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21:24:55

일본 극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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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분류
2.1. 신화 시대2.2. 고대
2.2.1. 야요이 시대와 삼한 (진구황후 문제)
2.3. 중세2.4. 근대2.5. 제2차 세계 대전
2.5.1. 발발 원인2.5.2. 결과2.5.3. 일본도 빈약론
2.6. 현대2.7.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시각2.8. 변종 우익사관
3. 기반 사상
3.1. 빨대론3.2. 일본이 삼국에 문화를 전수?3.3. 나치 옹호와 음모론3.4. 전쟁은 죄가 아닙니다
3.4.1. 전쟁에 대한 이중잣대
3.5. 오컬트3.6. 신토 우월론3.7. 백인 만악론3.8. 독자연구
4. 외부 링크5. 관련 문서

1. 개요

일본 극우들의 역사관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문서.

2. 역사 분류

2.1. 신화 시대

우익사관의 기초는 천황을 신(神)으로 보는 시각에서 기인한다. 이들은 일본을 '현인신(現人神)'인 천황이 만세일계로 다스리는 나라로 간주하는데 왕조 교체 없이 아마테라스의 혈통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논지다.

고대사에 있어서는 과학적, 현실적 비판 없이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기록을 철저하게 맹신하며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2차 대전 이전의 일본에서는 기기신화를 역사적으로 비판했던 학자가 재판을 받아 '천황 모독'이라는 죄목으로 벌을 받기도 했다. 그게 바로 츠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로 바로 임나일본부설의 절대성을 강력하게 주장한 작자였다. 즉, 천황이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대역죄라는 봉건적, 원시적인 사상에 철저히 찌든 사고방식이며 극우파들은 이런 사고방식을 아직도 가진다.

이 만세일계 사상 때문에 넷 우익이나 혐중, 혐한들이 한국, 중국을 욕할 때는 꼭 '일본보다 역사도 짧은 나라'라는 개드립이 빠지지 않는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중국이나, 부족사회 상태였던 일본 열도로 선진문물을 전파해준 한반도보다 일본의 역사가 훨씬 더 길다고 믿는다. 말그대로 환빠들의 정신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대체 어떤 논리에서 이런 주장이 가능한가 하면 중국이나 이집트 같은 문명은 유구한 역사가 있다 하더라도 왕조와 국체가 바뀔 때마다 나라가 망하고 새로 건국된 것이지만 일본은 진무 덴노가 나라를 세웠다는 신화적 사건이 일어난 기원전 660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졌으므로 실질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라는 논리이다. 물론 진무 덴노는 전통 신앙이 투영된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이 주류 시각이며 초기 천황들의 재위기간 역시 문제가 많지만 이들에겐 그런 과학적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만세일계를 주장할 뿐이다.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 일본어 위키피디아에는 정말로 일본의 건국일이 기원전 660년 2월 11일로 올라가 있다. 물론 다른 나라 사람이 이 장단에 맞추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영어 위키피디아에는 메이지 헌법과 현행 헌법 제정일이 실질적 건국일로 표기되었고 기원전 660년은 상징적인 건국기념일로 명시되었다.

2.2. 고대

"고대 일본은 신대문자(神代文字)'''를 쓰고 히히이로카네와 같은 금속 문명이 발달한 초고대문명 국가였다."

우익 사관에 따르면 한자 도래 이전 일본에는 신대문자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 아비루 문자한글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한글은 신대문자의 표절이다. 참으로 학문적인 시각이 결여된 허황된 주장이다.

히히이로카네는 이미 수십년 전에 일개 대학 교수의 날조임이 들통난 물건으로, 현재에 와선 일부 우익들 제외하곤 아무도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없는 흑역사로 남았다.

가장 황당무계한 것은 인류가 탄생되기 70만 년 전부터 일본인은 자체적으로 진화하였다고 생물학의 영역으로 가버리는 어용 학자들도 있다.

2.2.1. 야요이 시대와 삼한 (진구황후 문제)

"신공왕후가 옥문을 돌로 틀어막고 삼한을 정벌하였으며, 그 뒤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였다."

유명한 임나일본부설설화적 근거이자 일본인의 한국을 깔보는 인식의 근원 중 하나이다. 현재는 논파되고 한일 양국의 학자들에 의해 폐기하기로 합의된지 오래이다. 물론 논파가 됐든 안 됐든 학설이 폐기됐건 어쨌건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우길 사람들은 아직도 이걸 가지고 우기고 있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해외 관계가 부실했던 일본 역사에서 임진왜란과 함께 포장할 수 있는 단 둘 뿐인 해외 진출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임나일본부 설이나 일본의 삼국 지배에서 더 확장된 역사 왜곡으로는 한반도 삼국이 일본에게서 선진 문화를 전수받았다는 역사 왜곡도 있다. 이는 아예 한반도 삼국시대에도 백제나 삼국 나라들이 일본에 문물을 전파한 것이 아닌, 역으로 "미개한 한반도 삼국에 일본이 직접 선진 문물을 전파해 주었다"는 주장이다. 즉, 일본이 중국에게서 직접 다이렉트로 문물을 배워왔으며 다시 한반도에 전파한 스승이라는 대체역사나 다름없는 학설로, 원래 이런 주장은 일본에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면서 일본 역사왜곡 학자들 측에서 확대시켜 정설로 받아들인 역사왜곡이었다.[1]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칠지도를 백제가 일본에 진상해 바친 것으로 곡해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오래 전 고대부터 한국이 일본보다 열화되었다는 역사 왜곡이자 정신승리 중 하나이다.

2.3. 중세

"전국시대일본은 세계 최강국이었으며, 조총의 생산량으로 증명할 수 있다."

전국시대의 일본이 가장 많은 양의 조총을 생산했으며 따라서 세계 최강의 무력을 가진 국가였다고 주장한다. 물론 당대 일본은 100년간의 내전을 통한 군사력 축적이 있었고, 당대 동아시아에서 10만의 병력을 원정을 보낼 수 있을 만큼의 강국이었던 건 사실이나, 일본이 한창 구식인 아퀘버스에 기반한 조총을 가지고 있을 때 유럽에서는 이미 아퀘버스보다 훨씬 강력한 머스킷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더군다나 일본은 임진왜란에서 조선과 명나라에게 졌고 이순신에게는 한산도 대첩명량 해전에서 영혼까지 털렸다. 게다가 그렇게 자랑하는 조총은 자체적으로 발명한 물건이 아니라 포르투갈에서 전래된 것이다.

또한 무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전략과 전술인데, 일본에서 전국시대가 본격적으로 격화될 무렵 유럽에서는 이미 스페인이 총병과 창병으로 구성할 수 있는 전술 중 완전체라 할 수 있는 테르시오 전술을 창시하여 전 유럽을 휩쓸고 다녔다.[2][3] "무기의 질 따위보다는 전술과 정신력이 중요하다!" 등의 반론이 이미 원천봉쇄되었다.

그리고 해당 주장의 근본적인 문제로, 진정한 당대 최강국 라인이었던 스페인 제국, 오스만 제국, 그리고 명나라 등이 있었으며 일본은 이들 국가의 체급에 턱없이 부족했다.
"임진왜란정유재란은 일본이 연전연승, 백전불패의 전쟁이었으나 싸우기 귀찮아져서 후퇴하였다."

우익 사관에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있었던 모든 패전, 전략적 실패를 부정하며 일본군은 연전연승 백전불패하였다고 믿는다. 그럼 일본이 왜 퇴각했느냐는 문제가 나오는데 결국 싸우기 귀찮아져서, 혹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벌어진 국내의 정변 때문에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내세운다. 조선과 명나라가 피해를 크게 입긴 했지만, 엄연히 일본이 아주 잠시만 파죽지세로 진격한 후 극도의 교착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철저히 격퇴당한 전쟁이고, 역사적 근거도 분명하다. 더 어이없는 사실은 바다에서 일본 해군은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에 항상 패배했다는 것이다.

"귀찮아져서"는 당연히 말도 안 된다.[4] 그리고 국내의 정변이라고 해도, 한반도 남부를 계속 영위할 수 있다면야 그곳에서 나오는 자원을 일본 국내로 수송해서 국내 정변에 투입하면 세력을 더 확장할 수 있으니 굳이 애써 얻은 점령지에서 퇴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일본의 우익은 임진왜란에 관해서는 선전선동을 하는 적극적인 수법보다는 위키 반달 및 왜곡행위나 망각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랑할 게 별로 없고, 전쟁 내용이 시궁창이며, 전쟁의 경위나 사후 여파가 전국시대의 영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흑역사나 마찬가지기 때문에[5] 다만 임진왜란은 중세 일본의 유일한 대규모 해외 파병이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든 포장해서 자랑거리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소수나마 있다.

하다하다 이런 이상한 소리를하는 만화도 있다.

2.4. 근대

"만주국은 오족협화가 이루어지는 지상락원이었다."

일본의 영도 아래 몽골, 만주, 조선, 한족이 모두 공평하게 평화와 주권을 누렸으며 문명을 전파받았다고 믿는다. 실상은 일본인 아래 다른 민족들은 노예 민족으로 취급당했다. 만주국에서 태어나거나 유년기를 보낸 일본인들이 일본 본토로 오자 '꾀죄죄한 일본인이 인력거를 끄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하니 만주국에서 일본인이 얼마나 '귀족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관념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만주의 일본인들은 중국인들이 소유하던 농토를 강탈하여 '개척지'로 삼고 관동군을 등에 업고 상당한 경제적 특권을 누렸지만 그 정도로도 만족하지 못했고 모든 일본인이 귀족처럼 살아야 만족했다. 다른 민족들이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영위했을 것인지 짐작 가능하다.

2.5. 제2차 세계 대전

2.5.1. 발발 원인

"일본이 건설한 황인종 중심의 대동아공영권을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귀축영미(鬼畜英米)가 백인우월주의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 파괴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침략과 야욕을 감추기 위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구를 내세우고, 인종 간의 대결로 치환한다. 태평양 전쟁 발발 이전에 이미 발발한 중일전쟁은 슬그머니 무마한다. 더불어 일본은 당시 대동아공영권을 같이 이룩하자면서 자신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했을 중국인들을 이미 무참히 학살했다.
"미국이 일본을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은 헐 노트가 증명한다."

