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2 10:08:47

정치 혐오

1. 개요2. 주요 사례
2.1. 국회의원 정원을 줄이자?2.2. 국회의원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자?2.3. 20대의 정치 혐오
2.3.1. 특징2.3.2. 1990년생 이후부터의 특징
2.3.2.1. 1990년대생 남녀간 정치혐오 발생 원인의 차이
2.4. 제20대 대통령 선거2.5.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2.6. 그 이후
3. 관련 문서

1. 개요

… 더 나아가, 카우츠키가 예리하게 관찰한 대로, 정치 및 의회 혐오증은 프티 부르주아적 허약성일 뿐이다. 자신들의 바로 그 대표들(representatives)을 통제하려고 노력하길 원치 않는, 그리고 자신들이 그 대의원들(deputies)과 함께하거나 혹은 그들 대의원들이 자신들과 확실히 함께하도록 노력하길 원치 않는 게으른 이들의 허약성 말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일 그리도 델 포폴로>, 1918년 2월 9일
정치, 특히 대의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제도권 정치와 이에 관련된 것들에 대해 무관심을 갖는 것을 넘어 반감을 가지고 혐오하는 현상. 대표적으로는
1. 정치 솔직히 그런 복잡한 거 알고 싶지도 않고, 싸워봐야 나만 손해라 관심 갖기 싫다.

2. 국회의원과 정치인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정.

3. 둘 다 잘못했다. 여당야당은 다 한 패거리다, 나는 피해자다. 그 놈이 그 놈이다'는 식의 양비론.

4. 솔직히 정치 자체에는 관심없는데, 내가 하고 싶어하는 걸 못하게 하는 정치인들이 싫다.

5. 정치 팬덤 현상을 부정하고 특정 정당 및 정치인의 지지 세력들을 '맹목적인 숭배자'로 몰아붙이며, 무조건적인 정파성 배격과 객관성만이 옳고 가치있음을 주장하는 행위.

6. 정치적 입장이나 견해 문제로 과도하게 선악을 판단하는 등, 정치병 행각에 반감을 느끼거나, 정치병자들에게서 공격을 받을까봐 아예 정치와 담을 쌓는 경우.
등을 들 수 있다.

세계 막론하고 여기저기에서 상당히 자주 화두로 떠오르는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 역시 문화컨텐츠 계열 전반에 정치 혐오가 팽배하다. 아무래도 각국을 막론하고 문화나 IT, 컨텐츠 사업에서는 반 보수 성향, 리버럴 성향이 두드러지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1]

다만 정치 혐오가 그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정치에 관심이 있는데도 정말로 정치가 개판이라(...)[2] 정치 혐오에 빠져 무당층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위의 것과는 구분해야 한다. 주로 1980년대 후반~2000년대생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2. 주요 사례

2.1. 국회의원 정원을 줄이자?

국가의 인구에 따른 이상적인 국회의원의 수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국회의원을 필요 이상으로 줄이면 정부 감시가 제대로 안 되고 국회의원 개개인에게 더 많은 권력이 쥐어지는 유사 과두정 꼴이 되어 뇌물 먹이기도 훨씬 쉬워진다. 더 나아가 아예 국회의원을 없애자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이건 진짜로 잘못된 생각이다. 국회의원은 3부 중 입법부의 구성원으로 엄연히 행정부를 견제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데, 아예 없애버리면 대통령이 민의를 무시하고 독재를 해도 막을 존재가 아예 없어진다.

나아가 '입법부의 위기'라고 불리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사회 특성상 고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늘어가는데,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빨리 문제만 사라지면 그만이지 법령과 제도를 정비하는 절차적 진행에 전혀 관심이 없고 관료의 전문성에 비해 여러 분야를 두루 다뤄야 하는 의원들은 따라가기 어렵다. 의원의 수가 많고 전문 분야가 다양할수록 행정부를 더 잘 견제하고 좋은 법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지방자치가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지방의회의 권한이 약하고, 사실상 입법부의 전부인 국회의원의 수가 인구대비 적기 때문에 위의 문제들[3]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있고,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한국의 인구대비 및 미약한 지방자치제도의 문제 때문에라도 국회의원 300명 제한은 너무 적은 편이며,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많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 정서와 현재의 큰 권력을 유지하려는[4]많은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씨알도 안먹히는 상황.

