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2-25 10:39:27

잡찬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골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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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a2d5b,#4a2d5b> 17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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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관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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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9주
5소경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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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 및 유래3. 역사적 기록4. 관직 진출 및 정원
4.1. 경관직 (중앙)4.2. 외관직 (지방)

1. 개요

잡찬(迊湌)은 신라의 17관등 중 제3등에 해당하는 관등이다. 제2등인 이찬의 아래이며, 제4등인 파진찬의 바로 위 단계이다. 별칭으로 소판(蘇判)이라고도 불린다.

신라의 공복 색상 중 가장 높은 등급인 자색(紫色, 보라색) 관복을 착용했다.

2. 명칭 및 유래

잡찬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문헌상의 이표기와 고대 한국어 음운 변화 규칙을 토대로 한 언어학적 분석이 주로 인용된다.
  • 음운 변화설 (*cɔp-kan → *sɔp-kan)
    잡찬의 초기 형태와 후기 형태 사이에 음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견해다. 중국 측 기록인 《양서》 등에 나타난 제한지(齊旱支)라는 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제(齊)'는 당시 중국 상고음~중고음에서 *dz- 또는 *c- 계열의 파찰음을 나타냈다. 즉, 초기에는 *cɔp-kan(*좁간/젭간)과 같이 파찰음으로 발음되었으나, 후대로 갈수록 발음이 약화되어 마찰음(*s-)인 소판(蘇判, *sɔp-kan)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잡(迊)'과 '소(蘇)'의 대응은 고대 한국어에서 확인되는 구개음화 혹은 자음 약화(Lenition) 현상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 성장(城長)설
    '잡찬(迊湌)'을 '잣자한’(城尺干)의 축약음으로 보는 견해다. 고유어에서 성(城)을 뜻하는 '잣'이 '잡'으로 축약되거나 변음되었다고 보고, 잡찬을 '성장(城長)', 즉 "성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관직으로 해석한다.[1]

이표기로는 잡판(迊判), 잡간(迊干), 제한지(齊旱支) 등이 있다.
  • 잡판·잡간
    '잡(迊)'은 신라 고유의 제자(制字) 원리가 적용된 글자로 보기도 하며, 당시의 음가 *cɔp(또는 *cap)을 표기한 것이다.
  • 소판
    후기에 주로 등장하는 별칭으로, 앞서 언급했듯 초성 *c-가 *s-로 변화한 발음을 반영한 표기(음차)로 보인다. 일본서기에서는 이를 '소우칸(ソウカン)'으로 훈독하는데, 이 역시 *s- 계열의 음가를 반영하고 있다.

종합하면, 잡찬은 본래 *cɔp-kan 계열의 발음으로 불리던 관직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며 언어 변화에 따라 *sɔp-kan(소판)으로 불리게 되었고, 한자로는 그 음을 빌려 '잡찬', '소판' 등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3. 역사적 기록

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 시대에 제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기록상으로는 이 관등에 추봉되는 초기 기사가 없고 진흥왕 시기에 처음 등장한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벌찬, 이찬, 파진찬보다 늦은 시기인 법흥왕의 율령 반포 무렵에 정비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수여 사례로는 고구려 멸망 후 왕족인 안승에게 신라가 내린 관등이 바로 잡찬(소판)이었으며, 소나가 죽은 뒤 문무왕이 공을 기려 이 관등을 추증하기도 했다. 훗날 태봉, 후백제, 초기 고려 왕조도 신라의 17관등 체계를 차용했는데, 드라마 태조 왕건으로 유명해진 궁예의 책사 종간이 태봉국의 소판(잡찬)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분적으로 잡찬은 신라 최상위 귀족인 진골만이 오를 수 있는 관등이었다. 6두품 이하는 오를 수 없는 진골의 전유물이었으며,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화백회의의 핵심 구성원이었다. 3관등이라는 높은 서열 덕분에 대부분의 중앙 관청 장관직과 지방 장관직을 독점했다.

4. 관직 진출 및 정원

잡찬은 중앙 관청의 장관(령) 및 지방의 도독 등 군사와 행정의 최고위직을 모두 역임할 수 있었다.

4.1. 경관직 (중앙)

삼국사기》 〈직관지(職官志)〉에 따르면, 잡찬은 국정 총괄, 군사, 감찰, 토목 등 핵심 부서의 장을 맡았다. 다만 승진 상한선이 대아찬인 창부, 예부, 선부 등의 장관은 맡지 않는 등 위상이 매우 높았다. 구체적인 부서별 직책과 정원은 아래와 같다.
||<tablewidth=100%><tablebgcolor=#fff><tablebordercolor=#ccc><rowbgcolor=#373a3c> 소속 관청 || 직책 || 관등 || 정원 ||
집사부(執事部) 시중(侍中) 대아찬 ~ 이벌찬[2] 1명
병부(兵部) 령(令) 대아찬 ~ 태대각간 2명 이상
사정부(司正部) 령(令) 대아찬 ~ 태대각간 1명
예작부(例作部) 령(令) 급찬 ~ 이찬 2명
좌/우이방부(理方部) 령(令) 아찬 ~ 이찬 2명

4.2. 외관직 (지방)

지방 행정에 있어서도 잡찬은 최고 책임자인 9주의 도독을 역임할 수 있었다.
||<tablewidth=100%><tablebgcolor=#fff><tablebordercolor=#ccc><rowbgcolor=#373a3c> 지역 및 기구 || 직책 || 관등 || 비고 ||
9주(九州) 도독(都督) 이찬 ~ 급찬[3] 지방 장관 (군단장 겸직)


[1] 김상윤, 《三國의 固有語 官職名語彙 小考》, 어문연구 72, 2012.[2] 잡찬은 이 범위에 포함됨[3] 잡찬은 이 범위에 포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