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7 16:24:06

우라(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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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3. 해석4. 기타

1. 개요

温羅(うら/おんら)

모모타로 설화와 그 설화의 원전이라는 설이 있는 와카타케키비츠히코노미코토에서 등장하는 오니들의 두령. 온라라고도 한다.

2. 설명

옛날에 이국[1]에서 넘어온 '우라'라고 하는 강력한 귀신이 키노조(鬼の城)에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에 조정에서는 우라를 물리치려고 키비츠히코노미코토를 파견했는데, 키비츠히코노미코토가 쏜 화살은 우라가 던진 돌에 부딪쳐서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2]

그 때 아마테라스가 나타나서 키비츠히코노미코토에게 한번에 화살을 두개씩 쏘라고 방책을 알려 주었다. 키비츠히코노미코토는 아마테라스의 방책대로 한번에 두개의 화살을 날리자, 하나는 우라가 던진 돌에 부딪쳐 떨어졌으나 다른 하나가 우라의 왼쪽 눈을 맞추게 된다.[3]

우라는 으로 변신하여 달아났고 이에 키비츠히코노미코토가 로 변신하여 쫓았고, 우라는 다시 잉어로 변신하여 달아나자 키비츠히코노미코토는 다시 변신해 가마우지가 되어 우라를 잡아서 목을 베었다.

그러나 이후 우라의 머리는 계속 눈을 뜨고 으르렁거렸다. 이에 키비츠히코는 가신인 이누카이노다케루를 시켜 머리를 개에게 먹였고, 뼈를 키비츠신사의 오가마덴(御釜殿)의 가마솥 아래에 묻었다. 하지만 여전히 괴성은 몇 년간 계속되었다. 이후 키비츠히코의 꿈에 우라가 나타나 자신의 아내인 아소메(阿曽女)[4]로 하여금 신찬을 올리게 하면 가마가 길흉을 점쳐준다고 하였다. 이후 그대로 행하자 괴성은 멈췄으며, 여기서 유래된 나루가마 제의[5]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후 기비쓰신사[6]의 가마덴에선 우라를 모시며, 그 정령을 '우시토라미사키'라고 한다.

다만 판본이 많은 만큼 그 전개나 구성도 여러가지 다양하다.

3. 해석

우라는 설화에서 다른 지역에서 넘어온 오니로 묘사되는데, 그 출신이 상당히 다양하게 묘사된다. 판본에 따라 그냥 이국 출신이라는 경우도 있고, 천축,[7] 월지국, 신라, 백제 등 여러 곳이 언급된다. 호칭 역시 그냥 귀신이라고 하거나 강가야차(剛伽夜叉), 키비노카쟈[8] 등 다른 호칭으로 나올 때도 있다.

설화를 현실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접근할 경우, 우라를 이즈모나 규슈 같은 서쪽 지역, 혹은 신라나 가야, 백제 같은 한반도계 도래인으로 해석하는데, 한반도계 도래인이라고 보는 설이 비교적 많이 주목받는다.

이는 설화의 배경이 되는 오카야마현의 키노죠(鬼ノ城 오니 성, 도깨비 성, 귀신 성)가 발견되어 조사를 해보니 전형적인 한반도식 산성이며, 백제 멸망 이후인 7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키노죠라는 명칭 역시 성을 뜻하는 백제어인 기, 긔 등이 일본어의 성과 결합하여 키노죠[9]라는 겹말이 되었으며, 키가 귀(鬼)[10]로 의미가 전이되어 귀신의 성이 되었을 것이라 보는 설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키노죠를 한반도계 세력이 주축이 되어 축조된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

그리고 우라 설화와 관련된 지역에 예전부터 가야와 관련된 지명이 상당히 많고 가야씨 호족들이[11] 있었다는 점이나 설화에서 우라의 아내로 언급되는 아소메와 그 출신지인 가야군의 아소고 역시 가야 쪽과의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12] 등을 이유로 가야 쪽으로 해석하는 학설도 있고, 신라의 천일창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하는 학설도 있다.