일본 극우들은 하나의 글을 쓰면서 위의 "귀축영미에 대항하는 대동아 공영권의 건설"과 "ABCD 포위망과 헐 노트로 개전에 끌려들어간 불쌍한 일본"이라는 명분을 주장한다.[6] 대표적으로 자위대에서 짤린 우익 인사 다모가미 도시오가 '자칭 논문'이라고 주장하는 글에서 이런 성향을 드러냈다.

이들은 헐 노트를 근거로 진주만 공습은 미국이 유도한 것이며, 태평양 전쟁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인 일이라고 정당화한다. 그러나 당시 미국일본 제국을 가상적국으로 상정하고는 있었지만 당장 전면전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7] 그런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인 것은 선전포고도 없이 이뤄진 일본 제국의 기습 공격이었으며, 일제의 대미 선전포고문은 개전 몇 시간 뒤에야 전달되었던데다 필요한 법적 문구도 빠져 있었다.

게다가 저 "생존"이라는 것도 뜯어보면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인 것이, 미국의 석유 금수조치는 일제의 팽창주의와 전쟁 야욕을 견제하기 위함이었지 가만히 있는데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 일본이 자국과 자국민의 생존을 운운하며 침략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논리를 묵인한다면, 그 시기 침략당하고 있던 타 아시아인들에 대한 기만이다.

심지어 도의적인 비판을 배제하고 정치현실주의적으로 보더라도, 저 전쟁들은 일본 제국의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았다. 1930년대 일본 제국은 이미 한반도, 대만을 강점하고 괴뢰국인 만주국을 설립한 상태였으며, 중국 대륙은 산업적으로 뒤떨어진 채 분열되어 있었다. 당대 동북아에서 일제는 주변국을 잡아먹어서라도 몸집을 불려야 했던 19세기 말의 약소국이 아니라 이미 지역 패권을 거머쥔 열강이었고, 후일의 전쟁에서 드러났듯 육지와 바다에서 한 체급 위의 강대국들과 맞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또한 1930년대 기준 일본의 경제는 규모 면에선 다른 열강들보다 작았지만 나치 독일처럼 전쟁경제에 올인한 상황도 아니었고, 침략전쟁보다는 평화적인 무역을 통해 더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 즉, 당대 일제는 현상유지만 해도 열강으로서의 독자적인 생존에 전혀 지장이 없었으며, 오히려 세력 균형을 깨트림으로써 강대국들의 분노를 산 결과 패망과 제국의 해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는 순전히 군부의 폭주를 막지 못한 일본 제국 정치의 실패일 뿐, 다른 나라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5.2. 결과

일본의 병사들이 열심히 싸워 영령이 되었기 때문에 일본은 국가를 보전했다.

일본 극우들은 애시당초 일본 제국이 벌인 전쟁들의 근본적인 성격이 침략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일본군은 겉으로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이미 식민지였던 한반도는 물론이고 중국과 동남아 등 아시아 각지의 점령지에서 쌀을 비롯한 각종 물자들과 인력을 수탈했다. 나아가 오늘날 동남아 국가들이 이를 지적하면 "반일 국가인 중국과 한국의 로비에 매수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친다.[8]

당시 일본 제국 군부는 "미국이 오면 너희들의 가족이 강간당한다"거나 "귀축영미는 일본인을 남김없이 학살할 것이다"는 프로파간다를 퍼뜨렸고, 정보가 극도로 통제되던 상황에서 이를 사실이라 믿었던 일본 민간인들도 많았다. 그러나 일제가 패전하고 미군정기를 지나 새로 세워진 일본은 소위 '귀축영미'의 학살과 압제에 시달리긴커녕 오히려 과거의 제국 시절보다 훨씬 자유롭고 부유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으며, 미국은 오늘날까지고 미일동맹을 통해 일본을 지켜주는 최고의 방패이다. 어찌보면 식민지를 상실하고 평화헌법으로 전쟁도 금지되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평화적인 무역을 통해 번영하는 현대 일본국의 모습이야말로 식민지배와 제국주의, 거대한 영토, 군국주의와 정신주의, 전쟁만이 일본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 주장해온 과거와 현재 극우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일본 극우들은 현실을 부정하며 '원래대로라면 일본인은 남자는 모두 강제 노동하다가 몰살, 여자들은 무차별로 강간당해서 일본 민족은 말살당했어야 하지만, 일본인들이 열심히 싸웠기 때문에 미국 등 연합국에서 감투정신에 감동하여 일본을 보전해주었다'는 따위의 주장을 일삼는다. 따라서 이들의 논리 속에서 '일본의 항복'은 '비참한 패배의 결과'가 아니라 열심히 싸웠기 때문에 얻은 '전리품'이다.

그러나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어떤 나라도 자국민 수만이 명분도 없는 기습공격과 전쟁으로 희생당한 상황에서 감투정신 따위로 적국을 봐주지 않는다. 몰락 작전 항목을 보면 미국은 얼마든지 일본을 궤멸할 수 있었다. 심지어 미국보다 국가적 역량이 뒤떨어졌던 나치 독일도 점령지에서 별 어려움 없이 조직적 인종청소를 수행했고, 그 독일은 전쟁 내내 일본보다도 훨씬 많은 사상자를 내며 분투했음에도 패전한 뒤엔 꼼짝없이 연합국에 의해 분할당했다. 미국이 일본을 보전해준 것은 기본적으로 "일본인들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9]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냉전구도가 고착화되면서 동북아시아의 반공 기지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전쟁 말기 나치 독일조차도 서방 연합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우리를 살려야 소련을 막을 수 있다"며 반공 기지로서의 가치를 언급했던 걸 보면, 일본 극우들의 현실 인식은 전쟁 말기 막장이던 나치의 지도부보다도 뒤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제국은 나치 독일과 다르다.

이들은 나치와 자신들은 '같지 않다'며 일본군은 나치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특히 홀로코스트를 내세우며 일본은 홀로코스트만큼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변명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실 과거에는 동맹인 나치조차 감싸기 위해 아예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내세웠고 지금도 몇몇 극우들은 암암리에 이 입장을 견지하지만, 그나마 있는 서구사회 내 좋은 이미지마저 잃어버릴까 두려워서인지 요즘은 거의 내세우지 않는다.[10]

사실 학계에서도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국가 행정력을 동원한 체계화된 학살극"이라는 점에서 일본 제국이나 기타 추축국, 그리고 기타 전쟁들의 전쟁범죄와는 궤를 달리한다고 평가한다.[11] 특히 유럽 문명의 정수이자 근대 철학의 요람이었던 독일이 국가 행정체계를 동원하여 대규모로 학살을 벌였고 이는 인간 이성과 합리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서양 철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기에 홀로코스트는 역사적으로 특히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학살의 '성격'이 다르다는 의미이지, 그 '강도'나 '잔혹성'이 다르다는 주장이 아니다. 쉽게 말해 국가에서 특정 인종을 죽이라고 지시해서 죽였든, 일선의 군인들이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의식을 제어하지 못해 죽였든, 사람이 죽은 이상 어쨌거나 같은 전쟁범죄이다. 만약 학살의 '성격'에 초점을 두어 나치가 일제보다 더 악질이었다고 주장한다면 반대로 어떤 이들은 학살의 '잔인성'에 초점을 두어 나치의 기계적인 학살이 일제의 가학적인 학살보다 차라리 '인간적'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일본 제국이 벌인 전쟁으로 죽은 인명은 나치 독일의 그것과 비교해도 절대적인 규모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나치 독일에 희생된 인명이 대략 4,000~4,500만 명인데 일본 제국에 희생된 인명 역시 대략 2,000~2,500만 명이다. 절대적인 규모로 놓고 보았을 때 나치가 일제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은 맞지만 일제를 변호하기에는 아시아 전역에서도 너무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오히려 규모상으로도 나치에 그나마 비견될 존재가 일제임을 알 수 있다. 굳이 절대 규모와 홀로코스트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나치보다 조금 낫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나치와의 비교는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고 오히려 나치와 비교되는 시점에서 일제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다.
일본은 원자폭탄에 공격을 당했으니 불쌍한 전쟁 피해국이다.

극우들은 애초에 미국을 먼저 공격한 주체가 일본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원자폭탄을 맞았으니 일본은 피해국이며 잔악한 서구 패권주의의 희생양인 약소민족이다.' 이러한 감정적 논리를 끝없이 되풀이 한다.[12] 이런 식의 소위 일본의 피해자 행세가 이러한 시각에서 기인한다. 지능적인 우익은 여기에다 당시 일본 본토에 있었다가 같이 희생당한 한국인 희생자까지 끌어들인다. "한국인도 미국의 원자폭탄에 같이 희생당했다. 그러니 한국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선 일본과 같이 미국에 항의하고 일본인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라는 논리로 전형적인 내선일체이다. 애초에 경술국치로 시작되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없었다면 한국인들이 히로시마로 강제 징용되어서 일본인들과 같이 개죽음을 당할 일도 없었다.[13] 게다가 우익들은 단지 그들을 '이용할' 뿐, 진정으로 피해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 문서에서 나와있듯 어찌되었든 민간인 밀집지구에 대량살상무기를 투하한 결정은 전후 논란에 휩싸였다. 원폭 사용을 정당화하는 측에서도 결과적으로 몰락 작전이 시행되는 시나리오보다 많은 인명을 구제했다는 공리주의적 관점을 채택하지 민간인 죽음 자체가 정당했다고 주장하진 않는다. 애초에 원폭 투하가 트롤리 딜레마적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인은 죽어도 쌌다'라는 감정적인 주장 자체는 옳지 않다. 하지만 일본 극우들은 자국민이 입은 피해만 강조하며 그 전에 자국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부정하는 이중잣대를 항상 견지해 논란을 야기한다.[14] 또한 극우들은 원폭이 투하될 때까지 1억 총옥쇄와 같은 의미없는 구호를 내뱉으며 승산없는 전쟁을 지속하여 자국민들에게 개죽음을 강요한 일본 군부에 대해서 어떠한 비난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중성을 보인다.
"미국에는 졌지만 중국에는 지지 않았다!"

