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1-12 07:41:30

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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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고려의 왕실 용어

1. 개요

소군(小君)은 역사적 용어로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제후아내', 다른 하나는 '고려시대에 왕후 이외의 몸에서 태어나 승려가 된 왕자를 이르던 말'이다. 전자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고 후자는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니 지칭하는 대상이 완전히 다르다.

2. 고려의 왕실 용어

우리나라에서 조왕(祖王) 이래로 서얼인 자식을 반드시 승려로 만든 것은 적손과 서손의 구분을 명확히 하여 왕위를 넘보는 것을 처음부터 막자는 의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타스테무르란 자가 충선왕의 얼자(孽子)라고 자칭하고 있는데, 그 역시 일찍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가 커서 환속한 자로서, (원나라의) 서울[京師]로 도망쳐가 본국(고려)에 불만을 품고 있는 불량한 무리들을 꾀어 헛소문으로 선동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원나라의) 조정에 어찌 조그마한 도움이 되겠습니까? 바라건대 이 자(타스테무르)와 그 당여(黨與)를 본국으로 돌려보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고려사》 권39 세가39 공민왕 5년 10월 무오
고려에서는 정식 혼인관계에 따르지 않은 폐첩(嬖妾) 출생의 자녀는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자면 조선시대의 서얼 개념조차 아닌 사생아로 취급되었다.[1] 국왕이나 태자의 자녀일 경우에는 정식 후궁이 아닌 궁인(宮人)이나 특히 천민인 시비(侍婢) 등의 소생에 해당한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왕족으로 대우받지 못했는데, 남자는 승려로 출가시키고 머무는 사찰의 이름을 따와 '○○소군(小君)'으로 칭해졌고, 여자는 정식 왕녀임에도 장애가 있어서 공주로 책봉되지 못하는 경우처럼 궁궐 밖의 집을 주어 그 집의 이름을 따온 '○○택주(宅主)'로 불렸다.[2] 고려 초기에는 의성부원대군이나 흥방궁대군처럼 정식 왕족이 '대군(大君)'으로 칭해진 사례가 있는데, 사생아는 이와 대조하여 소군으로 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군은 왕의 친아들이라도 왕족 신분이 아니었으며, 이에 따라 작위를 받을 수도 없었다.[3] 정식 왕자가 승려가 되면 받는 '국사(國師)' 칭호도 주어지지 않았고, 소군이 오를 수 있는 법계(法階)는 사실상 삼중대사(三重大師)가 승진 상한선이었다.[4]

이 점은 궁녀나 비자(婢子)가 왕이나 세자의 자녀를 낳으면 천민 출신이라도 후궁으로 승격되어 신분을 보장받게 되었고, 그 소생 또한 사생아로 취급되지 않아서 서자녀로 대우받았으며, 종친의 서얼도 일단은 왕족으로 대우했던 조선과 대비되는 고려 시대의 특징이다. 고려에서 궁인이 정식 후궁으로 승격되어 소생 자녀도 정식 왕족이 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려 후기에 관제가 무너져 천민 출신에게도 봉작이 이루어졌다. 하지먼 보통 후궁 승격은 대체로 자녀의 출생 여부와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5]

근본적으로 고려와 조선의 상속 제도가 달랐던 것이 원인인데, 성리학적 종법 질서가 확립된 조선에서는 정실장자 상속이 확고한 원칙이므로, 서얼을 차별하더라도 굳이 배척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고려에서는 딸의 상속도 인정되어 형제자매의 균등 상속이 일반적이었고, 왕위 또한 형제 승계가 가능했기에 정식 혼인관계 외의 자녀는 철저히 배제하기 위해 사생아로 취급한 것이다.[6]

소군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훗날 현종이 된 신혈소군[7]이 있다. 현종은 안종헌정왕후 사이의 간통으로 인해 태어난 사생아였다는 점이나 승려로 출가해 소군이라고 불렸던 점에서 《고려사》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소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종은 어머니가 궁인이나 폐첩이 아니라 태조의 손녀이며, 경종의 계후였던 헌정왕후였다는 점에서 신분의 기반은 사실 매우 탄탄하여 다른 소군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때문에 예외적으로 왕족 신분이 유지되었고, 혈통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며, 광종의 직계 후손이 단절되는 상황까지 겹쳐 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8]

