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항공이 신규 도입하는 에어버스 A380의 시험 비행을 마케팅으로 활용하기 위해 독도 인근 공역에 시범비행을 한 사건. 이는 비슷한 시기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과 함께 한국 - 일본 간 외교분쟁으로 비화되었다.2. 독도 시범비행
에어버스 A380는 기존 보잉 747의 기록을 깬 사상 최대의 여객기다. 이런 여객기를 투입하는 것은 충분히 역사적인 일이므로, 대한항공 측은 정식 영업운행에 앞서 마케팅 차원에서 시범비행을 기획하였다. 이후 대한항공에 처음 인도된 A380인 HL7611이 2011년 6월 16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하여 독도 상공까지 갔다가 돌아왔다.#3. 일본의 비난
2011년 6월 24일 일본 외무상인 마쓰모토 다케아키가 대한항공의 A380 시범비행 중 독도 상공을 지나간 것이 일본 영공을 침공한 것과 같다며 항의했다.#그리고 외무성이 직원들에게 대한항공 불매운동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런 일로 불매운동까지 하는 것은 보호무역에 근접하는 조치로 매우 드문 조치였는데 일본 측 주장에 따르면 보호무역에 걸리는 건 없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당연히 엄중한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
4. 일본 국회의원의 울릉도 항의방문 시도, 그리고 추방
4.1. 과정
2011년 8월 1일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우측의 아나운서는 배현진 국민의힘 현 국회의원(지역구: 송파구 을).
2011년 7월 30일 일본 자민당의 신도 요시타카, 이나다 도모미, 사토 마사히사, 히라사와 가쓰에이 의원 네 명[1]이 독도는 일본령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울릉도를 시찰한다고 선언했다. 이 중 히라사와 가쓰에이 의원은 개인 일정 때문에 합류하지 못하고 나머지 3명은 실제로 입국을 시도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출입국관리법 제11조[2]에 준거하여 입국 거부 조치를 시행하려고 했는데 이들의 행위가 실질적으로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인정받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의 국회의원에 대한 입국 불허 조치가 불러올 파장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우회적으로 입국 불허 방침을 주한일본대사를 초치하여 통보하였으며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조치가 정당하다고 언급했다. 참고로 입국 거부는 대한민국의 정당한 주권 행사다. 자민당 의원 4명은 외교 협조방문도 아니고 관광비자에 준하는 단기방문(90일 체류가능)이며 목적에 맞지 않는(정치적 목적) 입국시도이므로 입국심사대 직원은 정당한 공무를 수행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은 한국에 입국할 자국 국회의원들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 보장을 요구하였고 이에 더해 사토 마사히사 의원은 "안전상의 문제를 사유로 들어 입국을 불허하는 것은 통치·치안능력이 불충분하다고 발표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즉 한국이 일본 국회의원을 입국 금지하는 사태에 대한 정치적 파장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게끔 압박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입국 거부를 강행하고 이명박 대통령도 일본에 방문하는 것을 취소하기로 했다.#
2011년 8월 1일 일본 극우 역사가 시모조 마사오가 선발대로서 먼저 입국을 시도했으나 입국 거부 조치를 받고 일본으로 다시 돌려보내졌다. 입국 금지 사유는 대한민국 영토를 부정하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입국했기 때문이다. 유신정당 신풍 소속 정치인 스즈키 노부유키와 무라타 하루키도 입국 시도를 했으나 입국 거부를 당했다.#
자민당 의원들은 그날 11시 10분쯤 서울에 도착했으나 오자마자 입국 금지 조치를 받았지만 "우리가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무슨 근거로 한국 국경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출국을 거부하면서 출입국심사관과 실랑이를 벌였다.# # #
그러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소속 출입국심사관들의 "이번 비행기 안 타면 일반 불법체류자나 밀입국자들과 같은 방에 넣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자 바로 꼬리 내리고 오후 8시 10분 마지막 도쿄행 비행기를[3] 타고 귀국하였다.[4]#
놀랍게도 이들은 점심으로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면서 비빔밥을 김포국제공항에서 먹었으며 귀국 비행기 탑승 직전에는 수행원에게 김을 사오라고 했다. 결국 이들이 한 거라고는 일본 국민의 혈세로 김포국제공항에서 관광 와서 비빔밥을 먹고 김을 사서 돌아간 것밖에 없다.# #
이후 자민당 의원들이 입국한 같은 날 산케이 신문 기자와 카메라맨 1명이 울릉도에 입도하여 독도 박물관과 근처 독도에 방문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튿날 일본인들의 울릉도 입도가 금지되기도 했다. 이들이 촬영한 동영상은 니코니코 동화 등지에 올라와서 혐한초딩의 열화와 같은 성화를 받았다고 한다.[5]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관련으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동정 무드가 형성되었다가 급속도로 식은 건 말할 것도 없다.
4.2. 일본이 보인 반응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이 이 입국금지 조치에 크게 반발했는데 이 사람은 도호쿠와 후쿠시마에서 격무를 했던 점으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마쓰모토 다케아키 일본 외상은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하여 항의하였다.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과 시마네현 지사도 한 마디 보탰다.# #
그리고 일본 국회의원들은 앞다투어 자기들도 울릉도에 가겠다고 나서면서 일본의 정기 국회가 끝나는 2011년 9월에 출발하겠다고 하였지만 한일관계가 굳어 책임이 돌아올 것을 우려한 자민당 지도부가 입국금지를 당한 의원 세 명을 공개 비판을 하고 나섬에 따라 그럴 가능성이 대폭 줄어들었고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2011년 9월 이후 일본 의원의 방한은 더 이상 없다.# #
더불어 본 사건으로 인해 일본은 방위백서를 수정하여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임을 적시하고 유사시 해상자위대 마이즈루지방대 소속 제3호위대군를 파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미국의 존재를 고려하면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없다시피하지만 양국의 긴장감은 다소 높아졌다.