2차 대전 말기, 일본군은 중화민국에서도 패전하고 있었다. 일본이 한창 중국을 궁지에 몰아넣던 중일전쟁 초중반에도 일본은 전술적인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정작 전략적 부문에선 이미 망조가 들었다. 내륙진공 일변도에 치중한 무모한 작전에 병력 충원이 따라주지 못해 일본군은 항상 부족한 병력으로 요충지나 간신히 점관리하는 수준이었으며,[15] 무엇보다 난징대학살을 위시한 신멸작전이라는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질러 민심을 완전히 잃은 시점에서 패전이 확정되었다.[16]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았다.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비참하게 무조건 항복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얼버무리기 위해서 '무조건 항복'이 아니라 '조건부 항복'이었다고 우기는 경우도 있다.[17] 다만 이걸 주장하는 즉시 미국을 위시한 전세계의 학자들로부터 개쪽을 당하기 때문에 사이비 재야학자 수준이 아니면 제아무리 극우 성향 학자라도 이러한 주장을 하진 않는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했다는 사실은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 당사자들은 물론 심지어 일본마저도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일본이 비인도적 국가가 아니라는 것은 승전국 측의 변호사로 참가한 '펄 판사'가 증명한다."

전후 책임에서는 인도 출신의 펄 판사가 전가의 보도 수준의 만능 카드로 등장한다.[18] 특히 도쿄 재판에서 일본 무죄론을 주장한 펄 판사는 일본 극우들의 과거사 미화를 도와준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에 "군사력을 앞세운 귀축 영미의 도쿄재판에서 억울하게 뒤집어쓴 일본의 누명을 벗겨준 양심적인 지식인" 쯤으로 취급되며, 송덕비까지 건립되었다. 그러나 펄 판사는 일본의 만행이 저질러진 후에 그걸 단죄하기 위한 법을 만들어 소급 적용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판단[19]해서 재판 절차에 이의를 제기했지, 일제의 만행을 부정하거나 일본 제국을 긍정한 것이 아니다. 예컨대 치치지마섬 식인 사건을 재판했을 때는 "내 평생 이런 놈은 처음 본다"며 주저 없이 사형을 선고했다. 때문에 펄 판사는 일본 극우들이 자신의 판결을 일본 제국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는 것을 알고 몹시 격노했다. 게다가 펄 판사 역시 일본에 대한 동정적인 판결로 현재 많은 비판을 받는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도 국제법이란 건 엄연히 존재했고, 헤이그 협약이나 제네바 협약 등 오늘날 인도주의의 근간이 되는 주요 협약들 역시 19세기 이미 어느 정도 정립되었다. 일본 제국은 직전 시대 국제기구였던 국제연맹의 요구를 아득히 위배한 것은 물론이고, 선전포고 없는 개전부터 민간인과 포로에 대한 학살 및 학대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기준으로도 이미 인정받기 어려운 범죄를 많이 저질렀다. 물론 펄 판사처럼 연합국의 식민지 출신인 사람들은 연합국의 전쟁범죄는 처벌되지 않으면서 추축국의 전쟁범죄만 처벌하려는 것을 이율배반적으로 느꼈을 수는 있지만, 어쨌든 이건 연합국 쪽을 비판할 문제이지 그렇다고 일제나 나치 등 추축국이 저지른 범죄가 합리화되진 않는다.

도리어 우익들은 펄 판사와는 반대로 'A급 전범 전원 사형'이라는 강경한 판결을 주장한 필리핀의 델핀 하라니야 판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필리핀 역시 미국의 식민지였지만 이 필리핀인 판사는 소위 '아시아 해방'을 위해 들고 일어섰다는 일본 제국을 전혀 옹호하지 않았다.

2.5.3. 일본도 빈약론

일본도는 3명을 베면 날이 나간다. 고로 100명을 벨 수 없다. 따라서 난징대학살은 중국의 거짓말이다.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기 위해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논리이다. 난징 대학살 당시 100인 베기를 해서 전범재판에서 전범으로 처형당한 두 명의 악귀가 전후 신문사에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내면서 위와 같은 논리를 내밀었고, 일본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물론 처음부터 짜고 치는 고스톱이였기에 이 어이없는 주장이 받아들여졌음은 물론이다.

덕분에 일본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본도는 공식적인 재판에 따르면 3명 정도만 베면 쓸모없게 되는 빈약한 검으로 재정의되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멋지고 좋다고 찬양하던 조상님들의 유물을, 고작 극우 짓 하겠다고 쓰레기로 자진방법시킨 촌극.[20][21]

이렇게 3명 정도만 베면 쓸모없게 된다는 일본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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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당시 엄청난 덩치 차이에다가 전력으로 베어 내려오는 청국 장교의 대도를 막은 전력[22]이 있다.

또한 난징 대학살 당시 100인 베기를 했던 놈들의 손에 들려져 있었던 것은 94식 전도인데, 이후의 무라타도만철도 같은 쟁쟁한 일본군도보다는 '평범한' 칼날을 가지긴 했었고, 강도도 만족스럽다고 보긴 어려울 정도였지만 애초에 3명만 베고 쓸모없게 되는 형편없는 내구도의 검이라면 그것은 이미 군용은 물론 민간용으로도 사용이 꺼려질 만한 실패작이다. 일본도 중 제일 허당 취급받는 에도 시대의 일본도도 고작 3명 베고 망가질 정도로 허술하진 않았다. 당장 위 그림에서 대도를 막은 검부터가 94식 전도에 비해 딱히 나을 구석도 없던 구군도였다.

2.6. 현대

일본 교과서를 사례로 들어보면 일본 사회는 사실상 우익사관화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아베 신조 정권에서 국정 교과서를 시도하였으나 시민사회의 반발로 포기하는 대신 교육 지도 등을 명목으로 지방 교육위원회와 일선학교에 우익사관을 가진 교과서를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 부동산 거품이 끝난 후 쇠락하고 있는 일본에 일어나는 사회 문제와 양극화, 세대갈등으로 인한 불만을 민족주의로 억누르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한 일본 지배층의 정치적 계산도 있었다. 심지어 그간의 일본사를 자학 사관이라 깎아내리고 자신들의 극우사관을 자유주의 사관이라고 포장까지 하면서 퍼뜨리려고 악을 쓴다.

2.7.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시각

  • 이승만 - 한국에선 미군정 시기 냉전 등의 요인으로 친일파 관리를 다시 등용했고, 친일 청산도 제대로 안했다고 일각에서 친일파 비호 대통령으로 비판받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본 극우파들은 이승만을 반대로 반일 대통령이라고 욕하는 편이다. 이는 이승만 자체가 국내에서의 친일파 기용과 무관하게 어찌됐든 독립운동가 출신이라 외교적으로는 일본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제 이승만은 독도 및 대일 영해권에 대해서는 무력 충돌까지 불사할 기세로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이 시기 한국이 평화선 근처로 오는 일본인 어부들에게 엄청 강경하게 굴었다는 게 극우파들의 레파토리.[23]
  • 박정희 - 기본적으로 만주군관학교 등 만주국 커넥션과 혈서 논란 등 친일파 경력, 유신 헌법에서도 드러나듯 일본의 메이지 유신뽕이 있던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추종하는 정통 극우파들 사이에선 독재자임에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평이 나은 대통령으로 보인다. 허나 기본적으로 박정희 정권도 민족주의에 매몰돼 자기들 기준 여론 호도용으로 반일몰이를 부추겼다고 비판하고, 지금도 설왕설래가 있는 한일기본조약이 이 정권에서 이뤄진거라 이에 대해서는 지금도 꽤 뜨거운 감자이다. 사실 당시부터도 일본 민간에서는 한국인을 은연 중에 차별하도록 교육하는 경향이 왕왕 있었다.[24]
  • 전두환 - 반공주의 성격을 가진 정권이고 이로 인해 일본의 방파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보다는 평가가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박과 마찬가지로 '독재정권이 국민여론 통제하려고 반일을 부추겼다'라는 주장을 피해갈 수 없었다.
  • 노태우 - 전두환과 비슷한 평을 내리지만 일각에선 북한에 대한 유화적인 태도가 골치였다고 언급하기도 하는 모양. 어디 모임이라도 있나 대신 그걸 무기삼아 일본과 친밀한 공산국가랑 수교를 주선 혹은 강요했다는 면에서 애증이 공존한다.
  • 김영삼 - 취임 후 보여준 몇몇 반일 제스처들(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 조선총독부청사 철거 등) 때문에 극우파들은 이에 대해서 꽤나 신경질을 낸 듯하다. 여담으로 상당수 일본 극우들은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가 더 박한 편인데, 이는 일반적인 우익들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25]
  • 김대중 - 오늘날 일본 우익들에게도 인정받는 한일관계가 좋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화 아이콘이라는 점과 6.15 회담으로 대표되는 대북 유화책 때문에 극우파들에겐 의외로 평가가 나쁜 편인 모양. 물론 전부가 그런건 아니라 극우라 평가받는 인사 중에서도 일부는 김대중 정권이 그들 기준 반일하는 정권은 아니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평론 좀 하는 수준까지 가야 나오는 소리고 인터넷 극우들은 잘 알지도 못해서인지 무지성이다. 그래도 노무현 이후처럼 심하게 까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 노무현 - 인터넷 대중화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서인지, 한국 대통령을 대놓고 우습게 보는 경향이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확고해졌다. 사실 넷우익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과도 맞물린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못지않은 민주화 세력 아이콘이라는 점과, 민족주의적 경향과 대북 유화적인 성향도 있었기 때문에[26], 이후 일베저장소 따위에서 노무현 합성하는 것마냥 까였다.[27] 넷 우익들 사이에서 본격적인 혐한 필수요소로 악용되기 시작한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한국에선 호감도 1위도 자주 찍는 대통령인걸 고려하면 그야말로 극과 극.
  • 이명박 - 초기에는 이명박이 오사카 태생이기도 해서인지 노무현보다는 낫게 보았다.[28] 그러나 위안부 문제가 잘 해결이 안되고 이명박 본인도 친일 프레임에 치가 떨렸는지 임기 말엔 일왕 사과 발언독도 방문 퍼포먼스로 한일 관계를 아주 아작을 내놨기에 일본 극우들도 폭발했다.
  • 박근혜 - 이명박보다 더 보수적인 성향을 표방했지만, 외교적으로는 아베 정권의 깽판도 있고 해서 임기 중반까진 친중 행보로 대표되는 노선을 펼쳐서 노무현급으로 일본 극우들이 비난했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일본 극우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었다.
  • 윤석열 - 내각에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 친일 성향 인사를 기용한 것이나, 한일 민간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부분 등에선 문재인보다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애초에 한국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한 경우도 많으며, 윤석열도 낮은 지지율 때문에 은근히 무시하거나 아니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시간이 갈수록 반일몰이를 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애초에 인터넷 키보드워리어 등이 남기고 간 수십년의 양국 관계 때문에, 한국을 향해 쌓여있던 분노가 윤석열 정권을 향해 튀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이상의 평가에서 보다시피 일본 극우의 관점에서는 한국 역대 대통령 중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는 당연하게도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노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자가 생각하는 한국의 이익을 위해 일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국가통제나 계획경제, 군사주의 이념 자체에 천착하는 수구우파들[30]은 비슷하게 일제의 유산을 공유하기도 한 박정희에 우호적인 경우도 있지만, 현대의 혐한 극우들[31]의 경우 그냥 감성부터가 무지성 혐한에 접어드는 단계라 한국이 반서방 노선을 걸으면 반일이라고, 친서방 노선을 걸으면 일본을 견제한다고 비난하기 일쑤이다.

