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06:35:05

신오쿠보역 승객 추락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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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c002d><colcolor=#fff> 신오쿠보역 승객 추락사고
新大久保驛乘客墜落事故 / 新大久保駅乗客転落事故[1][번역]
발생일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발생 위치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햐쿠닌초1초메 10-15, 신오쿠보역
(東京都新宿区百人町一丁目10-15, 新大久保駅)
유형 추락사고, 인신사고
원인 취객 구조 중 열차와 충돌
인명피해 <colbgcolor=#bc002d><colcolor=#fff> 사망 3명
부상 0명
재산 피해 -

1. 개요2. 전개3. 사고 이후4. 추모5. 추모비6. 추모작7.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

[clearfix]

1. 개요

2001년 1월 26일 JR 동일본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추락한 취객을 구하던 사진사와 한국인 유학생이 열차에 치여 숨진 사고이다.

2. 전개

2001년 1월 26일 금요일 오후 7시 15분경 JR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취객 사카모토 세이코(坂本成晃)가 열차 선로로 추락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은 열차를 기다리다가 이 광경을 보자 다음 열차가 접근 중임에도 바로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렸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도 취객을 구하고자 함께 선로로 뛰어내려 빨리 구조를 시도했지만 열차가 너무 빨리 오는 바람에 세 사람은 모두 선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치여 사망했다.

야마노테선의 배차간격은 2분 30초~3분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죽음을 피할 수 있는 7초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굽은 선로로 들어오면서 70m 앞에서야 기관사가 추락 사고자를 발견하고 긴급제동을 취하였다고 한다. 이때 마음만 먹으면 2~3초 만에 본인들만 선로 밖으로 피할 수도 있었지만 이수현과 세키네 시로는 마지막까지 사고자를 구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기관사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피하지 않다가 결국 숨졌다. 이수현의 아버지가 사고 현장에 찾아왔을 때 당시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와 신오쿠보역장[3]이 증언한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를 들은 고인의 아버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3. 사고 이후

사고 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진 곳은 이수현이 다니던 아카몬카이 일본어학교였다. 당시 교장 아라이 토키요시는 바로 신주쿠 경찰서에 전화하고 시신 안치소를 찾아갔고 시신을 확인한 뒤 큰 충격을 받았는데 시신의 손상이 심해 본인인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교장이 "얼굴을 만들어 주세요. 이 상태로는 부모님께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부탁했을 정도였기 때문에 안면 수복 작업이 이루어졌다.[4]

아라이 교장은 부산 사무소에 전화해서 사망 소식을 전하고 다시 여기서 가족에게 연락이 갔다. 차마 부모에게 사망 소식을 바로 전할 수 없어서 사고를 당해서 크게 다쳤다고만 했는데 아버지는 이때 이미 이상한 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 시각이 새벽 2시 반이었는데 급하지 않은 경상이었다면 날이 밝은 뒤에 연락해도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계속 전화를 해 봤지만 물론 연결은 되지 않았다.

다음날인 1월 27일 나리타 국제공항으로 일본에 도착한 부모는 수많은 기자가 몰려온 것을 보고 당황했고 그때 비로소 사망 소식을 알게 되었다. 하필 그날 눈이 많이 와서 공항에서 신주쿠까지 오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

학교에서는 학교장으로 치르겠다고 제안했고 부모도 감사하게 받아들여 학교 차원에서 장례가 치러졌다. 정말 성대하게 치러졌고 조문객도 매우 많았는데 그 모습이 유족들은 정말 고마웠다고. 어머니는 '학교 측에서 이렇게 해주니까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 정신을 놓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는데 그게 정말 신기했다고 한다.

유해는 1월 30일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해 자택 근처의 사찰인 정수사에 안치되었고 4월 9일 부산영락공원 안에 있는 공동묘지(7묘원 39블록 1106호)에 안치되었다.[5] 이후 정부에서 의사상자로 선정하고 국민훈장을 수여하였으며 고려대학교에서 명예 학사를 수여했다.

이 사건은 일본 열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일본에서 한국 유학생이 생전 남남인 사람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은 일본인에게 충격을 주었고 좋지 않던 한국인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사건 이후 일본에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는 사례가 줄을 이었고, 2006년 5월 21일에는 같은 역에서 당시 한국인 유학생 신현구 씨가 선로에 추락해 다친 여고생을 구하기도 했다.[6]

유족들에게도 전 일본에서 조의금과 성금, 위로의 편지가 답지했다. 일반인들뿐 아니라 각종 언론사, 방송사에서도 회사 차원에서 한 모금이 도착할 정도였다. 유족들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이에 답하는 길은 자신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한국어 위키백과 신오쿠보 역 승객 추락 사고 문서에 정리된 내용을 토대로 하면 추락 지점이 하부에 도로[7]가 통과하는 교량 부분이었고 선로 양 옆으로 교량 구조물이 높이 올라와 있어서 옆에 있는 사이쿄선쇼난신주쿠라인통과하는 선로로 건너갈 수 없었다는 점이 이런 사고를 일으켰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JR 동일본은 이 사고의 원인이 술 때문인 것으로 규정하고 2005년까지 역 구내 매점에서의 주류 판매를 금지했다.