가능성은 0%지만 만약 국지전으로 번진다면 사실 해상전력에서 자위대에 많이 밀리는 대한민국 국군이 독도를 사수하는건 어려울 수 있지만 적어도 독도를 사수하면서 순항미사일 셰례를 퍼부어 주기가 가능하고 또한 제7기동전단이 비상출동을 하는 경우 일본의 제3호위대군쯤은 막아 낼 수 있다.[6]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들이 입국할 경우 한국 측 시위대와 물리 충돌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며 이로 인해 사태가 더 커지는 게 이들의 노림수인 만큼 입국 금지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평가하였다.[7][8]
4.3. 한국이 보인 반응
당연히 대한민국은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에서 내 나라 비행기가 시범비행을 하는데 왜 니들이 내정간섭하듯이 비난하냐며 좋지 않게 보았다.당사자인 대한항공 측에서는 이렇다 할만한 성명을 내놓지는 않았으나 일본 정부 차원에서 불매운동에 나서는 등 일본에서의 환승장사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서울, 부산에서 일본 환승 장사가 꽤 많았다.
국민들도 대한민국 비행기가 대한민국 땅을 비행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 그 비행기가 일본을 침공하러 나온 폭격기나 전투기도 아닌 민항기일 뿐이고 일본 땅을 비행한 적도 없는데, 왜 일본이 쓸데없이 내정간섭을 하느냐는 등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대한항공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등 성원을 보내기도 하였고 이로 인해 한국 일각에서 반일 감정을 자극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경상북도와 울릉군도 일본의 이런 태도에 불쾌감을 나타내면서 반발하였다.
울릉군민들은 아예 전투종족[9]이 되었다. 울릉도 입도 결사반대운동을 벌이면서 격렬하게 항의하였으며 왜놈 정치인들이 울릉군 영내로 들어오면 돌멩이나 계란을 던질 것이라고 하였다.
일부 군민은 '일본놈이 우리 섬에 멋대로 들어오면 때려 죽여 버릴 것이다. 올 테면 오라. 우리 고장을 침범하려는 네놈들을 우리 군민들이 힘을 합쳐 쫓아내 버리든가 아예 죽여 버릴 것이다. 울릉도 향토예비군을 출동시켜서라도 네놈들이 울릉도에 못 오게 막을 것이다'는 등 격앙된 반응도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일본이 지껄인 헛소리에 너무 지나치게 과민대응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오히려 이들이 조용하게 왔다가 조용하게 사라지게 만들었다면 더 할 말이 없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국민의 세금으로 시찰 운운하면서 관광이나 다녀온 게 알려진다면 결국 저들은 일본 국민들에게도 당연히 욕을 먹었을 것이다.
다만 아무리 조용하게 들어와도 변수는 있기 마련이며 하다못해 입국한 일본 국회의원들이 계란이라도 맞으면 심각한 외교 문제로 번지기 때문에 미리 막는 것이 한국 정부로서는 그나마 가장 나은 방법이었음은 분명하다.
"우리 땅 가지고 헛소리하는 놈들을 응징하는 게 뭐가 나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의 외교 관계는 그리 쉽지 않다. 만약 진짜로 해 버리면 일본 언론, 정부기관에 의해 집중공격 당할 것이 분명하며 입국거부될 사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는 전개다.[10]
즉, 애초에 입국을 시도하려고 한 일본 국회의원들은 어떻게 해도 자기들만 이득이란 사실을 잘 알았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일 양국 언론이 전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입국은 입국대로 조용히 거절당하는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1] 이들은 '영토에 대한 특명위원회' 소속이었으며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이시바 시게루였다.[2]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 등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3] NH1161편[4] 입국 거부가 불가능한 것은 자국민에게만 해당된다. 외국인은 입국을 심사 후 허가를 받아야 한다.[5] 당시 울릉도 지역 전반에 안개 등이 짙어서 독도로 가는 배는 없었다.[6]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가 울릉군에 사동신항을 건설하고 유사시 해군 군함을 수용하도록 하고 있다.[7] 정한론자 사이고 다카모리가 조선에 가서 자기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조선을 정벌하라고 한 걸 상기해 보자.[8] 충분히 맞는 이야기다. 김기종이 리퍼트 대사를 습격하기 전에 누구를 습격했는가 생각해보자.[9] 울릉도는 조선시대부터 황금어장으로 정평이 나있어 일본 어민들과의 충돌이 잦았다.[10] 같은 이유로 한국인이 일본에서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집회(종군위안부, 강제징용, 야스쿠니 신사 문제 등)나 행사 등을 하는 경우에도 일본 경찰이 사전에 모니터링하다가 일본 내 극우파 등과의 물리적 충돌이 임박할 경우 일이 커지지 않게 사전에 차단한다. 경찰관들이 직접 몸으로 양측의 접촉을 막기도 하고 경찰 관계자가 자리를 피해 달라고 사정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