2.8. 변종 우익사관

"대한민국북조선 혹은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 적화통일이 되어야 한다."
"2차 한국전쟁이 일어나면 한국과 북조선은 사이좋게 멸망하고 일본은 전쟁의 부수효과초강대국이 된다. 그리고 조선반도는 다시 정의로운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주장은 20세기 말엽부터 등장한 신흥 우익[32]의 주장인데, 이들의 원조는 과거 '일본회의'의 대표위원이자 1993년 <추한 한국인>을 출판했던 '가세 히데아키'라는 인물이다. 이들은 특정 역사, 영토 문제 등을 제외하면 가능한 한 한국과의 안보협력을 유지하길 원하는 전통파 우익[33]들과 달리 한국을 철저하게 멸시하고 무조건적인 혐한만을 일삼으며 없는 거짓말을 날조해서라도 한국을 매도한다. 특히 이들의 패악질이 활달한 곳은 유튜브 등 인터넷상인데, 이들은 한국을 폄훼하는 날조 정보를 적극적으로 퍼트리면서 일본은 전세계로부터 동정과 선망을 받아야 하는 나라로, 한국은 전세계로부터 미움와 모욕을 받아야 마땅한 저질 나라라고 포장하려 노력하고 있다.[34]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그들 머릿속에 만들어진 ‘한국인의 특성’ 때문인데, 이 가치관 속에서의 한민족은 식민사관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이 독립성이 없고, 사대주의에 물들어 자립할 수 없는 민족이기에 다른 ‘우수하고 선량한’ 야마토 민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야만적이고 악랄한’ 다른 민족들에 의해 멸망당하고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이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번영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세계적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영원히 부려먹으면서 놀려먹고 싶은 애가 있는데, 얘가 잘돼서 짜증나! 수준에 가깝다. 허나 이들은 오늘도 아래에 예시된 ‘미래’가 기적적으로 현실이 되어, 한국이 망해버리기를 기도하고 있다.
1. 한국이 경제적으로 붕괴되고 약체화되어 북한에게 적화통일됨.
2. 상황이 (1)과 유사하게 흘러가나, 북한에게 먹히는게 아니라 북한과 함께 중국합병됨.
3. IMF 사태 이상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고 나서 후진국으로 전락함.
4. 제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한국과 북한은 공멸상태에 빠지는 사이, 일본은 전쟁 특수로 국력을 이전보다 더욱 크게 키워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한 채로 한반도를 다시 지배함.

물론 현재 한국은 당연하게도 북한 따위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기에 이들의 망상대로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선제공격을 당하더라도 적화통일을 당하긴 커녕, 오히려 북한이 북진통일을 걱정할 상황이다. 또한 대다수의 식민제국들이 붕괴된 2차 대전 이후로는 다른 나라의 영토를 점거하거나, 나아가서 나라 전체를 통째로 합병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 없는 일이 되어버렸기에 양국 병합 또한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당장 중국과 함께 반서방 세력의 리더격이면서 UN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부터가 2014년에 저질렀던 짓거리와, 2022년 2월경에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인해 서구권으로부터 막대한 제재를 받고 회생 불가 수준으로 경제가 박살났는데, 미국의 주요 동맹국에 속한 일본이 같은 입장인 한국이 북한이나 중국에 침공당해서 약소국이 된 사이 한국을 침공해서 손쉽게 잡아먹는다는 생각 자체가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1. 2차 한국전쟁이 실제로 일어난다.
이 주장은 1차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발생하게 된 군수수요를 일본이 떠안으면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취한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당시와는 달리 현재 한국에는 이미 기반시설이 위치해 있는데다가,[35] 설령 한국이 북한에게 먼저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1950년의 꼴은 나올 확률은 희박하기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처럼 보급품을 발주받음으로서 이익을 누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각국기업 간에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무역 흑자국인 한국[36]에서 부품을 사가지 못하기 때문에 일본 중소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즉 전쟁으로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는 건 한반도이지만, 현재 한국과 일본은 일반 국민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반사적 이익은 커녕 일본 경제도 덩달아 큰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얼핏 보기에는 경쟁자인 한국 기업들이 망함으로서 일본 기업이 유리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만, 단기적으로 주요 고객이였던 삼성, 현대 등의 한국 대기업들이 파산하거나 휘청임으로서 그들에게 납품받고 있던 일본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장기적으로도 일본 기업계가 단기적으로 받은 타격 간의 간극을 이용해 타국(특히 중국) 기업이 치고 들어올 것이다. 상기한 한반도 쑥대밭 같은 상황을 상정하면 결론적으로 동북아에서 승리하는 기업계는 일본 기업계가 아니라 중국 기업계가 된다. 당장 세계적으로 한국보다 경제적 영향력이 훨씬 작은 그리스만 하더라도 그리스 경제위기 당시 전 세계 경제, 특히 인접한 유럽국가들에게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을 정도였는데, 하물며 그리스보다 경제적 영향력도 훨씬 크고, 일본과도 연계가 깊은 한국의 경제가 전쟁으로 크게 망가진다면, 전쟁특수는 고사하고, 다같이 힘들어지게 되는 상황이 일어날수도 있다. 이러다보니 기성 우익들은 2차 한국 전쟁으로 경제적 이익을 보자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2. 경제/군사적인 방법으로 한중병합이 이루어진다.
실제로 이 사태가 벌어지면 일본 뿐만이 아니라 태평양 지역 전체가 위험해진다. 우선 황해 전체가 중국의 내해가 되므로, 중국 해군이 성장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주는 셈이다. 중국이 그렇게 태평양으로 진출하고 싶어도 누구 때문에 못 나가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자. 당장 세계 최고의 해군 방공체계로 평가받는 1만톤 이상급 이지스 구축함을 미국과 일본 다음으로 소유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현재도 이지스 구축함이 4척으로 결코 그 수가 적지 않으며 근미래에는 2척을 더 건조해 총 6척을 보유할 예정인데, 이를 비롯한 한국의 군사 시스템이 중국군에 흡수당하면 안그래도 최근 중국의 급격한 군사력 증강으로 인해 그나마 일본이 자신있던 해자대마저 중국 해군에 본격적으로 추월당한 상황에서 무게추가 중국쪽으로 더 크게 얹어지는 셈이라 일본으로서는 버틸수가 없다를 외치게 된다. 중국으로서는 한국을 통해 이지스함과 관련 기술을 손에 넣게 됨으로서 현재 중국군에서 가장 부족한 해군을 채우게 되는 셈. 그리고 중국이 한국과 북한을 대놓고 잡아먹은 상황에서 과연 한반도만 먹고 일본은 그냥 놔둘까? 물론 미군이 있다고 하지만 한반도가 대놓고 중국에 합병당할 정도면 미국도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패배해서 1990년대의 소련마냥 더 이상 패권국가로서 행세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망가졌을 확률이 크고, 설사 파이브 아이즈일본 정도는 지원 할 수 있을 정도로 군사력이 비교적 온전히 남았다고 하더라도 그 동안 대중국 방파제이자 미국을 통한 안보 협력으로 서로의 안보 부담을 덜어주던 한국이 중국에 먹혀버렸으므로 기존의 한미일 VS 중국이 아닌, (현재보다 약체화된)미국 + 일본 VS (현재보다 훨씬 강대해진)중국으로 한국 멸망 이전보다 훨씬 위험부담이 커져버리고, 중국에 대항하기에는 모자란 군사력을 보충하기 위해 핵무장과 징병제를 시행하게 될 것이기에 일본 사회도 여러 분야에서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 즉 일본에게 득 될건 없으면서 자국 안보만 더 불안하게 된다는 것.

무엇보다 만약 중국군이 한반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 그날부로 한반도는 불침 항모가 되어 일본 전역이 중국 공군의 사정권 내에 들어가게 된다.[37] 이지스함이 효과적인 대공방어무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개 떼처럼 날아드는 전투기들의 공격을 다 감당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그리고 항모 몇 척에서 날리는 전투기와 지상의 공군기지에서 날리는 전투기는 그 규모와 효율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사일 기지에서 날아올 둥펑 미사일은 보너스고. 설령 한반도가 미국의 영향을 벗어나더라도 일본에서부터 다시 한반도에 상륙해 점령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수도 있는데, 이 경우 상륙전이 된다. 상륙전은 보통 지상전으로 시작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전비와 피해가 발생하는데, 안그래도 일본의 육자대한국 육군, 중국 육군과 비교하면 훨씬 약세인데다가, 중국도 한반도가 요충지인 걸 절실히 느끼고 있으므로 일단 한반도를 통제 하에 놓는데 성공하면 대구와 강릉의 비행장에는 FC-31J-20을 배치해놓을 것이며 일본 해자대의 작전반경을 제한시키고 공자대를 약화시키기 위해 둥펑 미사일과 각종 탄도탄, 순항미사일을 잔뜩 깔아놓을 것이다. 아무리 거리가 짧다고 해도 이런 중국의 방어를 뚫고 상륙전을 벌이느니 차라리 파키스탄에서부터 지상군으로 차근차근 진격해 나가는게 그나마 전비가 덜 들 수도 있다(...). 결국 미국 입장에선 한반도가 없으면 중국을 완벽하게 이길 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38]

또한 한국이 중국에 완전히 합병당하는 상황이라면 당장 자국(일본)은 단 2가지의 선택지만이 남게 된다. 1. 기존의 한국과 대만의 역할을 동시에 맡으면서 핵무장과 징병제를 시행하며 중국에 대항하거나, 2. 약해진 미국을 배신하고 중국에 붙어서 친중 위성국화되는 것. 어느 쪽이든 넷 우익들이 바라던 일본 제국의 영광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거기에 한국-일본이 중국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본 대만[39]동남아 국가들은 중국 견제를 위해 군비 증강을 하거나, 아니면 진작에 친중 위성국화되었을 것이고, 결국 일본의 안보는 헬게이트에 빠지고 말 것이다.