OECD 국가 중 인구 대비 국회의원 수가 한국보다 적은 나라는 인구가 아예 억대로 넘어가는 미국일본 뿐이다. 인구 약 5200만명의 한국 국회의원이 300명인데 반해[5], 인구 6천만 정도인 프랑스는 925명(하원 577명+상원 348명), 마찬가지로 6천만 정도인 영국은 하원만 650명이다. 모범적인 의회로 손꼽히는 스웨덴의 경우엔 인구가 천만을 조금 넘는데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수는 349명으로 한국보다 많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사회적 롤모델에 해당하는 일본과 미국은 한국보다 더 심할 정도로 인구수 대비 국회의원 수가 적은 국가라(일본 26만 대 1, 미국 70만 대 1) 국회의원 수가 늘어날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다. 하지만 이 두 나라에 대해 애초에 착각하는 게, 미국과 일본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지방자치를 이루어 중앙의회의 일을 상당부분 분산하고 있다. 미국은 독립적인 13개 식민지에서 시작해 독립전쟁 이후 개별 국가에 가까운 이 주들을 모아 연방정부를 만든 엄연히 연방국가라 주법과 연방법이 따로 있어 각 주마다 주법에서 여기저기 차이가 날 정도로 주의회의 권한이 막강하고, 연방의회에 요구하지 않아도 주의회를 통해 관철시킬수 있는 정치사안이 많아 실제 연방의회의원의 힘이 한국 국회의원만큼 막강하지는 않다. 국회의원 1인에 지원하는 보좌관도 제한이 있는 7+2명(인턴 포함)으로 제한이 없는 독일, 미국의 18+4명등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6] 추가로 일본은 내각책임제라는 제도 특성상 계파 리더가 아닌이상 임기를 보장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국회의원 1명의 권한이 크지도 않다.

국회의원 감축론자들은 미국의 사례를 근거로 드는 경우가 많은데, 연방국가인 미국의 사례를 오랫동안 중앙집권국가였던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미국의 주는 한국의 지자체와 달리 자체적인 정부, 의회, 법원이 있으며 제한적이지만 주방위군이라는 자체 군사력도 있다. 미국의 법들 상당수가 주의회에서 만들어졌고[7] 행정권 역시 주정부에서 상당 부분 담당한다. 연방법원과는 분리된 3심제의 주법원이 있으며, 미국에서 대부분의 재판들은 주 법원에서 진행된다.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주지사의 중요도는 대통령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권한도 약하고 사람들이 외면하는 한국의 지방의회와는 달리, 미국의 주의회의 권한은 매우 막강하며[8] 사람들도 주의회를 연방 상하원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한다.[9] 따라서 미국에서 한국의 국회와 가장 가까운 곳은 연방의회[10]가 아닌 주의회며, 주의회와 비교하면 오히려 한국보다 인구대비 의원수가 더 늘어난다.

사실 한국의 국회의원 제도가 갖는 문제점들 중 국회의원이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꼽자면 국회 관련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원래대로면 이것은 소속 정당이 해야할 일인데 한국은 보좌관 지원을 정당이 아니라 국가에서 한다. 간단히 말해 이들이 하는 일에 비해 국회의원 1인당 인력이 적다 보니 항상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일 못한다고 욕이나 먹고, 실제로 국민의 생활에 관련되어있는 법안의결에는 철저하게 당론투표를 통한 거수기로 전락해버려 국민들이 국회의원을 세금 도둑 내지는 욕먹으면서 지역에 예산 따오기만 하는 사람 정도로밖에 안 보는 것이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지방의회가 역할분담을 해줘야 하나 권한이 적다보니 분담은 커녕 더한 짐짝으로 취급된다.

