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20:06:36

유응부



死六臣
사육신
박팽년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 이개 하위지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1. 개요

兪應孚

사육신 중 한 명으로 자는 신지(信之), 호는 벽량(碧梁)이다. 용맹하며 칼싸움과 활을 잘 쏘는 등 전쟁을 잘해서 세종문종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를 받았다. 무과 출신으로 첨지중추원사, 경원도호부사, 경원절제사, 의주 목사, 평안좌도절제사, 판강계도호부사 등을 두루 거쳐 세조가 즉위한 뒤 동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는데, 지극히 청렴한 성품 탓에 고위 관직을 지냈으면서도 초가집에서 살았으며 때로는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2. 생애

1456년(세조 2) 성삼문, 박팽년 등이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알현해 연회를 개최하는 날 공식석상에서 유응부와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 등을 별운검[1]으로 선정해 그 자리에서 세조를 시해하고 단종을 다시 복귀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한명회에 의해 세조가 별운검을 취소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유응부는 그래도 강력하게 계획대로 하고자 했지만 성삼문과 박팽년 등이 거사를 뒤로 미루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세조 암살은 결국 시행되지 않았는데, 게다가 이 작전을 함께 주도했던 김질의 배반으로 장인인 정창손에게 고발하면서 작전 계획이 발각되었다.

결국 다른 사육신과 함께 잔인하게 국문을 당하는데, 남효온의 육신전에는 유응부는 '달궈진 철로 전신을 지지는데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을뿐더러 철이 식었으니 다시 달구어 오라!'고 형리에게 호통을 치거나 성삼문 등을 향해 입만 산 서생들과 같이 일을 도모하면 안 된다더니 과연 그 말이 맞더라[2]고 분노하는 등 패기 넘치는 일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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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품 이상의 무관이 검을 차고 국왕을 호위하던 임시직.[2] 연회장에서 그대로 세조를 시해했어야 했는데 성삼문 등이 굳이 말리는 바람에 일이 이리되었다는 분노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