확실한 죽음의 이유도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없는 사람은 인생에 관하여 침묵을 지켜야 한다."
알베르 카뮈 (1913~1960)
The so-called ‘psychotically depressed’ person who tries to kill herself doesn’t do so out of quote ‘hopelessness’ or any abstract conviction that life’s assets and debits do not square. And surely not because death seems suddenly appealing. The person in whom Its invisible agony reaches a certain unendurable level will kill herself the same way a trapped person will eventually jump from the window of a burning high-rise. Make no mistake about people who leap from burning windows. Their terror of falling from a great height is still just as great as it would be for you or me standing speculatively at the same window just checking out the view; i.e. the fear of falling remains a constant. The variable here is the other terror, the fire’s flames: when the flames get close enough, falling to death becomes the slightly less terrible of two terrors. It’s not desiring the fall; it’s terror of the flames. And yet nobody down on the sidewalk, looking up and yelling ‘Don’t!’ and ‘Hang on!’, can understand the jump. Not really. You’d have to have personally been trapped and felt flames to really understand a terror way beyond falling.
흔히 '우울증'이라고 말하는 것에 걸린 사람이 자살하려고 하는 것은 절망감이나 인생의 가치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절대로 죽음이 갑자기 매혹적으로 보여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의 투명한 고통이 버틸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는 사람이 자살하는 이유는 불이 난 빌딩에 갇힌 사람이 창문 밖으로 뛰어넘는 논리와 똑같다. 창문 밖으로 뛰는 그 사람에 대해 오해하지 마라. 그가 느끼는 공포는 우리가 그 똑같은 창문 너머의 경치를 보려고 머리를 들어내밀 때 느끼는 공포과 똑같다. 즉 추락해서 죽는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상황의 제2의 변수는 또 다른 공포의 존재이다. 불의 공포가 가까워지면 추락의 공포는 조금 더 나아보이는 공포가 된다. 추락의 갈망이 아니다 - 불의 공포다. 하지만 보도에서 위를 보며 '뛰지 마요!'라거나 '버티세요!'라고 말하는 타인들은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할리가 없다. 추락의 공포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공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타는 그 방에서 직접 불꽃을 느껴야만 한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1962~2008), 〈Infinite Jest〉, 2008년에 목을 매서 자살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고문하고 학대할 권리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존재’는 타인의 ‘존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우리 자신에 대한 학대가 다른 사람에게 재앙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살이 가장 극단적인 예다. 남은 사람들은 상실감에 빠지고 정신적 외상에 시달린다. 비유를 들자면, 신의 불꽃이 당신의 내면에 불타고 있으므로 당신의 주인은 당신이 아니고 하나님이다.
조던 피터슨 (1962 ~), 임상 심리학자, 교수
자살에 이르게 되는 동기는 989가지, 자살 방법은 83가지에 이른다.
1969년, 세계보건기구
"정말로 죽고 싶었어요?"
"죽고 싶어서 자살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럼 왜 그런 거에요?"
"고통을 끝내고 싶어서죠."
티파니 드바르톨로 (1970 ~), 미국의 소설가 겸 영화 제작자
"당신이 이 페이지를 읽는 것을 끝내기 전에, 미국에 있는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할 것이다. 적어도 60명의 미국인이 내일 이 시간까지 자살할 것이다. 그중 많은 수가 다시 자살을 시도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자살에 성공할 것이다."
슈나이트만 & 만델코른 (1983)
"나는 여러분에게 내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중략) ...내 손이 난간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혼자 생각합니다. 오 신이시여, 제가 방금 무슨 짓을 했나요? 이 다리에서 떨어진 거의 모든 사람들, 그들은 그 순간 정확히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그들은 죽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었습니다."
금문교에서 뛰어내렸던 한 생존자, 2008년 증언록. R.J.Comer 재인용, p.255

6. 연대 불명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방법을 완벽하게 연구할 수는 없다."
스칸디나비아 격언
"어떠한 이에게는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낫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눕는 것이 낫다. 또한 어떠한 이에게는 서 있는 것이 앉아 있는 것보다 낫고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아랍 속담[6]
"자살은 일시적인 문제에 대한 영원한 해결책이다."
출처 불명[7]

7. 대한민국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
김현 (1942~1990), 문학평론가
우리는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니 죽을 권리라도 있어야 한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말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말라
참아라 참아라 하지 말라
이 땅에 태어난 행복,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의무를 말하지 말라