대부분 이런 생각을 갖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국회의원이 하라는 일은 안하고 세금 받아먹고 잠수타거나 어디가서 떵떵거리거나 해외여행이나 다니거나 심지어 뇌물이나 받아먹는 잉여집단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언론에서도 이런 점을 자주 부각시키기도 하고.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언론의 프레이밍이고 단편적이며 자극적, 때로는 노골적으로 의도한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행위이다. 실제로 조그마한 시군구의원들조차도 대중들의 편견과 달리 절대 놀고먹지 않는다. 특히 그 정점인 국회의원 정도만 돼도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바쁘신 몸이다. 하물며, 그 의원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보좌관실은 오죽할까. 그럼에도 이 편견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잊을만 하면 다시 각인되어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이유는 시작부터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어중간한 혼합형 체재가 되면서 대통령, 정당, 의원[11] 사이의 관계설정이 완전히 꼬여 버렸기 때문이다.
한편 국회의원의 수가 적어질수록 한 국회의원이 더 많은 지역을 담당해야 하고, 따라서 게리맨더링의 표적이 되기 쉬워진다. 아카라이브에 '지역구 100명으로만 국회의원 뽑기'를 실현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글이 올라와있다. 보기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경우 지역 간 불균형,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국회의원도 이를 악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원 수가 축소되기 전에는 A시와 B시가 별개의 선거구였는데 정원을 줄이면서 A시와 B시가 같은 선거구로 묶였다고 치자. 그런데 A시의 인구가 B시의 인구보다 더 많을 경우, 국회의원은 "어차피 A시쪽 이익만 대변하는 정책만 펼쳐도 당선이 된다"는 식으로 B시를 홀대하는 정책을 펼칠 수가 있다. 아무리 상대 당에서 'B시를 내버려두는 저 국회의원 심판하자' 라고 외치더라도 A시 유권자의 지지만 얻으면 당선될 테니까.[12]

실제로는 선술했듯이 오히려 국회의원의 수가 많아야 지역대표성이 잘 충족된다. 아니라면 수도권이나 그나마 인구가 많은 부산, 대구는 몰라도 인구가 적은 강원, 경북, 전북, 전남은 공룡 선거구가 튀어나와서 위에서 언급한 지역 간 불균형이나 격차가 더 벌어지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정치 혐오자들은 국회의원은 전부 도둑놈이고 지방의회는 세금 도둑이라 아예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도 서슴지않는다. 법 없이도 사람이 살았으니 문제가 없었는데 왜 필요하냐는 말까지 할 정도다.

2.2. 국회의원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자?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국회의원이 전부 어디가서 떵떵거리는 갑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13]

흔히들 국회의원이 되면 돈을 엄청나게 번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말은 돈이 원래 많은 금수저 집안에서 정치하는 몇몇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은 번 만큼 쓰고 또 쓰는지라 국회의원 활동만으로는 그다지 많은 수익을 못 낸다. 그나마도 기반이 약한 군소정당의 후보들이나 무소속, 야권 일부, 소수 비례대표(청년, 장애인 등등)들은 매번 돈에 쪼들린다. 대표적으로 19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김광진 의원은 억대 연봉을 4년 동안 누렸으니 좋겠다는 농담에 빚만 수천만원이 생겼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문제는 이게 농담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김광진 의원은 한 번 경선할 때마다 수천만원 비용이 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정치자금법 제한으로 인해 무소속이나 야권 현역 의원들 일부조차 쪼들리면서 의정활동을 하는데[14], 선거운동 하는 데에 돈이 많이 들고 보좌관 유지도 해야 하고 국회의원 본인도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정치 입문의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가속된다. 괜히 금수저들만 정치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니다. 개인은 물론 정당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19세기 영국에서 차티스트 운동에서 노동자들이 요구한 내용 중 하나가 국회의원 세비지급이었다.[15] 그렇게 굶기면 결국 청탁에 더 잘 흔들리고 부패의 온상으로 비화되어 정치혐오 정서를 더 부추기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공무원에게 녹을 쥐꼬리만큼 주던 전근대사회에서는 관리들이 백성을 대놓고 수탈해서 생활을 유지했다.[16] 오죽하면 혁명에서 나오는 주요 요구 사항이 '공무원 임금 지급'이겠는가. 현시대조차 이것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이렇게 되면 국회의원의 부정부패는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으며, 무소속과 군소정당은 사멸 위기에 놓인다.[17]

기본적으로 봉사직 전환은 부정부패를 야기할 우려가 매우 크다. 당장 당신이 어떠한 형태든 간에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당신이 일하는 직종을 봉사직처럼 취급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신이 금수저가 아닌 이상 수입이 끊겨 먹고 살려면 다른 일을 알아보아야 하고 여의치 않으면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돈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설령 금수저라고 해도 묻어가는 심정으로 부정부패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또는 이미 재력이 충분해 먹고살 걱정이 없는 재벌이나 대기업의 인물만이 선거에 나가게 될 것이다.