결론적으로 혐한파들의 주장대로 2차 한국전쟁이 일어나든 한중병합이 이뤄지든 일본에 득될 건 아무것도 없다. 당장에 한국이 물리적으로 망하든, 경제적으로 망하든 간에 자기들이야 꼴도 보기 싫은 한국이 피해를 보니 좋아라 할 수야 있겠지만 2차 한국전쟁은 일본에 경제적 피해를 유발하고, (가능성은 사실상 0%이지만) 북한이 남한을 병합하기라도 하면 친중 세력이 대문 바로 앞에 진을 치게 된 꼴이니 경제적 피해+안보불안으로 상황이 훨씬 더 안 좋게 돌아가며, 더 나아가 한중병합의 경우라면 아예 미국이 중국과의 힘싸움에서 제대로 밀렸다는 것이기에 미국의 도움도 없거나 부족한 상황에서 이전에 한국과 대만이 처하던 상황을 일본 혼자서 감당해야한다는 것이고, 일본도 결국은 비시 프랑스북한과 비슷한 수준의 종속국이 되어버리거나, 최악의 경우 1984에서 나오는 것 마냥 일본도 아예 한국과 함께 중국에 합병당하고, 중국인들의 중화사상에 입각해 일제시대 조선인이나 현재의 티베트인이나 위구르인처럼 노예나 2등 국민으로 일본인들 또한 한국인들과 함께 착취당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40][41]

때문에, 일본 넷우익들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마인드로 세상을 사는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이며, 좋든 싫든 한국 덕분에 70여년의 평화와 막대한 군사비용 절감 효과를 보면서 경제적 풍요와 평화에 찌들어있던 사회환경에서 성장해온 일본 넷우익들의 마인드는 그저 어리석다고 볼 수밖에 없다.

3. 기반 사상

3.1. 빨대론

"조선을 비롯한 한반도는 단순히 일본이 중국 문명을 도입하는 빨대였을 뿐이다."

이 빨대론은 고대/중세 무렵에 한반도를 거친 문명 전래를 부정하는 우익의 논리 가운데 하나이다. 한반도를 거친 문명 전파를 도저히 부정할 수 없게 되자, 한반도는 단지 '일본의 빨대'일 뿐이라고 얕잡아 보는 것이다.[42]

그런데, 이 말을 거꾸로 되돌려서 아래의 근대 시대에 적용하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일본은 단순히 한국이 서양 문명을 도입하는 빨대였을 뿐이다."

하지만 우익 사관에서는 "선진 일본 문명을 조선에 전파하여 조선에 근대화라는 수혜를 주었다."라고 논리가 완전히 뒤바뀐다.

그리고 이런 것을 주장하는 우익들은 자신들의 이중잣대를 지적당하면 있는 힘을 다해 논점일탈하면서 어떻게든 이야기의 주제를 다른데로 돌리려고 노력한다.

빨대론의 응용으로는 '한반도는 일본을 향해 겨누어진 (대륙 배후세력의)[43] 칼'이라는 지정학적 위협론이 있다. 정한론 문서로.

3.2. 일본이 삼국에 문화를 전수?

전술한 빨대론에서 심화되어 아예 한반도 삼국이 일본에게서 선진 문화를 전수받았다는 역사 왜곡을 정설로 실어버린다. 고대/중세 무렵에 일본이 중국에서 직접 문화를 배워 와서 한반도 삼국에 전파한 스승으로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것이다. 즉, 우리가 역사수업때 배운 "삼국시대 한반도 삼국이 일본에게 문물을 전파했다"가 아닌, 역으로 "미개한 한반도 삼국에 일본이 직접 선진 문물을 전파해 주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일본이 중국에게서 직접 다이렉트로 문물을 배워왔고 또다시 한반도에 전파한 스승이라는 학설로, 원래 이런 주장은 일본에서 일제 시대부터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면서 일본 역사왜곡 학자들 측에서 확대시켜 정설로 정립하여 일제시대에 한국에 식민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이렇게 교육하였고, 지금은 자국의 역사교과서 등에 적용하고 있는 역사왜곡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칠지도를 백제가 일본에게 진상해 바친 것으로 곡해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거의 대체역사 수준이다.
즉, 오래 전 고대 삼국시대부터 한국이 일본보다 열화되었다고 단정하는 역사 왜곡이자 정신승리다. 한반도가 원래부터 미개하다는 편견과 함께 왜인 한반도 남부 지배설 + 임나일본부설이 좀 더 극대화된 사례.[44]

더욱 개탄할 것은 이러한 주장을 한국에서 역갤러와 제식갤러들이 대거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국 혐오자나 일뽕들, 유사역사 학자들도 많이 사실이라며 인용하는 낭설들 중 하나라는 것이다.

고대 야마토 왕권의 성립에 있어 한반도 삼국이 수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이미 문헌이나 고고학 발굴 성과 및 한일 양국 학자들의 조사 결과로 확인된 것이다. 한 가지만 들면 한반도 남부에서는 이미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해서 철기의 자체 생산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철기를 수출까지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낙랑과 대방 같은 중국 군현 그리고 야마토도 포함되어 있었다. 4~5세기까지 철기를 자체 생산하지 못하고 한반도에서 수입해서 썼던 야마토가 이 시기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고 또 한반도 남부 국가들 사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력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야 말로 역알못임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사실마저도 일본에 대한 무개념에 가까운 찬양으로 부정한다면 자기 자신이 알못이라는 사실만 확연히 드러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3.3. 나치 옹호와 음모론

일본 우익사관은 온갖 유치한 음모론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보인다.

우익 사관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으로, 아돌프 히틀러를 긍정적으로 보고 백인/유대인 음모론을 맹신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실 일본 군부의 만주국 유태인 이주 계획 부터가 '유대인 음모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유대인들을 만주국에서 보호하면 음모론적인 힘으로 미국을 막을 수 있겠지?'라는 자뻑스러운 짓거리였다. 물론 일본이 유대인을 좋아해서 한 것도 아니며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다만 이 사건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구한 건 함정.

표면적으로는 반나치적인 경향을 보이지만, 익명 게시판 등에서는 나치 찬양과 유대인 음모론을 나치스 수준으로 맹신적으로 토로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 재특회도 2014년 4월 20일 전후로 타 극우단체 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힛빠 인증을 했으며 나치스와 같은 인종주의를 추종한다. 결국 대놓고 나치 깃발을 시위에 들고 나오고 히틀러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미친 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들은 제2차 세계 대전과 중일전쟁이 모두 코민테른의 음모다!라고 주장한다. 前 항공자위대 막료장이었던 다모가미가 이러한 주장을 했다가 항자대에서 짤렸다. 지금도 간혹 극우지에서 인터뷰 초청을 받는 모양이다.

다만 이들도 유태인과 나치에 피해본 서구권 반발을 우려해서인지,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대놓고 나치를 옹호하는 발언이나 글은 쓰지 않는다.

3.4. 전쟁은 죄가 아닙니다

일본 극우사관의 동조자들은 "전범"이라는 개념 자체를 비판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엄밀하게 따지면 전쟁 자체가 무조건 죄는 아니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격언처럼, 국제사회에서 전쟁은 주권국가의 주권을 보장하고 행사하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인정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중요한 조건 하나를 망각하고 있다. 전쟁은 규정된 절차를 따랐을 때에만 죄가 아니다.

전쟁에는 절차와 제약이 있다. 일단 개전을 위해서는 자국의 주권이 심각하게 침해받는 상황임을 입증해야 하고, 상대국에 자국의 입장이 담긴 최후통첩을 제시한 뒤 협상을 위한 유예기간을 주어야 하며, 합법적인 선전포고문을 전달해야 한다. 전쟁 과정에서도 저항 의지가 없는 포로나 민간인에 대한 학살•학대는 금지되며, 독가스나 핵무기 등 비윤리적 무기들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적십자 같은 구호단체를 공격해서는 안 되며, 군인들 간의 교전에서도 교전수칙을 따라야 한다. 전후에도 설사 승전했을지언정 명분 없는 타국 영토 합병은 어지간해선 금기시되며, 점령지의 민간인에게도 유엔 헌장에서 규정된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전쟁 배상금을 제외한 개인이나 군대, 국가 단위의 약탈 역시 금지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걸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전범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전범은 단순히 전쟁에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전쟁에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전범이며, 뉘른베르크 재판도쿄 재판에서 처벌받은 사람들은 그 죄목이 입증되었기에 정당한 대가를 받은 것이다. 반대로 전시 추축국의 장성•지도부의 일원이었더라도 순수하게 국가를 위해 충성한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거나 정상참작되었으며, 이런 사람들의 존재야말로 전범이라는 개념의 타당성을 반증한다.

또한 국제법적으로 전쟁이 죄가 아니라고 해서 전쟁이 갖는 비인간적인 속성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전쟁은 인류 죄악의 총체이며, 전쟁 도중에는 온갖 잔혹행위가 정당화된다. 게다가 전근대와 현대의 전쟁은 그 파괴의 규모가 완전히 다르다. 근대에 등장한 기관총 같은 병기는 순식간에 수천 명의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 인류는 국가나 문명은 물론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준의 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은 공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UN이 분쟁이 벌어질 때마다 가능한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을 주문하는 것 역시 그래서이다.

