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3:51:46

봉남교

<colbgcolor=#87CEEB><colcolor=#221f20> 봉남교
奉南敎
창시년도 1937년
창시자 김봉남
계통 도 계통의 종교, 삼교 합일 종교
신앙 대상 물법, 수신(水神)
경전 정경(正經)
1. 개요2. 상세
2.1. 역사2.2. 교리2.3. 봉남계 종교

[출처: 봉남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의 신흥종교] 17.물법계 신흥종교 - 가톨릭신문

1. 개요

봉남교(奉南敎)는 1937년 김봉남(金奉南)이 창시한 종교이며 물법교(勿法敎), 찬물교라고도 한다.

2. 상세

2.1. 역사

김봉남은 1898년 제주목 구좌면 연평리에서 태어났다. 봉남(奉南)은 아호이며, 이름은 영근(永根) 또는 재성(再星)이고, 자는 천근(天根)이다. 유년 시절 한학을 공부하다가 1912년 위장 계통의 괴질에 걸려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신병 치료를 목적으로 많은 종교 단체를 편력하다가 보천교(普天敎)에서 강신(降神)·개안(開眼)·이보(耳報) 등의 체험을 하고 도통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1916년 집을 나온 김봉남은 동래군[1]에 있는 해녀들의 작업 배에서 사공일을 하였다. 1921년 제주도 출신의 출가 해녀인 문씨와 결혼하였다.

1928년 오대산에서 도인을 만나 주송수련을 한 결과, 칠성신의 계시와 권능에 의해 안찰(按擦)과 침구(鍼灸)의 비법을 전수받아 타인의 병을 치료해주는 경험을 쌓게 되었다. 이렇게 치료와 수도의 기초를 닦은 뒤 1936년 손치성(孫致成)의 무량교(無量敎)를 믿던 황보흠(皇甫欽)[2]을 만나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였다.

황보흠의 영향을 받아 세 단계의 도각(道覺)을 이루고 교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초통은 1937년 1월이었다. 연화산에서 두 차례의 백일기도 후 천상으로부터 물법을 받으면서 핏덩이를 토하고는 괴질이 나았다고 한다. 그 뒤 전에 없던 지각(知覺)이 열려 많은 사람들로 교단을 형성하였다. 그 뒤 경상남도 양산군 연화산(蓮華山)의 죽도사(竹島寺)를 빌려 물법을 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김봉남의 도력에 관한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교단이 형성되었다. 김봉남은 포교 활동의 방법으로 부처님 앞에 찬물을 올리고 신도들에게 ‘아미타불’, ‘미륵존불’을 큰소리로 반복시키고, 『무량주(無量呪)』, 『태을경(太乙經)』 등을 외우도록 하였다.

재통은 1943년 11월로 부인의 소상(小祥) 때 강신(降神)이 되면서 ·· 삼교의 원리를 관통하고 중생삼고(衆生三苦: 飢·寒·疾)를 해탈하는 심수법(心水法)의 원리를 깨달았기에 신도들은 김봉남을 수법선사(水法仙師)·태상상제(太上上帝)·생불(生佛)의 화신으로 믿게 되었다.

교세가 커지게 되자, 일제 당국은 김봉남을 사도난민(邪道亂民)의 혐의로 체포하여 고문을 가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교단은 한 때 크게 위축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일제 말 종교활동을 일시 중단하였다가 1945년 해방 후, 교단본부를 부산 영도로 옮기고 다시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물 한 그릇으로 장님이 눈을 뜨고 정신병과 나병도 나았으며 죽은 사람까지 살린다는 소문이 퍼지자 수백 명의 신도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김봉남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등지를 순회하면서 많은 추종자를 모아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1946년 3월 부산 영도에서 천일수련 끝에 몇몇 제자에게 물법을 전수하였으며 이 날을 찬물교의 물법교화일이라고 한다.

삼통은 1948년으로 경상북도 상주군 성지산에서 백일 기도에 들어가 천지의 대행대덕(大行大德)을 통하고 심수법의 근원인 영해영국(靈海靈局)의 도안이 열려 물법의 원리가 유·불·선 삼교가 귀일되는 자리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경상남도 김해군를 중심으로 수만의 신도를 확보하며 교세를 확장해 나간 김봉남은 1950년 4월 8일 53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때 김봉남은 교단을 형성하지 않았고, 자신을 교주로 여기지도 않았으며, 죽으면서 후계자를 지정하지도 않았다. 1953년 김봉남의 제자들이 용화사(龍華寺)라는 교단을 세웠으나 이념적 갈등, 교통 계승 문제 등으로 용화사는 3개월 만에 해산되고 말았다. 그 뒤 김봉남의 제자들은 흩어져서 각각 교단을 형성하였다.

