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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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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김활란 김용기 김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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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005년 2006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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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法輪 | Pomnyun
파일:법륜스님 프로필.jpg
속명 최석호(崔錫鎬)
법호 지광(智光)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53년 4월 11일 ([age(1953-04-11)]세)
경상남도 울산군 두서면 복안리 신기마을
(現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복안리)
종교 불교
직업 승려, 사회운동가
현직 정토회 지도법사
(사)에코붓다 이사장
(재)평화재단 이사장
(사)좋은벗들 이사장
(사)한국제이티에스 이사장
Join Together Society America 이사장
학력 경주고등학교 (졸업)
대표상훈 국민훈장 모란장 (2018)
막사이사이상 (2002)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카카오스토리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Threads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유년 시절에서 출가까지2.2. 불교 운동과 사회활동2.3. 서암과의 만남2.4. 새로운 불교운동
3. 활동4. 윤회관5. 관련 단체 및 SNS6. 저서7. 방송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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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복안리 신기마을 출신 승려(수행자)이자, 사회운동가, 구호운동가, 환경운동가, 통일전문가, 저자로 활동한다. 1988년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를 모토로 하는 불교수행공동체 정토회를 설립해 수행지도와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2002년에 아시아의 노벨평화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그리고 2020년에는 니와노 평화상을 수상하고 상금 2천만 엔(한화 약 2억 원)을 국제참여불교연대에 기부했다. 현재는 통일연구 교육기관인 평화재단, 국제기아 • 질병 • 문맹퇴치 민간기구 한국JTS(Join Together Society), 국제평화 • 인권 • 난민지원 센터 좋은벗들, 환경단체 에코붓다의 이사를 맡고 정토회 지도법사를 맡는 등, 다양하게 활동한다.
설문조사를 보면 불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주로 1위를 하고 있다. 조계종 소속 승려는 아니지만 조계종과 사이가 좋은 편이다.
한국유엔봉사단(총재 정형근)의 고문 및 자문위원단으로 있다.

2. 생애

2.1. 유년 시절에서 출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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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과 그의 스승 도문

1953년 4월 11일 경상남도 울산군(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복안리 신기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족관계는 위로 세 명의 형들과 누나 그리고 여동생이 있다. 첫째 형과 셋째 형은 농민운동가이다.[1]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가 꿈이었으며, 종교는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불교와 연이 닿게 된 것은 중학교 때 불교학생회에 가입하면서부터이며, 경주고등학교 1학년 때는 경주지역 불교학생회 회장을 맡았다. 그러던 중 분황사[2]에서 은사 도문을 만났다. 도문이 법륜을 불러 세우려 하자 당시 시험기간이었던 법륜은 바쁘다고 말했고, 도문은 대뜸 "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학교요."
"그 전에는?"
"집에서요."
"그 전에는?"

과거를 되짚는 질문이 이어지다가 결국 '어머니 뱃속'까지 갔다. "어머니 뱃속 전에는 어디서 왔나?" 하는 물음에 대답을 못하자, 질문은 미래를 향했다.

"어디로 갈거냐?”
"학교요"
"그 다음은?"
"집이요."

미래에 대한 질문 또한 끝까지 이어지다가 결국 "죽겠죠."라는 대답까지 이르자 도문은 "그럼, 죽으면 어디로 가는데?"라고 물었으나 법륜은 역시 대답을 못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기는 왜 바빠!"라는 말을 들은 것이 출가하게 된 계기라고 한다.# 프린스턴대 영상 17세(1969년)에 절로 들어갔지만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절에서는 승복을 입고, 사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생활을 했다. 당시에 황룡사 9층 목탑을 복원하겠다는 꿈을 세우고 주말마다 고철을 주우러 다닐 정도로 열혈 불교 청소년이었다고 한다.# 경주고등학교 2학년부턴 동국대 불교학과 박사 이기영으로부터 불교대학 1·2학년 교재를 받아와 공부를 시작했으며, 경주고등학교 3년 때는 불교대학 3·4학년 교재로 자습했다. 스승 도문은 “넌 수재여서 동국대 불교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할 것이다. 동국대 교수로 활동하다 총장을 거쳐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장관이 되어 국민에게 이바지하라.” 권했지만, 법륜은 스승의 뜻을 거절했다. “‘도문(스님) 대학’을 나왔으니 그만입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수행하겠습니다.”# 법륜은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그렇다고 승려가 되는 과정을 택하지도 않고 일반인 신분으로 세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2.2. 불교 운동과 사회활동