비록 전쟁이 다른 모든 수단이 실패했을 때 남는 최후의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보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보기 전까지는 최후의 선택지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당연히 이들의 주요 미화 대상인 일본 제국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리고 전쟁이 인류의 숙명이라지만, 그 숙명은 인류의 야만적 속성에서 비롯된 행위로 문명인이라면 최대한 피하고 억제해야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인류가 전쟁의 종말을 이룩하지 못하면 전쟁이 인류의 종말을 가져다 줄 것이며, 누구나 전쟁에서 자신만은 살아남아 죽은 전우들을 묻게 될 것이라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3.4.1. 전쟁에 대한 이중잣대

일본 우익사관에서 전쟁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이중잣대로 빠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오직 '일본 전범'을 비호할 때만 이런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을 하면서 일본 전범을 비호하던 사람이 어느 날은 "루즈벨트, 트루먼도 전범이다! 핵무기를 투하해서 학살했다! 처벌해야 한다!"면서 열변을 토하는 사례를 숱하게 볼 수 있다.

"전쟁이 애초에 범죄가 아니다.", "학살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라고 보는 사고방식이라면 미국이 일본을 공격하건 말건 그게 어떻게 죄가 된단 말인가?

근본적으로 전쟁이 범죄가 아닌 사고방식이라면 미국 대통령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겠는가? 자기가 유리할 때만 극단적인 평화주의자 코스프레를 전쟁, 테러를 증오하는 척 하다가 자기가 불리해지면 쿨한 낭만주의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전쟁을 옹호한다. 즉, 진정성과 일관성이 전혀 없이 오직 자기네 옹호하는데만 모든 논리를 갖다 붙이는 것이다.

이 옹호가 발전하다보니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전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국가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연약해서 짓밟히고 노예가 되었지만 일본은 끝까지 맞붙어 아시아인의 호연지기를 보여줬다." 라는 이상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45]

3.5. 오컬트

넷우익들 대부분이 저학력자인데다, 양서와 담을 쌓은 덕분에, 우익사관에서는 유치하고 족보도 없는 오컬트 사상을 추종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본 우익사관에서는 전쟁 시기 일본 군부가 프로파간다로 내세웠던 '일본 신국론'을 신봉하며, 신대문자히히이로카네니 타케우치 문서니 운운하는 날조 오컬트 유물들을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일본인은 영혼의 격이 높고, 한국인은 영혼의 격이 낮다느니 하는 허황된 오컬트 사설을 퍼트리기도 한다.

3.6. 신토 우월론

「신토는 종교와 같은 저속한 것이 아니며, 보다 보편적 과학적인 인간의 도(神道とは宗教のような低俗なものでなく、より普遍的科学的な人の道)」출처

메이지 유신 시대 근대부터 2차 대전까지 일본 제국 정부에서는 국가신토를 떠받들고 다른 종교(기독교, 불교 등)를 탄압하고 굴복[46]시켰다. 다른 종교를 저속한 것이라 멸시하고, 신토를 '종교를 초월한 우월한 가르침'으로 떠받들게 한 것이다.

현대의 일본인들도 '종교'(기독교 등)와 신토를 별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이런 선전의 영향이다. 일본 전통정신(흔히 '和魂[47]'으로 표현되는)을 중요시하는 보수 성향이 있는 창작자들도 이러한 사고방식의 영향으로 일신교(기독교, 이슬람)에 대해서 다신교(신토)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종교가 아니다. 보다 우월한~'이라는 감정적이고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성향이 짙은 주장을 함으로서, 교리와 의식에 대한 비판을 봉쇄(우물물에 독타기 오류)하고 타 종교에 대한 탄압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3.7. 백인 만악론

일본 우익 사관에서는 백인이야말로 만악의 근원이라는 말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기본적으로 "백인"을 욕하며, 범위를 좁히면 "앵글로색슨"과 "유대인"이다. 사실 원래는 아예 "백인이 기본적으로 사악하다"고 하려다가 도중에 독일과 동맹국이 되면서 "앵글로색슨과 유대인"으로 바뀌었다.

물론 식민지 문제 등에서 구미 백인 국가들이 저지른 잘못이 존재하며 현재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도 한국 등 다른 나라들에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자신들의 잘못에서는 눈을 돌리고 백인 국가들만 욕하는 이중잣대를 보인다. 그 케케묵은 아시아주의를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이런 심리는 이른바 알타이 콤플렉스와도 맞닿아 있다.

반면 이런 아시아주의와는 정반대로 "일본은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과 문화/경제적으로 동등한 강국이며 이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격이 다른 열강의 역사로 증명할 수 있다."라며 자신들이 명예 백인이라 주장하는 탈아입구 사상 또한 여전히 판치고 있어서 통일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상태.[48] 이 역시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보이는 주장이면 모순 상관없이 아무거나 갖다붙여서 일어나는 일이다. 애초에 진실과는 죄다 거리가 먼 것들만 말하고 있으니 개연성이 있을리가 없다.

과거 종군 위안부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2016년에도 이 "백인 만악론"이 다시 한번 등판했다. 본래 일본 우익사관의 입장은 종군 위안부가 전적으로 민간 업자들을 통해 운영됐으며 국가적인 게 아니었다는 입장이었으나, 이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후 당시의 일본군 위안소가 직접적인 징용을 통해 유지되었다는 증거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하자 "다른 참전국들도 모두 종군 위안부를 운영했는데 국제 사회가 일본의 경우만 갖고 문제 삼는 것은 일본이 당시 주요 참전국들 중 유일하게 백인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라는 입장으로 갈아타고 있다. 물론 설득력이 없다.

구 일본군의 성노예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하는 것은 이 문제가 까면 깔수록 괴담만 나오는 게 현실이라 그런 것이며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오죽하면 2018년에는 전쟁에서 후퇴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해당 지역의 성노예를 모두 처형하고 후퇴한 영상이 공개되어 물의를 빚었다.[49]

3.8. 독자연구

일본 우익사관에서는 전쟁과 전투의 승패를 가리는 데 독자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 일본이 전략 목적을 달성했으면 일본의 승리. 달성하지 못했으면 다음으로.
  • 일본군과 적의 사상자 수를 비교한다. 사상자 수가 일본이 더 적으면 일본의 승리. 달성하지 못했으면 다음으로.
  • 일본군과 적의 사망자 가운데 장성급의 수만을 비교한다. 사망자 가운데 장성급의 수가 일본이 더 적으면 일본의 승리. 달성하지 못했으면 다음으로.[50]
  • 다시 전략 목적으로 돌아온 다음, 전략 목적을 바꿔놓고 달성된 것만 따져서 일본의 승리. 달성하지 못했으면 다음으로.
  • 그래도 일본군은 감투정신을 보여주었으며 잘 싸웠다.

예를 들면 명량 해전에서는 "서해로 진출하는 것 자체"를 전략적 목적으로 바꿔 놓고, 태평양 전쟁에서는 "천황제의 유지"를 전략적 목표로 바꿔놓고 승리를 주장하는 등의 행위를 하고 있다.[51]

4. 외부 링크

  • 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FC2 블로그 서비스 하에 있는 곳으로, 신시아 리 같은 일본 우익사관에 호의적인 한국인이 만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한국어에 능통한 일본인이 운영할 가능성이 더 높다.[52] 일본 우익사관에 입각한 실증주의 샘플이라 할 수 있는 블로그이다. 한일 식민지 근대화론 학자의 학술 및 주장[53]과 일본 우익사관에 호의적인 한국인의 주장, 논문을 전재, 일제강점기 관련을 일본 우익사관 POV로 분석한 글들이 많다.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비공식 번역도 있다. hanbonman이라는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된 것을 embed하는 식으로(주로 30년대 전후로 외국인들이 촬영한)의 일제강점기 조선 취재영상들도 소개했었으나, 해당 계정이 저작권 침해 명목 등으로 없어지자 지금은 의미가 없다.[54]

