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1 00:51:22

왕사

1. 王史

의 행적을 중심으로 두는 역사 서술법.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의 전통적 사서(史書)는 거의 이런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한국사의 관찬 정사삼국사기, 고려사나 중국 이십사사에서 본기(本紀) 부분이 바로 재위한 왕을 중심 기준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엄밀히 정의하자면 이는 왕이나 황제와 같은 전제군주제 국가 지도자의 연대기개념의 범주에 포함하겠으나, 본 문서에서는 메타 문서적 가치를 살리기 위하여 대통령 등 보다 다양한 형태의 국가 지도자 연대기를 아울러 열거한다.

1.1. 현실

1.1.1. 아시아

1.1.1.1. 한국
1.1.1.2. 중국대만
1.1.1.3. 일본
1.1.1.4. 몽골 제국
1.1.1.5. 티베트
1.1.1.6. 베트남
1.1.1.7. 태국
1.1.1.8. 말레이시아
1.1.1.9. 싱가포르
1.1.1.10. 인도
1.1.1.11. 사우디아라비아

1.1.2. 유럽

1.1.2.1. 로마 제국(동로마 제국 포함)
1.1.2.2. 바티칸
1.1.2.3. 스페인
1.1.2.4. 영국
1.1.2.5. 프랑스
1.1.2.6. 독일어권 국가
1.1.2.7. 러시아

1.1.3. 북아메리카

1.1.3.1. 미국
1.1.3.2. 캐나다

1.1.4. 남아메리카

1.1.4.1. 브라질
1.1.4.2. 아르헨티나

1.1.5. 오세아니아

1.1.5.1. 호주

1.1.6. 국제기구

1.1.6.1. 유엔

1.2. 픽션

2. 고려-조선 초에 몇몇 승려에게 내린 직위 王師

임금스승이 되는 승려.

나라를 대표하는 승관직은 앞서 신라의 국통(國統)이 있었다.[1] 국통을 역임한 혜량, 자장율사 등은 왕의 고문을 맡았고 신라 말까지 존속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왕사 제도를 만들었다. 고려는 정치 이념에 불교의 영향력이 컸고 고려의 백성 대부분이 불교를 신봉했으므로, 정권과 백성의 중간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불교의 고승을 왕사로 임명했다. 조선 초기에도 고려의 국가 체계가 아직 남았고 건국세력 중 무학대사도 끼었으며 임금이나 왕족 중에도 불교 신자가 상당수 있었다. 그래서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1392년에 무학대사를 왕사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무학대사 이후로는 조선이 멸망하는 그날까지 왕사, 또는 국사(國師) 직위를 받은 승려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세종-성종대에 유명한 승려 신미에게 (세종의 유언으로) 문종이 1452년 법호(法號)를 내렸지만, 어디까지나 법호일 뿐 왕사 직위를 내리지는 않았다. 숭유억불을 하는데 따로 왕사/국사를 임명할 리 없었으므로 자연스레 왕사 제도는 사라졌다. 16세기 사명대사광해군과 사대부들에게 존중받았지만, 조선 왕실은 사명당에게도 법호나 시호, 왕사 직위를 내리거나 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입적했을 때 장례식에 쓸 물품을 왕명으로 지원해주었을 뿐이었다.

2.1. 목록

  • 연도는 음력을 기준으로 함.
법호 법명 책봉 시기 생몰년도 출신지
진공대사(眞空大師) 충담(忠湛) 태조 ? ? ~ 940. 7. 계림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광종 968. 900. ~ 975. 3. 19. 한주 고봉현
법경(法鏡) 현종 1020. 10. 12.
원융국사(圓融國師) 결응(決凝) 정종 1041. 964. ~ 1053. 명주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麟) 문종 1056. 11. 4. 984. ~ 1067. 9. 22. 원주
경덕국사(景德國師) 난원(爛圓) 1058. 5. 19. 999. ~ 1066. 10. 8 수주 안산군
덕창(德昌) 예종 1105. 12. 28.
담진(曇眞) 1107. 1. 28.
원경왕사(元景王師) 낙진(樂眞) 1114. 3. 17. 1050. ~ 1119. 3. 3. 광주목 이천군
덕연(德緣) 1117. 1. 23.
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 인종 1122. 6. 12. 1052. ~ 1144. 10. 28. 서원 보안[2]
원각국사(圓覺國師) 덕소(德素) 명종 1171. 9. 12. 1107. ~ 1174.
지겸(至謙) 강종 1213. 6. 15.
진명국사(眞明國師) 혼원(混元) 원종 1260. 8. 28. 1191. ~ 1271. 곡주 수안현
정오(丁午) [3] 남원부 순창군
혼구(混丘) 충숙왕 1313. 11. 2.
지공대사(指空大師) 선현(禪賢) 1314? 1300. ~ 1361. 마갈타국
청공(淸恭) 1317. 충주목 청풍현
조형(祖衡) 1325. 9. 14.
내원(乃圓) 충혜왕 1331. 2. 17.
원증국사(圓證國師) 보우(普愚) 공민왕 1356. 4. 23. 1301. 9. 21. ~ 1382. 12. 24. 홍주
선각왕사(先覺王師) 혜근(惠勤)[4] 1371. 8. 7. 1320. ~ 1376. 5. 15.
찬영(贊英) 우왕 1383. 2.
창왕 1383. 6.
무학대사(無學大師) 자초(自超) 태조 1392. 10. 9. 1327. ~ 1405. 9. 20.