또 우라를 제철 기술과 관련된 존재로 해석하기도 한다. 기비 지역[13]이 고대에 유명한 철 산지 중 하나였다는 점, 상술한 우라의 아내인 아소메의 출신지인 아소고(阿曽郷)가 과거 주물사(鑄物師)들의 집단 거주지였고, 여기서 6세기 후반의 제출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화살에 맞은 우라의 눈으로부터 불출된 피로 인해 강이 붉게 물들어 치스이가와(血吸川)가 되었다는 부분[14]처럼 설화 내에서 제철과 관련된 요소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설화 내에 여럿 존재한다.

설화에서 수로왕석탈해 설화에서 나타나는 둔갑 재주 겨루기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 역시 한반도와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선 해모수와 하백 간의 설화에서도 비슷한 둔갑 겨루기가 등장하는 등 동물 둔갑을 통해 재주를 겨루는 것은 고대 한국계 설화에서 꽤 받아들여지는 요소였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기비 지역에 정착한 제철 기술을 가진 한반도계 세력들을 야마토 조정이 무력 복속을[15] 행한 것이 후일 오니 퇴치 설화로 전해졌을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16][17]

이렇게 우라의 출신에 대해선 여러 설들이 있는데, 이와 별개로 설화 자체만 따지면 우라가 백제 왕자라는 버전의 설화가 비교적 대중적인 편이다. 사실 우라가 백제 출신이라는 설화는 문헌 기준으론 에도 시대 후반에야 나타난 것이지만, '우라'라는 이름이 명시되는 판본에선 우라가 백제 왕손으로 묘사되고,[18] 위의 키노죠와의 관련성도 있어서 그런 듯하다. 현지에서도 우라가 백제의 왕자라는 버전의 설화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으며 제철 기술의 전래 등을 언급하기도 한다. 키노조 근처의 핫토리역에 붙어 있는 관광 안내판 등을 보면 우라가 백제의 왕자이며 사실은 철기 문명과 각종 도구들을 전파해준 고마운 존재였다고 말하고 있다.

4. 기타



[1] 판본에 따라 다르다. 천축이나 그냥 이국에서 넘어왔다고도 하며, 신라 국왕이나 백제 왕, 백제 왕자 등이 언급되기도 한다.[2] 우라 역시 화살로 응전했다는 버전의 설화도 있다.[3] 이 때 흘린 가 현재의 치스이가와(血吸川)가 되었다고 한다.[4] 아소히메(阿曽媛)라고도 하며, 아라메라는 기록도 있다.[5] 가마에 불을 때 밥을 지을 때 나는 소리로 길흉을 치는 것.[6] 기비쓰히코 등을 모시는 신사다.[7] 인도를 의미한다.[8] 길비관자(吉備冠者). 길비는 말그대로 기비 지역이다.[9] 노는 ~의라는 뜻으로 큰 의미는 없다.[10] 귀(鬼)의 일본어 발음이 '키'다.[11] 문헌상으로는 도래계라는 언급은 없지만, 가야와 모종의 형태의 관련이 있을 거라는 설이 일본에도 있다.[12] 기록에 따라 아소메를 아라메((安良女)라고도 하고, 그 출신지인 가야군의 아소고도 과거에는 아라소(阿良蘇)라고 불렀는데, 이게 가야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연구가 있다. 출처[13] 오카야마현 지역의 옛 이름[14] 실제로는 강에 철분이 많아서 붉게 보이는 것인데, 계곡물을 이용한 사철 작업으로 생긴 철분으로 붉게 물든 것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15] 보통 기비 지역 세력의 성장을 경계했거나, 제철 기술, 철산지 등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닐까 추측된다.[16] 꼭 우라 퇴치 설화 말고도 고중세 일본 인물들의 여러 요괴 퇴치 설화가 지방 호족이나 도적 퇴치 설화가 변이된 것이 아니냐는 학설이 많다.[17] 오카야마 지역에는 우라 설화와 별개로 우키다씨라는 백제계 왕손 출신이라는 씨족이 존재하는데, 우키다 소쇼라는 자의 아들이 오니 가면을 가지고 있고, 이를 쓰면 큰 오니로 변해 사람을 잡아먹었으며, 중앙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가면을 베어 해결했다는 설화가 있다. 이 역시 이 일대의 고대 한국계 이주민들과 중앙 권력의 무력 복속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출처[18] 상술했듯 오니의 이름이나 호칭도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우라/온라라는 이름은 백제 출신이라는 판본에서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