이런 '봉사직' 개념 혹은 무보수나 낮은 대가를 지불해 유지하려는 시도는 역사상 늘 문제를 야기해 왔다. 예시가 멀리는 왕망의 신나라가 있었고, 가까이는 조선과 청나라 등이었다. 왕망은 모든 벼슬자리를 정말로 봉사직마냥 취급해 보수를 지급하지 않았는데 당연히 먹고 살 길이 없던 벼슬아치들은 부정부패에 빠졌다. 조선이나 청나라는 그정도는 아니었지만 보수가 낮아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강희제는 1량을 거둘때 1할만 더 거두는 관리는 청렴한 관리라고 했고 그 아들 옹정제는 부정부패에는 단호했으면서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기에 아예 이런 부정부패를 양성화해 일정 수치 내 범위에서 조금 더 거두는 걸 허용하고, 그것을 관리들의 수입의 일부로서 제도화시켰다. 이러니 국회의원을 진짜 봉사직으로 만들면 그날로 국회는 부정부패의 각축장이 될 것이다.

2.3. 20대의 정치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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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특징

세부적으로 보자면 1980년대 후반년생 이전과 그 이후가 정치 혐오 비율이 확연히 차이난다.# 실제로 1980년대 초반년생~1970년대생은 무당층 비율이 낮았던 반면 1980년대 중반년생부터는 서서히 무당층의 비율이 높아지다가 1980년대 후반년생과 1990년대생인 경우는 무당층 비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1970년대, 1980년대 초반생들이 20대였던 2000년대 초반과 1980년대 중반생들이 20대였던 2000년대 중~후반과 1980년대 후반생들과 1990년대생들이 20대인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중반과 정치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엔 20대의 인구가 30대와 버금갈 정도로 많았으며 정치적 영향력도 꽤 강했다.[18] 게다가 2000년대 초반에 당시 30대(현 50대)[19][20]와 같이 노무현 대통령의 북구·강서구 을 낙선 이후에 만들어진 노사모의 주축이 돼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적이 있기 때문에#[21] 정치적 효능감도 이후 세대에 비해 높았으며, 반대 쪽이였던 신한국당-한나라당은 'IMF 외환위기의 주범이자 친일파&독재정권의 후예'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총풍 사건[22], 김대중 노벨상 로비설 주장[23], 2002년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전달사건 등으로 젊은층들 사이에서는 확실히 비토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어디를 지지할지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다.[24]

그러나 1980년대 중반년생들이 20대로 진입하던 2000년대 중반부터 참여정부의 낮은 지지율, 카드대란, 정동영 노인 비하 발언 논란 등으로 인해서 조금씩 무당층이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고 정치적 영향력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1980년대생 후반년생들과 1990년대생들이 20대였던 2010년대 초중반에는 20대 인구가 윗세대보다 적어서 정치적 영향력도 많이 줄어든 데다, 민주당계 정당은 통합진보당NL 세력과 연대해서 종북 딱지가 붙었고, 반대로 보수정당에선 이명박근혜 정부 때 정치경제적으로 실책을 거듭하고 진보정당은 종북 딱지가 붙었거나 세가 없는 등으로 인해 어디를 지지할지 확실하게 정할 수 없어서 정치혐오 성향이 커졌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중반의 갤럽 조사에서 20대 한정으로 무려 46%, 즉 거의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층이 무당층이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즉, 1980년대 중반년생들이 조금씩 정치 혐오 기류가 늘어나고 그 이후의 1980년대생 후반 ~ 1990년대생이 정 치혐오를 느꼈던 이유는 윗세대인 1970년대생~1980년대 초반년생과 달리 당시 지지할 정당을 확실히 정할 수 없었을 정도로 양당과 군소 정당 모두가 실책을 저질렀고 이전 세대보다 인구 비중이 낮아지자 정치권에서 이들의 의견에 대한 중요도를 낮게 보면서 고립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양상은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그대로이다.