3. 원래 뜻인 王師

임금이 거느리는 군사. 즉, 천자군대

본디 '왕사(王師)'란 한자어는 '천자의 군대'라는 뜻으로 쓰였다. 오늘날 사(師) 자를 '스승 사'라고만 하지만, 원래 사(師) 자는 '2500명이 모인 군대의 단위'를 뜻하였고[5] 여기서 파생하여 '군대'란 뜻이 생겼다. '스승, 교사'라는 의미는 매우 부차적이었다. 그래서 군대가 출동함을 사거(師擧), 군령을 사령(師令)이라고도 하였다.

왕사(王師)란 낱말의 역사는 유구해서 상나라에서 갑골문에도 나온다. 왕려(王旅)와 왕족(王族)이란 낱말도 모두 '(천자)의 군대'란 뜻으로 쓰였다.[6][7] 나중에 진시황에 이르러 황제가 천자의 공식 칭호가 되었으나 그럼에도 중국에서 천자의 군대를 왕사라고 부르면서 왕사는 황제의 군대를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ruby(王師未報收東郡,ruby=왕사미보수동군)] [ruby(城闕秋生畫角哀,ruby=성궐추생화각애)]
왕사가 동군(장안長安)을 수복했다는 소식 아직 없으니, 성궐(남경南京)에 가을 기운 생겨 화각 소리 구슬프다.
8세기 당나라 두보, 야로(野老)
[ruby(今我以王師,ruby=금아이왕사)]
이제 나는 왕사로서
9세기 신라 최치원, 토황소격문
[ruby(王師北定中原日,ruby=왕사북정중원일)]
왕사가 노녘[8]으로 중원을 평정하는 날이 오면
12세기 송나라 육유(陸游), 검남시고(劍南詩藁)

이처럼 모두 당송시대에도 황제의 군대를 왕사라고 불렀다. 조선용비어천가 제74장에서 명나라 황제의 군대를 두고 친왕병(親王兵)이라고 적었다. 그 친왕이 맞는다. 이건 다른 전거를 찾을 수 없어서 왜 이렇게 썼는지조차 모른다. 심지어 에도 시대 말엽에도 천황의 군대를 왕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9] 아니 메이지 유신 뒤에도 쓰였다. 소메자키 노부후사(染崎延房)와 죠오노 사이기쿠(條野採菊)가 메이지 6년(1873)에 『근세기문(近世紀聞)』에서 무진전쟁을 두고 이렇게 썼다.
[ruby(奧羽,ruby=オウ)]の [ruby(藩,ruby=ハン)][ruby(王,ruby=ワウ)][ruby(師,ruby=シ)]に [ruby(抵抗,ruby=テイコウ)]なしつるも
우에쓰 열번동맹이 왕사에 저항 없이 포박되도록

보다시피 추토령(追討令)을 받은 신정부군을 두고 '왕사'라고 적었으니 메이지 유신 뒤에도 왕사가 '천황의 군대'란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 낱말의 생명력은 3천 년은 가뿐히 된다. 아라키 사다오(荒木貞夫)가 퍼뜨린 황군(皇軍)이란 단어는 전거가 없는 신조어라[10] 본래는 기행으로 여겨졌다.[11]

왕사와 금군을 혼동할 수 있지만, 금군은 궁궐이나 임금의 곁을 직접 지키는 군대이고 왕사는 황제의 군대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므로 금군이 왕사의 일부이다. '임금의 스승'이라는 뜻인 왕사야말로 오히려 고려부터 조선 초까지 특이하게 쓰인 단어이다.

4. 삼국시대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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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왕사마귀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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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왕사슴벌레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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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말로 승통(僧統)이라고도 했는데, 승통이란 명칭은 고려시대에도 계속 사용되었다.[2] 「원응국사비명」에서는 원응국사가 서원보안인(西原保安人)이라고 한다. '서원(西原)'은 서원경(충청북도 청주시)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보안(保安)'은 전라북도 부안군의 옛 이름이다.[3] 충렬왕 또는 충선왕.[4] 나옹(懶翁)이라고도 함.[5] 지금도 군단 이하 여단(및 연대) 이상으로 3천~2만 명 정도로 구성된 군대는 사단(師團)이라고 부른다. 이때에도 똑같은 한자를 쓴다.[6] 『갑골문자전』, (양동숙, 이화문화출판사, 2019) 참조[7] 족(族) 자에 대해선 종족 참고[8] 북쪽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남쪽은 마녘이라고 한다.[9] 『세 천황 이야기』(야스다 히로시 지음, 하종문·이애숙 옮김, 2009, 역사비평사) 참고[10] 한문은 무지성으로 휘황찬란하게 쓴다고 멋진 게 아니라 근거를 갖춰서 써야 격식에 맞는다고 여긴다.[11] 굳이 찾자면 일본서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미이쿠사(みいくさ) 또는 스메라미이쿠사(すめらみいくさ)란 일본어를 한자의 뜻을 빌려 적은 것으로 한자의 소리로 읽은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