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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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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형성 과정2.2. 남북 분당
3. 동인 인물 목록
3.1. 동인의 영수3.2. 초기 남인
4.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동인()은 조선의 붕당의 한 축이었다. 사림의 동서 분당 당시 형성되어 선조 때 주도권을 잡은 당파이다. 남인, 북인, 소북, 대북 등의 원류가 된다.

2. 역사

2.1. 형성 과정

사림들 가운데 주로 후발 주자들이 모여 형성된 붕당이다. 분파의 계기가 된 김효원의 집이 동쪽에 있었다고 해서 동인이라고 한다. 당파가 나뉘었다고는 하지만, 처음 동서 분당이 되었을 때에는 동인이 수적으로는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다만 조정에서 중진인 인물들은 서인이 많았다. 애초에 붕당 과정이 기존 훈구파에 대한 처벌 강도 조절 이유였기 때문에 강경론인 동인이 우세할 수밖에 없었고, 다만 동인이라고 훈구파 집안 출신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이이첨은 이극돈의 후손이고 이충 이명 형제는 이량의 손자다 어지간한 당대 유학계의 거목인 이황조식의 학파에 속한 이산해, 유성룡, 이발, 우성전 등은 정권의 실세로 부상하고 있었다.

때문에 동인의 경우는 초기부터 학파적 성향이 강했다. 반면 서인은 상대적으로 훈구파인 심의겸의 득을 본 기존의 사림 세력들이 심의겸을 옹호한 것이 시작이었기 때문에 명분에서 밀렸다. 다만 심의겸이 척신이긴 했지만 사림들과 친하게 지냈고 이량과 윤원형 등의 척신을 축출하는데 동참하는 등 심의겸 역시 사림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무(無) 당파적 인물이었던 이이가 동인과 서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동인을 견제하고 서인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서 서인 편을 든 것처럼 보인 것인데 이게 잘못돼서 이이는 서인의 종주가 되고 만다. 애초에 심의겸과 김효원 단계에서 끝났으면 정쟁이지 붕당이 아니다.

동인 내부의 붕당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결국 이후의 서인은 율곡 이이의 학맥을 잇는 세력이고, 이이 이전의 주기론 계보인 서경덕 등의 학맥은 사실상 단절되거나 남인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학파로서 서인의 영수는 이이가 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말린다고 뛰어든 사람치고 이이는 당대에 어그로를 너무 끈 경향도 있었으며, 결국 선조 15년 서인 선언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붕당 정치에 뛰어들면서 이이는 당시에 이미 성혼과 함께 붕당의 영수가 된다. 자세한 것은 이이 문서 참조. 참고로 당쟁의 원인이 된 김효원 자체는 이후 심의겸과 화해한 후 당쟁 문제에서 손을 뗐다. 또한 이황, 조식 등도 당쟁에 직접적으로는 참여하지 않았다. 일단 동서 분당 자체가 이 사람들이 죽고 나서 터졌다.

2.2. 남북 분당

정여립의 역모 사건(속칭 정여립의 난) 때 서인정철에게 많은 동인 선비들이 도륙 당했지만, 정철이 선조에게 후계 문제로 삽질한 건저 문제로 재집권 할 수 있었다. 이후 동인은 정철 처리 문제에 대해 온건파는 남인, 강경파는 북인으로 분열되었다. 애초에 동인은 성립부터가 퇴계 학파(남인)와 남명 학파(북인)의 연합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둘 간의 분리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온건파, 즉 남인은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의 후계인 영남 학파[1]로, 김성일, 류성룡, 곽재우[2] 등이 대표적이었다. 북인은 류성룡과 맞서게 된 영의정 이산해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임진왜란 후 류성룡이 일본과의 화의를 주장하여 이산해를 비롯한 북인의 강공을 받고 실각한 다음부터는 잠수를 타게 되다가, 이후 이원익이덕형[3]이 남인을 이끌게 되었다.

2.2.1. 북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북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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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강경파, 즉 북인은 남명 조식, 서경덕계열과 특별한 학맥이 없는 자수성가형 사림들의 연합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서경덕은 주리론과는 정반대에 있는 주기론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학파로는 오히려 이이의 원류에 가깝다. 더 정확하게는 이이는 서경덕과 이황의 학설의 중도를 취한 학설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특이했기 때문에 서경덕 계열인 화담학파는 주류에 들지 못하고 이곳저곳에 끼어다녔다.

임진왜란 때 펼친 의병 활동을 명분으로 세우고 물론 조식이 실천적인 학풍을 내세워 유독 의병장이 많았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병장은 서인 계열도 많다. 단지 서인계는 전쟁 끝나기 전에 거의 다 죽었고 북인계는 무사히 종전을 맞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남인의 분열을 노려 정유재란 이후 1599년부터 정권을 장악했다. 처음에는 류영경을 중심으로 권력을 잡다가 후계자 자리를 두고 영창대군광해군으로 조정 의논이 나뉜 와중에 유영경은 영창대군을 지지하다가 선조 승하 후에 즉위한 광해군에 의해 끔살당했다.

