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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 ( |
Peseta Española (스페인어)
Pesseta Espanyola (카탈루냐어)
1. 개요
스페인과 그 속령의 옛 통화로 1869년에 도입되어 2002년 유로 전면전환으로 폐기되기까지 132년간 존재했다. ISO 4217 코드는 ESP, 기호는 Pts(₧) 또는 P의 윗 부분에 가로줄을 하나 그어 나타냈다. 타이핑 등으로는 Pt(s), Pta(s)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잦았고, 실제 동전등에 찍히는 단위도 이쪽을 사용했었다. 1999년 유로화 첫 출범직전의 인플레이션은 1.4%였으며 유로와의 교환비는 166.386₧/€.보조단위로 센티모가 있었고 (페세타)₧(센티모)의 방식을 사용했으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1983년 폐지되었다. 구 보조단위 중에서는 Real(레알)도 있어서 한때는 4레알/₧의 표기를 가진 동전도 나왔었고, 실생활에서도 미국 달러의 쿼터처럼 호칭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담으로 지폐가 처음 발행된 날짜를 년월일까지 정확히 써넣어놓았던 것이 특징.
안도라에서도 과거에 이 통화를 프랑스 프랑과 함께 자국통화로 취급했는데, 페세타가 정부 예산과 급여 및 은행 예금 등지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며 널리 쓰였다. 또 1930년대 말 스페인 내전 기간에 보조 화폐가 부족하자 안도라 고유의 페세타 지폐를 발행한 적도 있었다.#
본래 페세타 지폐는 1939년 이후에 발행된 것 모두 2020년 연말까지 직접 방문 혹은 추심을 통해 교환을 받을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외부활동의 제한으로 2021년 6월까지 연장되었고 그 이후로는 유로화 교환이 종료되었다.
2. 스페인 왕국
2.1. 1925 ~ 27
앞면 | 뒷면 | ||
25₧ |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 원주민에게 세례를 내리는 하비에르 | |
50₧ | 알폰소 13세, 마드리드 왕궁 | 후안 데 가라이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건국[1] | |
100₧ | 펠리페 2세, 엘 에스코리알 | 펠리페 2세의 의자[2] | |
500₧ | 이사벨 1세, 알함브라 궁전 | 국장 | |
1,000₧ | 카를로스 1세 | 톨레도 알카사르의 문 |
2.2. 1928
앞면 | 뒷면 | ||
25₧ |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 그의 기념비 | 십자가의 헌신[3] | |
50₧ |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라도 미술관 | 그의 작 '브레다의 항복' | |
100₧ | 미겔 데 세르반테스, 그의 기념비 | 공작과 돈키호테의 만남[4] | |
500₧ |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데 시스네로스, 톨레도 대성당 | 시스네로스 추기경의 오랑의 포로 해방[5] | |
1,000₧ | 페르난도 3세, 세비야 대성당 | 성 페르난도의 마지막 영성체[6] |
3. 스페인 공화국
3.1. 1931
앞면 | 뒷면 | ||
25₧ | 비센테 로페즈 포르타냐 | 그의 작 '카를로스 3세 기관의 알레고리에 관한 스케치' 일부 | |
50₧ | 에두아르도 로살레스 | 그의 작 '루크레티아의 죽음' | |
100₧ | 곤살로 데 코르도바 | 두 명의 카우디요[7] | |
500₧ |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 | 엘카노의 세비야 상륙[8] |
3.2. 1935 ~ 36
앞면 | 뒷면 | ||
25₧ | 호아킨 소로야 | 그의 작 '배를 끄는 소' | |
50₧ |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 레티로 공원의 라몬 이 카할 기념비 | |
500₧ | 에르난 코르테스, 코르테스 궁전 | 배를 불태우는 코르테스[9] |
4. 스페인국
4.1. 1940
앞면 | 뒷면 | ||
1₧ | 에르난 코르테스 | 국장 | |
산타 마리아호 | 숫자 1 | ||