2.3.2. 1990년생 이후부터의 특징

다만 1990년대생 이후 세대에선 이명박근혜 정부 때 20대였던 1980년대 후반생들[25]과 마찬가지로 무당층의 비율이 제일 높은 건 1980년대 후반년생들과 같지만[26] 이들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성별별로 지지 정당이나 무당층 비율의 변화가 극과 극으로 드러나는 경향이 많았다. 이들의 정치 혐오의 원인과 그 경향에 대해선 아래에 후술한다.
2.3.2.1. 1990년대생 남녀간 정치혐오 발생 원인의 차이
2010년대 후반 기준으로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에 반감을 가진[27] 20대(1990년대생) 남성들이 인식하기에는 이전세대와 달리 자신들은 가부장제의 특혜는 거의 없는 반면, 전통적 남성의 의무는 비교적 그대로 부담하는 세대임에도 가부장제의 특혜를 예전처럼 받는 세대로 생각되어 희생을 강요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기성세대의 젠더관이 20대 남성보다 좋은 것도 아니라# 기성세대가 가부장제에서 얻은 특혜에 대한 책임을 20대 남성에게 떠넘긴다고 여기는 동시에 기성세대에 대해서 '자신에게 부채를 떠 넘기면서 성차별을 하는 세대'로 여기고 있으며, 20대 여성에 대해서는 '성차별의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그 피해자 행세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 드는 세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동일한 나잇대의 남성층보다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에 비교적 호의적인[28] 20대(1990년대생) 여성측에선 위에 올린 뉴스 기사에서 보듯이 20대 남성도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성평등에 대한 지지도가 낮고, 여전히 가정이나 취업에 대해서도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가부장제의 특혜를 받는다고 보기 때문에, '20대 남성은 자신들도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성차별의 수혜자인 줄 모르고 피해자로 행세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세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남녀 모두 기성세대의 성차별적인 가치관을 비판하는 건 같지만, 서로가 상대편을 피해자로 행세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는 이기주의적인 집단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의 젠더 분쟁이 표면화된 것이다.

이런 시각의 차이로 인해 청년층 성별간의 갈등이 심해지는 가운데, 대부분의 정계 인사, 전문가 등 기성세대가 주측이 된 지식인층이 자신들이 경험했던 사회적 경험에 근거해 젊은 여성층도 자신들 세대의 여성층처럼 사회적 약자이고, 젊은 남성들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강자로 여기기 때문에 이를 젊은 여성들 편을 든다고 생각한 젊은 남성들은 고립감과 분노감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 바른미래당 소속이었던 국민의힘 이준석은 "20대들은 취업시장에서 지표상 남녀 간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며 "정치권이 여전히 ‘여성=절대 약자’ 프레임에 빠져 있다 보니 여기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 남성층의 정치 혐오 무당층의 비율이 여성에 비해서도 유난히 높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만 2021년 재보궐선거 이후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등 눈치를 보기 시작한 데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이 당선되면서[29] 20대 여성보다 낮아졌다. 4월, 5월, 6월 고립감과 분노감이 정치혐오 현상을 불러왔던 것이 이걸로 입증이 된 것이다.

한편 20대 여성은 박원순 성추행 사건 이전만 해도 무당층 비율이 윗세대보다 높았긴 하지만 동년배 남성보다는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박원순이 성추행 고소로 자살한 이후로 20대 여성들 역시 여당인 민주당 측에도 실망해 정치 혐오 무당층이 될 기미가 생기더니(출처) 2021년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에도 새천년 NHK 사건 당사자이자 무수한 발언 논란을 낳았던 송영길이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마침내 20대 남성의 무당층 비율과 맞먹거나 뛰어넘었다.4월, 5월, 6월 참고로 20대 여성 내부에서 무당층 비율이 높아진 건 국민의힘은 20대 남성의 의견만 들어주는 거 같고, 민주당은 재보궐 이후 쇄신 부재로 인해 실망해서이다. 즉, 재보궐선거 이전의 20대 남성들처럼 고립감을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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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지선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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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 투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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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재보궐선거 투표율

