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2-20 00:51:16

4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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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인구 및 위상

1. 개요

신라의 신분 계급 중 하나로,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에 나오듯이 귀족 중 가장 신분이 낮은 계층이었다.

2. 특징

5두품의 기원이 초기 신라에 편입된 부족장들이나 촌장들이었다면 이들 4두품의 기원은 그 부족장, 촌장들을 모시던 가신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흥덕왕 때 제정된 골품제 세칙에 의하면 5두품과 겉옷과 신는 신발의 종류는 같았으나 복장의 색, 집의 규모 등에 대해서는 엄격한 구별이 있었다. 하지만 5두품과의 구별과는 달리 4두품에게는 평민과는 인상착의에만 차이가 있었고, 다른 부분에서는 큰 구별이 없었다. 하지만 하급 귀족이라 해도 이들도 엄연히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귀족 계층이었기 때문에 하급 관료직, 기술직의 대다수를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신라 고위층과 평민을 연결해주는 중간관리직의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신라 말대로 갈수록 이를 이용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위가 상승한다.

이런 점을 보면 조선시대의 중인 계층과 여러모로 닮아있다. 차이가 있다면 중인 계층은 귀족계층을 이루던 양반과 달리 결코 귀족층이라고 볼 수 없었으나 4두품은 말단이라 그렇지, 귀족은 귀족이었다는 점이다.

삼국사기에는 진촌주(眞村主)를 5두품에, 차촌주(次村主)를 4두품에 상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진촌주는 촌락의 장으로서 여러 개의 촌을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에 4두품은 5두품의 보좌역을 주로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3. 인구 및 위상

신라 관료 조직의 뿌리이자, 국가 통치 시스템을 밑바닥에서 지탱한 실무 계층이다.

직관지(職官志)의 관직 정원 구조를 보면, 4두품은 상위 계층(진골·6두품·5두품)을 압도하는 대규모 인원 구성을 보인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전체 관직(약 4,500개)에서 진골, 6두품, 5두품을 합친 상위 계층(약 1,100명 내외)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다수의 하위 관직은 4두품의 몫이 된다.
군사 조직에서 4두품이 주로 맡는 하급 장교인 소감(372명), 화척(342명) 등의 정원은 상위 지휘관(장군 42명)의 약 20배에 달한다.
이를 토대로 추산한 4두품 관료의 규모는 약 3,400명 내외로, 전체 관료의 약 76%를 차지한다.

국가 운영의 손과 발이 되는 필수적인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층 내부의 서열에서는 5두품과 묶여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개요에서 언급된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에는 최치원이 골품제를 설명하며 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라에 5품이 있는데 성이(聖而), 진골, 득난(得難, 6두품) 등이다. (...) 그러니 4, 5품은 말할 필요도 없다(其四五品不足言).

이는 진골과 6두품(득난)만이 진정한 '귀성(貴姓)'으로 대접받았으며, 4두품은 5두품과 함께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하위 그룹으로 분류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4두품은 귀족의 말석에 겨우 걸쳐 있었으나, 상위 귀족들이 바라보는 시선에는 보이지 않는 명확한 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 조선시대와의 비교
    조선의 참하관(參下官)(종6품~종9품) 또는 경아전(서리)에 해당한다.
    • 사지 (실무자)
      • 6조의 주사(종6품)나 서기(종7품~종9품). 문서 작성과 행정 실무를 담당했다.
    • 외사정 (지방 감찰)
      • 지방관을 보좌하거나 감시하는 향리나 감찰 요원.
    • 당주 (부대장)
      • 소규모 부대를 지휘하는 초관(종9품)이나 부사관급.
  • 현대 대한민국과의 비교
    • 행정부의 경우 주무관(6급~9급). 대다수의 실무 공무원.
    • 군대의 경우 부사관(상사~하사) 또는 위관급 장교(대위~소위). 소대장이나 분대장으로서 병사들을 직접 지휘.
    • 사기업의 경우 대리 또는 사원.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현장의 핵심 인력.

요컨대, 4두품은 귀족의 말석에서 국가 운영을 위한 손과 발의 역할을 수행한 실무 집단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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