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現 서울특별시)의 풍수지리 | ||||
구분 | 북 | 서 | 남 | 동 |
내사산(內四山) | 북악산 (342 m) | 인왕산 (338.2 m) | 남산 (270.85 m) | 낙산 (125 m) |
외사산(外四山) | 북한산 (836.5 m) | 덕양산 (124.8 m) | 관악산 (632 m) | 용마산 (348 m) |
인왕산 仁王山 | Inwangsan | |||
<colcolor#fff>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대문구 | ||
좌표 | 북위 37° 35′ 6″ 동경 126° 57′ 33″ | ||
높이 | 338.2m | ||
면적 | 1,111,664.9㎡[1] | ||
산맥 | 광주산맥 |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있는 고도 338.2 m의 산으로, 산 중에서도 바위산에 속한다. 한양도성의 산으로는 북악산보다 3.8 m 낮은 2위이며 평균 경사도는 5.12%이다.2. 상세
2.1. 역사
-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로 매우 유명한 산이었다.[3] 따지고 보면 지리산이나 금강산이 훨씬 더 웅장해서 호랑이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야산 격인 이 인왕산의 호랑이가 더 유명하다.[4] 정조 대왕 때만 해도 호랑이가 서울에 흔했고, 이들 호랑이가 민가는 물론 궁궐까지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인 듯. 참고로, 1868년, 북악산 등에서 잡은 호랑이 다섯 마리를 마지막으로 도성 내 호랑이는 모두 사라졌다.
- 인왕산 정상에 자리한 ‘치마바위’의 이름 유래와 관련한 조선 왕조 일화가 유명한데, 중종의 왕비였던 폐비 신씨는 날마다 중종이 있는 경회루 쪽을 향해 매일 시비를 시켜서 놓아 두었다고 한다. 이러한 폐비 신씨의 절개를 기려 치마바위라는 명칭을 유래하였다고 한다.
- 인왕산 남쪽 기슭에 있는 활터인 '황학정'이 있는데, 1898년 활쏘기를 장려하는 고종황제의 칙령에 따라 세워진 국궁장이다. 고종황제가 직접 활을 쏘기도 하여 황제를 초대 사두로 친다. 본래 경희궁에 있었는데 1922년에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며 옮겼다.
- 절벽 중 한 곳에 정체 불명의 파인 흔적이 잔뜩 있는데, 이는 1939년 9월 16일에 새겨진 일제의 선동 문구 흔적이다. 대일본 청년단 대회 기념으로 대동아 공영권을 선동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는데 독립 후 누군가에 의해 훼철되어 현재는 글자는 알아볼 수 없고 파낸 흔적만 남아있다. #
2.2. 등산·경관·명소
인왕산 |
2.2.1. 인왕사(仁旺寺)
- 자세한 정보는 관련 정보(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를 참조.
인왕사를 이루는 군락(ⓒBBS) |
인왕사는 봉은사에서 갈라져 나온 말사로 규정하고 있다. 절의 체계도 복잡한데 지주가 4명이며 해마다 번갈아가면서 맡고 있다. 언급했듯이 1910년대 이래로 여러 암자가 통합되지 않고, 제각기 독자적으로 활동해온 흔적으로 보고 있다. 입구 현판은 仁王寺[6]로 되어 있으나 행정상 ‘산’만 王이지 사찰은 여전히 仁旺寺가 표준이다.
명목상 절의 중심으로 보고 있는 ‘인왕사 본원정사(前 선암정사)’는 국사당 바로 아래에 있다. 평소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사당 쪽 산 샛길로 200m 정도 올라가다 보면, 부처 그림이 새겨진 바위와 약수터가 나오는데, 지도 안내판상으로는 그곳이 ‘실질적 인왕사의 기원’임을 시사하고 있다.
2019년 4월 경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인왕사의 전각 하나에 불이 나 전소된 일이 있었다(서울 종로구 인왕사 화재, ‘보광전’ 전소).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화재 원인은 2년이 지난 이후에도 불명인 상태이다.
인왕사에 가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하차한 뒤 무악현대 아파트와 인왕산 아이파크 아파트단지 속을 가로질러야 빠르다. 아파트 단지 보도 경사가 생각보다 심하므로 다리를 적당히 풀어 줘야 할 것이다. 또 일반적인 인왕산 등산 코스로는 이곳을 통하기 어려우므로 유의할 것.
2.2.1.1. 선 바위(禪岩)
경기도 과천시 소재 수도권 전철 4호선의 역명에 대한 내용은 선바위역 문서 참고하십시오.
인왕산 선 바위 |
2.2.2. 국사당(國師堂)
자세한 내용은 국사당 문서 참고하십시오.인왕사 군락에 있는 국사당 |
2.2.3. 수성동 계곡
자세한 내용은 인왕산 수성동 계곡 문서 참고하십시오.인왕산 수성동 계곡[7] |
정선 作, 〈수성동〉 |
'수성동'이라는 단어는 청담동, 홍제동 같은 부류의 단어가 아니다. '수성동'에서 '동'은 현재 법정동 혹은 행정동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동'이 아닌 '골짜기'라는 뜻으로 붙여졌다. 따라서 수성동 계곡이 있는 지역을 표기할 때에는 '수성동'이 아닌 '옥인동'으로 표기해야 한다.