바람이 부는 것은 바람이 불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비가 오고 싶기 때문
우리를 위하여 오는 것은 아니다
천둥, 벼락이 치는 것은 치고 싶기 때문
우리를 괴롭히려고 치는 것은 아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은 헤엄치고 싶기 때문
우리에게 잡아먹히려고,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헤엄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자를 비웃지 말라
그의 용기 없음을 비웃지 말라
그는 가장 용기 있는 자
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
가장 양심이 살아 있는 자
마광수 (1951 ~ 2017), 국어국문학자 겸 저술가, 〈자살자를 위하여〉[8]
〈자살〉

세 상 에 서 나 를 지 우 는 일.
완벽하게 지워도 지우개똥은 남는다.
지우개똥보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이 낫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1〉[9]
사랑이 떠낫다. 내 생명이 떠낫다. 내 전부가 떠낫다. 사랑이 어떡게 변하니,
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 떠낫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그 사람에 데한 기억뿐.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나를 지우는 건데 그거또 죄일까.

맞다. 죄다. 당신이 지워지면 누군가가 당신을 못잊고 그리워할 것이다.
지금 당신처럼 기억을 지우지 못해 힘들어할 사람, 그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보라.
지금 머릿속에 한두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들이 바로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다. 인생을 놓지 말아야 할 분명한 이유다.

〈오타로 얼룩진 인생 2〉
나는 태어날 대부터 가난했다. 단 한 번도 세상은 내게 기회를 주지 안앗다.
나는 늘 뒤에 아레에 서야 했다. 사람드리 먹고 남는 것만 머거야 했다. 사람드리 입고 남는 것만 입어야 했다.
이러케 오타로 얼룩진 인생을 지우는 거또 죄일까.

맞다. 죄다. 당신이 지워야 할 것은 기회를 주지 않은 세상, 다 먹고 다 입고 남은 것만 주는 세상이다.
당신은 지워질 사람이 아니라, 지우개를 들고 세상을 지워야 할 사람이다. 당신보다 오타가 많은 사람도 버젓이 자서전을 내는 세상에 분노하라. 분노는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다. 인생을 놓지 말아야 할 뜨거운 이유다.

〈참고 : 공동명의〉
내 생명의 주인은 누굴까?
나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내 생명은 공동명의다.
나와 내 가족과 친구들의 공동명의다.
나와 내 가족과 친구들의
도장을 다 받기 전에는
함부로 팔아치워서는 안된다.

〈반대어 : 다시〉
다음 더하기 시작.

아무리 딱 죽게 생긴 상황일지라도
다음이라는 기회가 있고,
다음이라는 기회를 살리는 방법으로 시작이 있다.
'다시'가 실패하는 경우를 위해
'또 다시'라는 용어도 준비되어 있다.
정철 (1961 ~), 카피라이터, 《불법사전》 中
인생이란 소설은 끝까지 가 보지 않으면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인지, 조연인지도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처음 몇 쪽 읽고 별로라며 덮어 버리기에는 인생이란 소설에 흥미로운 구석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현 (1967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 에세이> 中 '무너진 영혼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 자살'
자신의 목숨이 자기 소유임을 만천하에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는 일. 피조물로써의 경거망동. 생명체로써의 절대비극. 그러나 가장 강렬한 삶에의 갈망.
이외수 (1946 ~ 2022), 소설가, 《감성사전》 中


[1] 이는 비단 자살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죽음에 해당된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들의 PTSD라든가,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 등이 해당된다. 고통은 덤.[2] 이건 사실 글래디에이터(영화)에서 막시무스가 한 대사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한 말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막시무스가 콤모두스를 조롱하기 위해 마지막이 되어서야 아우렐리우스가 했던 말임을 밝히기 때문에 그 인상이 깊게 남아 벌어진 해프닝.[3] 원전은 "Fabulas del Pensador mexicano"로 라틴아메리카 우화집이다.[4] 미다스 왕이 실레노스에게 인간에게 가장 이로운 것을 물어보자 그가 비꼬듯이 답한 것인데, 역설적으로 그리스인들이 꿈꾼 이상적인 삶에 대한 강한 동경을 드러낸다.[5] 시지프 신화의 서문.[6] 자살자들의 묘비에 자주 쓰인다.[7] 여러 작가의 말로 오용되고 있으며, 위키인용집에서는 1979년작 "Death and Dying"이 가장 오래된 출처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이미 자살이 해답이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의미 없는 충고라는 반론도 있다.[8] 마광수 본인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9] 문단명을 보면 알겠지만, 원문 그대로 실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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