20대 초반 영남 불교교육원을 설립하고 불교 포교활동을 하는 한편, 진보적 사회운동 단체 크리스천 아카데미[3]에서 교육을 받기도 한다.[4] 20대 중반에 법륜은 수학과목 강사를 하기도 했다.[5] 박정희의 유신정권 마지막 해(1979)에는 민주화 운동의 자금책으로 오해받아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았다. 고문을 당하며 분노의 감정에 휩싸였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교의 제1계율인 '살생하지 마라'와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깨달았다.(자세한 내용은 아래 45회 힐링캠프를 보면 알 수 있다.)[6][7] 1980년 10.27 법난 명예회복 운동을 벌이다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8] 이때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해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는 불교를 보며 자괴감과 회의감을 느꼈다. 그러다 학창 시절 하고 싶었던 공부인 천문학을 하고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미국에서 광주민주화운동 비디오를 보고 사회적 아픔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아픔의 현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바꿔 귀국하였다. 1981년 미국에 머무를 당시에는 뉴욕의 원각사에서 포교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보살의 괴로움을 개인 상담을 통해 해소하였는데, 당시 아들에게 바라는 마음을 내며 괴로워하는 보살에게 ‘저 놈의 자식, 남이다.’라는 기도문을 주어 보살 스스로 깨치게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9] 이후, 1983년에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의 상임법사를 맡으면서 사회 민주화운동에 나섰으며, 인간 붓다에 대하여 처음부터 재고하기 시작한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어떤 고뇌를 가졌기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를 했으며, 6년 수행 과정에서 홀로 수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깨달은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갔는가?’와 같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경전을 살펴보면서 붓다를 재발견하였다. 그 전에는 신과 같은 존재의 붓다였다면, 새로 발견한 붓다는 인간으로서의 붓다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전에는 애매하고 모호한 내용들이 명확하게 다가왔으며, 실천자로서의 삶,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을 가질 수 있었다.[10]
  • 2012년 5월에 방영된 '힐링캠프 법륜 편'에서 법륜의 다양한 이야기(출가, 고문, 부목 생활 등)를 확인할 수 있다. 1부 2부

2.3. 서암과의 만남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565393_STD.jpg
30대 초반 포교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 다름을 인지하는 사건을 겪고 충격을 받았다.[11] 불교 정화운동에 참여하며 한국 불교계의 실상을 깊이 들여다 보면서 불교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불교를 버릴 생각까지 하며 미국으로 떠났다가 (훗날 조계종 종정이 된) 서암(西庵, 1917~2003)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미국의 한 작은 사찰에서 우연히 누군지도 모르는 노승(서암)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불교에 대한 불평을 여러 시간 동안 늘어 놓았다. 서암은 묵묵히 듣다가 "여보게, 어떤 사람이 논두렁에 앉아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고 그 논두렁이 절이라네. 그것이 불교야" 말하였다. 법륜에게 이 말이 다시 한번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 귀국 후에도 서암과의 인연은 이어져, 1986년 비원포교원을 개원하였을 때 서암이 3일간 법문을 해주었다.[12] 비원포교원의 크기가 20평으로 불상을 놓을 만한 공간이 없어 고민하던 때, 법륜은 서암에게 불상을 놓는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서암이 "산 부처 앉을 자리도 없는데, 죽은 부처 두어서 뭐하게?"라고 말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법륜은 불상 대신 부처 사진을 걸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 정토회에도 이어져, 공간이 좁은 법당이라면 불상 대신 사진을 걸어놓는다.