광해군 이후의 북인은 광해군이 세자 시절부터 지지한 이이첨, 기자헌, 류희분, 박홍구를 중심으로 일당 독재를 누리지만 1623년에 인조반정으로 이이첨과 유희분이 처형을 당하고, 1624년에 이괄의 난으로 기자헌과 박홍구까지 끔살이 되자, 북인은 사실상 전멸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인조 반정으로 전멸한 것은 광해군을 옹호한 대북 세력이고, 영창 대군을 지지한 소북 세력은 살아남아서 남인에 합류한다. 하지만 남인은 이후에 영남남인보다 근기남인을 중심으로 길을 걸은 판이기 때문에 영남 사림의 세가 강했던 소북은 이 시기 이후로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했다.[4]

2.2.2. 남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남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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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효종, 현종 때 남인은 주로 경기와 충청, 즉 기호 지역 출신들을 기반으로 한 근기남인을 중심으로 재등장해서 조선 사상 최대의 정통성 논쟁이었던 예송논쟁에서도 서인과 대결[5]했다. 숙종 때에는 급기야 일시적으로 서인을 대신해서 집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숙종의 잇다른 환국으로 인해 결국 몰락했다.

정계에서 힘을 못 쓰게 된 남인 쪽에서는 실학자들이 많이 등장했고 실학자들은 청에서 들여오는 서구문물을 접하는 데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 덕분에 천주교도도 남인이 제법 많아서 이들은 정조 사후 일어난 신유박해 때 상당수가 순교의 길로 나가게 되었다. 박해가 정치적이었다는 말이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천주교를 받아들인 남인을 신서파, 받아들이지 않은 남인을 공서파라한다. 신유박해에서 몰락한것 신서파이다. 그리고 공서파도 이후의 세도정치로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하지만 황사영 백서 사건 이후 한국 천주교의 주축이 중인 이하의 계층이 되고 병인 박해에서의 그야말로 엄청난 순교자가 발생한 것은 이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영조, 정조탕평책의 일환으로 그럭저럭 등용되기도 했다.[6] 이 시대의 대표적인 남인 계열 인물이 바로 채제공, 이가환, 정약용이다. 그럼에도 권력의 핵심은 영조 시절 이래 영조의 탕평책을 지지했던 노론 온건파가 분리한 벽파시파였고, 결국 정조가 죽고 정순 왕후의 수렴 청정과 함께 채제공이 추탈되며 신유박해로 이가환이 사망하고, 정약용 형제 등이 유배를 가면서 거의 소멸되었다.

그 후 시파가 병인갱화로 벽파를 몰락시키고 시파의 일당 독재 체제가 형성되고 시파 내부에서 세도 정치가 전개되는 와중에 남인은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정계에서 세력을 잃게 되었다. 이후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에는 세도 정치 가문들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남인을 우대하는 정책을 편다고 발표했지만, 세도 정치기 수준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이후에도 시파가 지속적으로 정계 요직을 주도하면서 남인은 정계의 주도권을 회복하지 못했다.

3. 동인 인물 목록

3.1. 동인의 영수

3.2. 초기 남인

이황을 제외하면 당파성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 퇴계 이황
  • 서애 류성룡(선조 시기)
  • 악록 허성(선조~광해군 시기)
  • 한음 이덕형(광해군 시기)
  • 오리 이원익(광해군~인조 초기)
  • 망우당 곽재우: 조식의 제자이기는 한데 군사 분야 전문가로서 기질이 더 강했다. 임진왜란 종전 후 일본과의 화의를 주장했고 김성일의 도움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고 이원익을 옹호했으며 영창대군 사사에 반대하다 모함받아 죽을 뻔한 사람이다.
  • 이순신: 물론 이순신은 순수 무인이었고, 현실 정치에 대해서도 중립을 지켰다. 다만 위에 언급된 류성룡과의 깊은 관계 때문에 취소선 형태로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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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영남 중에서도 경상좌도(낙동강 오른쪽으로 지금의 안동 등지). 경상우도(낙동강 왼쪽으로 지금의 진주시 일대, 지리산 등지)에는 조식의 학파가 있었다. 참고로 이 좌우도는 이 북을 등지고 남을 바라본다고 하는 남면 사상에 따라 동쪽을 좌도, 서쪽을 우도라 하였다.[2] 조식의 제자이자 손녀사위로 대북 영수 정인홍과 같은 배분이라 북인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임진왜란 내내 김성일, 류성룡, 이원익 같은 남인계 중신들과 호흡을 맞췄고 이들을 지지했으며 폐모살제에 강하게 반대하다 광해군과 대북 눈 밖에 나서 역모에 엮여들 뻔 하는 등 대북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3] 북인 이산해의 사위이다. 장인어른은 북인, 사위는 남인이다.[4] 이 탓에 퇴계학 연구에 비해 북인의 종주인 조식에 대한 연구는 다소 미진한 상태이다.[5] 특히 예송논쟁 때 거의 송시열의 '저격수' 역할이었던 윤선도가 바로 남인이었다.[6] 기본적으로 남인을 포함한 동인 세력은 왕권과 신권의 차이를 인정해서 왕권 강화에 도움이 되는 세력이었다. 예송 논쟁도 그와 관련되어 있고. 더구나 이 시기 남인은 재야 세력이었기 때문에 왕의 측근 세력으로는 딱이었다.[7] 허난설헌허균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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