5. 관련 문서


[1] 더욱 개탄할 것은 이러한 주장을 한국에서도 자국 혐오자나 일뽕들 또는 역갤러, 유사역사 학자들도 많이 사실이라며 인용하는 낭설들 중 하나라는 점이다.[2] 이 테르시오 전술의 효용성은 당시로서는 의심할 여지없는 최강의 전술로, 타 유럽 국가들은 이에 대항하여 별별수를 다 써봤지만 테르시오 전술을 앞세운 스페인에 무참하게 패배하기 일쑤였으며 훗날 대포가 밀집방진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발달한 이후에야 로크루아 전투에서 겨우 격파할 수 있었다.[3] 더 무서운 점은 심지어 그런 대포를 대거 동원해서 두들겨댔는데도 테르시오 방진 자체는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전국시대 당시 일본군은 제대로 된 대구경 화포가 없었다. 테르시오랑 맞붙어서 승산이 있을런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 애당초 이딴걸 이유랍시고 내놓는다면 그만큼 일본이 막장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밖에 안된다. 전쟁이 초등학생들 전쟁놀이도 아니고 세상에 어떤 나라가 귀찮아서 전쟁을 그만두나? 물론 역사를 살펴보면 7년 전쟁이란 사례도 있는데, 그 덕에 표트르 3세는 암군으로 평가받는다.[5] 조선 침략 이후부터 히데요시가 워낙 하는 일마다 무리수요, 필요 이상으로 잔혹하거나 바보스러운 일을 많이 해서 연구가들은 히데요시가 이 시기에 치매에 걸려 지적 능력이 감퇴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래서 히데요시의 말년은 히데요시를 웬만큼 미화하는 내용의 창작물에서도 좋게 나오지 않거나 망각신공을 발휘해 슬그머니 언급을 안 한다.[6] 다만 두 관점이 상호 모순적이라는 지적은 다소 어폐가 있다. 일본 극우의 관점에서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를 "계몽"하기 위해 일으킨 정당한 전쟁이었고, 태평양 전쟁은 그런 일본을 시기한 서구 열강들이 "도발"해서 끌려들어간 전쟁이다. 저게 둘 다 틀렸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든 어지간한 극우들도 당시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에서 선빵을 날렸다는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하진 않는다. 거기에 괴상한 정당화 논리를 덧붙여서 문제이다.[7] 당시 미국은 일본 제국보다 나치 독일을 더 큰 위협으로 여겼고, 설령 헐 노트가 일본 제국에 의해 거부되었더라도 그것만으로 바로 선전포고할 생각이 있었다고 보긴 어렵다. 일본 제국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정도만 건드리고 필리핀, 호주 등 전통적인 미국의 영향권을 존중했다면, 미국도 일단 유럽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는 중국을 지원하고 금수조치는 유지해도 전면전은 회피하며 적대적 평화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애초에 1941년의 미국은 전쟁 준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8] 이러면 졸지에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의 외교력이나 로비 능력이 10위권인 대한민국보다 못하다고 자인하는 꼴이다. 그나마 일본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인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과 그리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게다가 이런 로비는 오히려 동남아시아 지역에 퍼진 현대 중국에 대한 광범위한 적대감을 이용해 자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과거사를 덮으려 하는 일본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다.[9] 즉, 위에서 언급했듯 일본인들이 군국주의와 전쟁보다 자유민주주의와 평화 속에서 더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야 다시는 침략전쟁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판단이었다.[10] 예전에 '마르코 폴로'라는 일본의 한 극우지가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대놓고 싣다가 미국의 각종 유대인 권익단체의 집중포화를 맞고 잡지 자체가 폐간된 전례가 있다. 그렇다고 일본의 반유대주의 기반 세력이 죽은 건 아니고 음지에서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리처드 코시미즈라는 필명을 쓰는 코시미즈 타다시라는 반유대주의 기반의 음모론 컬럼니스트(#일본어 위키백과)가 '독립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서 반유대주의, 안티 통일교 / 창가학회, 안티 부라쿠민, 도호쿠 대지진HAARP 등에 의한 인공지진이라는 논조로 활동하고 아베 신조조차도 PTB(Power That Be, 음모를 일으키는 주체)의 꼭두각시라면서 비난한다. 물론 이들의 현실은 일본 유신회(2012년), 모두의 당 같은 2군급 극우정당보다도 인지도가 한참 딸리는, 일본제일당에 간신히 비빌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듣보잡이다.[11] 지도부에서 절멸을 목적으로 절멸수용소를 짓고 행정적인 선별절차와 학살 매뉴얼을 만든 사례는 홀로코스트가 거의 유일했다. 반면 일본군의 범죄는 대체로 즉흥적이었고, 조직적 차별•수탈은 있었지만 민족의 멸절을 목적으로 둔 인종청소는 없었다. 행정기관의 조직적 개입만을 두고 보면 일본군 위안부731부대가 그나마 비슷하지만, 어쨌든 이것도 특정 인종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살인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에 제노사이드가 아니다.[12] 매년 8월 15일 즈음이 되면 일본의 미디어들은 일제의 침략으로 희생된 다른 아시아인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오로지 미군의 본토 공습과 원폭에 따른 일본인 희생자들만 강조하면서 추모 분위기를 조성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평범한 일본인들은 당연히 일본이 침략자, 가해자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13] 물론 애초에 군국주의, 전체주의에 속거나 굴복한 일본인들 또한 개죽음 당한 건 똑같다.[14] 독일의 경우에도 드레스덴 공습 등 자국민의 피해를 강조하는 것은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일례로 1992년 아서 해리스 동상 제막식 당시 많은 독일인들이 영국을 비난했다. 그러나 독일은 그 전에 나치가 먼저 침략전쟁과 전쟁범죄를 일으켰음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성찰한 다음 자국민 피해를 논하기 때문에 피해자 코스프레의 논란에 잘 휩싸이지 않는다.[15] 비록 일본군 역사상 가장 많은 전과를 거둔 중일전쟁 전선이었지만 여기에서마저도 전투는 이기나 전략은 형편없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전쟁에서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도 대륙 정복에 미련을 못 버리고 계속 중국 내륙으로 진출하는데에만 집중한 나머지 귀중한 전쟁물자를 쓸데없이 까먹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평양 전쟁이 수세에 몰릴 때조차도 계속 내륙 철도선을 유지하느라고 안간힘을 썼는데, 별 이득도 없으면서 전력을 넓은 영토에 분산시키느니 차라리 후퇴해서 중요거점인 항구도시에만 틀어박혀서 방어했으면 중국군도 효과적으로 막고 전쟁 물자와 병력 낭비도 막을 수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상대가 하필이면 미국이라 결국 패전은 기정사실이었지만 말이다.[16] 베트남 전쟁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웬만한 규모의 국가를 침략할 시 민간인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 시점에서 끝장이다. 하물며 인구 수로 일본을 크게 압도하는 중국을 상대로 그런 행각을 보인 이상 승전은 물거품이 되었다.[17] 일본은 항복 조건으로 천황제 유지, 일본의 자체적인 비무장과 전범재판, 식민지 유지 등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걸었다. 간혹 천황제 유지를 두고 조금이나마 일본이 '조건부 항복'에 성공했다고 착각하기 쉬우나 전후 천황제 유지는 미국의 자체적인 정치적 판단이었지 미국이 일본의 조건을 승인한 것이 아니다.[18] 헐 노트와 펄 판사 이 두 가지가 일본 우익의 만능 방패이다.[19] 대한민국반민특위제2공화국 시기의 제 4차 개헌이 비판받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20] 그리고 일단 일본도가 3명을 베면 날이 나가버리는 검이었다면 진작에 버렸다. 당연하겠지만 일본도 전쟁이 많았다. 중국, 한국과는 달리 외침은 꼴랑 두번이었지만 내전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 사용되기 전엔 , 이 제일 많이 쓰이는 무기인데 꼴랑 3명 베면 날이 나가버리는 검 들고 나간다고 치자 당연히 망한다. 무기가 틈나는 대로 망가져 교체해야 하는데 이게 다 이다. 무기를 지휘관이 나눠준다면 지휘관으로서는 주머니 비는 일이라 차라리 무기 개량에 힘쓸것이며 무기를 개인이 직접 마련한다고 쳐도 개인은 3번쓰고 버릴 검 대신에 활같은것을 기를 쓰고 구하려 들던가(활은 화살만 있고 활줄만 멀쩡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아니면 어떻게든 일본도를 개량했을것이다. 전쟁통에서 믿을건 무기뿐인데 그 무기가 3번 쓰고 버리는거라면 3명을 죽이면 그 다음은 죽는다.[21] 물론 일본도는 후에 서양식을 받아들여 변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다른 나라 것을 보고 모방해 만들 정도면 실전용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3번 쓰고 버릴 검 만들자니 그 비용으로 4번 5번 쓰고 버리는 검 만드는게 더 효율적이고 더 좋은 방법은 영구적인 검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꼴랑 3번 쓰고 버리는 검을 계속 만든다는건 칼날에 쓰일 철 낭비 손잡이 만들 재료 낭비 그야말로 낭비 그 자체다. 그 시기의 일본군이 개막장이긴 했지만 쓸데없이 돈이나 쳐먹는 무기'를 계속 만드느니 그 돈으로 더 좋은 검 만드는게 더 효율적임은 그쪽도 알았을것이다. 한 사례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해군이 육군 때문에 귀중한 잠수함만 날려먹는다고 불평하자 육군은 할 수 없이 자체적인 잠수함 제작에 나섰는데 의외로 개발 진행이 잘되어서 잘되면 잘되는대로 못되면 못되는대로 해군 망신살까봐 할 수 없이 육군의 잠수함 개발을 도왔다. 일본군은 병신 집단이나 다름없고 특히 앞서 말한 육군용 잠수함은 그 병신의 결정체나 다름없음에도 해군이 '육군이 잠수함을 잘 만들면 망신 살것에' 우려했다는것은 그래도 이놈들이 무기는 좋은걸 써야 한다는 인식쯤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 정도 판단도 없으면 육군이 잠수함을 잘 만들든 말든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22] 사진 상의 일본군도는 양손세이버구군도이다.[23] 이유는 평화선 선포로 인해 평화선 안에 오는 어부들을 배척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독도로 온 이들은 아예 잡아다 수용소에 집어넣었을 정도니.[24] 당시 세카이 紙에서 일본 소학교에 다니는 저학년과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설문조사한 것이 있는데, 저학년층에서는 한국인에 관련된 자료들을 보여주면 신기해하며 나쁘지 않게 바라보지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부정적인 인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한다.[25] 일본 우익들은 민주화 이후의 한국을 더 예측 가능한 대화 대상으로 간주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적어도 민주화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 물론 우익들이라고 민주화 이후 한국 대통령들에 딱히 우호적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의 반일적인 정책들을 싫어할 뿐 민주주의 자체를 나쁘게 보지는 않으며, 김대중이나 초기의 이명박처럼 일본에 유화적으로 접근했던 대통령들은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반면 극우들은 현실적인 한일관계에 대한 고려보다는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에서 일본 제국 시절의 향수를 찾는 면이 있기 때문에,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 대통령들에겐 기본적으로 패시브부정적인 판단을 깔고 간다는 의견도 있다.[26] 일례로 '반 마코토'라는 필명을 쓰는 극우사관론자가 노무현 집권 당시 쓴 서적으로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광란 발언록>이라는 책이 있는데 표지 삽화에서 노무현이 엘비스 프레슬리 삘나는 히어로 코스츔을 입고 있으며 가슴팍에는 인공기 문신이, 어께에는 한글로 '새빨간 히어로'라는 글자가 들어가있다. 