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21:27:11

키프로스 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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Η Κυπριακή Λίρα (그리스어)
Kıbrıs Lirası (튀르키예어)
Cypriot Pound (영어)

파일:Κεντρική Τράπεζα της Κύπρου.jpg

1. 개요2. 지폐
2.1. 1차2.2. 2차2.3. 3차 (최종)
3. 동전4. 둘러보기

1. 개요

키프로스의 옛 통화...정확히는 그리스계 남키프로스에서만 통용되었으며 북키프로스의 경우 1974년 분단 이후부터 현재까지 튀르키예 리라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선지 첫 시리즈를 제외하고 모두 그리스풍이 훨씬 강한 편인데, 실물 대부분이 북키프로스에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더 아이러니한 건 더이상 키프로스 리라를 사용하는 튀르키예계 키프로스인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시리즈까지, 이후에 새로 도입된 유로화 동전에도 꾸준히 튀르키예어를 들이밀었다는 것(...) [1]

ISO 4217 코드는 CYP, 기호는 주로 £을 썼으며 복수형은 그리스어의 경우 초반에는 Λίραί(리레)였으나 카사레부사 그리스어에서 민중 그리스어(디모티키)를 위주로 표준 그리스어를 개혁한 이후에는 그리스 드라크마처럼 Λίρες(리레스)로 변경되었다. 튀르키예어의 경우 똑같이 'lira'인데 튀르키예어 문법에서 숫자 뒤에 따라오는 명사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항상 단수형으로만 쓰기 때문. 보조단위로 mil(1/1000)단위를 쓰다가 1983년부터 cent(1/100)로 전향하였다.

ERM에 들어간 2005년 자료상 인플레는 2.8%로 매우 안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8년부터 몰타 리라와 함께 유로로 전환했으며, 전환비는 0.585274리라/EUR으로[2] 유로값이 도리어 더 낮은 몇 안되는 통화 중 하나다. 그 외에도 몰타 리라와 유사성이 짙은데, 해당항목을 참조.

원래 이 통화명은 "키프로스 리라"이지만, 영국이 1878년에 오스만으로부터 이 지역을 뺏어다가 이듬해인 1879년에 키프로스 파운드를 처음 도입한 이래로 근 90년을 지배한 탓에 대외적으론 파운드로 굳어져버렸다. 아예 기호조차 "£"를 유지했을 정도. 당시 교환비는 오스만 제국 당시의 튀르키예 리라화 대 파운드 스털링 환율을 적용해 1파운드 = 180피아스트(Piastre, Kuruş)[3], 즉, 1실링 = 9피아스트였다. 1피아스트에는 당시 튀르키예 리라와 마찬가지로 40파라(Para)의 보조단위가 있었지만 깔끔하게 무시. 이후 1955년에 본국보다 20년 앞서 10진법을 도입하였고, 1960년에 실질적인 키프로스 리라가 첫 선을 보였다.

참고로, 키프로스의 모든 통화는 2018년 1월 1일부터 유로화 교환이 중지되었다.. (구권은 이미 통화가 아니다.) 그런고로 현재 이 통화를 보유한 사람은 망했어요.

2. 지폐

2.1. 1차

1960년에 도입되었지만, 1961년 시리즈로 명명되어있다.
도안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5.jpg 앞면 공통 키프로스 국장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1.jpg 250μ 채석장과 마을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2.jpg 500μ 트로도스 산맥과 길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3.jpg £1 살라미스의 로마시대 수로교와 석주 유적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4.jpg £5 꽃과 기하학 무늬
  • 250밀은 과일 문양, 500밀은 꽃 문양, 1, 5파운드는 기하학 문양이 앞면 좌측에 그려져 있다.

2.2. 2차

1977년 ~ 1983년 사이에 도입된 시리즈.

파운드 하위단위인 500밀은 1982년 딱 한 해에만 나왔다가 바로 50센트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50센트도 1991년에 동전으로 교체되어 삭제.