5₧ | 세고비아 궁전 | 숫자 5 | |
25₧ | 후안 데 에레라, 복음서 기자의 안뜰 | 국장 | |
50₧ | 메넨데스 펠라요 | ||
100₧ | 크리스토발 콜론 | ||
500₧ |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 | 함선들 | |
엘 그레코 작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의 일부 | 톨레도 대성당 | ||
1,000₧ | 바르톨로메 무리요 | 그의 작 '돈세는 과일 판매상들' | |
카를 5세 | 그의 문장 |
4.2. 1946 ~ 49
앞면 | 뒷면 | ||
1₧ | 엘체의 여인상 | 오렌지 | |
5₧ | 후안 세바스티안 데 엘카노 | 액면 단위 | |
25₧ | 알바로 플로레스 에스트라다 | 폴라 데 소미에도 | |
100₧ | 프란시스코 데 고야 | 그의 작 '파라솔' | |
프란시스코 바이유 | 고야의 작 '도자기 판매상' | ||
500₧ | 프란시스코 데 비토리아 | 살라망카 대학교 | |
1,000₧ | 후안 루이스 비베스 | 코퍼스크리스티 왕립신학대학 | |
라몬 데 샌틸런 | 고야의 작 '주정뱅이' |
4.3. 1951 ~ 57
앞면 | 뒷면 | ||
1₧ | 돈키호테 | 창과 방패 | |
알바로 데 바잔 | 카디스 전투의 갤리선 | ||
5₧ | 하이메 발메스 | 건물 | |
알폰소 10세 | 국립 도서관 | ||
25₧ | 이삭 알베니스 | 알함브라 궁전의 사자의 정원 | |
50₧ | 산티아고 루시뇰 | 그의 작품 '아랑훼즈의 정원들' | |
100₧ | 훌리오 로메로 데 토레스 | 그의 작품 '라 푸엔산타' | |
500₧ | 마리아노 벤리우레 | 그의 조각들 | |
이그나시오 술로아가 | 그의 작품 '툴레토의 풍경' | ||
1,000₧ | 호아킨 소로야 | 그의 작품 '오렌지 축제' | |
이사벨 1세&페란도 2세 | 이사벨 1세의 문장 |
4.4. 1965 ~ 76
앞면 | 뒷면 | ||
100₧ |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 | 낭만적인 여인과 세비야 대성당의 히랄다 탑 | |
마누엘 데 파야 |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헤네랄리페 여름궁전 | ||
500₧ | 하신토 베르다게르 | 카니고산과 비그놀라스 올라스 마을 | |
1,000₧ | 이시도루스 히스팔렌시스 | 성 이시도르의 로마네스크 이미지와 성 이시도르 대성당 | |
호세 에체가라이 | 스페인은행 | ||
5,000₧ | 카를로스 3세 | 프라도 미술관 |
5. 스페인 왕국
5.1. 1979 ~ 85
앞면 | 뒷면 | ||
200₧ | 레오폴도 알라스 | 큰 나무와 십자가 | |
500₧ |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 | 저택 | |
1,000₧ | 베니토 페레스 갈도스 | 테이데봉 | |
2,000₧ | 후안 라몬 히메네스 | 로사의 저택 | |
5,000₧ |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 군복 스타일 | 마드리드 왕궁 | |
10,000₧ |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 - 정장 스타일 | 펠리페 왕자, 엘 에스코리알 |
5.2. 1992(신대륙 발견 500주년)
()는 유로화 환산가격.앞면 | 뒷면 | ||
1,000₧ (€6.01) | 에르난 코르테스 | 프란시스코 피사로 | |
2,000₧ (€12.02) | 호세 셀레스티노 무티스 | 왕립 식물원 | |
5,000₧ (€30.05) | 크리스토발 콜론 | 아스트롤라베 | |
10,000₧ (€60.10) | 후안 카를로스 1세 리나레스 궁전 | 호르헤 후안 이 산타실리아 천문학 작도 |
6. 동전
최종적으로 1, 5, 10, 25, 50, 100, 200, 500페세타 8종.
참고로 1페세타 동전은 크기가 고작 14mm로 작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10센트 동전보다도 더 작았으며, 25페세타는 가운데에 구멍이 있는 천공 주화였다. 또 고액 주화인 500페세타(약 3.01유로, 우리 돈으로 4천원 정도)는 1993년부터 세계 최초로 홀로그램이 적용되어 발행되었다.
도안은 전부 후안 카를로스 1세. 다만 200페세타는 펠리페 왕자, 500페세타는 소피아 왕대비와 함께 있는 모습이며, 5페세타는 초상 대신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