이 사건 이후 승강장 추락 방지 대책 마련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일단 각 철도회사에서 승객추락 긴급제동장치를 개발했고, 이후 스크린도어 설치에 적극 나서게 된다.[8]

4. 추모

기일마다 고향인 부산[9]에서 추모 행사가 열리며 일본에서도 계속 찾아온다. 이수현이 다니던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서도 매년 추모 행사가 학생회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매년 추모 행사를 하는데 2011년이 마지막 공식 추모 행사가 될 것이라고 했으나 아무래도 추모 행사는 계속 진행되는 모양이다. 2013년에도 행사가 열렸다. 2016년에도 행사가 열렸으며 앞으로도 학생회 차원에서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이수현의 이름을 딴 'LSH아시아장학회'가 설립되어 2002년부터 현재까지 일본어학교에 다니는 아시아 각국의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유족들은 이 돈은 '우리가 받은 돈이 아니라 사람들이 수현이에게 준 돈'이라고 생각하고 수현이가 못다한 공부도 있으니까 사적으로 쓰지 않고 아들의 의지를 이어가는 게 자신들의 앞으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라이에게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맡긴 데서 시작된 것이었다. 20주기인 2021년에 이 장학금을 지원받은 사람이 1,000명이 넘어섰다.

장학회 관계자들은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자라서 운영비가 거의 들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기부금이 거의 전부 장학금으로 쓰일 수 있다고 한다. 시작은 조의금이었지만 그 돈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니고 많은 사람의 후원으로 장학금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2016년 기준으로 2,500만엔 정도가 모금되었다. 8,500여명에 달하는 후원자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한류 팬들, 소식을 듣고 감동한 사람들도 있었고 유명인 중에는 역도산의 부인도 있다고 한다.[10] 일본어학교 학생을 위한 장학금이 생겨난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신오쿠보역에서도 추모는 계속되고 있다. 2010년 1월 26일 오후 7시 16분, 사고가 발생한 신오쿠보역의 신주쿠 방면 승강장에서 LSH아시아 장학회를 중심으로 묵념의 시간을 가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이수현을 기리는 기념비가 신오쿠보역에 생겼다.

이수현의 부모도 일본에 자주 가고 있다. 추모식은 물론이고[11] 그에 대한 극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다큐멘터리 <가교>의 시사회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일본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부교재에 이수현의 이야기가 실렸고 이 부분에 대한 수업이 참관수업으로 이루어질 때도 한 학교가 초청하면서 참석했으며 수업이 끝난 후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하였다. 아들의 이야기가 교과서에 실린 것, 초청을 받은 것, 학생들이 다들 진지하고 집중해서 들어준 모습에 대해서.

LSH재단 장학금 수여식에도 간다. 이렇게 일본에 자주 가는 것에 대해 사고 1주기 때 일본에서 출간된 책 <이수현 씨 당신의 용기를 잊지 않아>의 저자에게 '일본에 수현이가 있다', '수현이를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작가는 부모에게 '일본=수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한일 양국의 언론들에서 크게 다루어진 유명한 사건이었으며 수많은 일본 시민들은 물론 일본의 국회의원, 각 부처 장관[12]들을 비롯한 여러 내각 주요 인사들과 당시 일본 총리인 모리 요시로가 장례식에 직접 조문을 오기도 했다. 이수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일본에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기도 하였고 이후 일본에 한류 열풍이 불어닥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이수현을 가르쳤던 아카몬카이 일본어학교 교사이자 이후에도 그의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자주 하는 교사는 이를 '하나의 밀알이 떨어져서 큰 밭이 되는 것'에 비유했다. 그가 죽었지만 밀이 되어서 커다란 것을 남겼다고 한다.

2001년 일본 국토교통성이 이수현에게 감사장과 은배를 수여한 데 이어 일본 내각도 이수현에게 목배(한국의 훈장에 해당)를 수여했으며 2015년 4월 25일에는 이수현의 부친 이성대가 긴 시간에 걸쳐 '한일 양국의 우호, 친선과 상호 이해의 촉진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쌍광장을 받았는데 본인에 대한 전달식은 6월 16일 부산 일본 총영사관에서 이루어졌다. 아버지가 상을 받고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아들의 묘소라고 한다. 상을 올려놓고 '아들아 고맙다. 아들 공적을 내가 나눠 가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하며 미안했지만 '아들 훌륭했다, 아들이 참 좋은 일 많이하고 다 칭찬하는데 하늘나라에서라도 편하게 잘 지내라, 아버지가 곧 조금만 있으면 너 곁으로 갈 것이다'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그는 4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지하철 의인 이수현’ 18년째 잊지 않는 일본 2019년 3월에는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의인 이수현의 부친 이성대가 사망한 것과 관련해 조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2019년 10월 22일에는 이낙연 제45대 국무총리가 나루히토 덴노 즉위식 행사에 참석한 뒤, 이 역을 찾아 추모비에 헌화를 했다. 이총리, '한일 의인' 이수현 추모…"인간애는 국경도 넘는다"

2021년 1월 26일에도 20주기를 맞아 추도식을 거행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영향으로 인해 이수현의 어머니는 참석하지 못했다. 20주기를 맞아 신오오쿠보 인근의 상점가에서도 추도식을 진행하였다.

