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억 옥쇄(一億玉砕, いちおくぎょくさい)는 말 그대로 1억 명의 사람들이 옥처럼 부서진다는 뜻으로, '1억 총옥쇄'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치 독일의 국민돌격대처럼 민간인 신분으로 대의도 없는 전쟁에 끌려나가 천황 한 사람을 위해 죽임당하는 것이 '옥이 부서지듯' 아름다운 죽음일 리 없는데, 사람들을 선동하기 위해 이러한 미사여구를 사용하는 것은 태평양 전쟁의 일본 제국의 상황을 보여 주는 예이다.제2차 세계 대전이 장기화되고, 미국과의 전쟁에서는 이미 패색이 짙었으며 일본의 두 도시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소련마저 전쟁에 참전하면서 전황은 매우 악화되었다. 이에 대해서 일본의 지도부는 어전회의에서 항복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려고 하였으나 3:3으로 결론을 내지 못함으로서 성단(聖斷), 즉 천황의 결단을 따르게 되었는데, 히로히토는 이미 항복을 결심한 상태였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판단력을 잃은 일본군의 젊은 장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아나미 육군대신의 지휘를 받아서 '1억 총옥쇄'를 내세우며 쿠데타 반란, 즉 궁성사건을 획책하였으나 15일 새벽에 아나미 육군대신이 자결하고 동부군 사령관의 반란군 진압 명령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일본 지도부는 실제로 본토 결전을 준비하며 민간인들도 훈련시키기에 이르렀는데, 이들에게 쥐어준 무기는 죽창 따위의 것들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이들의 쿠데타가 성공하였다면 전쟁은 장기화되고 이런 '1억 총옥쇄'가 실현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2. 실제로 1억이었는가?
현재 일본의 인구는 2022년 기준 1억 2558만 명으로 1억이 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인구는 그렇지 않았다.전쟁 말기인 1945년 일본 본토의 인구는 약 7207만 명[1]으로 1억에는 한참 못 미치는 인구였지만, 본토인 일본 외에도 식민지들의 인구를 끌어모아서 1억 명을 넘겼다. 이들의 1939년 인구는 다음과 같다. #
- 한반도(1939년 기준): 2,432만 명
- 타이완 섬(1939년 기준): 658만 명
- 남양군도(1939년 기준): 12만 명
- 가라후토(1941년 기준): 55만 명
- 관동주(1940년 기준): 136만 명
만주국을 비롯한 중국 점령지를 제외하면[2] 총합 식민지 인구는 약 3천만 명이다. 여기에 일본 본토의 인구를 더하면 1억에 달한다. 물론 이 인구들이 1억 옥쇄를 따를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그런데 일본 제국은 독립운동이 활발한 조선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갖고 있었기에 사실 이러한 단순 계산법은 당시로서도 어려운 전황에서 나온, 선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일본은 복수국적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외지 조선인은 이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메이지 민법 및 호적법이 만들어 내는 이에의 원리는 구국적법에도 강한 제약을 가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이에제도’란, 모든 이에는 ‘일본인’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혈통주의를 속성으로 한다. 1898년 호적법은 제170조 제2항에서 “일본의 국적을 갖지 못한 자는 본적을 정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여 외국인은 본적을 정하는 것, 즉 호적을 가질 수 없다는 호적의 순혈주의를 표명했다. 때문에 중국인들 상대로는 국적 부여도 하지 않았다. 조선인 또한, 겉으로는 황국신민이지만 차별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2등시민이다. 관동대학살만 봐도 소위 '내지인'과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내선일체, 즉 표면상으로는 조선인도 일본인과 동일한 황국신민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옥쇄를 실현한다면 오키나와인들처럼 우선적으로 총알받이로 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 아베 신조의 1억 총활약 발언 논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2015년 9월 24일 일본인 한 명 한 명이 가정, 직장, 지역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저출산 고령화 흐름 속에서 50년 후에 일본 인구 1억 명을 유지한다는 목표를 담은 '1억 총활약 사회'라는 구호를 발표하였는데, 아베 신조 본인이 우경화 행보로 비판을 받고 있는 와중에 이 발언이 제국주의 전시 체제의 '1억 총옥쇄'를 연상시켜서 논란이 되었다. # 다만 일본에서는 굳이 전쟁과 제국주의를 미화할 의도가 아니더라도 '1억 총~' 식의 조어법으로 '1억 내수론', '1억 총중류'(一億總中流)[3], '1억 총 샐러리맨화' 등의 말을 만들어내어 일본의 범국민적인 사회 현상을 설명할 때 쓰인다.4. 현실에서 유사 사례
현실에서 전국민 총옥쇄를 실현한 나라가 있는데 바로 3국 동맹 전쟁 당시 파라과이다. 그 결과 전쟁 직후 남녀 성비가 1:9인 나라가 됐다. 이것도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한 수치고 군대 갈 수 있는 나이의 사람들은 더 많이 죽었다.또한 거의 유사한 것으로 북한의 총폭탄정신과, 수령결사옹위 정신이 있다.
