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9 12:14:21

알베르트 카지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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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598년 5월 6일에서 1621년 7월 13일까지 일시적으로 총독이 아니라 주권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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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AE2EB><colcolor=#000> 테셴 공작
알베르트 카지미어
Albert Casimir, Herzog von Teschen
파일:Albert Kasimir.Duke of Teschen.jpg
이름 독일어 알브레히트 카지미어 아우구스트 이크나츠 피우스 프란츠 크사버
(Albrecht Kasimir August Ignaz Pius Franz Xaver)
폴란드어 알베르트 카지미에시 사스코치에신스키
(Albert Kazimierz Sasko-Cieszyński)
출생 1738년 7월 11일
작센 선제후국 모리츠부르크
사망 1822년 2월 10일 (향년 83세)
오스트리아
재위 테셴 공국의 공작
1766년 4월 8일 ~ 1822년 2월 10일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의 총독
1780년 11월 29일 ~ 1792년 3월 1일
배우자 테셴 여공작 마리아 크리스티나 (1766년 결혼 / 1798년 사망)
자녀 마리아 크리스티나 테레자
아버지 아우구스트 3세
어머니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요제파
형제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마리아 아말리아, 마리아 아나, 프란츠 크사버, 마리아 요제파, 카를, 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리아 엘리자베트, 클레멘스 벤체슬라우스, 마리아 쿠니군데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
2.1. 합스부르크 황가의 사위가 되다2.2. 쓸쓸한 결혼 생활
3. 가족관계
3.1. 조상

[clearfix]

1. 개요

작센의 선제후 겸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 아우구스트 3세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요제파[1]의 4남이자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남편이다. 아내 크리스티나의 작위를 따라 테셴 공작으로 불리기도 한다.

2. 생애

2.1. 합스부르크 황가의 사위가 되다

당시 16세기의 유럽 내 모든 왕족들은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정략결혼이 당연하던 시대였는데, 알베르트는 프란츠 1세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여대공연애결혼을 했다.[2]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가문인 합스부르크 왕조가 정략결혼으로 영토를 넓힌 걸 감안하면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물론 알베르트도 엄연히 작센의 왕족이었으나 크리스티나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녀이자 오스트리아의 직계 여대공이었고 알베르트는 작센 선제후 겸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인 아우구스트 3세의 4남이어서, 작센 선제후국의 후계자도 아니었고 다른 작위도 없어서 황녀의 남편이 되기에는 처지는 조건이었는데도 자유연애 뿐만 아니라 결혼까지 가능했던 이유는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수많은 딸들 중 가장 총애하던 딸이었기 때문이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가 아버지 프란츠 1세를 잃고 우울해하던 1765년~1766년 때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슬픔에 잠긴 어머니에게 "연애결혼을 허락하면 평생 어머니 곁에 있을 수 있다"고 속삭였다. 결국 크리스티나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연애결혼을 허락받았다. 이것만으로도 행운인데 알베르트와 결혼하면서 막대한 지참금과 알베르트가 테셴 공작으로 임명되는 특권과 락센부르크의 대저택[3] 등을 선물받았다.

알베르트 역시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의 총독 자리까지 받았다. 크리스티나가 알베르트보다 신분이 훨씬 높고 처가에서 여러 작위를 하사받았기에 크리스티나는 결혼 후에도 합스부르크-로트링겐의 성(姓)을 유지하였다.

2.2. 쓸쓸한 결혼 생활

이처럼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알베르트 두 사람은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여러모로 편애를 받으며 많은 특권을 하사받았다. 이후 크리스티나는 알베르트와의 사이에서 자신과 어머니에게서 따와 이름지은 마리아 크리스티나 테레자란 딸을 낳지만 난산으로 산모와 아기 모두 죽을 뻔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목숨을 건졌으나 딸은 다음 날 사망하였다. 이후 알베르트는 크리스티나가 평생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자 그녀의 남동생 레오폴트 대공과 스페인의 마리아 루이사의 삼남으로 처조카인 카를 대공을 입양하였다.

게다가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의 편애만 믿고 다른 형제자매들을 감시하고 이간질하는 행태를 벌이며 모든 형제자매들의 공적이 되었던터라, 결국 마리아 테레지아의 사후 알베르트도 아내와 함께 서유럽 각국의 군주나 군주의 배우자가 된 크리스티나의 남매들을 찾아갔을 때 일개 귀족으로 대우받으며 온갖 푸대접을 당했다.[4] 이후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1798년 6월 24일에 먼저 사망하고 알베르트 역시 1822년 2월 10일에 사망하면서 그들의 양자이자 조카인 카를 대공이 테셴 공작위를 이어받는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테셴 공작 알베르트 카지미어
(Albert Casimir, Duke of Teschen)
<colbgcolor=#fff3e4,#331c00> 아우구스트 3세
(Augustus III)
<colbgcolor=#ffffe4,#323300> 아우구스트 2세
(Augustus II)
작센 선제후 요한 게오르크 3세
(John George III, Elector of Saxony)
덴마크의 아나 소피
(Anna Sophie of Denmark)
브란덴부르크바이로이트의 크리스티아네 에베르하르디네
(Christiane Eberhardine of Brandenburg-Bayreuth)
브란덴부르크바이로이트 변경백 크리스티안 에른스트
(Christian Ernst, Margrave of Brandenburg-Bayreuth)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루이제
(Sophie Louise of Württemberg)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요제파
(Maria Josepha of Austria)
요제프 1세
(Joseph I)
레오폴트 1세
(Leopold I)
노이부르크의 엘레오노레 막달레네
(Eleonore Magdalene of Neuburg)
브라운슈바이크의 빌헬미네 아말리
(Wilhelmine Amalie of Brunswick)
브라운슈바이크칼렌베르크 공작 요한 프리드리히
(John Frederick, Duke of Brunswick-Calenberg)
팔츠의 베네딕타 헨리에테
(Benedicta Henrietta of the Palatinate)


[1] 요제프 1세의 장녀.[2] 둘은 오스트리아 황실 기준으로 6촌이다. 알베르트의 외할아버지 요제프 1세와 크리스티나의 외할아버지 카를 6세가 형제 지간이기 때문.[3] 이 락센부르크의 대저택은 외국으로 시집간 크리스티나의 자매들이 평생 그리워하던 마리아 테레지아 일가의 가족 나들이용 별궁으로, 크리스티나의 막내여동생 마리아 안토니아는 이를 본딴 프티 트리아농을 베르사유 궁전에다 건설할 정도로 가족 모두가 눈독 들이던 재산이었다.[4] 크리스티나의 큰오빠이자 마리아 테레지아의 뒤를 이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된 요제프 2세는 자신에게까지 대놓고 설치는 크리스티나에게 있는 대로 빈정이 상해있었고, 막내 여동생 마리아 안토니아도 크리스티나를 가리켜 "어머니의 얼굴을 제일 많이 봤다"며 불평했고 본인이 시집간 프랑스에 방문한 크리스티나를 당연히 푸대접하며 프티 트리아농을 보여 달라는 언니의 요청도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