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8 04:18:22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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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598년 5월 6일에서 1621년 7월 13일까지 일시적으로 총독이 아니라 주권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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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3D4BB><colcolor=#000>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
Don Juan de Austria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on_Juan_d%27Austria_1.jpg
이름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
(Juan de Austria)
출생 1547년 2월 24일
레겐스부르크
사망 1578년 10월 1일 (31세)
나뮈르
아버지 카를 5세
어머니 바바라 블룸베르크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스페인의 장군. 레판토 해전의 신성 동맹 함대 총사령관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해전 당시 만 24세.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1]사생아펠리페 2세의 이복동생이다. 다만, 펠리페 2세와는 나이 차이가 20살이나 나고 펠리페 2세의 장남인 돈 카를로스보다도 2살 어리다.

2. 생애

1546년 카를 5세가 평생 숙원이었던 개신도들의 박멸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기 위해 5만의 스페인 대군을 이끌고 16년 만에 독일에 왔을 때(슈말칼덴 전쟁, 1546년~1547년) 독일 현지(레겐스부르크)에서 만난 미모의 여인이자 오페라 가수인 바바라 블롬베르크(Barbara Blomberg)#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독일인인 어머니와 떨어져 스페인에서 살았다. 유년기의 이름은 헤로니모(또는 헤로민). 성인이 될 때까지 어머니와 만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인 카를 5세와도 생전에 단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 카를 5세가 스페인 왕위와 신성 로마 황위에서 물러나 수도원에서 은거하고 지내던 만년 시절이었으므로, 아버지 카를 5세를 만났을 때는 후안의 나이 10세쯤이었다.

성장한 이후에는 어땠는지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적어도 처음에는 이복형 펠리페 2세와 사이가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첫 만남에서부터 펠리페 2세가 후안에게 매우 친절했고 심지어는 사생아지만 왕족이라는 걸 알려주며 이후의 교육을 챙겨줄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심지어 후안이 전투에 참가하여 용감히 싸우다 부상을 당하자, "너의 몸을 소중히 아낄 줄 알아야 한다."라고 꾸짖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낼 만큼, 펠리페 2세는 동생을 아꼈다.[2]

이후 젊은 나이에 레판토 해전 신성 동맹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선임되었고, 스페인과 베네치아, 그리고 교황청 간의 입장 차이를 잘 조율하였을 뿐 아니라, 오스만과의 전쟁에 소극적이었던 펠리페 2세의 뜻과 달리 적극적으로 전쟁을 이끌어 대승을 거두는 전공을 세웠다. 역사학자들은 돈 후안의 리더십 없이 신성 동맹 연합군의 승리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거라는 데 이견이 없다. 참고로 그가 총사령관으로서 대승을 이끌었던 레판토 해전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오스만 제국에게 그리스도교 세계가 거둔 첫번째 승리였다.

레판토 해전의 성과만 보더라도 장조카 돈 카를로스를 포함하는 펠리페 2세의 정식 후계자들보다 여러 면에서 능력이 좋았다는 평이 있다. 하지만 이후엔 어쨌건 왕족이라는 특성상 궁중암투 의심을 받는 여러 사건들을 겪는 와중 네덜란드의 총독으로 재임하다 젊은 나이에 전염병으로 요절했다. 향년 31세.

3. 여담

  • 훗날에 만난 어머니 바바라는 그의 아버지가 카를 5세가 아니라 당시 자신이 만나던 다른 남자였다고 털어놓았다는 얘기가 있다. 외모상으로도 후안이 합스부르크 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3]
  • 이복형 펠리페 2세의 장남으로 조카인 돈 카를로스가 펠리페 2세를 살해하려 한 음모에 휘말릴 뻔한 적도 있다. 정신 장애를 앓던 돈 카를로스는 아버지인 펠리페 2세를 살해하고 플랑드르의 왕이 되겠다는 계획을 숙부[4]인 돈 후안에게 밝히며 협조해달라고 말한 것. 그러나 이 역모는 돈 후안 본인이 펠리페 2세에게 먼저 알려서 수습할 수 있었다.
  • 과거 템페스트 용병단이라는 모바일 게임의[5]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적이 있다. 다만 본명은 후안이 아닌 '프로스페로'로, 후안은 용병단장으로서 사용하는 가명이며 아버지 카를 5세메리 튜더로 인해 성정이 흐트러지고 나라가 피폐해지자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용병단을 조직한 것으로 묘사된다. 최후에는 카를 5세를 쓰러뜨리지만 메리 튜더는 엄청난 처세술을 보여 전쟁은 끝끝내 멈추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엔딩을 맞는다.
  • 원래는 스페인 해군의 이지스함 알바로 데 바잔급의 6번함 이름이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로 정해질 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6번함은 건조가 취소되고 말았다.[6]

[1]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2] 다만 정식 왕족으로는 인정 받지 못했고 스페인의 대귀족 집단인 Grandee에 소속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3] 물론 합스부르크 혈통이라고 무조건 주걱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마리아 테레지아만 해도 주걱턱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합스부르크의 주걱턱은 친척 간의 결혼 때문에 형성된 것이므로 완전 외부의 유전정보를 가진 바바라가 섞이면서 드러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4] 숙부이긴 하나 돈 카를로스가 돈 후안보다 두 살이 많았고 비슷한 나이대였던 탓에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5]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형 RPG이다.[6] 같이 취소된 5번함은 뒤늦게 건조를 재개해, 2000년대 후반에 취역했다. 5번함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