비록 소군들의 공식적인 신분은 왕족이 아니었으나, 당연하게도 권력과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무신정권 초기 집권자가 자주 교체되는 기간 동안에 재위한 명종은 소군들을 궁궐로 불러와서 측근으로 두었고, 태자는 자기 소생의 사생아들을 출가시키면서 명종 측근 소군들의 제자로 삼았다고 한다. 정황상 왕실에서 혈연에 기반한 친위세력을 구성하려 했던 시도로 보이는데, 결국 최충헌 일당은 이를 빌미로 명종과 태자를 폐위했다. 물론 소군은 왕족 신분이 아니었기에, 소군이 일개 말단 관리한테 모욕당했음에도 그 생부인 국왕이 해당 관리를 형벌로 처벌할 수 없어서 잠깐 감옥에 가뒀다 풀어주고 만 사건도 있었다. 그 외 왕후나 정식 후궁으로 승격되지 않은 폐첩 소생들은 거물급 인사나 정치적 사건과 연루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 기록 자체가 남지 못했다. 특히 궁인의 자손은 본인이 과거에 합격하더라도 5품까지고 그렇지 않으면 7품까지인 승진 상한선을 규정한 법령도 있었다.

참고로 사생아를 출가시켜 후계 구도에서 배제하는 것은 당시 고려 지배층의 보편적인 관행이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최우와 천민 출신 창기의 소생인 최항은 최우의 후계구도에서 배제되는 것을 목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친형 만종과 송광사로 출가당해 강제로 승려 생활을 했다. 물론 이렇게 사생아로 취급되어 출가당한 이들은 비록 승려가 되었어도 그들의 출생과정 자체가 세속성을 내포한 것이라, 정상적인 수행 생활을 하지 않고 생부의 배경을 믿고 온갖 행패를 부려 악명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9] 다만, 불교국교였던 고려에서 종교 권위를 왕실에서 장악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기에, 이런 폐단에도 불구하고 소군들을 지속적으로 승려로 출가시킨 것이다. 그래서 이 때문에 종종 사생아도 아닌 정상적인 혈통을 가진 왕자가 출가해서 승려가 되는 경우도 꽤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천태종을 창시한 의천의 사례가 있다.[10]