5. 추모비

파일:신오쿠보역 추모비.jpg
일본어 한국어
カメラマンの関根史郎氏、韓国人留学生の李秀賢氏は、2001年1月26日午後7時15分頃、新大久保駅において路線上に墜落した男性を発見し、自らの身の危険を顧みず救助しようと敢然と路線に飛び降り、 尊い命を落とされました。

両氏の崇高な精神と勇敢な行為を永遠にたたえ、ここに記します。

東日本旅客鉄道株式会社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씨는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신오오꾸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위험을 무릅쓴채 용감히 선로에 뛰어들어 목숨을 구하려다 고귀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두 분의 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자 여기에 이 글을 남깁니다.

동일본 여객철도 주식회사
이 사고를 기리는 의미에서 JR 동일본에서는 의인 이수현과 세키네 시로의 가족에게 감사패를 수여하였으며 신오쿠보역에는 위령비가 설치되어 있다. JR 동일본 홈페이지에도 추모글이 올라와 있다.

파일:20190326_085657841_71249.jpg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 있는 이수현 추모비. 과학기술2관과 미래관 사이 주차장 옆에 위치해 있다.

부산어린이대공원 내 학생교육문화회관 앞뜰과 고인의 모교인 낙민초등학교, 동래중학교, 내성고등학교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6. 추모작

  • 2002년 5월 앨트웰에서 그의 이타주의를 통한 기업정신을 배우겠다는 취지로 그를 모델로 한 기업PR 광고를 방영하기도 했다. 광고수익은 모두 유가족에게 지급되었다.[13]
  • 체리필터 2집 'Made in Korea?'의 수록곡 '갈매기 조나단'은 그를 기리기 위한 추모곡이다. 이수현은 체리필터의 기타 정우진과 드럼 손상혁의 2년 선배[15]로 고려대 세종캠 스쿨밴드 '무단외박'에서 함께 했다고 한다. 2011년 일본의 밴드 안전지대와 한국의 랩퍼 더콰이엇이 함께 STEP이라는 추모곡을 만들었다.

7.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

  •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에는 이 사건을 두고 고인을 진화한 신인류라고 평가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국적이나 인종을 고려하지 않고 희생정신을 발휘한 고차원적인 사고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 영화 '부도리의 꿈' 프로듀서인 시미즈 요시히로는 인터뷰에서 부도리의 모티브가 이수현이라고 밝혔다.
  • 만화 간츠의 앞부분도 이 드라마틱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듯하다.


[1] 일본어 위키백과의 표제어.[번역] 신오쿠보역 승객 전락사고[3] 열차 선로에 침목을 놓는 일을 한 경험이 있었다.[4] 시신을 확인했을 때 어머니는 부정했는데 아버지는 수현이가 맞는다고 확인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부둥켜안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본 교장은 십수 년이 지나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고 다큐멘터리 <가교(かけはし)>에서 회상했다.[5] 그는 이론상 개정된 법률에 의해 국립대전현충원 이장 대상이다(사망 당시에는 의사상자 묘역이 없어서 안장 대상이 아니었다). 여러 사정 때문에 이장하지 않은 듯하다.[6] 우연의 일치인지 신현구는 이수현이 다녔던 아카몬카이 일본어학교에 다니던 중이었다. 일본에 오기 전에는 롯데월드에서 제네바 유람선 항해사로 일했는데, 이 당시 잠실역에서 퇴근하던 중 소매치기범을 붙잡아 TV 뉴스를 타기도 했다.[7] 도쿄도도443호. 신오쿠보 한인타운의 중심 도로이다.[8] 해당 이유가 지분을 차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야마노테선 전용 승강장에는 시부야역신주쿠역을 빼고는 전부 스크린도어가 깔려 있다.[9] 이수현의 출생지는 울산광역시지만 생애 대부분을 부산광역시에서 지냈기 때문에 사실상의 고향이다.[10] 역도산 역시 한국 출신이라 남편이라면 돕고 싶어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11] 2019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어머니 혼자 참석하고 있다. 2021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12] 일본에서는 대신(大臣)이라고 쓴다.[13] 이에 앞서 홍제동 화재 사고 순직 소방관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김철홍을 모델로 한 광고를 방영한 바 있다.[14] 아베 신조의 부인이다. 아베 신조는 2006년 당시 일본 90대 총리로 재임 중이었다.[15] 이수현은 93학번, 정우진, 손상혁은 95학번[16] 고인과 이름은 다르지만 나이는 같다.[스포일러] 작중에서는 이 사진작가가 주인공 요노스케다.[18]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이 일어난 신오쿠보역(JY-16)요요기역(JY-18)은 모두 야마노테선 신주쿠역(JY-17)을 기준으로 한 정거장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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