5. 창작물에서
-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미와 와사부로(三輪和三郞) 경부는 일본 제국이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되는 날 종로경찰서로 찾아오는 김두한에게 자신이 경찰에 투신한 이유를 말하고 이제 그만 가야겠다며 "존경합니다 천황 폐하. 이 미와 경부, 조국을 위해 옥쇄를 좇나이다.[4] 마지막 충성을 받아주십시오. 천황 폐하 만세!! 대 일본 제국 만세!! 천황 폐하 만세!!!!([ruby(尊敬, ruby=そんけい)][ruby(致, ruby=いた)]します、[ruby(天皇, ruby=てんのう)][ruby(陛下, ruby=へいか)]。この[ruby(三輪, ruby=みわ)][ruby(警部, ruby=けいぶ)]、[ruby(祖国, ruby=そこく)]の[ruby(為, ruby=ため)]に[ruby(玉砕, ruby=ぎょくさい)]を[ruby(追, ruby=お)]ってあります。[ruby(最後, ruby=さいご)]の[ruby(忠誠, ruby=ちゅうせい)]をお[ruby(受, ruby=う)]け[ruby(取, ruby=と)]りください。)"와 같은 대사를 날리는데, 옥쇄를 좇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으로 쓰인 것이다.
- 일본 영화 일본의 가장 긴 하루에서는 일본 항복에 반대하며 본토결전을 주장하는 소장파 장교들이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과 소련의 독소전 승리를 언급하며 "소련도 독일의 기습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본토를 유린 당했음에도 항복하지 않고 국민 2,000만 명을 희생해 국가와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 전쟁에서 이겼으니, 일본도 국민 2,000만 명만 특공시켜 희생하면 적들을 몰아내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며, 덴노의 옥음방송 녹음 테이프를 탈취하고 항복을 막기 위해 궁성사건을 일으킨다. 대강 봐도 알겠지만 불가능한 계획이다. 소련의 당시 총 인구는 '약 2억'이다. 게다가 옆에는 그 소련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중화민국이 있었다. 인구의 10%를 동원하자는 것과 30%를 동원하자는 것은 순 병력 수의 규모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위에 적은 일본 인구에 당시 일본 인구는 약 60%가 15~64세다. 대략 계산해서 30%를 징집한다는 것은 이 연령대의 남성들을 한 명도 빠짐 없이 전부 끌고 가겠다는 뜻이다. 소련도 전후에 청년과 장년층 남성 부족으로 산업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러시아 노년층 세대는 극심한 여초 세대인데, 일본이 정말 15~64세 남성을 한 명도 빠짐 없이 모두 전투병으로 투입해서 갈아넣었다면 군수물자의 생산과 수송을 비롯한 후방 지원은 사실상 포기한다는 소리라서 애초부터 계획을 성공 시키기 어렵고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전후 산업 기반을 복구할 인력이 전혀 없어서 산업 구조가 망가질 것이다.
- 대체역사소설 대통령 각하 만세에서는 한국이 독립했기에 7천만 총옥쇄가 되었고, 진짜로 실행한덕에 4천만 가량의 일본인들이 죽었다.[5] 이후에도 한국군이 반란 진압한다고 의도적으로 학살하고, 에미시, 하야토 등의 소수민족 분리공작, 한국으로 동화정책한덕에 나중에는 일본이 소수 민족화 되었다.