실제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1대 총선2021년 재보궐선거 결과를 비교해 보면 박원순 성추행 사건이 청년 여성의 정치혐오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는데 18~29세 한정으론 남성보다 여성이 더 투표율이 떨어졌다. 이를 보면 21대 총선 때만 해도 투표율이 20대 여성보다 10%p 이상 뒤쳐졌던 1990년대생 남성은 재보궐선거 때 결집해서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적게 떨어지고, 심지어 20대 초반에선 우세가 나타났다. 반면 1990년대 여성인 경우는 아직은 평균적으론 남성보다 높아도, 20대 초반 여성은 남성에게 추월당하는 등 정치 혐오 현상이 더 강해졌다.

마침내 9월 조사#에선 1990년대생 남성은 국민의힘 지지율이 무당층 비율을 뛰어넘었고 1990년대생 여성은 정치 혐오 무당층의 비율이 48%로 전 세대/성별에서 1위다. 박원순 성추행 사건 이전만 해도 청년 여성은 민주당에 쏠렸고, 청년 남성은 무당층이 많았는데, 단 1년도 안되어서 이렇게 된 것이다. 남성인 경우는 홍준표의 등장과 유승민의 군 가산점 제도 도입 및 한국형 G.I. Bill 정책이 영향을 줬고, 여성인 경우는 더불어민주당의 유력 후보인 이재명이 여성 관련 논란이 매우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2.4. 제20대 대통령 선거

(중앙)이런 비호감 대선 없었다…"뽑을 사람 없네" 통계로 입증
(조선비즈)차악(次惡) 대결로 번지는 대선...역대급 ‘비호감 선거’ 치러지나
(뉴스1)"이재명도, 윤석열도 싫다"…유권자 등 돌리는 '비호감 대선'
(조선일보)뽑을 사람 없어 절망”…대한민국은 지금 ‘대선 블루’
(세계일보)비호감 대선 속 커지는 ‘제3지대’…안철수 몸값 어디까지 치솟나?
(머니투데이)"역대급 비호감 선거"…한국 대통령 선거 분석한 외신의 한줄평

20대 대선에서도 유례없는 비호감 대권주자들이 각축을 이루는 비호감 대선으로 치러지면서 정치 혐오가 심화될 조짐을 보였로 실제로 그렇게 됐다.[30]

특히 양 후보의 주요 지지층(윤석열 : 60대, 70대, 이재명 : 30대 중후반 남성, 40대)이나 캐스팅보트(50대)가 아닌 10, 20, 30대 초반에선 무당층과 타당층의 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꽤 있었고, 30대 중후반 여성들도 무당층의 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었으며, 실제로 안철수가 단일화 하기 전까지만 해도 10~30대에서 성별을 불문하고 약 10~15% 정도의 지지세를 보이면서 정치 혐오 경향이 어느정도 드러났다. 특히 20대 여성은 심상정에도 약 10~15% 정도 지지세를 보이면서 사실상 천하삼분... 아니 천하사분지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윤석열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1020 남성의 무당층 경향은 줄어들었고, 유승민-홍준표 지지자의 이탈이 일부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20대 대선에서 넉넉히 앞섬으로써 국민의힘의 지지층이 되었다. 특히 총선에 비해 10% 이상 득표율이 오르면서 60대 이상의 어마어마한 투표율과 부동산 이슈로 인한 30대 남녀에서의 선전과 같이 당선의 1등 공신이 되었다.

한편 이재명은 논란이 해결이 안 되었기 때문에 1020 여성은 무당층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었다만 20대 대선 때는 이재명 후보가 넉넉히 앞섰고 민주당의 지지층이 되었다.