20파운드 지폐는 비교적 늦은 1992년에 도입되었다.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21.jpg 50c(500μ) 전통복장의 키프로스 여인 예르마소야 댐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22.jpg £1 애크메 요정의 모자이크 벽화 벨라파스 수도원[4]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23.jpg £5 헬레니즘 대리석상의 얼굴부분(여자) 살라미스[5]의 극장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24.jpg £10 헬레니즘 대리석상의 얼굴부분(남자) 키프로스휘파람새 암수 한 쌍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25.jpg £20 아프로디테 여신상 키레니아선의 항해

2.3. 3차 (최종)

1997년 2월 1일에 도입하였다. 단, 20파운드는 동년 10월에 도입.

특별한 교체사유는 없고, 그냥 대충 바꿀 시기가 되어서 바꾼 것으로 보이며 그러다보니 비교적 늦게 등장한 20파운드는 거의 개정판 수준이다.

()는 유로화 환산가격.
앞면 뒷면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31.jpg £1
(€1.71)
전통복장의 키프로스 여인[6] 카토 드리스[7]의 풍경과 수제 항아리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32.jpg £5
(€8.54)
대리석상의 얼굴부분[8] 페리스테로나 교회[9]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33.jpg £10
(€17.09)
아르테미스 대리석상의 얼굴부분[10] 키프로스휘파람새, 바다거북, 키프로스산양
파일:attachment/키프로스 파운드/kibris034.jpg £20
(€34.17)
전판과 동일

3. 동전

1955년 시리즈부터 이미 등장했었으며 6종류인데 그 구성이 조금 복잡하다. 25밀까지는 실링에 그대로 대체되지만, 그 이하는 단위의 구색맞추기로 내놓은 모양. (100(2실링), 50(1실링), 25(½실링), 10, 5, 3밀. 아줌마 1밀만 거슬러줘요[11])

이후 밀이 센트로 바뀌면서 변화가 일어났는데 앞서 언급한 ½센트(5밀)을 포함하여 1, 2, 5, 10, 20센트의 6종류가 새로 도입되고, 1991년에 50센트가 추가되었다. ½센트를 제외한 이 체계는 2008년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파일:Cyprus 1-50 Cents, 2004, KM 53.3-66, Mint.jpg

1c - 형상화한 새와 나뭇가지
2c - 배치된 두마리의 염소
5c - 황소 머리
10c - 새와 꽃으로 장식된 꽃병
20c - 키티온의 제논
50c - 황소로 변해 에우로페를 납치하는 제우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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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프로스 행정 전산망에는 키프로스 전쟁 이후 북키프로스에 살고 있거나 해외로 피난한 사람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이들의 후손은 자신의 현재 국적에 상관 없이 아주 쉽게 키프로스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키프로스가 EU에 가입한 이상 인권 문제 때문에 튀르키예인을 모두 추방하고 키프로스 섬을 통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들이 명목상 다민족 국가임을 계속 주장해서 키프로스 통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2] 약 2,600원/CYP정도다.[3] 신 키프로스 파운드와 영국 본토의 파운드화의 비율은 1:1이었다. 즉 1.80 오스만 리라=1 파운드=1 키프로스 파운드[4] 평화의 신전이라는 의미. 13세기경 프레몽트레 수도회에 의해 세워진 마을이다.[5] 그리스에도 동명의 섬(Σαλαμῖνος)이 있지만, 그쪽이 아니라 고대 키프로스의 수도였던 곳을 말한다. 지금의 파마구스타에서 북쪽으로 6km.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의하면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에 테우케르가 세웠다고 한다. 그의 고향이 그리스 아티카 앞바다의 살라미스라서 똑같이 이름을 지은 것. 이후 아랍인에 의해 철저히 파괴당했다.[6] 2차의 50센트와는 은근히 비슷하면서 다른 모습이다. 동일인물인데 작화력만 상승한 듯.[7] Kατώ Δρυς. 키프로스 남부에 있는 작은 마을. 정말로 그냥 시골이다.[8] 수도 니코시아의 포타미아에서 발견했다.[9] 키프로스 중앙부 니코시아에서 서쪽 32km지점, 북키프로스와의 완충지대 바로 남쪽에 있는 인구 2,000명대에 불과한 작은 마을. 그리스어 "비둘기(페리스테리)"에서 유래했다. 밀, 올리브, 아몬드, 레몬/라임등이 특산품. 비둘기야 먹자[10] 파포스(Πάφος)에서 발견했다. 로마시대의 것으로 추정.[11] 이 문제가 정말로 발생하자 1963년에 3밀을 엎어버리고 1밀이 다시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