2.2. 교리

신앙의 대상은 물법이다. 물법이란 단식을 하고 주문을 계속 외우며 찬물을 마심으로써 심신의 죄고(罪苦) 와 질병을 퇴치하고 도통에 이르게 된다는 수도법을 말한다. 그리고 을 신앙한다는 것은 수신(水神)을 믿는 것이며, 교리가 물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고, 신앙의 방편으로 물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은 본질적으로 생명의 근원이며, 도덕의 원리로 여겨진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윤리 도덕을 이행하게 하여 덕성을 기르는 양생(養生)과 명덕(明德)이며, 양생과 명덕은 진심(盡心)과 지성(至誠)에 있다고 한다.

수신에는 천계수신과 지계수신의 믿음이 있고, 교리상에서는 물을 창조의 원리, 생명의 원리, 물리적인 원리, 역리적인 원리로 본다. 신앙의 방편으로는 정신법(淨身法)·축마법(逐魔法)·제공법(祭供法)·치병법(治病法) 등이 있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의 심성은 본래 깨끗하고 맑은 것이며, 인간의 체력은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물의 기질을 가짐으로써 생기가 왕성하다. 그리고 인간이 질병에 걸리게 되는 것은 깨끗하고 맑은 마음에 죄악과 번뇌가 생겨 심성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심성이 더러워지면 자체에 오염이 생기고 생명에는 수기(水氣)가 결핍되며 생기(生氣)에 지장을 초래하여 질병이 생기게 된다. 즉 질병은 인간의 심(心)·기(氣)가 수기를 잃어 버렸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법을 통해 심수(心水)의 법(法)을 육체에 불어 넣고 신체의 생명수를 충족시켜야만 질병은 치유된다고 한다. 이 종교에서는 질병에 대한 치료방법으로서 마음을 밝히는 참회와 주문암송, 기를 깨끗이 하는 찬물마심과 안찰 및 단식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들은 신체의 질병은 마음의 잘못에서 온다고 하여 물법치료를 받기 이전에 죄를 자백하라고 환자들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요컨대, 물법의 원리야말로 유·불·선 3도가 모두 이 자리에 귀일되는 근원적 원리로 보는 것이다. 윤리 규범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인의도덕(仁義道德)을 강조하는 것은 유교적인 것이며, 참회와 심성을 강조하는 것은 불교적인 것이고, 주문을 암송하고 물을 마심으로써 신비적인 체험을 하는 것은 도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찬물요법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유·불·선 삼교의 진리 통전(統全)한 대도진법의 시행이라고 주장한다. 물을 사용하는 치병이 중심을 이루고 교조 당대에는 많은 환자를 치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분파된 각 파에서는 상당히 다른 교리강령이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물법 신앙이 봉남교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물법 신앙은 민간 신앙이나 원시종교, 그리고 현대 종교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신앙이다.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비는 행위나, 신단 위에 청수를 바치는 행위, 그리고 성수·세례·침례 등의 종교의식은 물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종교적 신행(信行)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물을 생명이나 만물의 원동력으로 간주하는 사상은 고대 그리스탈레스를 비롯하여 동양사상에서도 이미 제시되었던 사상이다. 그러한 물의 이법(理法)이 이 종교에서는 음양조화의 이치, 역리(易理), 술수(術數) 등의 전통적인 사상과 결합하여 하나의 교리로 체계화되고 있는 것이다.

주문으로는 심전작정주(心田作井呪)가 있고, 이 밖에도 태화주·무량주·구령삼정주·황제음부경·삼필주·정경 등이 있다.

2.3. 봉남계 종교

봉남계 종교로는 성덕도(聖德道)·삼법수도교화원(三法修道敎化院)·적선도(積善道)[3]·천지대안교(天地大安敎)·용화삼덕도(龍華三德道)·봉남사(奉南寺)·태화교(太和敎)·타불교·용화사(龍華寺)·도교(道敎)·대한도교(大韓道敎) 등 18개의 교파가 있다.

찬물교와 성덕도는 유교윤리적인 면을 강조하였고, 용화삼덕도와 봉남교는 불교염불참회를 강조하였으며, 대한도교와 삼법수도교화원은 선교의 주술치병을 중시하였고, 태화교와 봉남교는 무속적인 내용을 적극 수용하기도 했다. 태화교에서 분파한 삼천교는 무속신앙을 교리의 중심으로 하고 있다.

봉남계 종교들은 과거 부산과 제주도에 밀집하고 있었지만, 이후에는 전국 각지로 폭 넓게 퍼져 나갔고, 신도의 수효는 2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상당한 교세를 확보하고 있는 곳으로는 삼법수도교화원, 천지대안도, 성덕도 세 교단뿐이다. 나머지 9개 교단은 거의 활동하지 않는 상태로 이른바 제도화 과정에서 실패한 교단들이다. 12개의 교단 중 삼법수도교화원·태화교·용화사·봉남사·용화삼덕도·타불교는 김봉남을 교조로 받들며 김봉남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승하는 교단들이다. 나머지 천지대안도·성덕도·찬물교·적선교·도교·대한도교는 독자적으로 교단을 만들어 김봉남의 영향을 부인하거나 강조하지 않는 교단들이다.
[1] 그 중 現 기장군 지역[2] 아호는 백남(白南)[3] 지금의 자아도(自我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