2.4. 새로운 불교운동

법륜은 20대 말, 30대 초에 사회운동을 하다, 1987년을 겪으면서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다른 가능성을 좀 열자’ 생각하며 미래 문명을 위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 중 서너 명을 분리해 연구소를 차려 ‘우리 사회를 새롭게 조망하고 문제제기를 해라.’고 과제를 준다. 그 연구소에서 1년간 연구해서 제출한 결과에 따르면 당시엔 사회의 민주화도 과제지만 지구적으로는 환경 문제가, 인류적으로는 빈곤퇴치 문제가, 세계적으로는 평화 문제가, 우리 민족적으로는 통일 문제를 제기한다. 또 당시에는 스웨덴, 핀란드와 같이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자살률이 제일 높았는데, 이를 연구해본 결론은 환경만 바꾼다고 인간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고 수행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13]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더 나은 미래 문명을 만들기 위하여 네 개의 가치를 선정한다. 지구적으로는 환경, 인류적으로는 빈곤 퇴치와 평화, 이걸 우리 민족에 적용하면 평화와 통일, 개인이 행복해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수행으로 정한다.(환경, 빈곤 퇴치, 평화[우리 민족에게는 평화와 통일], 수행)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한 끝에, 사회 민주화 운동은 사회의 담당 주체에게 맡기고[14], 1988년에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를 모토로 새로운 미래의 방향을 제시할 정토회[15](당시 대한불교조계종 정토법당)를 창립한다. 이듬해에는 봉암사에 부목(절머슴)으로 들어간다. 사회운동을 위하여 투쟁과 데모를 하다보니 ‘마음의 평정과 고요를 유지하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지키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부처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부목 생활을 하며 스스로를 정화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봉암사 부목 생활 중엔 거지 머슴과의 대화, 봉암사 조실과 좌담을 통하여 다양한 깨달음을 경험한다.
이후 1991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수행하겠다’며 분황사를 떠난 뒤 머리를 기르며 속인으로 살아오다가 스승 도문의 권유로 머리를 깎고,[16] 도문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았다. 지속적으로 부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불교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1990년대 초 '독립운동 유적지 순례', 1997년 북한동포돕기 100만인 운동 등 통일 운동과 1996년 에코붓다로 환경운동, 1997년 JTS(제3세계 개발 구호 활동) 설립, 평화재단(평화운동과 남북화해 통일운동)으로 국제구호, 남북통일, 환경운동, 참여적 불교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3.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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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윤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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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단체 및 SNS


참고로 위 SNS 모두를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SNS를 통해 '즉문즉설' 질문을 할 수는 없다. 질문을 하려면 강연장에 가서 질문할 기회를 얻거나, 온라인 즉문즉설(정토회 문의) 시간에 사전 질문기회를 얻어야 한다. 또한 정토회에서 운영하는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면 학생신분으로 질문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정토불교대학 소개페이지 바로가기 >>> https://www.jungto.org/edu/)

6. 저서

  • 1988년 《실천적 불교 사상》
  • 1994년 《우물을 떠난 개구리》
  • 1995년 《금강경 이야기 上, 下》
  • 1995년 《반야심경 이야기》
  • 2005년 《붓다, 나를 흔들다》
  • 2006년 《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 2007년 즉문즉설 시리즈 《답답하면 물어라》
  • 2008년 《행복하기 행복전하기》
  • 2009년 《행복한 출근길》
  • 2009년 《날마다 웃는집》
  • 2010년 《기도:내려놓기》
  • 2010년 《스님의 주례사》
  • 2010년 《인간 붓다》
  • 2011년 《엄마 수업》
  • 2011년 《힘내라 청춘(1판)》
  • 2012년 《깨달음》
  • 2012년 《방황해도 괜찮아》
  • 2012년 《새로운 100년》
  • 2012년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
  • 2013년 《인생 수업》
  • 2014년 《지금 여기 깨어 있기》
  • 2015년 《야단법석》
  • 2016년 《행복》
  • 2017년 《야단법석 2》
  • 2018년 《힘내라 청춘(개정판)》
  • 2019년 《지금 이대로 좋다》
  • 2020년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 2022년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7. 방송 출연