그리고 한 손에는 성조기를 불태우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장막 뒤에 김정일이 흘끗 쳐다보는건 덤이다. '노무현 추장'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을 (남)조선추장이라고 불근신하게 호칭하는 풍조가 시작된 것은 덤.[27] 이게 마냥 우연의 일치도 아니고 실제 일베에 영향을 미쳤다. 유유상종[28] 이는 당시 일본이 민주당 집권 시기였던 점도 연관이 있어보인다. 즉, 극우파들이 혐오하는 일본 민주당 세력보단 이명박이 낫다는 식. 친한적인 행보를 보이던 당시 민주당을 남한 간첩이라고 욕하던 수준이니 말 다했다. 즉, 이때가 민주당 시기가 아니었다면 극우들은 이명박 역시 6공 대통령들 수준으로 비난했을 것이다.[29] 노무현은 일본과 외교적인 현안에서 부딪힐 땐 부딪혀도 일본 방송에 출연해 대담도 하는 등 상호 이해를 중시했지만, 문재인은 대놓고 일본을 적대하는 노선을 취했다고 그들 기준 인식하는 편이다.[30] 일본 제국을 이상향으로 여기고, 강력한 국가권력과 보수적 사회관, 정경유착, 정부의 계획과 통제에 따른 성장 모델, 제국주의적 대외관 등을 지향하는 전통(?)주의자들.[31] 이념적인 스펙트럼이 불분명하고 민족주의 내지는 국수주의적 요소로 현실에서의 불만을 이웃 국가에 대한 무시로 푸는 사람들.[32] 이들은 일본 내 기성 우익으로부터는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겉도는 부류로서, 일본 자민당 등 기성 우익과 넷 우익들의 관계는 대략 미국의 공화당대안 우파의 관계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한국인 대다수의 시점에서 볼 때 일본 넷 우익들이나 일본 내 기성 극우세력들이나 한국에 대한 부정적 관점은 별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 강하다.[33] 이러한 시각은 냉전 시기 형성된 한미일 공조 체제에 의한 것으로 이들은 북중러로 대표되는 내륙 공산세력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한일 공조가 필수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들이 말하는 방식의 한일 공조라는 것이 일본 주도의 한일 공조로서 요약하자면, "우선 한국은 일본에 고개를 숙이고 최소한 암묵적으로나마 일본이 한국의 '상국'임을 인정하라"는 것. 어차피 미국과도 굳건한 동맹관계를 가져서 크게 아쉬울 것도 없는데다가 과거 일본에게 식민지로서 휘둘려지고 능욕당한 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진 한국 입장에서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인 것.[34] 물론 혐한 성향이 없는 일본인을 포함한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다. 애초에 국제적인 공감대가 퍼진, 한국 사회의 몇몇 문제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아닌 자기들만의 생각과 편협한 쇼비니즘에 기반한지라... 다만 가끔씩 고퀼로 나오는 자료들은 상당히 교묘하게 일본 극우세력 측의 입장을 선전하고 있는지라 아시아 역사나 정세에 별로 관심 없는 서양인들에겐 꽤 효과가 있는 편이라는 것이 우려스러운 점이다.[35] 즉 한국전쟁때와는 다르게 전쟁이 일어나면 군수물자 생산용 공장을 가동해서 군수물자를 생산하는것은 한국도 할 수 있다는 얘기. 다른 말로는 일본이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한국전쟁 때보다 적어지거나 없어진다.[36] 주로 한국이 일본의 부품을 사는 형태. 최근에는 대중국 무역의 중요도 증가로 의존도가 점점 줄고 있다.[37] 한국과 일본의 지리적 거리는 상상 이상으로 가깝다. 당장 각국의 수도인 서울과 도쿄까지의 거리가 1150km정도이고, 부산과 대마도의 거리는 겨우 50km 정도 뿐이다. 이 정도면 불침항모 수준이 아니라 상륙작전도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거리다. 그 옛날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이 일본 침공을 시도했을 때 고려를 꼭 개입시켰던 이유가 단순히 자기들이 해전에 약해서만이 아니다.[38] 어찌저찌 이길 수 있더라도 그 미국조차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전비가 미친듯이 깨진다는 것이 옳다. 아무리 천조국인 미국이라도 재정이 무한대인 것은 아니기에, 전비가 미친듯이 치솟으면 자연스레 반전여론이 형성되게 되며, 미국은 여론에 의한 압박에 약한 국가이다. 괜하 트럼프가 블러핑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했을 때, 틸러슨을 포함한 참모들이 곧바로 트럼프를 뜯어말리고 한국을 안심시키려고 립서비스를 한 것이 아니다.[39] 다만 대만은 양안관계에서도 알 수 있듯, 아예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라며 집착할 정도로 중국 입장에서는 합병 0순위인지라 한국과 북한이 사이좋게 먹힐 정도면 이미 오래전에 중국에 잡아먹힌 상황일 것이다.[40] 이들이 사상이 이렇게 된 이유는 이들의 사상적 바탕이 국제 정세나 일본의 정치적 역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심도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일본 버블경제 붕괴로 인한 장기간의 침체와 그와 대비되는 한국과 중국의 부상에 대한 불안감과 열등감, 그리고 자기들이 갖고 있던 되도않은 우월의식과 정반대인 현실 상황에 대한 분노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중장년 넷우익들은 아직도 한국과 중국을 1960~70년대에 국제지원을 받던 개발도상국이자 최빈국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두 나라가 급격히 성장해서 일본을 압도하거나(중국), 최소한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는(한국) 수준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거기에 중국의 경우는 일본 혼자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해서 미국에게도 대놓고 시비를 걸어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는 센카쿠 분쟁 당시 중국인 선장이 일본 해상보안청에 억류되었을때 일본 정부가 중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중국인 선장을 석방시켜주었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41] 물론 일본의 국뽕튜브일본회의에서는 이런 불편한 진실은 절대로 이야기해주지 않는다.[42] 이러한 시각은 무려 고대 시절의 일본서기에서 나타나는데, 일본이 백제로부터 한자를 전수받은 것을 "일본이 백제에 명령해서 중국인 박사 왕인을 초빙해 일본을 가르쳤다"고 왜곡했다. 당시 백제는 일본보다 훨씬 먼저 중국 문물을 수입했기 때문에 겨우 한자 가르칠려고 중국 박사까지 초빙할 이유가 없다.[43] e.g. 중국, 러시아.[44] 심지어는 아예 한자 등의 여러 문화들과 문물은 사실 일본이 원조이고 중국과 한반도에게 전수했다는 더 정신나간 역사 왜곡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런 역사 왜곡은 일본에서도 소수로 존재한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45] 일부 극우는 원자탄 두방을 맞은 것도 자랑스러워 한다. 다른 나라는 원자탄을 쏴야할 가치조차 없지만, 일본은 원자탄을 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존재로 인정받았으며, 원자탄은 최고의 적수에 대한 최고의 필승법이니 미국은 최강의 적에 대한 예우를 해준 것이라는 논리이다. 원폭 피해자들이 알면 경을 칠 논리다.[46] 일례로 식민지 조선에서 일제강점말 상당수의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종사자들에게 강제 신사참배를 하도록 굴복시켰다. 그래도 소수의 저항자는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47] 와콘 혹은 야마토다마시이.[48] 실제로 레딧에 '아시아인들은 서로를 같은 인종이라고 생각하나?' 라는 주제로 대화가 열렸을 때, 일본인이 뜬금없이 '일본은 아시아하고는 다르다.' 라는 댓글을 달아 전 세계의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탈아입구적인 주장을 늘어놓는 그 일본인을 향해 여러 서양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너도 그냥 동양인이다.' 라며 팩폭을 시전했음에도 끝까지 일본은 아시아와는 다르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즉, 탈아입구 사상은 이미 일본인들 머릿속에 깊게 뿌리잡힌지 오래다. 유럽은 지리상으로 본인들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아서인지 오세아니아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는 2010년대 기준으로 오세아니아가 아시아보다 더 선진적으로 보일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실로 정체불명의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즉, 어찌 되었건 무조건 아시아만은 싫다는 얘기인데, 매우 비이성적인 혐오감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혹은 오세아니아를 호주와 뉴질랜드와 같은 나라만 있는 곳으로 생각하고, 일본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걸지도.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호주와 뉴질랜드 또한 그럴 듯한 산업화를 이루어 성공한 나라들이 아니라 천연자원 및 1차 산업 등으로 성공한 사례들이기에 영 이상하기만 한 사고방식인 건 변하지 않는다.[49] 성노예의 강제 징집 여부를 떠나서도 이 영상 자체만으로 이미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성노예들은 현장에서도 군 기밀에 노출될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패퇴하는 중이더라도 굳이 모두 처형할 이유가 없다. 사실상 패전이 임박하자 결국 정신줄을 완전히 놓고 저지른 만행이다.[50] 이는 전국시대 일본에서 벌어진 전쟁의 방식이 '영주가 잡히거나 죽으면, 잔존 병력의 수에 상관 없이 무조건 영주를 잃은 쪽이 패배.' 였기 때문이다. 당시 영주는 전쟁에서 패배하더라도 끝까지 성을 버리지 않고 싸우는 것아 당연시 되었기 때문에, 영주만 손에 넣으면 해당 성을 얻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전국 시대 영주에 비견되는 장성급을 유독 따지는 것이며, 과거 임진왜란 때도 자기네들 싸우던 대로 '임금(선조)만 잡으면 되겠지.' 라고 지레짐작하고 도성인 한양까지 초고속진군을 했다가 선조가 의주까지 몽진을 가는, 일본군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사태가 터지면서 당황했다가 정비를 마친 조선과 명에게 역관광당했다.[51] 명량 해전에서의 서해 진출은 시작일 뿐, 진짜 목적은 서해에 진출해 보급을 원활히 하고 조선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태평양 전쟁에서의 천황제 유지는 마지막 까지 몰린 뒤의 최후의 선택이었다. 원래의 목적 수준을 감안하면 참패 그 자체다.[52] 좌측 하단의 추천서적 목록 밑을 드래그하면, 히든 링크 두개가 나오는데, 하나는 <헌법 자민당 개정안>에 대한 비판론을 반박하는 블로그이며, 하나는 색맹 작사가 '색맹을 위한 마작패 고안' 등 색맹을 위한 마작에 관해 논하는 블로그인데, 해당 마작사가 실질적인 블로그 주인 혹은 그 지인으로 추정된다.[53] 관련 교수들의 학술주장 말고도, 1926년 미국의 행정학자 얼레인 아일런드가 펴낸 <The New Korea>(한국에서는 <일본의 한국통치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번역됨. 상술한 신시아 리가 큰 감명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책이다.)의 원문 초반도 전재되어있다.[54]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아예 워닝이 뜬다.[55] 단, 트루먼 독트린이래 정립된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과의 안보 우호 질서에 들어간 주류 우익(ex.자민당)에는 논외. 물론 이쪽은 미국이나 서방에 대한 감정은 (케이스 바이 케이지만) 대체로 양가감정적이다.[56] 이쪽은 5ch 같은 넷 언더그라운드 커뮤니티를 제외하면 인터넷상에서 우익사관을 전파하는 데 선봉에 선 사이트 중 하나다. 특히 대한민국중국, 미국, 홍콩 관련 문서는 부정적인 방향의 왜곡이 심하다. 그러나 대만 문서는 오히려 지나치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어서 친일적인 대만인이라도 손발이 오그라들 법한 서술이 많다.[57] 일본 극우사관의 시초가 일본식으로 내재된 중화사상이라는 설이 있다.[58] 1945년 이전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이 일본 제국 해체 후 잔재가 된 사상이 일본 극우사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