2.5.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이 50.9%로 지방선거 중에서는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다음, 전체 선거 중에서는 제 18대 국회의원선거, 제 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다음으로 최저였다. 역대 선거 최저인 제 18대 총선 때 전국에 장마철에나 올법한 장대비가 왔고, 지방선거 최저인 제3회 지선이 2002년 한일 월드컵 기간 중에 치러졌다는걸 감안하면 실질적으로는 제일 낮은 거나 마찬가지다. 경북, 경남, 광주, 전북, 강원, 제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렇게 된 것은 양당의 내홍, 공천 잡읍, 확고한 양당구도로 회귀한 정치 구도 등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며, 특히 20~40대는 50% 미만, 심지어 광주는 40% 미만의 투표율이 나왔다. 가장 공천 잡음이 심했던 호남권에서 무소속 돌풍이 벌어진 건 덤이다.

2.6. 그 이후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정치 혐오' 20대 절반은 '무당층'
‘민심 외면’ 경쟁 펼치는 여야
정치 혐오의 바다에서 살아남기
여야 3당 모두 '당내 갈등'에 정치 혐오 우려
윤석열 vs이재명 '혐오정치' 2라운드…양당체제의 산물
2030세대 추석민심 “정치권, 국민 눈치보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제3정당들이 몰락하고 양당구도가 고착화된 동시에 친윤+고령층VS친명+중년층 구도가 여전히 이어지게 됨에 따라 30대 이하에서 정치 혐오 무당층이 급증하고 있다.