[1] 흔히 조선 이전에는 서얼 차별이 심하지 않았다는 오해가 퍼져 있으나, 사실 조선 이전에는 정식 혼인관계 내에선 적실(嫡室)과 측실(側室)의 경계가 조선처럼 확고하지 못했을 뿐이라 그 소생 자녀 간의 차별도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일 뿐이며, 혼인관계 이외의 자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생부와의 신분적 연관성 자체가 부정되는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특히 양인과 천민 간의 혼인은 그 자체로 불가능했으며, 그 소생 자녀도 종모법에 따라 천민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2] 택주 칭호는 점차 수여 범위가 넓어져서 국왕의 폐첩이나 먼 외척의 부인에게 주어지는 사례도 생겨났다. 원 간섭기에는 외명부의 봉작처럼 쓰이기도 하다가 정식 봉작으로 제정되어 조선 초기까지 쓰였다.[3] 궁인 소생의 자녀가 온전히 왕족 신분으로 여겨진 사례는 아직 제도적 차별이 없던 시점으로 보이는 건국 초기 혜종궁인 애이주의 소생인 태자 왕제명혜부인뿐이다. 그 외 궁인 소생의 왕자로 유일하게 출가당하지 않은 사례는 왕충뿐이다. 아마도 아버지인 현종이 유년기에 강제로 소군으로 출가당했던 전력이 있었기에 사생아를 출가시키는 관례를 따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이복형인 덕종의 부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왕충은 본인이 왕자이자 부마임에도 정식 작위에 책봉되지는 못했다.[4] 고려 중기에 정립된 교종의 법계는 대선(大選) → 대덕(大德) → 대사(大師) → 중대사(重大師) → 삼중대사(三重大師) → 수좌(首座) → 승통(僧統) 순이고, 승통에 이른 승려만이 국사나 왕사(王師)에 임명될 수 있었다. 정식 왕족이 승려가 되면 수좌를 거치고 승통에 이르는 것이 통례였던 것으로 보이나 일부 왕자는 곧바로 승통을 거쳐 국사가 되기도 했으므로, 소군이 현격한 차별 대우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5] 광종의 궁인으로 사후 추증된 현비 김씨, 현종의 궁인이었으나 후궁으로 승격된 원성왕후귀비 유씨, 본래 궁인이었으나 왕후였던 친언니가 죽은 뒤에 후궁을 거쳐 계후로 승격된 용의왕후, 정식 입궁 절차도 없던 정종(靖宗)의 폐첩이었으나 정종이 승하한 뒤에 유명(遺命)에 따라 후궁으로 승격된 연창궁주, 천민 출신임에도 충혜왕정식 후궁을 들인 것을 질투하자 이를 달래기 위해 정식 후궁으로는 보기 힘든 옹주(翁主) 봉작을 받은 은천옹주, 공민왕우왕을 정식 후계자로 내세우고자 그 신분을 왕족으로 세탁하기 위해 추증한 순정왕후, 우왕의 이른바 '9비3옹주' 등이 해당된다. 단, 고려 후기에 천민 시비나 기생이 옹주가 된 경우에는 사실상 왕이 바뀌면 후궁 신분이 부정되었다.[6] 고려와 조선 왕실제도의 이러한 차이점을 잘 이해하면 공민왕이 죽은 뒤에 명덕태후가 왜 친손자인 모니노의 즉위를 반대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왕실 예법상 모니노는 사생아로 취급되어야 했으나, 공민왕은 모니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왕실 예법을 무너뜨려 모니노의 어머니인 궁인 한씨를 왕후로 추증했고, 한씨의 3대조를 부원군으로 봉작해 신분을 사대부로 세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왕실의 여론은 모니노의 신분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왕실의 이런 반응 덕택에 후일 신진사대부들은 모니노가 신돈반야의 자식이라는 이른바 '폐가입진' 여론 공작을 수월하게 펼칠 수 있었다.[7] 신혈사에 출가한 소군이란 뜻.[8] 애초에 현종근친혼으로 태어난 아이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사생아 취급받은 건 아니다. 본래 고려는 근친혼이 흔해서 이복남매 간의 혼인(...)도 이루어진 사회인데, 안종헌정왕후는 5촌지간이라서 당시 기준으로는 양반인 수준이라 이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다. 진짜 문제는 둘의 사이가 공인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고려신라, 고대 이집트 같이 근친혼이 용인된 나라들은 왕가 이외의 다른 가문에게 왕위 계승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그런 결혼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 나라의 근친혼은 철저하게 정략결혼으로 치러졌는데, 혼약도 없이 서로 사통하여 현종을 낳은 게 문제가 된 것이다. 근친혼을 엄금하는 분위기라서 반드시 족외혼으로 결혼을 하는 현대에도 아무리 혈연관계가 없다고 한들 정식으로 결혼한 것이 아닌 내연관계의 사람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으면 불륜으로 간주되어 지탄을 받는 것과 같다.[9] 비슷하게 가톨릭이 국교였던 중세 유럽 국가들은 사생아나 차남 이하의 아들들을 수도원으로 보내어서 수사신부로 출가시키는 관행이 있었다. 이렇게 강제로 출가하게 된 왕족이나 귀족의 자제들은 공식적으로는 세속에 관심을 끊고 교직에만 매달려 살아야 했으나, 실제로는 가문의 후광을 등에 업고 교황 측과 연줄을 만들어서 수도원장직이나 주교, 추기경 직을 따낸 뒤에 실질적인 영주로 행세해서 유럽의 정세에 개입하는 일이 잦았다. 당연히도 이런 귀족 출신의 성직자들은 세속의 욕망을 잊지 못해서 공공연히 정부를 두거나, 매관매직을 통한 부정축재에 열을 올리는 추태를 일삼는 통에, 중세 시대 내내 교황청 측이 이를 시정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다.[10] 의천 본인은 문종의 4남으로 제12대 순종, 제13대 선종, 제15대 숙종의 동생이며, 모후는 문종의 제2비인 인예왕후였다. 왕의 정실부인의 소생으로서 흠잡을데 없는 혈통을 가졌으나, 단지 형들이 너무 많아서 본인에게는 왕위가 돌아갈 여지가 희박했고, 마침 부왕 문종이 왕족 출신 승려를 통해 고려불교계를 장악하려는 야심도 있던지라, 11살의 어린 나이에 출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