'수성동'이라는 지명은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물 수(水), 소리 성(聲), 마을 동(洞)자가 합쳐졌다.
2.2.4. 백운동 계곡
자세한 내용은 인왕산 백운동 계곡 문서 참고하십시오.글자 '백운동 계곡의 각자바위[8] |
2.2.5. 윤동주문학관
자세한 내용은 윤동주문학관 문서 참고하십시오.윤동주문학관 |
3. 여담
- 등산이나 지형보다는 역사·문화 쪽으로 더 유명한 산이다. 사실 인근 주민이 아니라면 골수 서울시민들이나 토박이들에게도 존재감은 별로 높지 않은 산이긴 하다. 다만 택견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성지에 가깝다. 구한말 택견꾼들이 마지막까지 수련했던 곳이 바로 이 인왕산이었기 때문. 지금은 감투바위 수련터가 복원됐다. 다만 파비앙 코르비노가 나 혼자 산다에서 등산을 했는데 역사적으로 설명을 하면서 올라가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었고 이 덕분에 존재감이 많이 올라가기도 했다.[10]
3.1. 겸재 정선과 인왕산
〈수성동〉과 그에 기초하여 복원된 수성동 계곡 |
〈인왕제색도〉 |
3.2. 한자 표기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인왕산의 한자 표기 ‘仁王山’을 ‘仁旺山’으로 변경했다는 낭설이 있다. 王자 앞에 일본을 상징하는 日을 넣어서 같은 발음의 旺으로 바꿨다는 주장이다.그러나 여러 문헌으로 인왕산의 한자 표기를 고증해보면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仁旺山’ 표기는 다수 발견된다.
- 仁旺山이라는 표기는 일제강점기보다 200년이나 훨씬 앞선 《영조실록》에 등장한 적이 있다.
- 《승정원일기》에서는 '仁旺山' 표기가 일제강점기 이전, 무려 102회나 발견된다.
- 조선 순조 8년(1808)에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의 〈군정편(軍政編) 훈련도감(訓鍊都監)〉 조에는 '왕을 호위(扈衛)할 때 척후와 복병이 지켜야 할 도성 분담 구역'을 거론하면서 '북악, 인왕산, 안현, 돈의문 바깥 삼거리'를 들고 있는데 여기서 인왕산은 '仁旺山'이라고 표기돼 있다.
따라서 일제가 '仁王山'을 '仁旺山'으로 바꾸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어느 한쪽이 정식 표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仁旺山'와 '仁王山' 모두 같이 썼던 것으로 보인다.
1995년에 서울시 지명위원회는 인왕산의 한자 표기를 ‘王’ 표기를 표준 표기로 채택했다. 이 때에도 서울시는 "일제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고친 이름을 바로잡았다"며 그 취지를 설명했으나 근거 없는 이야기다.
한편 여기의 사찰인 인왕사는 여전히 旺 표기가 정식이다(종로구청 홈페이지).
4. 사건 사고
4.1. 2023년 서울 인왕산-북악산 산불
2023년 4월 2일 오전 11시 53분경, 인왕산 중턱에서 화재가 발생했었다. 자세한 문서는 2023년 서울 인왕산-북악산 산불참고.[1] 출처 - 서울의 공원.[2] 마찬가지로 좌종묘•우사직에 해당되는 사직단도 인왕산 인근에 있다.[3] 338.2m인 산에서 호랑이들이 많았다는 게 의아할 수 있지만 사실 호랑이는 산보다 물가가 있는 곳에서 많이 살아서 호랑이 분포도가 적당히 유지되었고 근처에 여러 산들도 있어서 인왕산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근처의 산에도 왔다갔다 했을 것이다.[4] 송덕기 옹에게 택견을 가르친 스승인 임호의 별명도 인왕산 호랑이였다고 한다.[5] 절대적인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얼핏 볼 때 고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데다가, 주말 등산 및 야경 명소로 SNS 등지에서 유명해지다 보니 아무나 대충 신고 가도 올라갈 수 있는 산으로 오해받는 경향이 있다. 남산처럼 전 지역이 공원화되지 않아 잘 정비된 계단으로 쉽게 올라갈 수 있는 산은 아니다.[6] 본래 ‘旺’ 부분이 었던 곳에 땜질하여 ‘王’으로 바꾼 흔적이 보인다.[7]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8]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9] 문학관은 과거 이용되던 상수도시설을 활용해 만들었는데, 월간 SPACE 선정 한국 현대건축 명작 18위에 오를 정도로 잘 지은 건물이니 방문을 권한다.[10]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인왕산 영상 대다수에 파비앙이 언급된다.[11] 당시엔 '장동'이라고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