  • 2008년 3월 5일 BTN - 법륜스님에게 듣는 반야심경 (#)
  • 2009년 4월 30일 KBS1 아침마당 출연
  • 2010년 이전 / BTN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
  • 2010년 이후 / BTN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
  • 2011년 3월 26일 손석희의 시선집중, 라디오. (#)
  • 2012년 5월 28일 ~ 6월 4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45, 46회 출연 (1부 2부)
  • 2015-10-20 BTN - 법륜스님이 안내하는 붓다의길 깨달음의 길 (#)
  • 2016년 부처님 오신날 특집 SBS 스페셜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
  • 2018년 1월 4일 ~ 1월 11일 KBS1 아침마당 (1부 2부)
  • 2018년 5월 13일, 5월 20일 SBS 집사부일체 출연 (#)
  • 2022년 5월 8일 KBS1 이슈 픽 쌤과 함께 출연

[1] 큰형은 가톨릭 농민운동을 했고 둘째형은 미국에 산다. 셋째형은 학생운동, 농민운동을 했고 감옥 생활도 오래 했다.#[2] 원효가 신라시대에 건립한 바로 그 절[3] 1959-2000년까지 활동한 진보적 사회참여 기독계 단체.#[4] 아이러니하게도 법륜에게 불교대학 교재를 준 이기영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기영은 기독교(정확히는 천주교)인이었다가 불교로 개종했다. 벨기에 유학 당시 그의 지도교수이자 신부 겸 불교학자 에티엔 라모트(Etienne Lamotte)가 "자네 나라에는 원효라는 뛰어난 철학자가 있는데 왜 서양 철학을 연구하는가?"라고 화두를 던진 것이 그 계기였다.[5] 수학에 대해 알려주는 즉문즉설 영상.#[6] 1979년 유신정권 마지막 해에 학원 강사로 돈을 잘 버니깐 농민운동과 사회운동을 하는 단체의 자금줄로 오해를 받아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했다. 고문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은 '젊은 불자들의 수행론'이란 책을 보면 알 수 있다.#[7] 사회운동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즉문즉설.#[8] 전두환 정권 시절 조계사에서 10·27 법난을 소재로 강연을 했다가 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9] 원각사 보살 이야기는 '젊은 불자들의 수행론' 책에서 볼 수 있다.[10] 2012년 5월 12일 스님의 하루 -평화재단-#[11] 경주 시내에서 포교당을 운영하던 때였다. “어느 날 사시 예불을 모시고 있는데 불우한 상이군인 한 사람이 법당으로 들어왔다. 절에 중이 되려고 왔다는 것이었다. 상이군인은 홍보전단에 적힌 “마음이 불안하고, 답답한 자여! 여기 부처님께서 마련하신 좋은 안식처가 있으니 여기로 오십시오.”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찾아왔노라고 말했으나, 그런 그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빨리 보낼 수 있을까, 다른 절을 소개해 줄까' 궁리만 하던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나는 헌신적으로 일하는 법사’라는 아상이 깨어짐을 느꼈다.#[12] 깨우침,서암 큰스님과의 인연(법륜 스님)#[13] 2015.12.20 (오전) 청년활동가 송년 만남 “청년 수행자의 삶”#[14] 그런 법륜의 모습을 보며 1990년대 초반 사회활동을 함께 하던 운동가들은 운동을 포기했다거나 변절했다거나 하는 비난을 했다고 한다.[15] 정토회는 부처의 근본 가르침인 담마(Dharma)를 배우며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하는 수행공동체로서 개인의 열반(행복)과 해탈(자유)뿐 아니라 대중을 위한 봉사나 사회활동을 하는 단체이다. 2018.2.10. 정토회 경전반 졸업식 “법륜 스님이 생각하는 리더십은 무엇인가요?” (스님의 하루)#[16] 1991년 도문이 “절 밖에 있었으니, 절 안에서 활동하라”고 권했다. 법륜은 “도에 안팎이 있습니까?”라고 답했다. 출가 때처럼 선문답이 이어졌다. “도에는 안팎이 없지.” “그런데 왜 안에서 활동하라고 하십니까?” “야 이놈아, 네가 밖을 고집하니까 안이 생기지 않느냐" 도에 안팎이 없다는 논리로 자기가 밖을 고집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다시 머리를 깎고 비구계와 보살계, 전법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