3. 관련 문서



[1] 네모바지 스폰지밥에서는 정치인들을 '국민들 앞에서 연기하다가 국민 피 빨아먹고 등쳐먹는 족속' 이라는 묘사가 많고, 짱구는 못말려에서는 툭하면 '국회 부숴버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서는 히나타 후유키대놓고 국회의사당을 없애자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2] 고위공직자 부정부패부정선거, 정치적 불안정, 국회폭력 등등[3] 국회의원 개개인의 너무 큰 권력과 한정된 전문 분야 등[4] 겉으론 100% 국민의 여론 탓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적은 수에서 나오는 특권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하는 탓이 더 크다. 겉으론 나빠 보여도 사실은 좋은 정책(예: 무죄추정의 원칙, 교정주의)이라면 국민을 설득해 납득시키고 통과시킨 후 실행하는 것도 국회의원의 일인데 지금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전혀 그러지 않고 있기 때문.[5] 1988년 13대 국회 당시의 의원 정수가 299명이었고 1988년 당시의 인구는 약 4200만명이었다.[6] 다만 독일, 미국을 제외하면 현행 대한민국 국회 보좌관이 가장 많은 편이다.[7] 이 때문에 주마다 법이 달라 가끔씩 주별로 황당한 법이 있기도 한다. 가령 남편은 한달에 한번 아내를 때릴 수 있다든가(아칸소주), 모든 범죄자는 범행대상에게 24시간 내로 통보해야 한다든가(텍사스주) 등[8] 어차피 미국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등장하기 전부터 주가 있었다. 지방이 국가보다 먼저 생겼던 셈. 미국의 국호 United 'States'를 보아도 알 수 있다.[9] 일례로 연방하원의원 선거 때 주의회에서 특정 정당에 유리하게 게리맨더링을 그어도 연방에서 터치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10] 굳이 따지면 미국 연방의회는 권한이 강한 유럽의회 정도의 기관이다.[11] 작게는 단체장, 지역의회, 의원[12] 다만 이런 상황이 일어나려면 A시가 B시보다 거의 5배 이상이 되어야 가능하다. 만약 A시가 B시보다 애매하게 인구가 많은 경우라면, B시에서 상대당에 몰표가 쏟아지면 겨우겨우 이기던가, 역전패할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 실제로 보령시·서천군인 경우는 이유가 다르지만, 보령시가 서천군보다 2배 가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2번의 선거동안 6%, 1% 격차로 김태흠 후보가 신승했다.[13] 지금은 이런 비판이 많지만, 철권통치 시절에서 활약한 야당(김대중, 김영삼이 지휘하던 동교동계, 상도동계 세력) 국회의원은 자기 목숨까지 걸고서 정치활동을 했던 인물이다.[14] 대한민국의 정치자금법은 국회의원들의 돈 쓰는 문제에 있어서 정말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다.[15] 차티스트 운동 당시 요구사항을 적은 인민헌장에 6가지 원칙중 하나가 바로 국회의원에게 500파운드의 연봉을 지급할 것이었다. 나머지는 21세 이상의 모든 남성의 보통선거권인정, 의원의 임기 및 재산의 자격제한 폐지, 무기명 비밀투표와 선거구 조정.[16] 조선시대의 아전들이 대표적 사례이다.[17] 단적인 예로 선거공보물 하나만 봐도 전국 선거에서 A4 16페이지 풀컬러로 찍으면 거진 100억원이 든다고 한다. 가끔 군소후보 공보물 중에 보이는 재생지 한장짜리조차 억대 비용을 쓴다.[18] 물론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서 그 이전 20대만큼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당시에도 여전히 20대의 정치적 영향력은 꽤 강했다.[19] 다만 당시 30대였던 1960년대생들은 노무현 열풍이 불기 전에 잠시 보수정당을 지지했다가 노무현 열풍이 불면서 노무현에게 표를 던졌지만 종부세 등으로 인해서 참여정부에 실망감을 느끼면서 보수정당 지지로 다시 갈아탔다. 하지만 이후 노무현이 사망하고 이명박 정부가 실정과 함께 온갖 논란들로 점철되면서 민주당으로 다시 갈아탔고, 2020년대 기준으로는 40대와 같이 민주당이 우위다. 다만 후반에선 부동산과 교육 이슈 때문에 보수정당 표도 많이 나오고 있다.[20] 1960년대생 여성들은 어느 정도 보수정당 지지 성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21] 실제로 이준석 현상 이전에 청년층이 주축이 된 정치 활동으로 노사모가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22] 재판 결과 사건 자체는 이회창 지지자가 이회창 캠프와의 사전 모의 없이 혼자서 우발적으로 벌인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어쨌든 한나라당 지지자가 이런 행각을 벌인 것만으로도 한나라당의 이미지 악화에 일조할 수밖에 없었다.[23] 사족으로 한나라당의 이미지 악화에 일조한, 한나라당 측에서 노벨연구소 측에 김대중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을 했다는 주장은 루머일 가능성이 더 높긴 하지,(노벨상/대한민국의 분야별 현황 참조) 이신범을 위시한 한나라당측 인사들이 김대중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 전 김대중 노벨상 반대 시위를 하기 위해 노르웨이로 가려고 시도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일이 전술한 노벨상 반대 로비로 와전된 것이며, 이유도 가관인 게 자신이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한 거에 대한 화풀이격이었다고.(...)[24] TBC 폐국으로 어릴 적에 좋아하던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갑자기 종영되거나 어릴 적의 추억의 흔적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것에 대한 트라우마도 성인이 된 이들의 보수 세력에 대한 반감에 영향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25] 다만 1990년대생도 이 때 당시 20대로 진입하고 있었다.[26] 2018년엔 문재 인정부 초기(2018년 11월) 35%, 2019년에도 역시 (2019년 10월)을 보면 각각 37%로 전세대 통틀어서 남녀 불문하고 무당층이 가장 많았다.[27] 실제로 현재도 1990년대생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전세대/성별에서 가장 낮다. 반면에 후술하겠지만 재보궐선거 이후 보수정당 지지세는 60대 남녀 다음으로 높다.[28] 비교적이란 것이지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압도적이란 건 아니다. 다만 2021년 기준으로는 4050대 남성 다음으로 진보정당 지지율이 높다는 조사가 나오는 등 어느정도 세가 있다는 것은 증명되었다.[29] 실제로 1980년대~1990년대 남성이 주축이 된 이준석 현상이 언론에 보도로 이들의 이준석에 대한 지지는 굳건했다. #[30] 윤석열여러 논란들이 퍼져나갔고, 이재명대장동 게이트라는 큰 사건이 있었으며, 전과 기록도 있다.[31] 정치를 혐오하는 것을 넘어 정부체제 자체를 혐오하게 되는 경우가 이 부류에 속한다.[32] 정부체제 혐오부터 시작해서 아예 사회적 위계 자체를 혐오하는 경우는 이쪽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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